막스 베버 가라사대, 권력에 대한 추종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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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사람들은 때가 되면 몰려다닌다. 소위 말하는 캠프니 그런 것들이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말하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두가지 정도이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니 같이 내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그 과정에서 뭔가 전리품을 챙겨서 한몫 보겠다는 것이다. 모두들 첫번째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세히 그 내막을 살펴보면 두번째의 경우일 때가 많다.

사실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자면 무엇인가 이득을 보거나 지큼 누리고 있는 이득-이를 기득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을 지속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잃어버릴 것이 있다거나 얻을 것이 없으면 정치판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이렇게 보자면 솔직하게 말해서 정치에 참여해서 한다리거드는 사람은 모두 뭔가를 기대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막스 베버는 정치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말했다.

(행정간부 ㅡ 번역은 행정간부로 되어 있으나 추종자로 바꾸어 읽는 것이 이해가 용이하다) …정당성의 관념에 의해서만 권력자에 복종하도록 구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이해에 관련된 두 가지 수단, 즉 물질적인 보수와 사회적인 영예에 의하여 구속되어 있다.
영주의 봉토, 세습관리의 녹, 근대국가 관리의 보수ㅡ기사의 명예, 신분적 특권, 관리의 명예 등이 그의 보수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을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행정간부와 권력자와의 유대관계의 절대적 기초로 되어있다.

결국 정치귄력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조금씩 그 분량은 다를지 모르나 본질적으로는 무엇인가를 얻어 먹기위한 것을 매개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할 수록 양자의 긴밀도는 높아지며 이해관계가 크지 않으면 양자간의 이해관계가 느슨해진다. 그것은 하늘이 정해 놓은 법칙이다.

친박이나 친노 혹은 친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매우 극렬한 지지를 보낸다. 이들이 이렇게 극렬한 지지를 보내는 배경에는 전리품이 상당하다거나 이미 차지한 이익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 분별있는 정치지도자의 의식이 필요하다. 자기를 향한 지지의 강도가 일정부분 넘어가면 위기를 느껴야한다. 그것은 자신이 바로 타파되어야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런 상황을 즐긴다. 박근혜가 친박 골수분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문재인은 지지자들의 비정상적인 문자폭탄 같은 것을 즐긴 것 같다. 선거의 양념이라고 평가한 것은 상황을 잘못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이가장 큰 위기를 맞고있는 듯 하다. 강력하고 열렬한 지지를 기뻐하기 전에 무엇이 저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를 살펴보아야한다. 종은 항상 반대방향을 때린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것을 넘으면 항상 화가 따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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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천안함과 세월호

안보견학이란 것을 갔다. 이리저리 미루다가 이제야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갔더니 잘 생긴 젊은이가 무슨 기념관장이라며 설명을 해준다. 뭔가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무척 노력한다. 정성이 갸륵했다. 한시간 정도는 설명을 듣고 마침내 천안함을 보러갔다.

천안함 폭침이후 진실 논쟁이 지리하게 이어졌었던 기억이 난다. 암초에 부딪쳤다는 둥 미국인지 이스라엘인지의 잠수함에 부딪혔다는 둥 별의별 주장이 난무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혼미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심지어 북한군이 와서 검사하겠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 때 나는 동로마의 전략가이던 베제티우스를 떠올렸다. 전쟁에서 이기려거든 적을 분열시키라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났었다. 천안함을 인양하고 어뢰잔해까지 찾았는데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이 난무했었다. 그 때 나는 직접 천안함을 보았고 그 즉시 당국에서 발표한 말이 맞다고 확신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그들은 내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키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거기에는 정치인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학자들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어왔다.

중간에 버블제트효과로 절단된 부분이다


가운데 보이는 철판은 배밑부분인데 충격으로 위로 올라 붙어버렸다. 암초에 부딪쳤으면 응당있어야할 스크레치가 전혀없다

이 반대쪽 절단면에는 끊어진 전선들이 그대로 있다. 불이난것도 아니다. 버블제트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배밑바닥에 둥그렇게 보이는 자국이 버블이 배밑바닥을 때릴때 생긴 버블 자욱이다

배밑바닥이 밑에서 압력으로 위로 올라 붙은 사진이다.

천안함을 새삼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세월호 때 똑같은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가 미국 잠수함에 부딪혔다고 했다. 세월호를 인양했지만 잠수함이나 다른 물체에 부딪쳤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정도 되면 우리는 우리 사회가 무엇인가 커다란 집단 심리학적 병리적 상황에 빠져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똑같은 일을 두번이나 겪으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

각종 의혹을 제기했던 언론들은 이런 문제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입다물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 뚝 떼고 있다.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자는 비겁한 기회주의자다.
그리고 국민들을 호도하는 범죄자이다.특히 남과 북이 아직도 군사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위는 이적행위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 회색지대는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사회가 되면 안된다. 우리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진실과 거짓을 뒤바꾸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용납되어서는 안될 일이 자행되었다.

다음에도 그럴 것인가.
우리가 이 정도로 분별력이 없을까?
우리는 이런 일을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나?
그냥 대충지나가나? 지금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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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사회에는 원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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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만 해도 이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아쉬운 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많던 원로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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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 세대는 함석헌 선생이 있어서 좋았고 김수환 추기경이 있어서 좋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뻔하디 뻔한 그러면서도 아리송한 소리를 하는 성철 스님이 있어서 좋았다. 성철스님의 다비식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김준엽 선생의 나의 광복군 시절이라는 책을 보면서 아 아 ! 난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다 모아서 읽고 또 읽으며 출가를 고민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이 길가에서 죽어서 그냥 없어지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삶이 무엇인지 진정고민했다.
난 그런 분들을 보고 살았다.
그런분들은 하나같이 불의에 눈을 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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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우리의 삶에 등대였던 분들이 많았었는데 왜 지금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 보이지 않을까? 나만 그런가 싶어서 주변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고 대답을 한다.

얼마전에 대학을 정년 퇴직하시고 학문적 성과도 있었던 분을 만나서 왜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을까요 하고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하시는 대답이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그런다고 했다. 그런가보다하고 있다가 그분이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문제에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과거의 인연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실망했다.

그리고 알았다. 원로가 없는 것은 대접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원로가 없는 것은 원로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노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저 나이만 많다고 원로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5공시절에 전통 밑에서 국무총리를 했던 김상협 선생이 있었다. 김상협 선생은 고려대 총장을 지내고 암울한 군부통치 시대에 국무총리로 들어갔다. 민족고대에는 난리가 났었다. 당시 존경받는 분이었던 김상협 선생이 독재정권의 국무총리라니 용납될 수 없었다. 당시 김상협 선생은 비록 독재정권이라도 내 나라니 나라도 무엇인가 해야한다고 국무총리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상협 선생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국무총리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엄청 비난을 받았다. 고려대 대학원 건물에 사무실을 배정받았지만 학생들은 인사도 하지 않고 모른척 했다. 5공이 무너지고 전통이 사형선고 받고 사면되었다. 아무도 전통옆에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상협 선생은 전통의 행사가 있으면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지도교수께 여쭈었다. 김상협 선생이 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통옆에 있는가하고. 지도 교수께서는 이 사람아 김상협 선생은 선비네. 자기가 선택했으면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것이 선비의 도리이네. 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로 난 선비의 도리가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원로가 없는 것은 대접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생을 제대로 살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금 그 누구도 김상협 선생을 기억하지 않는다. 난 김상협 선생의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간에 김상협 선생을 떠 올린 것은 김상협 선생처럼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조차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강의가 있어서 오랫만에 고려대에 갔다. 예전보다 건물도 많이 생기고 상전벽해가 되었다. 조지훈 선생이나 김준엽 선생과 같은 분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괜스리 나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요즘 친구들은 그런분들 이름이라도 제대로 기억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했지만 기백이 있었고 비굴하지 않았으며 어떤 권위에서 고개 숙이지 않았고 오직 정도만 걸었던 분들이 생각난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이런 상황을 보고 그분들은 무슨 말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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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붕당, 친문의 데자뷰 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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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당이다. 정당이란 정치적 견해가 같은 사람끼리 모인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대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은 정치가 올바르게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정당을 보면 그것이 정당인지 아닌지가 헷갈린다. 제일 먼저 새누리당을 예로 들고 싶다. 새누리당이 정당이었나? 물론 형식을 갖추었으니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인즉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제대로 정당의 요건을 갖추었나하는 것이다.

적어도 박근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부족하지만 이럭저럭 정당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등장하면서 새누리당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나라당 때 이회창이나 이명박 당시에도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심했다. 그러나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등장하면서 말도 안되는 현상이 등장했다.

소위 친박연대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헌정사에 말도 안되는 정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정치적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박근혜를 지지하는 정치결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거의 왕당파 수준이었다. 물론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된 것은 이명당 일당의 편협한 정치공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아닌 마치 군주를 모시는 것과 같은 정치적 과정이 발생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문제는 당시에 어떤 언론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을 훼손하는 중대한 일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나라 언론이나 학자들은 이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오늘날 박근혜가 탄핵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누구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아니라 왕이되는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나라에서 새누리를 거치면서 친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친박 복박 등등 실로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들은 비아냥거리기는 했으나 누구도 이런 현상의 뒤에 숨어 있는 본질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몰라서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진실을 말했을때 받게될 불이익 때문이었다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대답일 것이다. 유형무형의 불이익이 두려웠기 때문아닐까?

친박은 정당이 아니다. 붕당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정치가 이렇게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당이 정당이 아니라 붕당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이념과 소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흔쾌히 붕당에 가입한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붕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붕당과 정당을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도 있다.

우리 국민들이 친박을 뽑아준 것도 그런 경향이 아닐까? 유독히 경상도 지역에서 그런 현상이 심한 것은 그들이 조선시대에 붕당의 대표주자 격에 속했기 때문이 아닐까?
특정지역을 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도 역시 그 동네 출신사람이니까.

전라도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하자.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전라도는 붕당보다는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많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전라도는 그야말로 촌동네이다. 그런 촌동네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이념을 따라간다는 것은 이상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붕당이 아닌 정당을 지향했다.

한편, 그들은 이념을 따랐으나 실패했다. 그들이 뽑아놓은 노무현 정권이 이념적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명목으로 도로 붕당이 되어버렸다.

최근에 드러나는 친문패권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지금 그들 주변에는 이념이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중심으로 뭉친 붕당적 정치세력이 많이 있다.
친문세력이 붕당인 이유는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박해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비판과 문자폭탄 같은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언론도 이문제에 입들 다물고 있다. 실제 문재인을 검증하는데 있어서 가장 주안을 두고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행위이다. 이것은 테러와 다르지 않다. 아마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는 바로 이런 친문세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다. 한번 경험한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친박 붕당의 주인 박근혜를 탄핵시켰더니 이제는 친문 붕당의 수장이 나라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

비극적인 역사는 되풀이 되는것인가?
문재인이 정말 문제의 핵심을 잘 보고 나가길 바란다. 붕당에 기대지말고 국민에게 기대기를 바란다.

친문에서 친박몰락의 데자뷰를 보있다면 지나친가?

몇년후에 똑 같은 일로 가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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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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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안그런척 하는거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역사문제도 그렇다. 그러면서 미국에게 끊임없이 한국을 씹어댄다. 믿음직하지 않다니 어쩌니 하면서 말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얄미운 것을 지나 경멸스럽기까지 하다. 아베 수상도 그렇고 야소 다로 라고 하는 사람도 그렇다. 상대방의 생김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젊잖치 못하지만 야소 다로의 생긴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런데 일본은 왜 그럴까? 이해하기 어렵다. 잘못했다.한마디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대로 사과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는 도데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이 자리서 정밀한 이론적 증명을 해보일 능력도 없는지라 그냥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특성중하나인 이지메를 생각해보았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이지메는 단순한 따돌림이 아니다. 어쩌면 일본적 사회가 지니고 있는 사회심리적인 경향성을 담고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것이다.

다들 경험하셨으리라만 나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나 스스로 매우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개는 얼마지나지 않아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게되는 아픔이 뒤따라 온다.

어찌하든 일본이 하는 행동의 저변에 이지메라고 하는 사회심리적 영향이 어떤식으로 든지 작용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미쳤다.

일본인들은 왜 이지메를 했을까? 난 솔직히 그런 분야를 공부해 본적도 없고 연구해 본적도 없다. 그냥 내 수준의 정도에서 보았을 때, 이지메란 일본인들이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자기자신에 대한 집단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금만 다르게 행동을 해도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경향을 용납하면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나 집단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조직과 집단속에서 정체성을 유지해온 일본인들에게 이지메란 몹쓸 풍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집단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이지메가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행동도 크게 보면 일본이라는 집단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인 행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최근 우익적 경향도 이지메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모르겠다.
일본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앂으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 국제사회에까지 자신들의 사회심리적 경향성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거다.

정리해 놓고보니 이문제는 박사학위 논문감도 될 것도 같다.
그런데 이지메는 동물도 한다. 개도 하고 닭도하고 펭귄도 한다. 동물들이라는게 원래 못된 존재인건가?

일본이 무슨일만 있으면 쪼로록 미국에가서 우리들 이지메하는 것을 보고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앉아 머리속에서 작난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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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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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위한 정치인가 미래를 위한 정치인가?

정치를 왜 하는 걸까 하는 지극히 단순한 물음을 해 보았다. 원래 간단한 것이 진리인 경우가 많다. 수학공식도 얼마나 간단한가? E=mc2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공식도 정말 간단하다. 스마트폰으로 쓰다보니 좌승이 표현이 안된다. 이글을 읽는 분들이 충분히 이해주길 바란다. 과연 몇명이나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적더라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는 제격인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손가락 까닥까닥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심심치 않은 일이다. 그야말로 참새타법이다.

각설하고 정치는 왜 하는걸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쓸모가 있다. 정치도 그렇다. 중고등학교때 우리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막기위해 정치라는 것이 있다고 배웠다.그런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면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편 그런 정의는 정치의 소극적인 측면을 강조한 경향이 있다.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치란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우리가 정치를 하는 이유 그리고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좋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좋게 만들자면 가장 먼저해야 하는 것은 가장 나쁜 것을 고치는 것이다. 문제는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모 정당과 후보가 적폐청산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보았을 때 그것이 최선의 최상의 목표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 아닐 수 없다.
난 우리나라 정치의 최대 난제는 영호남의 분열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영호남은 서로 가까운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둘다 조선시대에는 소외받은 지역이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기에 말하는 것 조차 사족이지만 오늘날의 지역문제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치면서 발생하고 심화된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는 이런 지역문제는 상수로 생각한다. 당연히 어쩔 수 없는 구도로 생각한다. 사실 적폐라면 이런 영호남 지역구도를 이용해서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적폐이다. 박근혜도 사실 음으로 양으로 얼마나 지역구도를 이용했나?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 대선을 통해서 지역구도가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영호남이 단결하고 통합을 해야 남북통일을 할 것 아닌가. 적어도 정치를 하면서 민족사의 대과업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인이 아니다. 사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명적 과업이 통일아닌가?

다행히 이번 대선에는 지역구도가 과거 같지 않은 모양이다.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제 박정희의 망령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박정희는 국민을 지역으로 이분화했다.
그 이후의 정치세력은 진보와 보수로 이분화했다. 분열을 통한 정권장악이라는 것도 적폐이며 청산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한때 적폐청산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온것도 그때가 아니었나 한다. 말만 많았지 실제로는 자본에 권력을 양도한 것이 그들 때부터였지 않았나 싶다.

누구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이땅에 사는 사람은 과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하는 것처럼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거기서 절대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것다는 것이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그 중 자신들에게 충성스러운 세력에게 이권을 주고 결집시켜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 그것이 박정희의 유산이었다. 박근혜도 그렇게 했다.
지금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내용은 다르지만 방식은 똑같다.

국민들은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엉터리같은 놈들에게 지배받게 된다는 플라톤의 말이 있지 않은가?
박근혜와 최순실에게서 우리는 그대로 당했다. 투표한다고 정치에 관심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 머리 위에 앉아있어야 국민이 산다

토요일 아침 느지막하게 누워 끄적여 보았다. 한때 댓글이 많이 달리면서 뜨거운 적이 있었는데 다들 조용하니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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