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

지도자의 자질 image

대선이 진짜 며칠 남지 않았다. 다들 관심이 많다. 누가 선출될까 마치 자기일 처럼 가슴을 졸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왜 그럴까? 당연히 이번 대선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 지기 때문이다.

누구를 뽑아야 할까? 투표를 해야하는데 무엇을 보고 투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투표를 해야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번째 과거청산이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했다. 박근혜가 탄핵 당한 것은 그가 뚜렷하게 무엇을 잘못해서라기 보다는 과거 시대와 종말을 고하겠다는 국민들의 정치적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과거를 청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점에서 문재인은 강력한 과거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홍준표는 잘못한게 무엇이냐 하는 식이다. 박근혜 탄핵되었으면 그것으로 된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중간 지점에 안철수가 서 있다. 그는 처음에는 강력한 과거청산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문재인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지 기반이 보수쪽으로 확대되면서 그 색깔이 희석되고 있다.

두번째는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 능력이다. 우리 사회는 여러가지 점에서 한계에 봉착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비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보문제이다. 우리를 옥죄는 것은 북한핵문제 뿐만이 아니다. 중국과 미국도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지금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한쪽은 남북간 대화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 처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북한을 옭죄어서 핵을 포기시키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이든지 안보적인 문제이든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오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은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지금의 후보를 보면 우선 문재인과 홍준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진보이건 보수이건 모두 기존의 사고방식과 문제해결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앞으로 5년의 시간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의 경우 기존의 방식과 다른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확신을 갖도록 하지 못한다.

세번째는 업무수행능력이다. 앞의 두가지와 달리 세번째는 대통령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고 하는 점에서 앞의 두가지와 다르다. 대통령의 업무수행능력은 효율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도덕성과 윤리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박근혜가 탄핵된 가장 큰 이유는 도덕성과 윤리성의 결여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법적인 근거만으로 탄핵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국민들의 정서에 반하는 비도덕적인 경우 탄핵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대통령이란 정치적 직책이다. 아마도 박근혜는 대통령의 직무를 정치적이 아니라 법적으로 이해했는지 모른다. 이점에서 볼 때 문재인은 가장 많은 비난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국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과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문빠라고 하는 계파 문제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점에서 홍준표는 매우 높은 수준의 역량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경남도지사로서의 실질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사실이고 직무수행의 성실성과 도덕성도 비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홍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홍준표가 극우적인 성향을 지녀서가 아니라 그가 이룩한 성과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철수는 문재인과 홍준표의 중간에 위치하는 상황이다. 벤쳐기업을 운영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경영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한 세가지 기준은 필자가 작위적으로 선정한 것이다. 평가를 하려면 무엇인가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기준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여하튼 대통령을 선출할 때는 상기한 세가지 정도의 기준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후보 모두 상대방을 압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결국 국민들의 가치기준에 의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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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맨날 요모양 요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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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둘러 쌓여 있다.

우선 북한이 핵 미사일 무기를 개발하여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우리랑 상관없는 먼 우주의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거 정말 위험한 물건이다.
한때 북한을 동경하던 사람들이 핵은 통일이후 민족자산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잘못된 인식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북한 핵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과거의 행동과 주장이 정당했는가를 증명하려면 과거의 언명을 지금해도 타당해야 한다. 지금 북한핵을 민족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한다.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의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우리를 옥죄어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잘못하면 중국과는 거의 교역중단까지도 각오해야할지도 모른다.

점입가경인 것은 미국이 사드배치를 이유로 10억달러를 내 놓으라고 한 것이다. 중국은 사드배치한다고 우리를 조지고 미국은 사드배치하는 돈을 내 놓으라고 한다.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분명 무엇인가 크게 잘못 되었다. 어디서 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으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이제는 러시아까지 한몫 보겠다고 달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까. 사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먼저 북한이 어떤 집단인지 정확하게 인식하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문제를 감성적으로 해결하려한 낭만주의자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장님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처한 현재의 안보환경에서 사드배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은 결과 우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말그대로 샌드위치가 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주변에서 강제하여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무능이 초래한 문제이다. 우리 스스로 만든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장관은 기자들에게 사드는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누가 했나. 김관진이 했나? 하기야 김관진은 미국체류 때 록히드 마틴으로 부터 비용을 지원 받았다는 의혹까지 있으니 김관진이 했을 수도 있다. 그럼 그렇다고 장관의 책임이 면해지나?

이젠 국민들이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이 똑똑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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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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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박원순
김무성
이 사람들은 모두 두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는 모두 현재 대선 후보이거나 대선 후보로 언급되었던 사람 들이다. 그중에 세 사람은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 1,2,3 등을 달리고 있다.

두번째는 다섯사람 모두 부산 경남 사람들이다.

참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유력한 대선 후보가 모두 부산 경남 사람들일까?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 해보았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하고. 다른 지역은 밥먹고 뭐했길래 대선 후보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일까? 특히 그동안 한국 정치의 맹주 역할을 했던 TK와 호남은 참담한 실정이다. 대구 경북지역과 호남지역에는 눈에 띄는 정치인이 없다. 그나마 유승민이 바른 정당 후보로 나왔지만 지지율이 턱없이 낮아서 의미가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직장 동료들과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대체로 정치적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어느 지역에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도자가 있으면 후계자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니 누가 즉각 반박했다. 부산 경남에도 김영삼이 있었다고.

그럼 무엇이 이런 현상을 만들었을까? 먼저 우리의 현대 정치사를 생각해보자. 대구 경북에는 리더십이 강하고 카리스마적인 정치지도자들이 많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가 그들이었다. 호남은 그야말로 김대중이 있었다. 부산 경남에는 김영삼 노태우가 있었다. 충청도에는 김종필이 있었다.

지역과 리더격 정치인을 연결시켜 보면 묘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매우 강력하거나 위대한 정치인을 배출한 지역에서는 후배 정치인들의 역동성이 떨어진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대구 경북과 호남이 아닌가 한다. 김대중이 민주주의를 주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자기지역 정치인들이 맘에 차지 않았으리라. 대구경북은 웬만큼 카리스마가 강하지 않고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두지역다 모두 자기 지역을 대표할 만한 정치인들을 키우지 못한 것 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여유가 있었던 김종필 아니면 지배력이 약했던 충청도는 그나마 대선후보 언급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부산 경남의 김영삼은 매우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나 스타일이 달랐다. 그는 사람을 발탁하고 키우는 것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남의 머리를 빌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노무현도 결국 김영삼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두고 보니 최근 약진하고 있는 부산 갈매기들의 비상이 그저 이유없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부산갈매기여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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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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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지지가 늘어 간다는 뉴스가 있다. 처음에는 조금 정신이 나간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철수를 위협하는 정도까지 되었다니 놀랄일이다. 어제는 충청도가서 영남하고 충청도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한심한 생각도 들고 이러려고 촛불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홍준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의 약진이 나를 한숨짓게한다. 만일 유승민이 약진했다면 내 마음이 이렇게 산란하거나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홍준표의 지지도 상승은 한 시대와 종말을 고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 하는 회의감 때문이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길고 긴 유신체제로 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준표의 등장은 나의 이러한 기대와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한 시대와 종말을 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대의 마지막 커튼에는 그것을 넘기지 않으려는 저항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탄핵으로 없어져야 했던 수구세력들이 이렇게 남아서 끝까지 역사의 진행을 방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것 저것 생각해보았다. 왜 사람들은 홍준표를 지지할까? 단순하게 과거로 돌아가고자하는 말도 않되는 이유 때문일까? 지금 홍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친박이나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홍준표가 뜨고 있는 것은 홍준표 때문이다. 그가 지금과 같이 말도 안되는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경남도지사로 보여준 행동 때문이다. 진료의료원의 폐쇄와 같은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 붙인 것에 대해 찬반 양론이 많았다. 결국 그의 폐지 주장이 지지를 받았다. 왜 그랬을까? 그 뿐만 아니라 교육청에 무상급식비도 지출하지 않았다. 이유는 감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행동 이면을 잘 보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고 여론에 끌려다니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의 그런 면을 높게 사는 것 같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그가 생각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의 이면에는 반동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준 행동을 시원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똘아이 같은 짓만 했으면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을까?

홍준표가 보여준 지지율의 상승을 보고 진보측도 많을 것을 느껴야 한다. 우리의 진보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점이 없지 않다. 보수를 보고 부패했다고 비난하지만 진보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해먹고 남은 비판하면서 자기편은 봐주는 행동을 서슴치 않게 한 것이다. 국민들은 그런 분위기 다 알고 있다.

국민들은 좌파의 이념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태가 싫은 것이다. 그것이 탄핵정국에서 탄핵본당인 자유한국당이 말도 않되게 약진하는이유가 아니겠는가?

홍준표가 어떤 이유로든지 약진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홍준표는 어떠한 이유로는 한시대의 종식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역사적 죄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진보의 그늘 때문이었다.

손님이 와서 말이 왔다갔다 했다.

    1. 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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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전략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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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까지의 대선은 양자 대결이어서 둘이서 죽자 사자 싸우면 되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크게 보아 3가지 정도로 전선이 나뉘어졌다.
이름하여 보수 중도 진보가 그것이다. 2개에서 3개로 전선이 나뉘어지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여기서 보수는 홍준표로 중도는 안철수로 진보는 문재인을 이른다. 사실 서구의 개념에서 볼 때 홍준표는 보수라기 보다는 수구라고 하는 것이 맞다. 아마 안철수 정도가 보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서구의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여기서 쓰는 말은 통상 언론에서 하는 말을 따른다.

전선이 3개로 나뉘어 지면서 선거전략이 복잡해졌다. 누가 누구를 공격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된 것이다. 비교적 속이 편한 측은 문재인이다. 자신의 색깔만 잘 지켜나가면 승리는 무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도 비교적 명확하다. 자신의 색깔을 지켜나가고 문재인과 안철수를 진보로 몰아붙이면 된다.

문제는 안철수다. 그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에 서 있다가 반문재인 정서에 편승하고자 했다. 그래서 보수표를 기대했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해버린 것 같다. 앞에서 심상정의 문제를 지적했듯이 안철수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국민들이 중도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진보나 보수나 하는 꼴이 싫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식 계파정치나 문재인식 계파정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중도가 시대정신이었다. 그런데 안철수는 문재인과 홍준표의 틈을 확대시키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실패했다.

안철수가 지금까지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보수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보수의 표를 의식한 순간 전략적으로 유리한 모든 것들이 전략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문재인을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안철수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문재인 쪽으로 기울고 말았던 것이다. 보수쪽에 있던 사람들도 절박하게 문재인만은 안된다는 마음을 상실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보수측 사람들은 홍준표와 안철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는 갈수록 보수로 기울 수 밖에 없고 보수측은 이것봐라 하고 홍준표 카드에 미련을 두게 된 것이다.

전략의 실패는 결정적이다. 지금과 같은 구도라면 안철수가 어찌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TK쪽 사람들을 절박하게 만들어 그들이 안철수 쪽으로 달려 오게 만들었어야 했다.

안철수 측의 가장 큰 실패는 박지원을 2선으로 빼버린 것이다. 보수측 사람들이 박지원을 싫어한다고 빼버린 모양인데 그것은 완전한 실책이었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서 박지원 만큼 전투력 강한 사람이 있는가. 아마 박지원이 문재인을 박살냈다면 보수측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안철수에게 기어 들어 왔을 것이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가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전략의 실패는 작전적 성공으로 만회하기 어렵다. 세번의 대선토의는 전략의 실패에 기인한 결과다. 네번째는 방향을 조금 바꾸어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지만 작전적 성공이 전략적 실패를 만회하기 어렵다.

앞으로 남은 2주간 안철수는 어찌할까?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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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을 비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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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여러가지로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평가의 기준을 큰틀에서 보면 몇가지 되지 않는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개인의 능력이요 두번째는 그사람이 물려 받은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능력이란 여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능이 뛰어나다거나 인간성이 좋다거나 의지가 강하다거나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람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얼마나 성취를 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지능과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하는 족족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면 우리는 그 성취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이루어 놓은 것을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인정을 받는 경우가 있다. 전근대적 신분사회에서는 개인의 성취보다는 물려받은 것이 더 중요했던 적도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오늘날에도 물려받은 것이 중요하다. 금수저 흙수저 따지는 것도 결국은 그런 이유 때문 아니겠는가.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첫번째 부류가 그 사회를 주도한다. 그러나 후진적인 사회는 두번째 부류가 사회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인지 모르겠다. 3공화국 때는 분명 첫번째 부류가 주류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면 우리사회는 두번째 부류가 주류인 듯 하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보고 헬조선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서론을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홍석현이란 사람은 도데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의 성취를 인정받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보아도 개인적 능력으로 성취를 이룬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성공은 삼성의 지원 덕분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리라. 이건희 처럼 물려받았으나 거기서 머물지 않고 개인적 능력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석현은 상당기간 동안 정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개인적 능력일까?.아니면 순전히 다른 사람의 후광 덕분일까? 아무리보아도 타인의 후광 덕분으로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오판인가?

솔직히 말자자면 자신의 집안에서는 대통령을 만들 수 없으니 처남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마음대로 대한민국을 휘어잡고자했던 것이 이건희의 생각 아니었을까?

최근 그가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그것이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그의 실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는 민주당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지나친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입신에 바탕이 되었던 삼성을 조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람이 할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당에 빌붙어서 한자리하려고 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나라는 너무 한심한 것 아닐까?

본인은 삼성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삼성이 망해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적어도 인생을 살면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홍석현이 국무총리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기 생질을 궁지에 몰아 넣는 것은 인륜을 어기는 일이다.

기회주의자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홍석현은 그 선을 넘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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