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사 18-25 제5차전역, 평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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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패한 3가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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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성급하게 공격을 실시

적의 상륙작전 가능성을 너무 지나치게 판단. 서둘러 전역을 개시함으로써 준비가 붖고
전략예비대가 막 도착 집결하여 최소 필수의 임전준비만 한 이후 곧바로 작전에 투입
새로 참전한 병단은 적상황과 지형에 익숙하지 못하고 전술적 준비도 미흡’
식량과 탄약의 비축이 부족해 작전행동에 큰 영향

둘째, 너무 크게 공격

섬멸하려는 목표를 너무 크게 잡음.
제1단계에 적5개사단(3개는 미군사단)과 2개여단,
제2단계에 국군 6개 사단 섬멸을 결정

중국군은 공군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목표달성은 불가능
피아 쌍방의 역량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이 부족

제2차 참전병단을 획기적 역량 증강이라고반 보고 각종 곤란을 생각치 못함
“장기적으로 준비, 단기에 승리획득”이라는 전쟁지도방침 중 “단기에 승리”에 편중

제5차 전역의 결과를 너무 크게 평가, 전쟁기간이 짧을 것이냐 길 것이냐만으로 판단

셋째, 너무 멀리 공격

중국군 보급능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전역이 적 종심으로 길어졌고 보급과 부상병 후송이 곤란
적이 반격을 개시할 때 신속하게 전쟁아에서 벗어나지 못함
전역 2단계 작전에서 중국군이 공격을 정지했을 때, 당시 진출지역에서 2일간 머물면서 보급을 기다리며 부상병을 후송하려던 것이 곤경에 빠지게 작용(162)

전역승리가 완벽하게 되지 못한 이유는 전역계획에 결점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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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단계시, 20군, 40군이 적 종심으로 신속하게 진격하면서 전과확대하고 있을 때, 중국군의 후속 역량 부족로 이미 성공한 전략적 돌파구를 확대하지 못함

만일 3병단 및 제26군의 담당지역을 동쪽으로 연장시키고 27군을 7병단의 제2제대로 하여, 국군 제6사단 지역에 형성된 돌파구를 활용했으며 더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 것임

3병단은 15km의 협소한 정면에서 1개 제대로 공격을 실시함으로써 3개 사단이 밀집되어 오히려 공격속도가 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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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24 제5차전역 평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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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 모두 15개 군 병력투입, 50일 작전, 적 8만 2천명 섬멸
중국군 인원손실 8만 5천명
피아 부상 및 사망 비율 1:1.038

4차 전역시 처했던 피동적 상황에서 탈출
  1. 중국군은 작전지도방침의 정확성을 승리의 이유로 제시
    전역 각 중요한 전환점에서 정확하고 적시에 조치

    “일부병력이 적의 전역종심으로 곧장 뚫고 들어가 적의 배치를 동 서 양부분으로 크게 분할시키며, 섬멸하고자 하는 적에 대해서 주력을 집중하여 양익우회를 실시해서, 다중 포위를 완성시킨 후 정면공격과 전술적 분할포위를 배합하여 포위망내 적을 각개 섬멸”(160)

우선 주력을 집중하여 서부전선에서 공격을 실시하여 서부전선의 적에게 타격

제1단계 작전에서 승리를 획득하여 적주력이 서울, 한강, 소양강 남안으로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자 과감하게 서부전선에서의 공격을 멈추고 서부전선의 국군사단들이 돌출되어 있는 유리한 시기를 포착하여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이동, 일거에 현리지역에서 국군 3, 9사단 대부분을 섬멸하는 승리를 거둠

현리 작전이후 적이 전전선에 걸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 중국군 보급의 곤란으로 추가 공세가 어렵다고 판단하자, 전역진공을 중지시키고 휴식정비를 위한 철수를 개시

이동과정에 적이 기계화장비로 추격하여 잠시 피동적 상황에 빠졌으나 적시에 일부부대의 휴식정비를 중단, 방어에 투입시켜 적의 진격을 조기에 저지

(중국군 180사단의 괴멸, 한국군 3, 9사단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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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23 제5차전역, 제2단계 작전이후 유엔군 반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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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상황, 연합사령원의 작전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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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의 중앙부인 지암리, 관청리, 가산리선에 형성된 간격으로 미1군단이 철원, 미9군단이 금화, 미10군다이 양구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기도를 파악하고 다음과 같이 지시

65군,1개연대로 기산리와 청계산을 연하는 선을 고수
60군, 장암리, 국망봉, 사차리 선으로 신속하게 이동 적의 진격을 저지

15군, 12군 주력, 금화남쪽 실내리, 다목동 지역으로 철수 집결

제9병단, 지촌리, 화천, 산양리를 연하는 동서지역에서 신속하게 종심방어를 편성, 춘천, 화천도로를 따라 진출하는적을 소멸시킬 준비를 지시

진격하는 적에게 타격을 주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판단

서부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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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1사단, 문산점령후 임진강 도하
미1군단, 경의선 철로 양측을 따라, 감악산(동두천리 서쪽), 소요동(동두촌, 북), 양문리 및 기산리 선까지 진격, 이어서 동막리, 초성리, 종현산, 간자리를 연하는 중국군 65군 방어지역으로 진출

동부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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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현리지역은 중국군 27군의 저지를 받아 진출 제한

중부전선, 180사단 포위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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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춘천에서 중국군 60군의 180사단과 179사단으로 공격하면서 배후로 공격
정면의 국군 6사단은 계관산 점령후 계속 공격

우익의 미24사단, 송정리, 탄감리 점령

중국군 180사단은 완전 포위된 상태,
60군은 180사단 지원에 얽매여 장암리, 국망봉, 사창리 선의 신방어선 편성 임무를 수행하지 못함
60군은 181사단으로 하여금 탄감리로 반격하여 180사단과 연결토록 했으나 통신두절로 성공하지 못함
27일 179사단으로 하여금 180사단과 연결작전을 시도했으나 실패,
180사단은 전력을 전의 간격으로 집중해 포위망을 돌파하지 않고 분산해서 돌파함으로서 심각한 손실을 봄

지원군사령부는 15군으로 하여금 60군의 방어선을 책임지도록 명령하고, 방어선을 자일리 서쪽까지 연장

27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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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과 국군은 문산, 영평, 화천, 부평리, 인제를 점령하고 철원, 금화, 양구 방면으로 진격
(국군 1,3군단은 동해안을 따라 북진중)

연합사령원은 일부군의 휴식정비를 중단시키고 즉시 방어임무에 투입

63, 64, 15, 26, 20군 및 인민군 5, 2, 3군단 주력은 임진강, 한탄천 이북의 지포리, 화천, 양구, 간성지역 방어

12군 주력, 양구로 돌아 금화지구로 철수
하진부리 지역에서 격리당했던 91연대, 하진부리 동쪽엣서 설악산을 넘어 주력과 합류

90병단 27군은 화천, 양구를 향해 이동 개시
20군 주력은 화천 이북 지역에 도착

28-30일 이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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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군, 연천 이남 지구를 점령한 적에 대한 반격작전 실시
20군, 화천 일대를 점령한 적에 대해 반격 작전실시, 화천을 수복

6월 1일
47, 42, 20, 27군, 신막, 이천, 계웅산, 흑운토령에서 종심방어선을 편성완료

중국군 반격과 전전선 방어태세가 완성되면서 추격은 저지를 받게 됨

6월 10일, 중국군은 철원 금화에서 자의적인 철수를 실시

적을 문산, 고랑포리, 삼환리, 철원, 금화, 양구, 명파리를 연하는 선에서 저지함으로써 쌍방은 방어에 들어감

제5차 전역이 종료

20일의 철수작전간 적 3만 6천여명을 섬멸

유엔군의 반격작전 기간을 제5차 전역기간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중국군의 입장에 불과하다. 유엔군 반격기간은 별도의 작전단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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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22 제5차전역, 제2단계 작전이후 유엔군의 반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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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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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주력은 전개해서 여러방향에서 북으로 진격

서부전선

중국군 65군은 일부부대로 칠봉산, 해룡산에서 적을 저지, 주력은 저녁 한탄천 이북 지역으로 후퇴, 의정부 청평천 선에서 적을 15-20일 저지한다는 임무를 수행하지못함

중부전선

차단당했던 12군 주력은 24일 저녁, 적부대 간격을 이용, 홍천 인제도로를 넘어 화천, 양구 방향으로 철수

60군 주력은 25일 새벽 북한강을 넘어 화천이남 평촌, 대가마윤(181사단), 서상리, 오구남리, 마평리(179) 지역으로 철수

180사단, 춘천 이남의 한곡, 정병산 지역에서 북한강 이북의 계관산, 명월리, 구순대산, 북배산, 상하방동 지역(춘천서북)으로 철수, 179사단 일부와 적을 저지

25일 황혼 동부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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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황혼까지 춘천으로 진격한 미7사단은 179 사단의 서상동, 퇴동리 진지를 점령, 상서면, 강초리에서 진격한 한국군 6사단은 180사단의 계관산 진지를 점령,

성황당에서 진출한 미24사단은 중국군 180사단의 우측후방인 독대봉, 간촌 방어진지를 점령, 180사단의 방어선는 북배산, 가덕산, 오월리 지역에서 분할

181, 179사단은 사창리, 탄감리 및 마평리 지역으로 철수

제9병단 27군, 양구 인제 남쪽의 부평리, 현리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항
소양강 선에서 적 진출을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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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21 제5차 전역, 제5차전역, 제2단계 종료후 유엔군의 반격2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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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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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중국군 65군, 의정부, 청평천 선에서 20-30 km 후퇴, 용암리, 왕방산 선으로 후퇴하면서 제3, 19병단의 접합부 간격은 더욱 확대

60군은 지정된 방어지역으로 이동하여 방어편성을 실시하지 못함, 이에 국군 6사단, 미군 24사단이 춘천 서북의 제령리, 성황당으로 진출, 가평동쪽에 위치한 북한강 도섭지점인 강촌리까지 장악

미7사단, 미해병1사단 일부는 춘천과 춘천 남쪽의 신연강까지 접근

중국군 180사단은 북한강 남안의 한곡, 정병산 지역에서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양익은 완전히 노출되었고 북으로의 퇴로는 위협을 받음

제9병단 20군은 24일 새벽, 현리와 남쪽지역에서 양구 인제간으로 이동했으나 그 일부는 부평리 남쪽의 구만리에 위치

9병단 정면으로 미2사단, 미공수 187연대 가 홍천에서 부평리, 구만리 지구로 진입
미 공수 187연대 일부는 구만리에서 공수낙하를 실시, 중국군 20군가 전투 개시
(실제 공수작전은 없었으며, 중국군은 게르하르트 특수보대의 신속한 진출을 공수작전으로 오해한 듯함)

국군 5사단 주력은 현리까지 진출

중국군 9병단 27군은 부평리 남쪽, 홍천 인제간 도로 양측의 도목동, 옥산동 취봉산 및 현리지역에서 격리당해, 소양강을 이용해 적의 전진을 저지하려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됨
27군 사령원은 79사단은 부평리, 인제 남쪽지역, 81사단은 현리 지역에서 적의 진출 저지를 명령

9병단에 작전배속된 12군 주력, 풍암리에서 출발 24일 자은리, 어론리 지역으로 이동했으나 홍천 인제도로 동쪽에서 퇴로가 차단됨. 91연대는 하진부리 북쪽의 삼거리 지역에서 멀리 이격

24일 작전상황에 대한 연합사령원의 평가 및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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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까지 중국군이 계획했던 방어선은 형성되지 못하고 2개방향(가평과 동쪽의 인제)에서 적에 의해 전선이 분할되어 곤란한 상황에 직면

24일 22시 각군은 계획성있는 엄호화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매복 및 역습으로 적의 진출을 저지시킬 것을 지시

5차전역 제2단계이후 유엔군의 공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공적인 공세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듯함. 특히 중국군의 제2단계 공세 종료이후 유엔군이 곧바로 역습에 나선 것은 타이밍이 매우 탁월했다. 어떻게 정확하게 역습시기를 파악했는지는 미군의 자료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유엔군의 공세는 향후 중국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의 휴전협상과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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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 제5차전역, 제2단계 종료후 유엔군의 반격1 (5월 23일)

유엔군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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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새벽 중국군 주력이 이동을 개시하기전, 보급곤란의 약점을 이용해서 맹반격을 개시

4개군단 13개 사단 병력을 투입, 차량화 보병, 탱크 및 포병으로 편조된 특수임무부대를 선두로 운용

대량의 공군과 장거리 포병의 지원을 받음

반격은 서울에서 연천, 춘천에서 화천, 홍천에서 인제 방향으로 실시

미제1군단은 서울에서 철원축선을 따라 주공을 담당

미제9군단은 춘천에서 화천방면으로

제10군단은 인제 양구방향으로 공격

국군 제1군단은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진격

중국군 상황과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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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은 유엔군의 계획적인 대규모 반격을 예상하지 못했고 철수준비와 계획이 주도면밀하지 못함

전선에 많은 간격이 발생, 유엔군 특수임부부대가 이 간격을 이용하여 진출함으로써 중국군은 철수작전 초기에 상당히 피동적인 국면에 처함

23일 서부전선

국군 제1군단이 문산, 고양지구로 진격하자, 인민군 제1군단은 문산에서 고랑포리고 이르는 임진강 부근으로 퇴각, 국군 제1군단은 두포리 선으로 진출

미기병1사단, 25사단, 영국군 28여단, 캐나다 대대, 국군 2사단 및 미24사단과 중국군 65군이 의정부와 청평천을 연하는 선에서 대진

중부전선

국군6사단, 미7사단, 해병 1사단, 미2사단, 가평 한곡 정병산 대룡산(춘천, 남쪽과 동남에 위치)과 한계(자은리 남쪽)을 연하는 선에 진출

중국군 60군 180사단, 북한강 남쪽의 한곡, 정병산 지역에 위치
179사단, 대룡산과 그 동부지역에 배치

동부전선

적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중국군 9병단 주력은 순조롭게 철수

전선의 주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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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65군 우익이 노출되었고 제3, 19 병단 접합부인 가평방면에 커다란 간격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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