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신륵사 구룡루에 서서

사람의 생김생김이 다 다르듯이 절도 조금씩 모습이 다 다르다. 신륵사는 그런 측면에서 다른 절과 사소한 차이가 많은 편이다. 절이 강을 따라 앉아 있는 것도 그렇고 경치도 그렇다. 깊은 산에 있는 절은 강을 바라볼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경치라고 해야 산을 내려다보는 것 정도이다. 이제까지 절을 다니면서 산 경치가 아름다웠던 곳은 부석사였다. 부석사에서는 소백산맥이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자면 옛 사람들이 그린 산수화가 사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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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는 강을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그래서 강가에 정자도 지어놓았고 그 옆에 석탑도 세워놓았다. 겉모습으로 보아 3층석탑이니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의 작품일 수도 있는 것 같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니 알 수 있는 방도는 없다. 신륵사에서 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은 구룡루이다. 강가의 정자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다면, 구룡루는 꽤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구룡루의 초석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대웅전 앞에 서서 강단같은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아마도 스님이 법문을 행하실때 구룡루를 사용했을 것이다. 구룡루란 이름 처럼 9 용을 강조한 것은 아마도 신륵사에 불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룡루에 올라서서 강을 내려다 보면 경치가 좋다. 그 위치를 보면 고리타분하게 스님 법문 듣기보다는 둘러 앉아 시한 수 쓰고 기생 노래나 듣는 것이 훨씬 제격일 듯다. 그래서 인지 구룡루 처마 밑에는 유달리 글을 써서 붙여 놓은 현판이 많다. 아마도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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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구룡루 안에 있는 그림들이다. 불교그림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 꽤 많다. 오히려 도교적 분위기가 더 많이난다. 강가에 앉아서 술이나 차를 마시면서 시를 읊으면 그것이 바로 선경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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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루에 서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봄이 되어 조금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때가 구룡루가 가장 아름다울 때일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위 되면 물빛이 바뀌니 그 주변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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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신륵사에서는 흘러가는 강물을 즐길 일이다

절마다 모두 산이름을 하나씩 걸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불교 사찰의 특징인것 같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산이름을 걸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산신신앙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신륵사도 산이름을 걸고 있다. 이름하여 봉미산이다. 일주문 이름이 봉미산 신륵사라고 적혀있다. 신륵사는 그 위치가 독특하다.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산이라고 하지만 산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그러 조그만 구릉의 자락에 위치할 뿐이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해서인지 봉미산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봉황의 꼬리와 같은 산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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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과 강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절이 신륵사다. 산과 강을 모두 아우르고 있으니 경치가 좋다. 마치 도교적 낙원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강을 바라보고 있는 석탑도 있고 정자도 있다. 사람따라 좋아하는 취향이 다 다르지만 난 강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가 좋았다. 정자 옆의 오래된 석탑도 좋았다. 그래서 날씨가 추웠지만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정자 바로위에 오래된 전탑이 있는 것도 모두 다 이유가 있을 법 했다. 삼국시대 신라시대의 양식가 비슷한 전탑이 서 있었다. 해설판을 보니 오래전에 새로 다시 조립해서 옛모습과는 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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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다 모두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신륵사에서는 정자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여유를 즐기는 것이 좋다. 가끔식 배가 지나간다. 아직까지 강에서 고기를 잡는 조그만 어선이 있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부숴지는 강의 햇빛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어도 좋다. 신륵사에 가면 제일 먼저 흘러가는 강물을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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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여주 신륵사를 가는 길에서의 상념

추운 어느날이었다. 날씨가 며칠째 좋지 않아서 어머니는 산책을 하지 못하셨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를 뒤집어 쓰고 산책을 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어머니는 집안에만 계셨다. 마침 날씨가 추워지면서 바람이 불어 미세먼지가 없어졌다.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쐬러 간곳이 여주 신륵사였다. 신륵사는 아주 오랜만이다.

여주 신륵사를 택한 것은 어머니가 여주 이씨이기 때문이다. 소위 양동 이씨라고도 한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후손임을 무지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지라 여주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여주에 있는 여주 이씨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한국전쟁때 서울에 있던 여주 이씨 일가들이 피난을 가면서 중간 기착지로 여주를 택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가가 있으니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 여주에 가보니 일가사람들이 모두 상민화되어 있더란다. 그래서 실망을 하고 다시 피난을 갔다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양반은 성씨가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을 들어 보면 꼭 성씨가 중요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스스로 양반임을 자각하고 그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학자로서 가치관을 지니는가 아닌가가 양반의 가장 중요한 자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양반이란 서양의 귀족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서양의 귀족은 기본적으로 재산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재산도 중요하겠지만 학자가 되어야 한다. 관직에 나가든 안나가든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삶을 사느냐 아니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민이나 노비에게는 양반과 같은 엄격한 가치기준을 적용하진 않은 것 같다.

어떻든 여주에 도착했다. 사람마다 기억이 다 다르다. 난 여주하면 이상하게 자유당 시절에 유명했던 정치깡패 이정재가 생각난다. 그는 4.19 이후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릴때 김두환, 스라소니, 신마적, 구마적, 이정재, 유지광 등등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을 많이 보았다. 삶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그 당시에 그렇게 살았던 것은 일제치하에서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주가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친일을 해서 먹고 살기 바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그저 건달생활 밖에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어사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이들 건달들이 정치에 기웃거리고 정치인들도 이들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서 어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주에 도착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신륵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신륵사에 드른 것이 거의 20년 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변하는 것 같다. 그 때 기억엔 주차장 근처에 큰 바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 무엇이 내 머리속의 기억의 타래를 흔들어 놓았을까 ? 기억이란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럼 기억을 믿을 수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기억이란 우리의 의식이 가능하게하는 가장 중요한 저장소이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내가 나의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맞을까 ? 이쯤 되니 내가 나비꿈을 꾸고 있는것인지 나비가 내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장자의 고백이 마치 내일 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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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오랫만에 밖으로 나온 것이 좋으신 모양이다. 어머니가 좋아 하시니 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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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웬지 쓸쓸해지고 싶을 때에는 고달사지를…

우울함은 현대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질병이기도 하다. 질병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육체적 질병에서 정신적 질병으로 옮겨가기도한다. 삶이 복잡해지고 풍요로워지면서 정신적 질병이 더 많아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풍요로움만으로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은 북구의 우울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요즘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고민은 별로 관심의 대상도 아니지만 한때 실존주의는 시대적 화두이기도 했다. 신 앞에선 단독자라는 언명으로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실존을 정의했다. 난 단독자라는 말에 이끌렸다. 그 단독자란 무엇일까 ? 키에르케고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자신의 우울을 신 앞에선 단독자란 말로 표현한 것같다. 그러나 그는 우울을 극복하지 못했다.

우울함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에는 두가지 증상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고독함이고 또 하나는 쓸쓸함이다. solitude 와 lonlyness 이다. 읽은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실존주의 신학자가 한 말이다.

지금은 우울함과 외로움을 병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진정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외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이 우울함으로 번져 나가지 않도록 하면 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쓸쓸함을 극복해야 한다. 고독함은 삶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쓸쓸함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삶이 쓸쓸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나의 내면을 적시는 영적 자양분은 위대함이 아니라 내가 비루먹은 망아지 같은 신세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허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삶은 풍요롭게 된다.

그래서 난 일부러 쓸쓸함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 최고의 장소는 폐허가 된 절터이다. 우리나라에는 페허가 된 절터가 여럿있다. 그중에 올 겨울에는 어머니와 고달사지를 다녀왔다. 그런 폐허는 가을이나 겨울에 다녀와야 제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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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텅빈 벌판을 바라보면 인생과 삶이 얼마나 덧 없는 것인지를 직시할 수 있다. 이상하게 그런 폐허의 절터에 꼭 사리탑들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누런 벌판에 간혹 남아 있는 하얀색의 석물들은 마치 가죽을 뚫고 나온 백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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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바람만 불어온다. 늦가을이니 바람이 차다. 그러나 그 찬바람을 맞으면서 과거 한때 사람으로 붐볐을 그 곳에 서있으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 없는가를 절절히 느끼게 만든다.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싶으시면 폐허의 산사를 찾아 보시라.


남양유업 이제는 주주들에게까지 손을 쓰고 있나;;;;

내가 이러려고 국내기업에 투자했나 자괴감이 들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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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선암사 대웅전과 석탑의 양식을 보며

선암사는 아주 크지는 않아도 볼 것이 매우 많은 절이다. 오늘은 선암사의 대웅전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대웅전도 그 주변이 담으로 둘러 싸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절에서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하고 한가한 느낌이 난다. 공간이 크게 열려 있으면 주변에 사람들로 붐비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담으로 둘러싸인 대웅전에서는 다른 절에서 느꼈던 소란함이나 분주함이 없었다.

내가 선암사에 갔던 때가 가을이었다. 절아래부터 많은 사람들이 선암사 구경하러 올라가는 것을 보았으나 정작 절안에서는 그리 붐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차분하게 지중을 할 수 있었다. 따스한 가을 햇볕을 쬐면서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느낌은 무어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내면의 무엇인가가 따스한 기운으로 감싸인 느낌이다. 이럴 때면 살짝 전율도 느껴진다.

선암사의 대웅전 구석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 대웅전은 그 양식으로 보아 신라의 것으로 보여진다. 대웅전을 떠 받치고 있는 단과 대웅전의 기둥을 떠 받치고 있는 초석은 아마도 신라시대의 그것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건물은 다포식 계열이라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전란에서 성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에 불타서 새로 지었으나 그 이후에도 두번이나 더 불이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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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양식이라고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절 앞의 석탑이다. 2개의 석탑이 서 있다. 석탑은 신라말이나 고려초의 양식인 듯 했다. 두개의 석탑과 사방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이 나를 마치 불국사의 대웅전에 있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불국사와 선암사의 공간과 담은 매우 다른 느낌이다. 불국사가 매우 잘 정리된 귀족적인 모습이라면, 선암사의 대웅전 공간은 소박하고 정감이 넘치는 서민적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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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때문인지 사람들도 절로 느려지는 것 같다. 절에가서 간혹 마음이 급한 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유가 있었다. 내가 넓은 공간을 즐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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