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여주 신륵사를 가는 길에서의 상념

추운 어느날이었다. 날씨가 며칠째 좋지 않아서 어머니는 산책을 하지 못하셨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를 뒤집어 쓰고 산책을 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어머니는 집안에만 계셨다. 마침 날씨가 추워지면서 바람이 불어 미세먼지가 없어졌다.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쐬러 간곳이 여주 신륵사였다. 신륵사는 아주 오랜만이다.

여주 신륵사를 택한 것은 어머니가 여주 이씨이기 때문이다. 소위 양동 이씨라고도 한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후손임을 무지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지라 여주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여주에 있는 여주 이씨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한국전쟁때 서울에 있던 여주 이씨 일가들이 피난을 가면서 중간 기착지로 여주를 택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가가 있으니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 여주에 가보니 일가사람들이 모두 상민화되어 있더란다. 그래서 실망을 하고 다시 피난을 갔다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양반은 성씨가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을 들어 보면 꼭 성씨가 중요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스스로 양반임을 자각하고 그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학자로서 가치관을 지니는가 아닌가가 양반의 가장 중요한 자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양반이란 서양의 귀족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서양의 귀족은 기본적으로 재산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재산도 중요하겠지만 학자가 되어야 한다. 관직에 나가든 안나가든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삶을 사느냐 아니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민이나 노비에게는 양반과 같은 엄격한 가치기준을 적용하진 않은 것 같다.

어떻든 여주에 도착했다. 사람마다 기억이 다 다르다. 난 여주하면 이상하게 자유당 시절에 유명했던 정치깡패 이정재가 생각난다. 그는 4.19 이후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릴때 김두환, 스라소니, 신마적, 구마적, 이정재, 유지광 등등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을 많이 보았다. 삶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그 당시에 그렇게 살았던 것은 일제치하에서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주가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친일을 해서 먹고 살기 바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그저 건달생활 밖에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어사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이들 건달들이 정치에 기웃거리고 정치인들도 이들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서 어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주에 도착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신륵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신륵사에 드른 것이 거의 20년 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변하는 것 같다. 그 때 기억엔 주차장 근처에 큰 바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 무엇이 내 머리속의 기억의 타래를 흔들어 놓았을까 ? 기억이란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럼 기억을 믿을 수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기억이란 우리의 의식이 가능하게하는 가장 중요한 저장소이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내가 나의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맞을까 ? 이쯤 되니 내가 나비꿈을 꾸고 있는것인지 나비가 내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장자의 고백이 마치 내일 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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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오랫만에 밖으로 나온 것이 좋으신 모양이다. 어머니가 좋아 하시니 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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