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웬지 쓸쓸해지고 싶을 때에는 고달사지를…

우울함은 현대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질병이기도 하다. 질병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육체적 질병에서 정신적 질병으로 옮겨가기도한다. 삶이 복잡해지고 풍요로워지면서 정신적 질병이 더 많아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풍요로움만으로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은 북구의 우울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요즘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고민은 별로 관심의 대상도 아니지만 한때 실존주의는 시대적 화두이기도 했다. 신 앞에선 단독자라는 언명으로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실존을 정의했다. 난 단독자라는 말에 이끌렸다. 그 단독자란 무엇일까 ? 키에르케고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자신의 우울을 신 앞에선 단독자란 말로 표현한 것같다. 그러나 그는 우울을 극복하지 못했다.

우울함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에는 두가지 증상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고독함이고 또 하나는 쓸쓸함이다. solitude 와 lonlyness 이다. 읽은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실존주의 신학자가 한 말이다.

지금은 우울함과 외로움을 병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진정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외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이 우울함으로 번져 나가지 않도록 하면 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쓸쓸함을 극복해야 한다. 고독함은 삶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쓸쓸함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삶이 쓸쓸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나의 내면을 적시는 영적 자양분은 위대함이 아니라 내가 비루먹은 망아지 같은 신세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허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삶은 풍요롭게 된다.

그래서 난 일부러 쓸쓸함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 최고의 장소는 폐허가 된 절터이다. 우리나라에는 페허가 된 절터가 여럿있다. 그중에 올 겨울에는 어머니와 고달사지를 다녀왔다. 그런 폐허는 가을이나 겨울에 다녀와야 제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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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텅빈 벌판을 바라보면 인생과 삶이 얼마나 덧 없는 것인지를 직시할 수 있다. 이상하게 그런 폐허의 절터에 꼭 사리탑들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누런 벌판에 간혹 남아 있는 하얀색의 석물들은 마치 가죽을 뚫고 나온 백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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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바람만 불어온다. 늦가을이니 바람이 차다. 그러나 그 찬바람을 맞으면서 과거 한때 사람으로 붐볐을 그 곳에 서있으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 없는가를 절절히 느끼게 만든다.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싶으시면 폐허의 산사를 찾아 보시라.


남양유업 이제는 주주들에게까지 손을 쓰고 있나;;;;

내가 이러려고 국내기업에 투자했나 자괴감이 들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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