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스팀잇이야기) 스팀잇 무엇이 문제일까? 스팀잇 발전을 위한 제언

스팀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왜 스팀가격이 이모양이냐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스팀가격이 떨어지니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까지 스팀잇에 관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셀프보팅, 고래들의 이기심, 재단의 무능력, 등등이다. 만일 고래들이 문제가 있다면 고래들에게 모두 스팀파워 팔고 나가라고 하면된다. 그리고 스팀파워를 일정정도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하면된다. 셀프보팅이 문제라면 처음부터 스팀잇을 잘못 설계했다. 스팀잇에서 셀프보팅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은 모든 문제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과연 스팀잇의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 부터 시작해보아야 한다. 스팀잇은 익명성을 보장받으면서 어떤 이야기라도 올릴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서 출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최초에는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은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자유로운 공간에 좋은 콘텐츠가 게재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있었다. 제곱보상과같은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스팀파워에 대한 보상도 매우 높았다. 그것은 POS라는 스팀잇의 제도적 기반을 고려한 것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처음의 구상은 중간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제곱보상이 없어졌다. 탁월함보다 평등함을 추구하는 구조가 되었다. 증인들에 대한 보상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스팀파워를 보유하면서 얻게되는 보상은 대거 줄어 들었다. 그렇게 되면서 POS의 기본 개념이 사라졌다. 스팀파워를 보유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그대신 글을 써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커졌다. 아마도 좋은 콘텐츠를 우대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같다.

의도했던 것과 실제로 돌아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하드포킹을 하고 나서 갑자기 셀프보팅이 문제가 되었다. 그전에도 문제가 있었으나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제곱보상이 작동하기때문에 남에게 보팅을 받지 못하면 셀프보팅한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보상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팀파워 보유에 대한 보상이 줄어들면서 좋은 글을 찾아서 보팅하는 것 보다 내가 글을 써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줄기차게 글을 쓰게 되었다. 그전에는 남에게 인정을 받기위한 글을 썼는데 하드포킹이후에는 좋은 글을 위한 것이 이니라 보상을 받기 위해 그냥 글을 쓰게 되었다.

인간이란 묘한 존재이다. 매우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이기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은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은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기재이다. 나쁘게 작동을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의 이기적 본능을 적절하게 잘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런 통제와 관리는 일방적인 강요나 희생이 아니다. 그런 것은 전제주의다. 소련이나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했던 방식이다. 물론 다 실패했다.

지금처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초심으로 돌아가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글을 써서 보상을 많이 받으려고 하지 않고 좋은 글에 보팅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당연히 글을 써서 얻는 보상보다 규레이션 해서 얻는 보상이 크면 된다. 당연한 것 아닌가. 고래인 @trafalgar 가 수없이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가 나온지 1년 반은 넘은 듯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보상의 비율 변경에 반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두사람의 이야기로 결론 지을 것이 아니다.

스팀잇이 성장하려면 이런 중요한 문제는 스팀잇 코뮤니티 전체가 참가하는 국민투표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정책을 그냥 재단에서 알아서 정하고 증인들을 그것을 통과시키는 과두적 체제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일전에 스팀 얼라이언스가 바로 그런 것 아니었나 생각한다.

글을 쓰는 보상과 큐레이션 비율을 최소한 반반으로라도 한번 해보자. 그리고 그 안에 대해 커뮤니티가 참가하는 투표를 해보자. 그렇게 해서 중론을 정하면 재단에서 코딩을 하고 증인들이 받아 들이면 되는 것 아닐까 ?

그렇지 않으면 각각의 증인들이 각각의 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밝히라고 하고 스팀잇 코뮤니티에서는 그런 증인들에 투표를 하는 안도 있다. 지금처럼 증인과 시팀잇 시민들이 유리되어 있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스팀파워를 보유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보상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스팀가격이 올라가려면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누가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하려고 하겠는가 ?

이런 두어가지만 변해도 스팀잇을 지금보다 엄청나게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증인들 중에서 누가 나서서 추진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스팀잇 커뮤니티로 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을 것이다. 장담한다.

스팀잇 발전을 위해서는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서로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망하기 위해서 스팀잇에 들어온 사람 아무도 없다. 서로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 싸우게 만들고 또 그렇게 갈등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다.


[대명-소노펠리체] 요즘은 힐링이 필요할 때

테라하우스 앞 골프장에서 골프 치는 사람들. 치고 싶지만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 촌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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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경주 분황사 돌 우물과 원효대사 탑비받침

분황사에서 정말 의미있는 유물은 석정, 즉 돌우물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 우물의 이름은 호국룡변어정이라고 한다. 나라를 지키는 용이 물고기로 변한 우물이라는 뜻이다. 이야기인즉 원성황 11년, 서기 795년에 당나라사신이 와서 신라를 지키는 호국룡 세마리를 주문을 외워 물고리로 변하게 만들어 이를 대나무통에 들고 가는 것을 붙잡아서 그 물고기를 분황사의 석정에 넣어 살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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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삼국통일이 676년이니 이 이야기는 약 100년이 지난다음의 일이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이후에도 당나라와 신라는 편한 관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당나라는 압도적인 국력으로 계속 신라를 위협했을 것이다. 북쪽은 발해가 있었으므로 신라는 주로 바다를 통해 당나라와 교섭을 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당나라는 신라를 군사적으로 계속 압박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비록 전설같은 이야기지만 삼국유사의 이 이야기는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당나라는 끝임없이 신라를 손에 넣으려 했을 것이고 신라는 그런 당나라에게 계속 저항했던 것 같다. 그 호국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아마도 당나라가 억지를 부려서 신라의 무엇을 빼앗아 갔던지도 모른다.

중국과 우리의 관계는 과거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와 비슷한지도 모른다. 북한이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우리는 중국과 직접 상대하지않아도 된다. 중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북한은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과 소련은 북한을 자신들의 완충지역으로 생각했다. 그런 것과 비슷하게 북한은 우리에게 완충지역인지도 모른다.

신라는 당나라 사신을 쫓아가서 물고기를 찾았다. 그리고 그 물고기를 분황사 우물에서 살게했다. 그런데 왜 용으로 다시 복원시키지 못했을까 ? 아마도 당시 당나라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현실적인 은유인지도 모른다.

원래는 세용이 있었고 당나라 사신은 물고기를 세마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원성왕에서 당나라 사신이 호국룡을 잡아갔다고 구해달라고 했던 것은 동지와 청지에 살고 있던 호국룡의 아내였다. 그럼 다른 용 한마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 동지나 청지에 살고 있던 이들 호국룡의 자식일까 ?

아마도 당나라 사신에게 귀족이나 왕족의 누가 잡혀가다가 풀려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물의 옆에는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지에 새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무슨새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도시에 살아서 새를 보아도 그게 무슨새인지 잘 모른다. 나무를 보아도 무슨나무인지 모르고. 그 알 수 없는 새가 나무가지에 앉아서 나를 희롱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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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바로 옆에는 원효대사의 탑비받침이 있다. 고려조때 원효대사의 탑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탑비는 어디로 가고 그 받침만 남았다. 간혹 탑신의 흔적들이 발견된다고 하는 것을 보니 파괴된 모양이다. 그 탑비 받침은 추사 김정희가 확인을 해서 원효대사의 탑비받침이라는 것을 음각으로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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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유물이다. 경주에 가면 어디서든지 이런 전설과 대면을 할 수 있다. 그것이 경주의 매력이다.


바이낸스 해킹사건에 대한 갠적인 생각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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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경주 분황사의 모전석탑 금강역사 상을 보면서

모전석탑을 보면 부처님과 금강역사의 관계를 잘 알수 있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 금강역사다. 두사람의 금강역사가 서서 부처님 경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역사는 입을 열고 있는 상과 입을 닫고 있는 상이 있다.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교의 이론에 따르면 세상은 영원히 생멸을 거듭하는 것 아닌가 ? 그렇다면 금강역사상에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상징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

금강역사와 네 귀퉁이의 동물상은 어떤 관계일까 ? 절에 가보면 사천왕문과 금강문이 있다. 대부분 일주문이 있고 그다음에 금강문이 있고 그 다음에 4천왕문이 있다. 그런데 모전석탑을 보면 입구에 금강역사상이 있다. 원래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금강역사 상이 부처님과 더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쨓든 입을 열고 있는 아 금강역사와 입을 다물고 있는 흠 금강역사는 세상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고 이 아와 흠을 합하면 옴이된다고 한다. 옴이란 소리는 우주의 처음과 끝 그리고 모든 지혜를 아우르는 소리라고 한다. 앞으로 시간날때 마다 옴하는 소리를 내 봐야하겠다. 그럼 뭐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모전석탑의 금강역사 상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쪽은 그래도 어느정도 형태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예외없이 무서운 상은 서양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중에서 어떤 것들은 우리와 친숙한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있는 듯하다. 이 모전석탑이 만들어진지 1500년이 다되어가지만 그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역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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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네방향으로 감실이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그 안에 그냥 돌로 채워져 있다. 원래 대로라면 그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야 했을 것이다. 동서남북 네문앞에 금강역사가 한쌍씩 서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뭔가 모르게 조금씩 다르다. 모전석탑의 석상을 여러사람이 깍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이렇게 큰 역사를 한사람의 석공만으로는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금씩 그 모습이 다른 것은 석공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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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 이름없는 석공들은 이름대신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보고 있다. 인간이란 종이 비록 100년도 살지 못하지만 난 1500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그때 이 석상을 다음었던 석공과 대면하고 있다. 난 그를 위해 어떤 설명을 해주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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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수호상 앞에서

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시대 선덕여왕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기 있다. 모전석탑은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임진왜란때 무너졌다. 그리고 1915년엔가 일제시대에 일제총독부에 의해 다시 지금과 같은 3층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분황사 모전석탑의 진정한 모습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모전석탑을 정비하면서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유물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고려시대에도 정비를 했었는지 모를 일이다.

임진왜란때 무너진 것을 다시 일제시대에 정비했다고 하니 모전석탑도 기구한 운명이다. 모전석탑보기가 부끄럽다. 그리고 모전석탑을 만들었던 신라시대의 선조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결국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보존해 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의 근본은 정신력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경제력이 강하며 군사력이 대단하다하더라도 자기의 문화 그리고 자신의 근본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이 없으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폐쇄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에 모전 석탑을 3층으로 정비했다고 하는데 원래는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아마 그 이전의 기록이 있었다면 원 모습을 추정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나 그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전석탑은 참 아름답다.

지금의 분황사는 그터가 그리 크지 않다. 그 옆의 황룡사는 그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난 그것을 볼때마다 의문스러운 것이 있다. 그리고는 나는 나대로 추리를 하곤한다. 황룡사의 구층목탑이 불탄 것은 고려시대 몽고군들이 침입해서라고 한다. 그때 몽고군들이 황룡사를 모두 불태웠다. 그이후 황룡사는 영영 폐허가 되고 말았다. 다만 모전석탑은 화마를 면할 수 있었다. 몽골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던 고려시대에는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을 포기했고 다만 남아 있는 모전석탑을 중심으로 불타버린 분황사만 다시 지은 것으로 말이다.

분황사와 황룡사는 담하나를 사이게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절을 두개나 바로 옆에 붙여서 세웠을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 그것은 매우 비경제적인 일이다. 아마도 분황사는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조금 떨어져서 모전석탑을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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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층을 제외하고 2,3층은 제모습이 아닌 듯 하다. 아마 모전석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분황사는 아마도 원래의 분황사보다 그 터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분황사 출입구를 지나서 바로 모전석탑이 서 있는데 그 터가 협소하다. 출입구와 모전석탑이 너무 가깝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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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전석탑에 가까이가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탑의 네모서리에 서 있는 동물상이다.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다. 사자같기도 하고 해태같기도 하다. 불교건물에 사자상이 많을 것을 보면 사자일 수도 있다. 모전석탑 주변에 나쁜 기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문장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마치 천왕문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 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네 동물상의 모습이 다 조금씩 다르다.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조금 자세를 숙이고 있는 것도 있다. 아마도 각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조금의 차이가 훨씬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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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추운 날씨였지만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점심 회식으로 스시히또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주방은 열일하고, 손님은 열먹하며, 조명은 열밝하는 스시히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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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스팀잇의 문제점에 대한 코빗의 분석을 보고

거래소 코빗에서 스팀잇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최근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조금씩 론칭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한국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콘텐츠 플랫폼 기업 왓챠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콘텐츠 프로토콜’이 오는 8일부터 자체 토큰을 통해 왓챠플레이 이용권 등을 교환할 수 있는 CPT 스토어를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지급받는 게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사냥을 하고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습니다. 암호화폐는 차후 거래소에서 환전하여 현금화 시킬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가 현금으로 환전되는 성공적인 사례는 암호화폐 기반의 SNS인 스팀잇이 있습니다. 스팀잇은 창작자가 쓴 글에 구독자들이 투표를 하여 암호화폐로 보상을 얻는 시스템으로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하여 한국 시장에서도 파급력을 불러왔었습니다. 다만, 스팀잇은 암호화폐 가치 상승과 동시에 빠르게 성장하다가 암호화폐 가치가 하락하면서 동시에 유저들도 많이 이탈한 상황입니다. 단순히 암호화폐의 하락이 유저들의 이탈의 원인은 아니며 특정 유저들 간 투표 몰아주기 등 사회적, 정치적 관계 형성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심리적인 동작으로부터 컨텐츠의 생산 그리고 암호화폐의 보상을 원하는 시스템은 향후 발생하게 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점을 예측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다수의 사용자로부터 군중심리와 같은 심리적인 요소들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암호화폐가 인센티브로써 유저들에게 보상이 제공되는 이코노미 시스템은 암호화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메리트입니다. 접근성과 편의성 그리고 재미를 가장 잘 살려낸 킬러 앱의 등장이 향후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스팀잇이 지금처럼 된 것은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스팀잇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을 구성원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보여서 스팀잇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이나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본능이다. 문제는 이기심을 발전적으로 이끌어가는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나쁘다고 그것을 통제만 하려고 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스팀잇에서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제안도 있었다. 주로 보팅과 관련하여 글을 쓰는 것보다 보팅하는데 더 많은 보상 비중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어권에서도 많은 제의가 있었다. 저도 스팀잇에 좋은 콘텐츠가 몰릴 수 있는 방법은 글쓰는 것 보다 큐레이션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제의는 스팀잇 증인이나 운영진들이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팀잇이 오늘날 이렇게 무기력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전 그동안 스팀잇을 이끌어 오던 네드의 무능력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코뮤니타스기능을 만든다 SMT기능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결과도 없었다. 오히려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스팀이나 팔았다. 아마도 그렇게 하고 여기서 털고 나가려고 했나 보다.

스팀잇이 아무리 보상을 바탕으로 한 SNS라고 하더라고 보상에만 바탕해서는 제대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팀잇을 바탕으로 한 사업모델이 나와야 한다. 요즘은 스팀엔진 같은 것들이 만들어져서 뭔가 활발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그런일에 문외한이라 잘 몰라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뭔지 몰라도 그런 시도들 중에서 뭔가 성공하는 것이 나오면 스팀잇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팀잇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오히려 네드가 없어지고 나서 스팀잇은 훨씬 활동적으로 되었다. 비록 누가 강력하게 주도해 나가는 사람이 없지만, 지금처럼 누구라도 뭔가 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은 오히려 좋은 듯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산이란 지금같은 상황이 아닌가 한다. 많은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성급하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다보면 뭔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은 스팀잇에 제대로된 개발자들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도 조금씩 조금씩 나가다 보면 뭔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벌러 온 곳이라고 하더라도 돈만 앞세우면 정말 재미없는 곳이 된다. 난 이곳을 나의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나의 기록을 남기고 나의 역사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투자만 할 것 같으면 지금껏 스팀잇에 남아 있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차라리 지금 유망한 곳에 여기저기 투자해 놓은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각자 자기만의 셈법이 있는 법이다.

그 셈법이 분명하면 주관있는 삶을 살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남에게 흔들리게 된다. 이제까지 약 3년간 스팀잇에 글을 써왔지만 불과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금 하다가 나가버렸다. 역사를 이루는 것은 탁월함이다. 그러나 그 탁월함을 만드는 것은 지속해 나가는 힘이다. 뭘하든지 남들이 지쳐 나가 자빠질때까지 지속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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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경주 분황사 보광전에서

세상은 복잡하다. 신문을 보니 세상이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여당과 야당이 싸운다. 미국과 북한이 싸운다. 우리도 그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역사는 투쟁으로 형성되는 것 같다. 며칠간 여당과 야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안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고 끌 탕을 했다. 뻔한 것 가지고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 그런데 이젠 북한이 동해안에다 미사일을 쐈다.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참 실소가 다 나온다. 처음에는 화가 났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니 무덤덤해졌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가 한다. 그저 무덤덤한 생각말이다. 요즘들어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조그만 나라, 먹고 살기도 힘든 나라가 세계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하는 것이리라. 요즘 북한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것 같다. 그녀가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상이 최선희 생각처럼 움직여 나갈 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남북간에도 군사적 긴장이 발생할 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한국이야 미국을 협박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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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예전에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문득 경주 분황사자료에 손이 갔다. 그때도 매우 추웠다. 이상하게 경주는 매번 겨울에만 갔었다. 추운 날씨에 혼자서 이리 저리 쏘다니다가 왔다. 최근들어 봄과 여름에는 가보지 못했다. 어떤 곳은 매번 여름에만 가게 되고 어떤 곳은 매번 겨울에만 가게 된다. 올봄에는 선운사의 떨어지는 동백을 보러 가러 했으나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제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는 마당에 겨울의 삭막한 풍경을 올리려고 하니 조금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일전에 보았던 남원 실상사 보광전이 분황사 보광전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 추웠던 2년전 겨울에 분황사 입구에 버스를 내리니 조그만 노파가 나에게 쌀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분황사에가서 부처님에게 바친려고 하는데 힘이들어서 들고 갈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늙어 마치 초등학생처럼 쪼그라든 노파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서이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제대로 걸어다니고 건강하게 사시니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10kg짜리 쌀을 들고 분황사로 갔다.

어릴때 어머니 아버지 신혼여행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경주 분황사 전탑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을 내서 집에 있는 사진을 모두 디지털로 만들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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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바로 앞에는 넓은 황룡사 터가 있다. 사람들이 황룡사터에서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다. 노파를 따라 분황사로 들어갔다. 그 할머니가 한마디 하니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착한 일을 하니 부처님이 바로 보상을 해 주신다.보광전 부처님 전에 쌀을 올리고 절을 했다. 보광전은 추웠다. 그런데 햇볕이 들어오는 곳은 따뜻하다. 내부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보광전을 보니 주심포 양식이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도 매우 오래된 양식이다. 몽골의 침입과 임진왜란때 화를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양식은 거의 고려때 것과 비슷하다. 아마도 새로 지을 때 옛날양식을 그대로 살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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