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고팍스에게 바란다.

고팍스가 스팀잇 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스팀잇에 매우 우호적인 접근을 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인이 암호화폐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고팍스를 추천했다. 고팍스를 추천한 것은 다른 거래소에 계정을 틀기가 너무 어려워서였다.

빗썸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믿기기 어려워 아예 배제를 했다. 다른 거래소는 신규계정 여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반면 고팍스는 쉽게 계정을 열수 있었다. 그런데 입금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어떤 투자자가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입금을 하려고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스팀잇 포스팅에서 입금이 용이하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몇번 돈을 보내려고 시도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왜 입금하는 것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팍스에서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이 바로 입금을 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돈을 보낼 수 있어야 투자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저도 아예 고팍스 계정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정은 만들었지만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하기 때문이다. 좀 쉽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입금하는 것을 수동으로 처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까지는 고팍스 사용에 관련한 문제였고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어떤 사업이든지 초반에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여러 거래소가 있지만 그 중에서 업비트가 가장 빨리 성장하고 주도권을 장악한 것 같다. 그동안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빗썸이 여러가지 문제로 비틀비틀 하는 동안 업비트가 제일 앞으로 치고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상당한 혁신이 아니면 업비트를 능가할 거래소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팍스 계정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고팍스에 이런 저런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스팀에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바라고 싶은 것을 하나 이야기 하고 싶다.

어차피 지금의 상황이라면 고팍스가 우리나라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거래소가 되기는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팍스는 스팀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고팍스 상황에서 의미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고팍스가 지금의 위치를 장악한 것도 우리나라 스팀잇 동지들의 성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팍스는 스팀을 잔뜩 구매해서 고래로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부족한 듯한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고팍스가 1등 거래소가 되지 못하더라도 뭔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스팀을 기축으로 하는 거래소가 되는 것이다. 물론 스팀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기축통화로 삼는 것이 시기 상조가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팍스의 경우 이미 스팀에 발을 상당히 담구었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아직 메인 넷 런칭도 하지 못한 이오스는 여러 거래소가 주축통화로 삼겠다고 한다. 이오스를 주축통화로 삼는 거래소를 열려고 하는데 이미 100만명의 계정을 가지고 있는 스팀잇이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팍스가 스팀잇을 주축통화로 삼으려면 스팀잇 본사측과 상당한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스팀잇에 스팀과 스팀달러를 바꾸는 기능, 그리고 블록트레이드와 같은 기능은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팀잇 지갑에 그런 기능이 있으면 스팀을 주축통화로 삼으려고 하는 거래소의 입장에서는 썩 개운하지 않을 것이다.

스팀을 주축통화로 삼는 거래소가 있다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 거래소를 쓰겠다. 만일 스팀을 주축 통화로 삼는 거래소가 생긴다면 스팀가격은 어마무시하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을까 ? 그게 고팍스면 좋겠고.

그런 기대와 희망을 고팍스에게 걸어본다. 이준행 대표 인터뷰하는 것 보니 그런 생각을 할수도 있을 것 같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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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 2년의 소회

스팀잇을 시작한지 2년이 다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글을 올렸다. 그간 올라간 글을 다 정리하면 꽤 될듯하다. 결국은 매일 매일의 일기를 쓴 셈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스팀잇을 이렇게 열심히 하게 되었을까 ?

돈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업모델이 뭔가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 글을 썼다.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돈은 투자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기간에 다른 암호화폐에 투자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투자를 했다. 처음에는 내가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서였는데 조금 지나가니까 남에게 보상을 나눠주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가 그것도 시들해졌다. 보상이 적절하네 아니네 어뷰징이네 마네 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싫었다. 인민재판하는 것 처럼 완장차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보기 싫었다. 자신들만 옳고 정의롭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폄훼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완장차고 돌아다녔다. 내가 남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란 모두 거기에서 거기다.

어느 순간엔가 자유롭자고 시작한 스팀잇이 오히려 나의 생각을 억압하고 얽어매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결국 현실 세계이든 가상세계이든 인간관계가 문제다.

오히려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의 인간관계는 더 질긴 듯 하다. 현실세계는 안보면 되지만 가상세계는 끊임없이 따라 다닌다. 아예 가상세계에서 떠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그 끈적 끈적한 관계의 억압을 피할 수 없다.

아예 떠나면 될 터인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단순하게 경제적 이익이 되기 때문일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나의 경우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에 몰두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글쓰는데 집중할 수 있다.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마치 구름처럼 떠 다니는 의식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더 들자면 남에게 무엇인가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제 집에서 논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소일거리 찾아서 무엇인가 한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한다. 그것도 바쁘게 한다. 그 바쁜 일의 내용도 현직에 있을때와 다르다. 현직에 있을때는 일이 스트레스였지만 지금은 사진찍고 공부하고 글쓰는 것이 기쁨이다. 그래서 여러번 꽤 좋은 조건의 자리가 있었지만 여유있게 웃으면서 거절할 수 있었다. 남들이 다 하고 싶어하는 자리를 웃으면서 여유있게 거절할 때, 난 희열을 느꼈다.

사회생활하면서 좋은 조건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 처럼 기분좋은 일은 없다. 그런지 안그런지 나중에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란다. 스팀잇에는 능력있는 분들이 많으니 나보다 먼저 그런 희열을 느낀 분들도 있으리라.

경제적인 이유을 떠나서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스팀잇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보상의 다과를 막론하고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스팀잇이 나를 묶어둔 가장 큰 힘이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경제적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과거 다른 SNS에도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들하고 말았다. 그런데 스팀잇은 나를 글쓰는데 집중하게 만들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들로 산으로 사진을 찍으러 돌아 다니게 만들었다.

몰론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고 할 것 없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팀잇의 앞날이 상당할 정도로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의 삶을 밀도있게 살게해 준 것은 순전히 스팀잇 덕분이다.

바람이 있다면 네드를 위시한 스팀잇의 운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신들이 앞장서서 보팅풀 운영하며 SMT에만 목을 매서는 미래가 어둡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내가 나름대로 의미있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스팀잇 덕분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되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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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란 그런 사람인가 보다.

사촌들 모임을 했다. 대부분 시골에서 태어났으나 이제 거의 다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 형제들이다. 지금이야 사촌이라는 것이 그리 가깝지 않은 듯하지만 우리때야 사촌이란 한 형제나 마찬가지였다. 작은집 큰집 돌아가면서 먹고자고 했다. 아무 이물없이 밥얻어 먹고 잤다.

어머니가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인근에 사는 숙모가 사촌들에게 우리집에서 밥을 먹지 말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집안이 어려워서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셨는데 그것을 안스럽게 본 숙모가 사촌들에게 우리 어머니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서 숙모는 나를 계속 걷어 먹이셨다. 어떤 이유건 어머니는 숙모의 그런 조치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부산 작은집에 고등학교 1학년때 한달간 동생하고 같이 가서 있었다. 광안리 바닷가 바로 옆이었다. 슬리퍼 신고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였다. 한 여름을 바닷가에서 놀았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숙모들을 남의 엄마라고 생각해본적이 별로 없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숙모들도 기동을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80이 넘어가시니 어련하시겠는가 ?
어릴때 우리 숙모들은 밥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오랫만에 본 사촌 여동생이 한마디 했다. 대학 졸업한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피곤해서 곧 죽을 것 같다가도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서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한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배고프다고 하면 짜증부터 난단다. 우리는 웃었다.

저녁에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내가 가면 항상 음식을 준비하신다.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인병을 생각하면서 준비하신다. 이틀을 어머니와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열심히 음식을 마련하신다. 사촌 여동생이 하던 말을 어머니에게 했다. 웃으셨다.

어머니에게 가면 항상 진수성찬이다. 식사 준비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고 여쭤보았더니 무슨 소리냐고 펄쩍하신다. 어머니는 다 똑같은 모양이다.

어머니란 자식에게 밥해주는 것이 행복한 사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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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몇년전에 보았던 미국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제목과 내용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무지하게 죽이는 영화였다. 미국에서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그 영화의 제목이 뜬금없이 생각이 난다.

최근들어 노인들이 길가에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전철에서나 길가에서나 노인들이 점차 많이 보인다. 오래전에 독일같은 선진국에는 낮에 노인들만 돌아다니고 젊은이들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하다. 그러나 정작 독일에 갔을때는 젊은이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길가에서 노인들을 많이 보게 된 것은 태극기 집회때문인 것 같다. 태극기 집회가 열리면 노인들이 여지없이 많이 모인다. 처음에는 주책없고 할일없는 노인들만 모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주변의 노인들도 많이 참석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노인들의 면면이 만만하지 않았다. 상당한 학식의 소유자들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던 분들은 물론이며 유명한 기업의 전문경영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심하게 생각했었는데 내 주변의 그런분들이 그런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 무엇이 그들을 길가에 나가도록 만들었을까 ? 정말 우리나라에는 세대간 갈등이 심각한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제가 얻은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노인들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젊을때 한국전쟁을 경험했고 산업화시대에 몸을 바쳐 지금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이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뼈가 부서지게 일해서 형제자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비루먹은 늙은 말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에 노인들은 존경과 존중을 받았다. 농업사회에서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경험만한 것이 없었다. 일전에 귀농한 사람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책에서 보고 배운데로 파종을 해도 싹이 잘 트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다하다 동네 노인에게 물었단다. 그랬더니 “아 그거, 그거는 종다리 우지질때 씨 뿌리면 돼” 그러더란다. 그래서 다음해는 그렇게 했더니 정말 신기하게 싹이 잘 나더란다. 그게 바로 경험이다.

과거의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서 존경과 존중을 받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경험은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인들의 경험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노인들의 경험이라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잔소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산업화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이 설곳을 잃어 버린 것이다. 요즘 블록체인판에는 40이상 만 되어도 노인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백서 읽는 모임에 35세 이상은 참여할 수 없다는 공지 사항이 있는 것도 보았다.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노인들이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무력감이 그들 노인들을 길가로 내몰지 않았나 모르겠다. 과거에 노인들은 안방에 앉아서 천리를 내다 보았다. 그시대에는 가능했던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노인들이 아무리 설치고 돌아다녀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 삶의 지혜라고 했던 것조차도 지금은 어리석은 잔소리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니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인 생활이나 삶의 지혜에서나 아무런 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는 자신들의 부모가 돈많이 모아놓고 한 63세 정도에 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결과까지 있었다.

여러분들은 돈 많이 모아 놓고 63세 정도에 세상을 버리면 자식들이 가장 좋아 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그러나 앞으로 그 나이가 점점 줄어들어들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무용지물이라는 자괴감 그런 것들이 노인들을 길가로 몰아 내는 것 같다. 정말 그들이 박근혜를 지지해서 그럴까? 박근혜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박근혜는 그들이 젊어서 가장 역동적으로 살았던 시기안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의 상징일 뿐이다.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은 묘해서 한번 지나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노인들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서글픔과 상실감에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갑자기 시대가 바뀌어서 노인의 경험을 높이사고 삶의 지혜를 존경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길가에 태극기를 들고 지나가는 노인들의 쭈글쭈글한 얼굴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오랫 만의 가족 점심 식사를 마치고 멋있는 차림의 아저씨 아주머니가 선글라스를 끼고 태극기 집회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말하지 못했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있다는 환희와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바뀌지 않을 시대의 조류에 저항함으로써 얻는 희열을 구태여 나무랄 필요도 없다. 그냥 잘하고 오세요라고 했다.

얼마 있지 않으면 나도 노인의 초입에 들어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지금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면서 블록체인을 공부한다. 젊은 놈들에게 아는 척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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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를 다녀왔다. 마침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제주에서 사는 직원이 결혼식을 하는지라 기회가 좋았다. 수십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어 가는 상황인지라 제주도 여행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이들도 다커서 이제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굳이 간섭할 것도 별로 없다. 집사람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주변에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하루종일 바쁘다. 문제는 나다. 나만 잘 살면 된다.

같이 퇴직한 친구들을 만나서 보니 다들 나와 입장이 비슷하다. 나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일 힘든 것이 무료함이라고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사실인 듯하다. 나보다 몇년 먼저 퇴직한 친구들을 보니 정말 힘들어 한다. 처음에는 주로 산을 다닌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어떤 친구들은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니는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없이 산을 다닌다. 그러더니 어느 정도 되면 산도 그만 둔다.

돈도 떨어지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것도 뜸해진다. 그때 쯤 무료함이 다가오는 것 같다. 죽음보다 힘들다는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무료함이야 말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인 듯 하다. 평생 내가 아닌 남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 스스로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가만 보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조용히 앉아 있자면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나를 주체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는 무료함을 정말 잘 다루시는 것 같다. 50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리셨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그림을 그리셨다. 매주 그림모임에도 가시고 한달에 한번 야외 스케치를 하러 가시기도 한다.

이번 제주여행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가시겠다고 한다. 제주 여행 내내 비가 왔다. 그래서 주로 실내를 다녔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다. 제주 갈때 마다 풍경을 보러 다녔는데 이번 기회에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매번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시간이 좀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친구들 만나면 우리는 자식에게 가진 것 모두 바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부모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자식들에게 그런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가? 자식들 다 컸으면 그만이지. 내가 아이들에게 효도 받으려고 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내 마음 가는데로 했다.

내삶은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날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바치셨다.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이제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 이제 자식도 다 컸으니 자연스럽게 눈이 부모님께 향한다. 현직에 있을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한번도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퇴직금 받아서 차를 주문했다. 좀 큰 SUV를 살 생각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더니 피곤해 하신다. 그럼 나이가 얼마인데 그러지 않을까.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 힘 자라는 만큼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고 싶다.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셨다.

내삶이 중요하고 귀하면 다른 사람의 삶도 귀하고 소중하다. 하물며 부모님의 삶이야 더 무슨말이 필요할까. 퇴직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다시 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모두 물리쳤다. 항상 앞만 보고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러서고 뒤를 돌아볼 시간도 필요하다.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말이다.

어버이 날을 휴일로 정하자고 하니 젊은 엄마들이 제일 많이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들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졌고 땅에서 솟아낳고 알에서 태어났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냥 행복하지 않다. 전철에서 방황하는 늙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저리다. 강남 부촌의 전철역에서 아무도 사가지 않는 채소를 놓고 파는 할머니를 보면서 삶이란 모질고 모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언뜻 보기에 늘그막에 전철역 좌판에 앉아 있을 상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저 분은 저렇게 하얀 목각 인형처럼 처연히 앉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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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이야기) SEC가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이더리움이 증권으로 규정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다. 저는 이더리움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제도권으로 편입되어 결과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더리움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둘중에 하나가 맞을 것이다.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갈 것이니까.

여기서 저는 SEC가 왜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규정했는가를 추정해보고자 한다. 무슨 이유가 있으니까 증권으로 규정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증권업계가 암호자산을 자신들의 관할권으로 두려고 하는 시도일 것이다. 지금 암호자산은 암호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앞으로 암호자산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기존의 증권회사들이 암호자산을 암호자산 거래소가 담당하도록 하기 싫은 것이다.

이더리움이 증권으로 규정되면 앞으로 그와 유사한 암호자산들도 속속 증권으로 분류될 확률이 높다. 암호자산들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증권회사들이 암호자산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지금 우후죽순 같은 암호자산 거래소들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 지금 SEC가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규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견제하고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증권으로 규정된 암호자산들은 증권회사에서 거래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암호자산을 독점적으로 다루던 거래소들은 증권으로 규정된 암호자산을 다룰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암호자산중에서 화폐의 기능을 하는 것들은 지금처럼 암호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될 것이고, 증권으로 분류된 암호자산은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의 SEC 결정의 성격은 기존의 자본 권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시도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내에서 증권거래소에서 암호자산을 취급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 아마도 다른 나라들도 증권거래소에서 암호자산을 취급하게 될 것이다.

물론 SEC가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결정했다고 해서 당장 기존의 암호자산 거래소가 당장 불법으로 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기존의 증권시장에서 암호자산을 거래할 수 있게 되는 상황, 즉 기존의 암호자산 거래소와 증권시장이 동시에 암호자산을 거래할 수 있게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이번 결정이후 기존의 암호자산 거래소를 불법으로 규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공존의 상황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증권시장에서도 암호자산을 거래해서 돈 좀 벌어보자는 것이다. 아마 증권회사가 암호자산 거래소를 직접 만들어 기존의 암호자산 거래소와 경쟁을 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기존의 암호자산 거래소들이 증권회사나 기존의 금융자본에 흡수될 가능성이 많다. 골드만 삭스에서 폴로니넥스를 매입한 것이 바로 그런 움직임을 잘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그럼 앞으로 화폐기능을 하는 암호자산들은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다. 일본 정부가 거래소에서 Dark coin의 거래를 중지시킨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들은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이더리움을 위시한 암호자산들이 증권으로 규정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증권거래소에서 암호자산들 취급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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