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란 그런 사람인가 보다.

사촌들 모임을 했다. 대부분 시골에서 태어났으나 이제 거의 다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 형제들이다. 지금이야 사촌이라는 것이 그리 가깝지 않은 듯하지만 우리때야 사촌이란 한 형제나 마찬가지였다. 작은집 큰집 돌아가면서 먹고자고 했다. 아무 이물없이 밥얻어 먹고 잤다.

어머니가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인근에 사는 숙모가 사촌들에게 우리집에서 밥을 먹지 말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집안이 어려워서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셨는데 그것을 안스럽게 본 숙모가 사촌들에게 우리 어머니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서 숙모는 나를 계속 걷어 먹이셨다. 어떤 이유건 어머니는 숙모의 그런 조치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부산 작은집에 고등학교 1학년때 한달간 동생하고 같이 가서 있었다. 광안리 바닷가 바로 옆이었다. 슬리퍼 신고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였다. 한 여름을 바닷가에서 놀았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숙모들을 남의 엄마라고 생각해본적이 별로 없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숙모들도 기동을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80이 넘어가시니 어련하시겠는가 ?
어릴때 우리 숙모들은 밥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오랫만에 본 사촌 여동생이 한마디 했다. 대학 졸업한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피곤해서 곧 죽을 것 같다가도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서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한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배고프다고 하면 짜증부터 난단다. 우리는 웃었다.

저녁에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내가 가면 항상 음식을 준비하신다.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인병을 생각하면서 준비하신다. 이틀을 어머니와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열심히 음식을 마련하신다. 사촌 여동생이 하던 말을 어머니에게 했다. 웃으셨다.

어머니에게 가면 항상 진수성찬이다. 식사 준비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고 여쭤보았더니 무슨 소리냐고 펄쩍하신다. 어머니는 다 똑같은 모양이다.

어머니란 자식에게 밥해주는 것이 행복한 사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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