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를 다녀왔다. 마침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제주에서 사는 직원이 결혼식을 하는지라 기회가 좋았다. 수십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어 가는 상황인지라 제주도 여행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이들도 다커서 이제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굳이 간섭할 것도 별로 없다. 집사람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주변에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하루종일 바쁘다. 문제는 나다. 나만 잘 살면 된다.

같이 퇴직한 친구들을 만나서 보니 다들 나와 입장이 비슷하다. 나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일 힘든 것이 무료함이라고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사실인 듯하다. 나보다 몇년 먼저 퇴직한 친구들을 보니 정말 힘들어 한다. 처음에는 주로 산을 다닌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어떤 친구들은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니는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없이 산을 다닌다. 그러더니 어느 정도 되면 산도 그만 둔다.

돈도 떨어지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것도 뜸해진다. 그때 쯤 무료함이 다가오는 것 같다. 죽음보다 힘들다는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무료함이야 말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인 듯 하다. 평생 내가 아닌 남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 스스로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가만 보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조용히 앉아 있자면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나를 주체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는 무료함을 정말 잘 다루시는 것 같다. 50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리셨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그림을 그리셨다. 매주 그림모임에도 가시고 한달에 한번 야외 스케치를 하러 가시기도 한다.

이번 제주여행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가시겠다고 한다. 제주 여행 내내 비가 왔다. 그래서 주로 실내를 다녔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다. 제주 갈때 마다 풍경을 보러 다녔는데 이번 기회에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매번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시간이 좀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친구들 만나면 우리는 자식에게 가진 것 모두 바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부모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자식들에게 그런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가? 자식들 다 컸으면 그만이지. 내가 아이들에게 효도 받으려고 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내 마음 가는데로 했다.

내삶은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날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바치셨다.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이제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 이제 자식도 다 컸으니 자연스럽게 눈이 부모님께 향한다. 현직에 있을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한번도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퇴직금 받아서 차를 주문했다. 좀 큰 SUV를 살 생각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더니 피곤해 하신다. 그럼 나이가 얼마인데 그러지 않을까.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 힘 자라는 만큼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고 싶다.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셨다.

내삶이 중요하고 귀하면 다른 사람의 삶도 귀하고 소중하다. 하물며 부모님의 삶이야 더 무슨말이 필요할까. 퇴직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다시 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모두 물리쳤다. 항상 앞만 보고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러서고 뒤를 돌아볼 시간도 필요하다.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말이다.

어버이 날을 휴일로 정하자고 하니 젊은 엄마들이 제일 많이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들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졌고 땅에서 솟아낳고 알에서 태어났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냥 행복하지 않다. 전철에서 방황하는 늙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저리다. 강남 부촌의 전철역에서 아무도 사가지 않는 채소를 놓고 파는 할머니를 보면서 삶이란 모질고 모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언뜻 보기에 늘그막에 전철역 좌판에 앉아 있을 상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저 분은 저렇게 하얀 목각 인형처럼 처연히 앉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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