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왜 여행을 떠나시는지요 ?

그동안 무릎통증으로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다가 오랫만에 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가방을 싸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렇게 편치 않은 몸을 가지고 여행을 하려고 하고 있지 ?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 여행을 떠나기위해 짐을 준비할때 마다 매번 알 수 없는 묘한 흥분감을 느끼곤 한다. 흥분감과 함께 알수 없는 부담감도 같이 따라다닌다. 여행을 준비할때면 흥분감과 그 부담감은 항상 같이 나를 따라 다닌다. 분명한 것은 여행출발하고 나면 그 부담감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행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럴까? 그저 좋은 구경하고 맛난 것 먹는 재미일까? 여행을 떠나서 고생을 해봐야 사람된다는 말도 있었다. 집떠나면 고생이다. 아무리 좋은 호텔에 묵어도 편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여행이 어떨때는 고행과 같이 느껴질 경우도 없지 않다. 마냥 고생을 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고생에도 불구하고 뭔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각자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다 다를 것이다.

나는 내 오랜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내 친구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많아서 누구와 말을 할때는 찾아오지않는다. 그래서 나는 혼자 여행을 한다. 그러다 보면 며칠을 말한마디 하지 않고 다니기도 한다. 그저 식당에 들어가서 ‘국밥 이요’라고 하거나 경치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1잔이요’라고 말할때 이외에는 별로 말할 기회가 없다.

여행을 떠나면 나는 철저하게 타인이 된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다. 절룩거리는 머리허연 중늙은이에게 누가 말을 걸어 오겠는가 ?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나에게는 소중한 순간이다. 바로 내가 나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 처럼 고상한 철학적 사유의 결과로서 ‘너 자신을 알라’는 언명이 아니다. 그저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잘 모른다. 그러고 수십년간 삶을 살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그 죽음과 같은 심연이 놓여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는 그 차이를 좁히기가 어렵다. 완전히 나를 타인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그 차이를 드려다 볼 수 있다. 나를 완전하게 타인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여행이다. 그것도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물론 여럿이 떠나는 여행도 그렇다. 단지 혼자 떠나는 것보다는 그 정도가 조금 못할 뿐이다.

이곳 저곳을 떠돌며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찾아 보고 그 대상들이 하는 침묵의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내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다보면서 느낀 것은 나조차도 내속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을 외면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들어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들어 주겠는가 ? 여행지에서 혼자 먼 길을 터벅 터벅 걸어갈때 혹은 외딴 커피샾에서 커피를 마실때 비로소 고독이라는 멋진 친구가 나를 방문하여 말을 걸어 온다. 사실 여행이란 고독이라는 오래된 친구를 초대하기 위한 준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순간은 그 고독이라는 친구와 함께 할때이다. 그친구와 같이해야 오래된 유적지가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나의 감성이 고독의 방문으로 깨어나 내가 찾은 역사의 순간에 비로소 반응을 한다. 내 감성의 문은 활짝 열리고 나와 내자신 그리고 내 주변의 것들과 진정한 대화와 소통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바라보는 여행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온다. 천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유적들이 담고 있었던 이야기를 절절하게 쏟아 내기도 한다. 바로 그런 순간이 되어야 나와 그 대상이 비로소 일치를 하게 된다.

결국 이런 여행을 통해서 나는 내 자신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여행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고독이 나를 방문하고 감성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언제 어떻게 찾아 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꾸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아픈 다리는 파스를 붙이고 지팡이에 의지를 한다. 처음에는 내가 노화의 상당한 과정에 진입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제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그 육체의 고통과도 친구를 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내 몸이 나를 더 거부하기 전에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여러분들은 왜 여행을 떠나시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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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도갑사의 제1경, 시간이 지나서 진가를 알게 된 곳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행지마다 다 느낌이 다릅니다. 그 느낌도 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기도 전에 미리 어떤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도착하자 마자 뭔지 모를 분위기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참 있다가 돌아올때 쯤 되어서야 어떤 느낌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여행에서 돌아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느낌이 점점 더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 월출산 도갑사는 여행을 마치고 한참은 지난다음에야 무엇인가 그 느낌이 천천히 다가오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가서는 어디가 볼만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도갑사에 있을때 제일 좋았던 기억은 저녁 종소리였습니다. 주로 주중에 여행을 다니는 바라 제가 도갑사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해가 천천히 기울어가고 저녁종을 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범종각 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돌위에 앉아서 종소리를 기다렸습니다. 스님이 아니라 절에서 일하는 아저씨 한분이 나와서 종을 치러 나오셨습니다. 아저씨 뒤로 깜장 강아지 한마리가 졸래졸래 따라옵니다. 아저씨는 저를 보고 반색을 하십니다. 그래도 누군가 보고 있는 것이 좋으셨겠지요. 종을 칩니다. 천천히 하나 둘… 땡 땡 소리가 납니다. 저는 그 순간 온갖 상념을 잊어 버리고 그 단순한 종소리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종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벌써 타종이 끝났습니다. 아저씨가 저녁이 되면 절에 개를 풀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려갈거면 빨리 가라고 그러면 개를 풀어 놓겠다고 말이지요. 그말을 듣고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머리 속에는 그 깡마른 아저씨가 범종을 치는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도갑사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그때의 범종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사리탑전 옆에 있던 여래좌상이 더 생각이 났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여래좌상을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입구가 감추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두운 그늘에 숨어 있는 계단위에 대문이 서 있습니다. 그 대문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 대문을 지나서 들어가보면 돌에 새겨진 부처님상이 건물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대문과 불전은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카메라에 불전의 모습을 제대로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불전에서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맞은 편에 월출산 자락이 보입니다. 그리고 햇볕이 내리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스님의 거처가 있었습니다. 불전앞에서 제가 들어왔던 대문을 보았습니다.

대웅전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불안정했던 모습은 여기에서 모두 잊어 버린듯 합니다. 조그만 공간이지만 꽉 짜인듯한 느낌입니다. 주변에 둘러쌓인 담은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리는 듯 합니다. 도갑사에서 가장 완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시 불전에 들어가서 앉았습니다. 비로소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웅전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들뜬 것 같은 기분은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아주 오랫동안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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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려오다가 타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타종소리와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웅전 뒷 계곡길의 사리탑전 옆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 고려시대 만들어졌다는 마애불이 모셔진 불전이 더 생각이 났습니다. 마애불보다 그 불전이 더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완벽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이곳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다녀 오시고 나서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정말 이 조그만 공간이 도갑사 제1의 자리인지를. 그러길래 스님 거처를 그 옆에 지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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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도갑사 도선수미비와 사리탑전과 숨바꼭질

월출산 도갑사는 수수께끼 같은 절이다. 처음 그냥 봐서는 도갑사가 어떤 절인지 알기 어렵다. 해탈문이 국보라고 하는데 직접가서 보면 이게 왜 국보인지 아리까리하다. 그러나 해탈문만 보지 말고 해탈문앞에 있는 돌계단과 난간을 보면 그 의미를 알 듯 하기도하다. 해탈문 난간에 있는 문양을 제일 처음에는 태극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마 도선 국사가 세웠다고 하니 주역과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가만히 자세히 보니 그게 태극이 아니라 구름같기도 했다. 대부분 절의 난간은 구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종묘의 난간이 구름모양인 것 처럼 말이다. 혹시 대웅전앞에 계단과 난간이 있다면 잘 살펴 보시길. 난간은 마치 구름처럼 묘사되어 있다. 종묘의 난간이 마치 구름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계단과 같은 것 처럼 절에 있는 계단의 난간도 마치 구름과 같다. 극락의 세계에 올라가는 길이다.

도리천에 올라가는 길이 바로 해탈문이고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구름모양의 난간과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낙원에 올라가는 기분으로 해탈문을 지나 절 앞마당에 섰다. 도갑사 대웅전 앞마당은 앞의 글에서도 쓴 것 처럼 뭐라고 딱히 말하기 어렵다. 구름을 타고 들어왔는데 대웅전을 위시한 전각들이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듯 하다. 대웅전도 뒤의 산자락에 잘 들어 맞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뭔가 안정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뭔가 안정되지 않은 이 낯선 느낌이 익숙한 듯하다. 그렇다. 우리는 어차피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그런 느낌에 익숙해진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 대웅전 마당에서 익숙한 불안정감을 느끼면서 그것이 나의 실존이라는 생각을 했다. 안정되고 편안한 것 보다 불안정에서 인간의 본질과 실존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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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의 본 모습은 대웅전을 돌아서 계곡으로 들어가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이렇게 먼길을 와서 그냥 대웅전앞에서 그냥 머물 수도 있다. 계곡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웅전의 왼쪽 경계를 지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길이 어두워진다. 나무들이 우거져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모두 짙은 그림자로 덮혀져 있다. 조금 가다 보면 계곡이 보인다. 비가 오면 폭포가 장관일 듯 하다. 가뭄의 긴끝이어서 그런지 계곡은 말라 있었다. 혹시 이글을 읽으시는 분중에서 도갑사를 가시려면 꼭 비올때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계곡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면 도선국사비(도선수미비) 와 잘 정리되어 있는 사리탑전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면 도갑사의 마음이 여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렇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도선수미비가 크게 다치지 않고 이렇게 건재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석과 받침대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비석 받침대의 거북상은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북의 얼굴과 발하나 하나가 모두 진짜 같았다. 이제까지 본 거북상 중에서 최고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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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수미비 바로 옆에 사리탑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난 사리탑전을 볼 때 마다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무덤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리탑전의 그 많은 사람들이 진리와 대자유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까 궁금하다. 사리탑을 하나 하나 둘러보았다. 승탑의 양식을 보니 상당수가 고려시대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도갑사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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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절에는 사리탑전이 앞에 있다. 그런데 도갑사는 특이하게도 사리탑전이 대웅전 한참 뒤에 있다. 대웅전앞에 서 있었던 보물인 5층 석탑은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대웅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계곡따라 산자락에 들어간 짙은 음지의 사리탑전이야 말로 바로 도갑사 그 자체였다.

중요한 것은 꼭꼭 숨겨 놓는 법이다. 도갑사가 그랬다. 도갑사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계곡길 뒤에 잘 안보이는 곳에 꼭꼭 숨겨 놓았다. 끝까지 찾아 오는 사람에게만 겨우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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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HF 20을 보면서,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HF 20이 도입되었다. 초반부터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RC라는 것이 생겨서 유저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패치를 써서 완화를 한다고 하니 조금 보완은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스팀을 운영하고 있는 네드와 증인들이 스팀의 생태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조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을 구상하고 적용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이상주의자였다. 암호화폐를 창시한 사토시는 국가의 무제한적인 발권력으로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그리고 비탈릭은 중간 단계가 없는 계약의 이행을 생각했다. 댄은 국가와 회사의 검열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꿈꿨다. 스팀잇이 검열없는 SNS의 대표였다.

거침없이 상승할 것 같던 스팀잇이 커다란 벽에 봉착한 것은 스팀이라는 블록체인의 성격을 둘러싼 입장차이가 이니었나 한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네드를 위시한 증인들은 스팀블록체인을 SNS가 아닌 플랫폼을 지향한 것 같다. 그래서 SMT와 관련한 구상이 나왔다. 그러면서 스팀잇은 그냥 베타로 남았있고 다른 서드파티를 통해 스팀잇의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지금의 네드와 증인들은 스팀잇은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고 스팀 블록체인을 플랫폼으로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스팀블록체인의 가치를 높혀 나가겠다는 것같다. RC를 도입한 것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결국 지금의 스팀 블록체인을 주도하고 있는 네드와 증인들은 기존의 목표인 검열없고 보상을 받는 SNS에서 스팀블록체인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듯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 것 같다. 나는 댄과 네드가 서로 갈라서게 된 지점도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알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추측할 수 밖에 더 있을까 ?

스팀 블록체인의 방향전환과 관련하여 우리 일반 유저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검열없는 SNS를 지향하고 있는 스팀잇이 이제는 가치있는 플랫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일반 유저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전혀없었다. 검열없는 SNS를 지향했던 스팀잇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가치있는 블록체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결국은 플랫폼을 만들어 스팀 가격을 비싸게 만들겠다는 것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네드를 위시한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한계에 봉착하리라 생각한다. 한편 보면 이들은 경영의 기본을 모르는 듯하다.

플랫폼 시장이 커지니 갑자기 거기에 눈을 돌린 것이다. 스팀잇은 블록체인 SNS에서는 선두주자이다. 그러나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매우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발주자에 불과하다. 어떤 사업을 하던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자신의 강점을 살려가는 것이다. 최근의 네드와 그 증인들을 보면서 이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드가 댄과 싸웠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서로 골이 깊어져서 사업적 이익과 개인적 증오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스팀잇을 SNS로 키우기 위해서는 EOS에 올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EOS에 올라오는 많은 댑들의 SNS로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 댑보다 플랫폼이 더 가치가 있어지리라는 생각도 옳지는 않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보라. 그것들이 단일 앱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 문제는 얼마나 많은 유저를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스팀잇은 미로에 들어선 듯 하다. 내년 초에 SMT가 시작된다고 한다. 난 사실 SMT가 스팀의 가치를 높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스팀잇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데 SMT라고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인가 ? 앞으로 상당기간 암호화폐는 전체적인 시황에 따라 가격이 좌우될 것이다. 스팀이 SMT를 내 놓았다고 대박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오히려 후발주자에 불과한 플랫폼을 추구하느니 지금 비교 우위에 있는 스팀잇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치있는 블록체인 SNS를 만드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SNS의 가치는 많은 가입자다. 사람이 많아야 뭐가 생긴다. 그래야 사업의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소통도 된다. 지금처럼 가입하기 어려운 구조에서는 가입자가 많이 늘수 없다. 보상의 형평성 문제는 어차피 극복하기 어렵다. 너무 지나친 어뷰징은 전체적으로 정화시키는 노력을 하되 글을 써서 받는 보상보다 글을 읽어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좀더 높여주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더 많이 유입할 수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것을 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읽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면 자연히 좋은 글에 많은 보상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면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지금 스팀잇의 문제는 네드와 증인들의 방치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현명한 사람들은 미리 염두에 판단해보고 일을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현실에 부딪쳐셔 깨어지고 나서야 그 실체를 파악한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깨어지고도 모르고 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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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월출산 도갑사에 들어가며

월출산은 악산이다. 산이 모두 돌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설악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변산부터 영암일대까지 전 지역이 모두 지리공원이다. 이 지역을 여행하려면 굳이 여기 저기 찾아 가지 않아도 된다. 그냥 길가다 눈에 보이는 곳을 찾아가서 구경하면 그곳이 바로 명승지이다.

월출산을 마지막으로 구경했던 때는 30년 전이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다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월출산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막상 산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주변만 빙빙돌다가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고 기약을 하고 떠났다. 그리고 30년이 훨씬 지나서 다시 찾았다. 월출산 주변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그때도 왜 이산 이름이 월출산일까 하고 궁금해 했었던 기억이난다. 바위가 많고 험준해서 매우 남성적인 산이다. 같은 값이면 월출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일출산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바위가 없는 육산이라면 음이 강하다고 해서 월출산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바위의 강한 힘이 꾹꾹 담겨져 있는 악산이라서 양의 기운을 이름으로 삼는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 그러다가 아마 밤에 보면 월출산의 바위들이 달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도갑사로 향했다. 영암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이리저리 하다가 도갑사로 향한 것은 오후가 한참을 지났을 때다. 도갑사 가는길은 한산했다. 예전같으면 각종 가게가 많았을 터인데 거의 다 문을 닫았다. 국립공원 제모습찾기 한다고 계곡마다 있던 식당들이 모두 철시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리 멀지 않은 길을 가는데 매우 멀리 느껴졌다. 한적한 계곡길을 혼자서 갔다. 오랫만에 깊은 산 계곡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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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절을 보는 생각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절 건물을 보러 갔다. 요즘에는 절에 들어가는 길이 나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절에 가는 길이 절구경의 7할은 넘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우리네 절은 산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주변이 매우 아름답다. 그런 점에서 도갑사는 요즘 들어 절을 새롭게 느끼고 있는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다.

어느새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 강력했던 한여름의 열기도 월출산의 깊은 산속에서는 그 힘을 잃어 버리는 듯 했다. 도갑사는 왕건이 고려를 세울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전란을 거치면서 많이 파괴되어 원래의 그 위용을 많이 잃어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도갑사는 많은 전각과 보물만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다.

도갑사 해탈문이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느니 없느니 평가를 하지만 그것도 모두 따지기 좋아 하는 사람들의 취미에 불과할 뿐이다. 도갑사 해탈문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국보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지만 어떤 기준을 가지고 국보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국보고 보물이고 그것은 모두 후세의 사람들이 다 자기들 기준을 정해 놓는 것에 불과하다. 그 어렵고 장구한 시절을 이기고 버텨온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 만일 해탈문이 생각이 있다면 자신보고 가치가 있느니 없느니 따지는 인간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

후손들이 못나서 여러 전란에 선조들이 남겨 놓은 것을 모두 불태우고 나서 국보할 가치가 있느니 보물가치가 있느니 따지는 것도 참 못났다고 생각을 하며 해탈문을 지났다. 절집마다 모두 다 다르지만 도갑사는 천왕문이나 금강문이 없고 바로 해탈문이 있었다. 많은 경우 해탈문은 없더라도 천왕문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도갑사에는 천왕문이 없다. 그리고 해탈문에 금강역사상이 있다. 그러니 도갑사 해탈문은 금강문과 해탈문을 겸하고 있다고 하겠다.

정작 내눈에 들어 온 것은 해탈문이 아니라 그 문앞에 있는 돌계단이었다. 돌계단의 양쪽이 모두 태극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왜 연꽃이 아니고 태극문양이었을까 ? 세상에는 이유없는 일이란 없다. 특히 옛날에는 글자 하나 문양하나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런 문양의 의미를 잘 모른다. 모르고 보니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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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에 들어가니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앞에 석탑이 있었다. 여느 절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 어딘가 짜임새가 완전하지 않은 듯 하다. 어설픈 듯한 전각들의 배치가 나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도갑사는 그냥 손님을 편하게 받아 주는 여유가 있었다. 오죽하면 한여름의 열기들도 도갑사에 와서는 힘이 빠지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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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선운사, 사연을 남기고 오는 곳

선운사는 사연이 많은 곳이다. 이별의 사연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별의 눈물은 통상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흘리기 마련이다. 이별의 아픔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 김용택도 이별의 설움을 선운다 뒤안에서 엉엉 울면서 달랬다고 하지 않았는가.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 받고
살얼음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때문에
그까짓 여자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서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구경은 그냥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6할은 지난다. 그만큼 길이 중요하다. 나머지 4할 중 1할은 대웅전과 그 앞의 강당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저 오래되었구나 그리고 강당이 크구나 하는 느낌으로 충분했다. 나머지 3할은 영산전과 명부전 그리고 나한전과 산신당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차지하는 것 같다.

선운사에 가시면 산신당 옆 마당에서 비스듬하게 대웅전을 내려다 볼일이다. 아래서 바라보던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선운사 전각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느긋함이 다가온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그렇다. 시간도 내가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느리게 가기도 하고 빨리 가기도 한다. 선운사 뒤의 높은 전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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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앞에는 사람들이 조그만 돌로 만들어 놓은 탑들이 가득하다. 무슨 염원이 그렇게 많은지 탑들을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마당 전체가 탑으로 가득찼다. 내가 갔을 때만해도 중늙은이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조그만 돌로 탑을 쌓고 있었다. 느리게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것일까 ? 아니면 이별의 아픈 가슴을 탑으로 만드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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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저래 선운사는 사연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 찾을 만한 곳이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사리탑전을 들르고 오래된 대웅전을 지나 산신당에서 밑을 내려다 보며 느리게 가는 시간을 붙잡아 볼 일이다. 그래도 사연이 남아 있으면 조그만 돌탑을 쌓아 모두 버리고 올일이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선운사, 사연을 남기고 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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