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선운사, 사연을 남기고 오는 곳

선운사는 사연이 많은 곳이다. 이별의 사연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별의 눈물은 통상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흘리기 마련이다. 이별의 아픔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 김용택도 이별의 설움을 선운다 뒤안에서 엉엉 울면서 달랬다고 하지 않았는가.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 받고
살얼음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때문에
그까짓 여자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서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구경은 그냥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6할은 지난다. 그만큼 길이 중요하다. 나머지 4할 중 1할은 대웅전과 그 앞의 강당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저 오래되었구나 그리고 강당이 크구나 하는 느낌으로 충분했다. 나머지 3할은 영산전과 명부전 그리고 나한전과 산신당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차지하는 것 같다.

선운사에 가시면 산신당 옆 마당에서 비스듬하게 대웅전을 내려다 볼일이다. 아래서 바라보던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선운사 전각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느긋함이 다가온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그렇다. 시간도 내가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느리게 가기도 하고 빨리 가기도 한다. 선운사 뒤의 높은 전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P5270809.JPG

명부전 앞에는 사람들이 조그만 돌로 만들어 놓은 탑들이 가득하다. 무슨 염원이 그렇게 많은지 탑들을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마당 전체가 탑으로 가득찼다. 내가 갔을 때만해도 중늙은이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조그만 돌로 탑을 쌓고 있었다. 느리게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것일까 ? 아니면 이별의 아픈 가슴을 탑으로 만드는 것일까 ?

P5270820.JPG

이래 저래 선운사는 사연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 찾을 만한 곳이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사리탑전을 들르고 오래된 대웅전을 지나 산신당에서 밑을 내려다 보며 느리게 가는 시간을 붙잡아 볼 일이다. 그래도 사연이 남아 있으면 조그만 돌탑을 쌓아 모두 버리고 올일이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선운사, 사연을 남기고 오는 곳’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