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우리는 잘하고 있나 ?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의 탄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마침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박근혜의 탄핵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박근혜가 탄핵된 것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사람에게 국정과 관련한 자문을 받는 것이 탄핵될 정도로 나쁜 일이었을까? 내가 대통령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일들을 물어볼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만으로 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 참모진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다.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따져서 보면 그게 대통령을 탄핵시킬 정도였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내주변의 노인들은 박근혜가 돈을 먹었냐 ? 도둑질을 했냐 ? 하면서 따지곤 한다. 물론 최순실이 어떤 회사하나 만들어서 돈을 먹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이제까지 역대 정권들 중에서 그정도도 안하고 지나간 경우가 얼마나 있었을까 ? 최순실사건으로 밝혀져서 그렇지 아마도 역대정권 중에서 박근혜 정부의 독직은 그리 정도가 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분노했었을까 ?

우리가 분노했던 것은 단순한 국정농단 때문이 아니다. 사실 국정을 잘못 운용했으면 선거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심판을 받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까지 참지 못하고 광화문 네거리로 나섰다. 물론 필자도 광화문에 나갔다. 제가 박근혜 탄핵의 문제를 제시하고 나온다고 해서 이 사람이 수구꼴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이제까지 제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오히려 중도좌파에 속하는 사람이다. 박근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그 당시 무엇에 분노했는가를 차분하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다.

술잔을 기울이다가 난 당시 사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은 산업시대의 논리로 통치를 하려 했고, 우리사회는 그런 산업시대 방식의 통치를 받아 들일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광화문에 나선 사람들은 최순실의 농단에 분노했지만 그 저변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박근혜식 통치방식이 더 이상 우리사회에 필요하지 않다는 무의식이 깔려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말해서 박근혜의 통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신속하게 바꾸어야 했다는 것이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를 이야기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연 지금의 정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상황에 부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 지금 우리는 시대정신에 맞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아닌가 ? 각자의 생각과 입장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저는 지금의 정부가 시대적 요구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집권세력들에게 바라는 것은 남북문제만이 아니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와 정책이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 ?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 우리가 직면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가 될 확률이 많을 것이다.

이러저리 둘러보아도 지금의 집권세력이 그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우울하게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세대는 그래도 이럭저럭 살았다. 그러나 우리 밑의 세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 정치도 조금 젊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 과거의 이념과 문제의식만을 가지고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이 와야 한다. 사람도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 우리 세대는 솔직하게 지금의 세대가 살아야 할 삶을 해결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물러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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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이야기) 작금의 사태, 크레이그는 나쁜 놈인가 ?

최근의 암호화폐 하락을 두고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 크게 정리해보면 두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째는 크레이그와 우지한이 비트캐시라는 이름을 두고 싸우면서 촉발되었다는 설, 두번째는 암호자산이 위험자산이다보니 암호자산부터 처리했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내년도나 그 이후에 예상되는 자본시장이나 금융시장의 불황때문에 미리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정리하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당분간 암호화폐 시장상황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두번째 분석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암호화폐가 고위험 자산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암호화폐가 기존의 자본이나 금융시장을 헤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가지 상호작용을 고려해보면 두번째 분석이 올바른지 아닌지는 지금 상황에서 판단하기 어려울 듯 하다. 시간이 지나가봐야지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원래 이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트코인 SV와 비트캐쉬 ABC 간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이들의 싸움이 암호화폐의 가격하락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6000불을 견고하게 지켜오던 비트코인 가격을 3000불 후반대까지 떨어지게 한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아무래도 크레이그와 우지한의 갈등과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를 예측해보려면 이들 양자의 싸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저의 글을 이전에 읽으신 분들은 제가 이번 갈등의 양상에 중국측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중국측 요인이 지나치게 강해 비트코인 합의과정 전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한 바 있었다. 실제로 비트코인 채굴은 몇몇의 대규모 채굴사업자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어서 순수한 의미에서 작업증명이란 개념이 무색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 비트캐시가 비트코인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하드포크되었다.

우스운 것은 비트캐시가 나왔는데도 비트코인은 그 위상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비트코인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것이 나오면 기존의 것은 타격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 나온 비트캐시가 타격을 입고 사라지든지 말이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그저 그렇게 받아 들이지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럼 계속 하드포크해서 새로운 암호화폐를 만들어 내면 된다. 결국은 모두 망하겠지만 말이다.

최근 문제가 된 비트코인 SV와 비트캐시의 하드포크도 그런 연속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 SV와 비트캐시의 갈등은 기존의 내용과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둘이서 싸우게 된 내용은 비트코인 SV는 화폐의 기능에 충실하게 용량만 늘리자는 것이고, 비트캐시는 아토믹스왑이니 스마트콘트랙트까지 얹어서 전혀 새로운 화폐로 가자는 것이다. 우지한이 주장한 비트캐시는 재권의 코스모스와 비탈릭의 이더리움을 모두 합친 기능과 비슷한 것 같다. 지금 코스모스와 이더리움도 아직 제대로 개발되려면 한참이 걸릴 듯 하다. 그런데 우지한의 비트캐시 ABC는 어떻게 그런 험난한 개발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미 이더리움도 사실상 스마트콘트랙트는 거의 포기한 것 아닌가 ? 그냥 플랫폼으로 가는 것도 기존에 생각했던 스마트콘트랙트의 한계를 인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면 사실 비트코인 SV가 훨씬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크레이그를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만일 크레이그가 우지한의 말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같이 망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원래 저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부적인 기술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그러나 크게 보면 기술자가 아니라도 큰 그림의 문제는 지적할 수 있는 법이다.

만일 크레이그가 화폐의 기능에 충실하려고 한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 크레이그가 난데없이 비트코인 가격을 1000달러까지 떨어뜨리겠다고 이야기 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 난 크레이그가 싸움의 대상을 비트캐시 ABC가 아니라 비트코인으로 잡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 SV가 화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비트캐시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비트캐시ABC를 젖혀야 한다. 그리고 비트코인도 젖혀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크레이그는 어머어마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크레이그가 비트코인SV를 1등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각하는 것 하고 가능한 것과는 차이가 많은 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크레이그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누구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일 비트코인 SV가 비트캐쉬의 가격을 넘어서게 되면 상황이 급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도 안될 것 같았지만 벌써 절반을 넘었다.

작금의 사태를 크레이그 때문이라고 욕하기 전에, 다른 방향으로 상황을 볼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이글을 적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은 오히려 무리한 방향선회를 하려고 한 우지한이 아닌가 한다.

당연히 저는 크레이그에 베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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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화엄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화엄사 요사채를 지나서 드디어 화엄사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절들을 구경다녔지만 화엄사 경내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곳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화엄사는 부석사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부석사는 매우 가파른 산의 거의 정상 쯤에 조성해 놓았다면 화엄사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 느낌이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사가 대부분 그런 형식을 띠고 있는 것 같지만 불국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우리나라 절이 산에 있는 것은 불교의 세계관과 많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절이 수미산에 있는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수미산 초입을 의미하는 것이 일주문이고 그 중턱에 있는 것이 천왕문이고 그리고 그 다음이 해탈문이라고 한다. 난 금강문이 천왕문과 해탈문 사이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통상 있다고 한다. 공부안하고 그냥 눈만 가지고 다닌자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 처럼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는데 순전히 바보같은 짓 한게 아닌가 ? 스스로 우스웠다. 절에 대해서 나보다 많이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텐데 챙피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러나 어쩌랴 ? 이미 글을 써 놓았고 블록체인은 바꿀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에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느낀다. 세상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화엄사 경내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조금 그 표현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웅장한 느낌도 같이 지니고 있다. 그 웅장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 절 마당에 서 있는 5층 석탑 때문일까 ? 아니면 절 마당 위에 서 있는 각황전과 대웅전의 위용 때문일까 ? 처음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그 감정은 아마도 이곳이 지리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의 품에 들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위대해진다. 그것이 지리산이 가진 힘이다.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삶도 위대해지고 마을도 위대해진다. 그렇다고 지리산이 아무나 아무것이나 그대로 끌어 안지는 않는 법인 것 같다. 지리산에 깃들어 있으려면 그정도는 되는 자격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지리산에 들어가지는 못하면서도 못내 지리산을 염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엄사와 똑같은 절이 다른 절에 있다면 화엄사와 같은 느낌이 날까 ? 화엄사 경내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지리산을 느꼈다. 화엄사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었다. 화장이란 이름의 강당 마루턱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여유있게 웃으면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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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삶이란 날씨 좋은 날 멀리 놀러와서 친한 친구들하고 같이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이 한말 처럼 인생이란 소풍을 즐기지 못하면 얼마나 아쉬운 일이겠는가 ? 지나고 보면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할 필요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어떤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은 영원한 숙제다. 내가 이렇게 절을 구경하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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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화엄사의 장독대를 보면서

자료를 찾다 보니 화엄사 일주문이 훨씬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포스팅한 일주문이라는 것이 불이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왜 일주문을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혼자 다니다보니 그런가 보다. 그런데 불이문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불이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원래 불이문이나 해탈문이라고 쓴다. 그런데 지리산 화엄사라고 써 놓았다. 아마 지금의 일주문은 최근에 조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일주문이 그 앞에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그리고서 과거의 일주문을 불이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새로 일주문을 만들어 놓았다면 괜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냥 그대로 두어도 파격의 미가 있고 또 나름의 의미가 있는 법인데 말이다. 남들이 하니 나도 같이 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교는 원래 개성의 종교라고 생각해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래서 각각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멋이 있는 법이다. 남들이 한다고 다 똑같이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천왕문을 지나서 바로 왼쪽에 상왕문이라는 이름의 문이 있다. 코끼리 왕의 문이라는 뜻인데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 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나온다. 그리고 그 옆에 장독대가 있다. 그리 많지 않은 장독대가 놓여 있다. 장독대를 보면서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마침 지리산 반대편에서 절일을 도와주고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김장을 한단다. 800포기 정도를 담근단다.

삶은 무엇을 이루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 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매일매일 매시간 매시간 살아가는 순간이 중요하다. 장독대를 보면서 삶이란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료한 것이었다. 그냥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면서 나를 온전하게 즐기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평생을 보낸 듯 하다. 그냥 온전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맡기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료하지 않고 편안한 것이 도의 경지가 아닐까 ? 당연히 그냥 조용히 앉아 있어도 시간의 숙성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마치 장독대에서 익어가는 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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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를 돌아가니 스님들 거처가 나온다. 한 스님이 빨래를 걸고 계신다. 따뜻한 햇볕에 이불이며 두터운 옷들을 햇볕에 말리고 있는 것이다. 스님 거처를 슬쩍 엿보았다. 한칸 정도 되는 방에 책 몇권정도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벽에난 창문으로 햇볕이 보석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스님은 거기에서 소제를 하고 있었다. 단순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화엄사의 구석에서도 시간은 느리게 가고 있었다. 삶을 빨리 살것인가 느리게 살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란 생각을 하면서 화엄사 경내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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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화엄사 금강문을 지나면서, 벽암각성 선사와의 대면

화엄사의 일주문은 소박하게 서 있었다. 대부분의 절들이 일주문을 절 앞 저멀리 웅장하게 지어놓는다. 그런데 화엄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 누구도 속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없는 물음이다.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는 물음을 나는 좋아 한다. 이제 그것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상이 가능한 영역은 분명하지 않은 곳에서 출발한다. 분명한 것은 확인이 필요할 뿐 상상이 필요없다.

분명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답변은 정답이 없다. 그저 내가 그려내는 것이 그럴 듯 하면 된다. 모두가 하는 이야기가 다 답이 된다. 여러분들은 왜 화엄사의 일주문이 저렇게 서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 화엄사와 비슷한 일주문을 지닌 절이 있다. 대표적인 절이 선암사다. 선암사도 일주문이 그냥 출입구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렇고 서로 모양이나 개념이 비슷한 것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화엄사와 선암사는 그리 멀지 않으니 아마도 한 사람이 두절의 일주문을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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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지났다. 비탈길을 올라가다 보니 금강문이 나온다. 어라 ? 이거 뭐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 사천왕문이 아니고 금강문일까 ? 그러고 보니 전번에 갔었던 마곡사의 문들 배치와 뭔지 모르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곡사도 해탈문이 천왕문보다 앞에 나와 았었다. 그리고 그 해탈문 안에 금강역사상이 서 있었다. 화엄사 금강문의 안쪽을 보았다.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원래 금강역사 중 하나는 입을 다물고 하나는 입을 열고 있다.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한다. 달리해석하면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마곡사의 금강역사상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금강역사상들의 모습이 비슷한 것 같았다. 한사람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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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해탈문과 화엄사 금강문의 배치순서와 금강역사상의 모습이 똑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매우 즐거웠다. 혼자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절을 구경하러 다니지만 이런 것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기뻤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다. 마치 고고학자가 오랫동안 발굴을 하다가 뭔가 대단한 것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서 나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다. 금강문을 만드는 사람과 시간을 뛰어 넘어 교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강문을 나오자 마자 비석이 서 있었다. 벽암각성선사의 비석이다. 임진왜란때 불탄 화엄사를 다시 지은 스님이다. 벽암선사는 임진왜란 때 스승인 부유선사를 모시고 승병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해전에 참가했다고 하니 아마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승병장이 바로 벽암각성 선사일지도 모르겠다. 임진왜란이후 남한산성을 축성했다. 병자호란 당시에 남한산성에 인조가 갖혀 있을 때, 벽암각성 선사는 화엄사에서 항마군, 그러니까 마귀에 대항한다는 군대를 조직해서 남한산성으로 진격을 했다. 그러나 중간에 조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화엄사로 돌아갔다고 한다. 비석의 거북받침대가 인상적이었다. 거친 조각상이 마치 벽암각성 선사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비석 앞에 있는 입간판을 보니 선사께서는 해인사 법주사 등도 중건을 하셨다고 한다. 아마도 마곡사도 스님이 중건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벽암각성 선사가 중건사업을 할때 따라다니던 사람이 마곡사의 금강문과 천왕문을 만들었을 것이다.

절을 다니면서 이런 역사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가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 그래서 항상 다음에는 어디를 가지 하면서 즐거운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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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화엄사를 찾아서

시장이야 어찌되건 말건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내가 안달복달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예전에도 그랬으니… 하면서 하던 포스팅을 하는 것이 훨씬 정신건강에 좋다. 어차피 암호화폐시장은 최소한 5년 이상은 보고 들어와야 하는 것이니 이 정도 등락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2년 반정도 투자를 해오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한 경우도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자 떠나자.

가을 단풍 따라 가다가 지리산 화엄사까지 가게 되었다. 애초에는 광주에 갈 생각이었다. 광주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풍운아라는 말이 그대로 어울리는 사나이였다. 시대를 잘못만난 친구였다. 배포가 큰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 우리는 지금 소인배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대인배로 태어난 그의 잘못일 뿐이었다.

친구찾아 가려든 발걸음이 그냥 지리산으로 향하고 말았다. 갑자기 지리산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화엄사로 찾아 갔다. 30여년 전에 지리산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화엄사를 거쳐서 성삼재로 올랐다. 첫정이 무서운 법이다. 그래서 지리산이 보고 싶으면 나는 아무 생각없이 화엄사를 찾아간다.

언제든지 화엄사를 찾아가는 길은 고요하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가다보면 그냥 시골길 같은 느낌이 든다. 넓은 들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구름위에서 내리는 햇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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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차만 타고 가기가 너무 아까웠다. 차에서 내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맞아 보았다. 영화의 한장면 처럼 손을 넓게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일하는 아저씨들이 날 쳐다 본다. 저 사람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인상이다. 좀 머쓱해져서 수고하십니다 하고 다시 차로 들어와서 화엄사로 들어갔다.

다른 절에 가는 것과 달리 화엄사는 지리산 들어가기 전의 그 시골길이 일품이다. 정작 절에 가는 길에 들어서면 다른 곳과 크게 차이는 없다. 그러나 지리산의 단풍은 아름답다. 단풍이 아름답게 핀 계곡앞에 서서 한참을 구경했다. 평일날 이렇게 돌아다니니 사람들과 많이 부딪치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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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우고 휘이휘이하면서 화엄사로 들어섰다. 지리산을 여러번 다녔지만 정작 화엄사는 몇번 와보지 못했다. 지리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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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마음 먹고 화엄사의 정문에 섰다. 그러면서 어랍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오면서 일주문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 화엄사에 올라오는 초입부터 일주문이 없었다. 그대신 절입구에 지리산 화엄사라는 이름의 편액이 달려있었다. 절에 들어가는 대문이 일주문의 형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답사를 다니면서 뭔가 조금 다른 것을 발견하면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른다.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일주문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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