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영화이야기) 보헤미안 랩소디가 800만명을 넘은 이유

휴가 나온 아이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것이 벌써 1달은 다된 듯 하다. 솔직하게 말해 영화를 보고 나서 별 감흥은 없었다. 다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나이에 퀸은 한때 다 지나간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영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별로 였다. 스토리보다는 음악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재미있게는 보았다.

그런데 보헤미안 랩소디가 800 만명을 돌파했으며 전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관객들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미술품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었다. 아모레 본사 지하에서 열린 조선의 병풍전을 보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왜 한국에서 보헤미안 랩소가 800만명을 넘었나 하는 것이었다. 그냥 아! 800만명이 넘었구나. 성공했네. 라고만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문제를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이 많아서 인지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끈 이야기는 이제야 한국이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에서 벗어 났다는 분석이었다. 사실 수천년 동안 한국은 중국의 문화적 식민지였다. 어저께 본 조선의 병풍전에서도 조선 지식인들의 이상향은 중국이었다. 병풍에도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야 말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 운운하면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2000년 동안 중국은 우리 문화를 지배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류까지도 언급되었다. 한류야 말로 중국의 문화권에서 벗어난 증거라는 것이다. 한류는 우리 고유의 음악에 일본의 음악 거기다 기독교의 음악까지 모두 합쳐진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류에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난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이렇게 성공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가 마치 프레드 머큐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소수인종으로 소수성애자로 생기기도 이상한 프레드 머큐리가 온갖 편견을 뚫고 정상에 섰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멧세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은 프레드 머큐리가 성공할 수 있던 영국과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오늘의 한국인들이 절망하면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 오늘날 한국은 능력이 있으면 그리고 열정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닐까? 한국의 관객들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한국의 현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경직성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젊은이들의 욕구를 계속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리나라 사회가 위험해 진다는 것이다. 현상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우리사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최대화해 나가는가는 순전히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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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 이야기) 요즘 시장을 보면서

마음을 여유있게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절에 다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여유란 마음의 여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비롯될까? 도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마음의 여유가 돈이나 명예 그리고 시간마저도 넘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같은 범인들의 경우는 마음의 여유는 가장 마지막에 온다. 돈과 명예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한동안 코인 가격이 바닥을 치는 바람에 마음의 여유를 잃어 버렸다. 범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 하락을 하지 않으니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스팀의 앞자리가 2자에서 3자로 바뀐 것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기 이를데 없는 듯 하다.

비트코인 가격에 2천만원을 넘나 들때 난 주변사람들에게 코인을 팔으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난 팔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비트코인이 4천 달러 선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6개월간은 코인판에 발도 들이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말하고 떨어지는 칼날을 맞으면서 코인을 샀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미리 예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물론 그런 행동과 예측의 불일치는 나의 경제적 손해로 나타났다.

아무리 시장을 잘 예측하더라도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제는 예측이 아니라 예측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쉽지 않다. 그 정도가 되려면 워렌 버핏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다. 문제는 그런 전망과 실행의 불일치는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 예를 한 번 들어 보겠다.

이오스와 스팀가격의 차이을 유심히 살폈다. 한때 이오스 한개로 스팀 10개를 살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스팀 7개로 이오스 한개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난 두개다 놓쳤다. 이럴 때 스윙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엇이 나의 행동을 제어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난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시장이 그렇게 만만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투자와 관련한 글을 올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좋으니 사라고 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이 하는 말대로 했으면 모두 쪽박 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상승장에서는 비슷하게 맞는다. 그런데 상승장에서는 누구라도 그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하락장에서는 누구도 맞출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베어마켓에서 파동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사람들이 싹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

앞으로 상승장이 시작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스팀잇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 어느 단톡방에서 코인의 가격을 이야기 하지 말로 코인의 기능과 개발상태를 이야기 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백서를 읽어라는 이야기를 했다. 코인계의 숨은 실력자가 했던 말이다. 사실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가격을 전망하는 것 보다 어떤 코인이 앞으로 블록체인에서 상용화되거나 실용화 될 것인가를 찾는 것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일 그런 코인을 발견한다면 그냥 사서 실용화될때 까지 그대로 두는 것이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는 법이 아닐까 ?

조금 오른다고 유망한 코인을 그냥 팔아버리지 말고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일 것이다. 이런 위험한 물건에 투자했으면 적어도 1000배에서 1만배 정도는 이익을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 물론 고점에 물린 분들은 조금 기대수익률을 조금 낮추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서 느끼는 산사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기승전 코인이 되어 버렸다. 진정한 마음의 여유가 아니었나 보다. 그나 저나 다음부터는 다시 느끼는 산사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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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 이야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 가능한가 ? 그리고 무엇이 암호화폐인가 ?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문제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간단하게 언급한적이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해서 블록체인 기술은 발전시키되 암호화폐는 투기를 우려해서 규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시킬 수 없다고 반발하는 이야기도 들려 나온다.

요즘 CNBC 티브이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토론이 간혹 있다. 거기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입장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다. 그런 주장은 얼마전 우리 정부가 했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아마도 패널로 참석한 사람들은 블록체인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하는 이야기는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 못하지만 고등학교 다닐때 수학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수학은 가장 간단한 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간단하고 명료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하셨다. 어떤 사안에 대한 설명도 그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알려면 매우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 그렇게 설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정부가 말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블록체인을 분산원장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그 내용을 고의로 바꿀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분산화된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분산화된 것이 아니고 분산화된 상태에서도 누구 고의적으로 내용을 바꿀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이나 조직 또는 집단이 네트워크의 51%를 차지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분산화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서버가 아니고 여기저기 서버가 나뉘어져 있어야 한다. 변조가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분산화의 기본 조건이다. 그런 분산화된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 분산화된 서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준다. 그 보상이 암호화폐이다. 만일 분산화된 네트워크가 아니라면 암호화폐도 있을 필요가 없다.

정부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키되 암호화폐를 규제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만일 암호화폐가 없는 블록체인을 만든다면 그 블록체인의 변조 불가능성을 신뢰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 정부나 대기업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만들고 그 서버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그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 블록체인은 분산원장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다.

분산화된 블록체인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많은 비용이 든다. 오히려 중앙집권적인 서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지도 모른다. 만일 정부나 대기업이 서버를 대외적으로 분산시키기 않고 그냥 블록체인만을 도입한다면 그 신뢰성은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 만일 중앙은행이 그냥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암호화폐를 만든다고 하자. 그럼 중앙은행은 언제든지 서버를 통제할 수 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블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정부도 상황이 급박하면 무슨일을 할지 모른다. 하물며 대기업들은 어떤 일을 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산원장이라고 할 수 없다. 만일 중앙은행이 블록을 생성하는 서버를 공개적으로 운용해서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누구도 51% 이상을 장악할 수 없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산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분산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암호화폐다.

결론적으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란 무늬만 블록체인이다. 차라리 그렇게 할 바에야 중앙집권적인 서버를 운영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최근에는 텔레그람도 코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라인도 코인을 만들었다. 리버스 ICO의 일환이었다. 앞으로 ICO 시장이 개방되면 리버스 ICO도 꽤 많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리버스 ICO의 경우 분산원장을 채택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만일 암호방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런 리버스 ICO는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는 텔레그람과 라인이 만든 코인도 사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각 거래소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코인들로 모두 의심스럽다. 어떤 과정에 의해서 그런 코인 들이 생성되는지를 알 수 없다. 그냥 거래소에서 발급한 데이타인가 ? 바이낸스나 후오비 그리고 기타 등등 거래소에서 우후 죽순처럼 자체 거래 코인을 만든다. 그런 것들은 분산원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정부에서 거래소를 규제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거래소에서 마구 만드는 코인이다. 이것은 어떤 가치도 없는 것 같다. 빗썸에서도 자체 거래소 코인을 만든다고 한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것이 왜 필요한지 ? 분산원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리버스 ICO 하는 회사나 거래소 코인은 코인이 아니라 증권으로서 IPO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거래소 코인과 분산화되지 않은 리버스 ICO 코인들은 블록체인의 발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규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 블록체인 자체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블록체인을 구상한 그 창의력이 중요한 것이지 기술 그 자체는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것은 분산원장이라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서비스의 영역이 매우 넓고 사업의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샌듯하다. 결국 분산원장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생각해볼 때 암호화폐 없는 블록체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없는 블록체인을 만드느니 그냥 중앙집권적인 서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블록체인으로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초기 투자자금이 비교적 적게 든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소자본으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사업을 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젊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다.

제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시켜서 대응하겠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다시 말하거니와 암호화폐에서 분리된 블록체인은 블록체인이 아니다. 정부가 블록체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암호화폐의 정의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POW, POS, DPOS 마스터 노드 등과 같은 블록형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코인은 모두 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써 놓고 보아도 간단 명료한 것 같지는 않다. 실패했나 ?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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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해야 하나 ?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하고 종교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잘못하면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다. 그런데 종교문제는 개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문제는 가급적 많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정치를 외면하면 할수록 이상한 인간들이 정치인이 되어 우리를 통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특히 민주주의란 자신이 자신을 통치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다른 놈들이 나를 이용해서 자신의 배를 채운다. 그래서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매우 중대한 도덕적 나태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과격한가 ?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받아 마시게 되는 과정을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과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과두적인 체제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과두제란 지역기반에 입각한 정치를 의미한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나뉘어서 서로 서로 해먹는 구조가 우리나라의 정치다. 겉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표명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그 둘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그저 권력을 탐하기 위해서 거기에 줄을 섰을 뿐이다. 우리는 그런 과정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정치구조가 지속되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서로 서로 편을 지어 나누어 해먹는 구조가 고착이 되면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세력들은 지금과 같은 정치구조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들은 온실속에서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와 자한당이 지금과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어찌보면 국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만들어 버려 저들만의 세상을 계속 구가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도 해보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그들의 행태가 그런 것 같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바로 지역적인 기반의 정치구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부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구조다. 당연히 표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리 국민의 표를 받아도 의석으로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다. 승자 독식의 구조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의 구조가 아니다. 승자독식의 구조는 독재적인 체제의 구조다. 국회는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변하는 곳이다.

당연히 국회는 국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내용은 조금 복잡하다. 그러나 조금 복잡한 그 선거제도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다당제가 되어서 국정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양당제가 되었을때 훨씬 국정히 혼란했다. 서로 싸우느라고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서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유도 선수였다. 웃기지 않는가 ? 날치기로 통과시키려면 힘이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중에 럭비선수도 있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다당제하에서 양당제의 힘겨루기가 훨씬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번 국회가 그런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회는 다당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국정운영의 안정성이 있다. 국회는 대통령을 견제해야 하는데 집권세력들이 국회를 장악해버리면 그것은 독재나 다름 없는 일이 된다. 대통령제하에서 국회를 야당이 장악하고 있으면 아무일도 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국회가 다당제로 되어야 대통령을 적당하게 견제할 수 있다. 추진할 것은 추진하고 반대할 것은 반대할 수 있다. 양당제의 극단적인 투쟁이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국회는 이럭저럭 5당이 만들어 졌지만 지금과 같이 가면 다시 승자 독식의 구조가 만들어 진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 과거의 잘못된 일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바꾸어야 한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정치를 선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영 마음에 안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고 나서 나중에 다시 줄이는 방법도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 더불어와 자한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지금 민노총이 하는 짓들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대기업과 민노총이다. 이들은 각자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재벌과 민노총의 입김이 확줄어 들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의사가 보다 많이 반영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지 않으면 촛불혁명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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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민주당과 자한당이 하는 짓을 보고

손학규 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꽤 오랫동안 단식을 했다. 그리고 5당 대표가 모여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바꾸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서 맴돌고 있는데 자한당 원내대표 나경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수용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더불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손학규와 이정미의 단식은 별 의미도 없이 그렇고 그런 일이 되어 버렸다. 어쩐지 더불어와 자한당이 그렇게 빨리 합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손학규와 이정미의 단식을 중지시키기 위한 술수로 5당 원내대표들이 모여서 쇼를 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참 우리나라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당의 원내대표들이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한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런데 겨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말을 번복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 시정잡배라는 말은 이런 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닐까 ?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상당한 수준의 왜곡된 정치운영은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면 국민들의 의사가 가급적 최대한 많이 반영되는 정치적 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저렇게 개판을 치는 것은 정치과정에 국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국민들이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국회의원들이 지금처럼 개판칠 수 없다. 국민들의 의사와 반하는 의원들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되고 나면 오히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기도 쉽다. 그때는 그들이 국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왜곡된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이 더불어와 자한당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곡된 제도를 이용하여 기생하려는 정치세력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들은 국회의원 숫자에 연연하면서 이들의 기생적 태도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똑똑하면 정치인들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는 우리 국민들이 올바른 정치과정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정치인들을 쫓아낼 수 있는 좋은 정치제도를 도입할 생각을 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나쁜 정치인들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할 요량이라면 차라리 국회를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제대로 된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 몇명 더 늘어나서 치르는 경제적 비용이 지금처럼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국회의원들 잔뜩 뽑아 놓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경제적이다.

우리 국민들부터 좀 똑똑해지자. 우리가 이모양이니 맨날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만일 이번에 더불어와 자한당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다음 총선에서 이들을 철저하게 심판해야 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정말 엉터리 같은 자들에게 통치를 당한다고 이야기 했다. 지금 우리가 그런 꼴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엉터리를 몰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것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 잘못인가 ? 우리 국민들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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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 이야기)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와 코인의 관계, 상호 경쟁인가 보완인가 ?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제까지 화폐와 코인을 상호 경쟁의 관계라고 생각을 했다. 비트코인이 태동한 배경이 2008년 금융위기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했나보다. 국가가 화폐를 마구 발행함으로 인해 보통 사람들이 평생 모아 놓은 부가 착취당하는 현상을 보고 만든 것이 비트코인이라고 했다. 국가의 화폐발행으로 인한 피해를 줄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화폐와 코인을 상호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저의 글을 오래전부터 읽어오신 분들은 제가 비트코인을 만든 이유가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글을 쓴지가 1년이 지나서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렵다. 내가 써놓고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이 스팀잇의 현실태다. 이런 것을 제대로 고치지 못하면 앞으로 스팀잇의 발전은 요원하다. 각설하고 과거에 저는 국가와 암화화폐의 관계를 설명한 적이 있다. 암호화폐가 국가권력을 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dark coin은 국가권력에 의해서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만든 dark coin은 지금과 같은 국민국가의 시대에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아무리 분산화니 뭐니 해도 결국은 코인도 국가권력이 허용하는 틀 안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화폐와 코인이 상호 적대적이고 대척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폐는 코인을 헤징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금본위제도가 무너진 다음 화폐는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한 불안정한 위치를 조금이나마 헤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암호화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화폐와 암호화폐는 서로 공존해야 한다. 지금은 암호화폐의 가격이 들쑥 날쑥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블록체인이 상업적인 용도로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면 암화화폐도 나름대로 일정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의 속성은 글로벌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세계에서 통용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어떤 국가의 경제상황에 의해서 그 가치가 좌우되지 않는다. 그 사업 자체의 성공과 실패에 의해서 좌우된다.

통상 어떤 기업은 그 국가의 경제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머징 마켓의 경우에는 기업의 가치가 국가의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안보문제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국가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사업의 영역이 글로벌하기 때문이다. 당장 스팀잇 만 해도 여기에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참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스팀잇은 한국의 경제상황이나 일본의 경제상황 혹은 중국이나 유럽의 경제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더리움도 그렇고 이오스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사업이 어느정도 궤도에 서게되면 암호화폐는 국가의 화폐가 제공하지 못하는 안정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를 보유하는 사람들은 화폐와 암호화폐라는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암화화폐를 화폐의 페깅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당연히 기존의 은행과 금융기관에서도 보다 다양한 헤징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은행 등 기존의 금융기관들이 암화화폐를 경원시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은행이라면 다양한 헤징수단을 가지는 것이 훨씬 경영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듯 하다. 당연히 기존의 금융기관에서도 암호화폐를 신속하게 받아 들이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구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대형 투자 은행에서는 암화화폐에 대한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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