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영화이야기) 보헤미안 랩소디가 800만명을 넘은 이유

휴가 나온 아이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것이 벌써 1달은 다된 듯 하다. 솔직하게 말해 영화를 보고 나서 별 감흥은 없었다. 다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나이에 퀸은 한때 다 지나간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영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별로 였다. 스토리보다는 음악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재미있게는 보았다.

그런데 보헤미안 랩소디가 800 만명을 돌파했으며 전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관객들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미술품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었다. 아모레 본사 지하에서 열린 조선의 병풍전을 보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왜 한국에서 보헤미안 랩소가 800만명을 넘었나 하는 것이었다. 그냥 아! 800만명이 넘었구나. 성공했네. 라고만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문제를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이 많아서 인지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끈 이야기는 이제야 한국이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에서 벗어 났다는 분석이었다. 사실 수천년 동안 한국은 중국의 문화적 식민지였다. 어저께 본 조선의 병풍전에서도 조선 지식인들의 이상향은 중국이었다. 병풍에도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야 말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 운운하면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2000년 동안 중국은 우리 문화를 지배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류까지도 언급되었다. 한류야 말로 중국의 문화권에서 벗어난 증거라는 것이다. 한류는 우리 고유의 음악에 일본의 음악 거기다 기독교의 음악까지 모두 합쳐진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류에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난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이렇게 성공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가 마치 프레드 머큐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소수인종으로 소수성애자로 생기기도 이상한 프레드 머큐리가 온갖 편견을 뚫고 정상에 섰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멧세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은 프레드 머큐리가 성공할 수 있던 영국과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오늘의 한국인들이 절망하면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 오늘날 한국은 능력이 있으면 그리고 열정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닐까? 한국의 관객들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한국의 현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경직성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젊은이들의 욕구를 계속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리나라 사회가 위험해 진다는 것이다. 현상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우리사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최대화해 나가는가는 순전히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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