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천안 광덕사 돌담위, 사람얼굴 모양의 돌

절에 갔는데 정작 절보다는 절 주변에서 재미있는 것을 본 적이 많다. 천안 광덕사가 그렇다. 광덕사는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처음 심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절에 올라가는 계단 옆에 400년 점은 호두나무가 심어저 있다. 보호수다. 호두나무는 오래 되어도 그리 크지는 않은 가 보다. 천안에는 호두과자가 유명한데 다 이 나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천안에서 호두과자 하나가지고 먹고사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은데 그 출발점이 바로 이 오래된 호두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안사람들은 호두나무를 보호수 정도가 아니라 은혜수라고 해도 될 듯하다.

원래는 호두나무를 보러갔다. 그런데 광덕사 주변의 경치가 뭔가 좀 묘하다. 마치 1960년대나 70년대 풍경과 같은 느낌이 난다. 겨울이라서 휑한 느낌이 더 났는지도 모른다. 절에 올라가자면 이런 저런 돌조각 들도 많이 서 있다. 세련된 느낌은 별로 나지 않고 마치 아무렇게나 세워둔 느낌이 났다.

절로 가는 길 주변은 돌로 양옆을 쌓아 놓았다. 길가에 이렇게 돌을 쌓아 놓은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뭔지 모를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PC300279.JPG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절 입구의 담벼락 위에 있는 고양이들이었다. 추운날씨였는데도 길고양이 들이 돌담위에 앉아 있었다. 여러마리 고양이들이 돌담위에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PC300284.JPG

그런데 고양이를 보다가 뭔지 모르게 사람을 닮은 돌을 발견했다. 마치 일부러 조각한 것 같았다. 수염을 기른 영감님 같은 느낌이다. 서양사람의 모습같기도 했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것을 포스트에 올려도되려나 걱정이 되었다. 신기하다고 누가 홀딱 들고 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들고갈 것이라면 이래도 저래도 다 들고 갈것이다. 그리고 그 돌이 광덕사 돌담위에 있었다는 것을 포스트를 통해 알려지면 오히려 가지고가기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올리기로 했다.

PC300346.JPG

PC300347.JPG

광덕사는 정작 절안에서 구경하는 것 보다 주변의 고즈넉한 풍경이 더 좋은 곳이었다.


DCLICK: 광고 기능을 소개 합니다

지난주에 dclick 에서 Advertise 기능이 오픈 되었습니다. Advertise 메뉴 …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천안 광덕사 돌담위, 사람얼굴 모양의 돌’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전등사에서 보았던 중국 송나라의 쇠종

가끔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짜릿한 기분을 느낀다. 범사에 기뻐하라는 말이 있지만 난 그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범사에 기뻐하면 그것이 열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다 같은 것을 지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항상 평상시에 열반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믿음을 얻게 되면 이렇게 범사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기뻐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낙원이자 천당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평상시와 조금 다른 것을 찾아내고 그것에 기쁨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그만큼 일상과 다른 것을 보고 느끼게 해 준다. 그만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래서 여행지에 가면 뭐 다른 거 없나 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번에 전등사를 둘러 보면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바로 한쪽 구석에 있는 쇠종이었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절의 한구석에 종이 있는 것을 보았다. 종의 역사를 소개하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제시대에 중국에서 일본군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 병기창으로 가지고 온 것이란다. 송대에 만들어진 철종이다.
참 기가찰 노릇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송대의 쇠종을 녹여서 총이나 대포를 만드려고 약탈을 했다니 기도 차지 않는다. 그나마 해방이 되면서 종이 사라질 운명을 면할 수 있었다.

_2070046.JPG

이 종이 역사의 질곡을 몸소 겪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 추위로 떨고 있어서 짠한 기분이 더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역사의 질곡보다 그 종의 문양과 디자인이었다.
우선 우리나라 종의 특징이라고 하는 소리통이 일단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종의 윗부분을 돌아가면서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범종에 주역의 팔괘가 그려져 있는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난 중국의 불교나 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불교와 주역의 철학이라니 말이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불교를 수용한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_2070051.JPG

_2070052.JPG

마치 우리나라의 절에 산신이나 독성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갑자기 중국의 불교 사찰이 궁금해졌다.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중국 여행을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종앞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종의 표면도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바닷바람이 부는 강화도에 별 보호시설도 없이 밖에다 쇠종을 내 놓고 있으면 얼마나 많이 상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가급적이면 박물관으로 보내 보호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쇠종을 녹여서 총칼을 만들겠다는 일제의 군인들이나 그냥 바닷바람에 방치해서 녹슬어 부서기는 것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지나가는 과객의 걱정과 염려에 불과한지라 아쉬움만 남기고 전등사를 떠났다. 어떤 힘있는 사람이 신경을 쓰기 바라면서.


문림 II

좋은 키보드 찾다 찾다 직접 만든 키보드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전등사에서 보았던 중국 송나라의 쇠종’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전등사 대웅전을 보면서

전등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물은 대웅전이었다. 기록을 보니 광해군 때 중창되었다고 한다. 아마 이 절도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원래 전등사는 고려시대 대장경을 만들때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중심이 되는 곳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흔적은 찾아 보기 어렵다.

_2070044.JPG

대웅전 마당에 들어섰다. 오래된 절 건물을 마주할 때마나 묘하게 흥분된다. 오늘 이 건물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 기대 때문에 여행을 떠나곤 하는 것 같다. 대웅전 앞에 있는 소개글을 읽어 보았다. 처마밑에 있는 사람 상이 있는데 그것은 이절을 짓던 목수에게 밥을 해주던 여인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목수가 대웅전을 지을 때, 밥을 해주던 여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 여인이 홀연히 떠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난 목수는 처마를 이고 있는 여인의 상응 새겨 놓고 다음 생에 무겁게 절집 처마를 들고 살아라 하고 저주를 했다는 것이다.

_2070032.JPG

_2070029.JPG

과연 사방의 기둥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붕을 쳐들고 있는 사람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여성의 모습 같지는 않았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대웅전을 지으면서 그런 개인적인 망상을 입혀 놓았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을 들고 있는 나무상은 지구를 들고 있는 아틀라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나무상을 보고 스님들을 생각했다. 스님들이 열심히 수행을 해서 이 절을 떠 받들라는 뜻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절은 조선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기둥을 떠 받치고 있는 초석의 모습이 전형적이다.

_2070026.JPG

_2070024.JPG

전등사 대웅전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기둥이다. 초석은 조선 중기 이후의 모습이지만 기둥은 마치 고려시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배흘림 기둥의 모습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기둥은 두껍지만 배흘림 기둥의 완만한 곡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전등사 대웅전을 다시 짓기 이전의 대웅전은 고려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_2070027.JPG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전등사 대웅전을 보면서’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화도 전등사 가는길

강화도 전등사에 처음 가본 것이 30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같이 버스를 몇번 갈아타고 소풍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세상이 모두 즐거웠다. 아직도 전등사 올라갔던 길에 친구들과 낄낄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남는다. 정작 전등사는 기억이 나지 않고 같이 올라가면서 즐거웠던 것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 길을 가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내가 차를 운전해서 갔다. 어찌하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정문이 아닌 남문으로 날 데리고 갔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없어졌고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

이번에는 그냥 남문으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차를 주차하고 올라갔다. 매표소를 지나자 마자 돌로 쌓은 아치형의 문이 나온다. 고색창연한 느낌이 들었다. 겨울의 스산함이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_2070006.JPG

강화도는 19세기 외세의 침략을 정면으로 부딪쳤던 곳이다. 산성을 지나자 마자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과 싸워 이긴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서 있었다. 강화도는 구석구석 전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전란의 흔적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 그날 그때 그들의 함성과 비명소리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_2070008.JPG

천천히 길을 가니 절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무슨 글씨가 씌여 있었다. 가만보니 비석의 글씨 같기도 했다. 오래된 비석이 부서지자 그 파편을 모아서 계단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계단을 걷는 것도 송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수천년 수만년 수십만년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다. 그들도 우리가 살던 곳에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굳이 그런 비석의 파편을 보고 경외감을 느낄일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곳에 경외심을 느끼고 대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자손들도 나처럼 우리가 남긴 흔적을 보면서 신기해 할지 모르니 말이다.

_2070012.JPG

절에 갈때 마다 별것도 아닌 돌무더기가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한사람씩 두사람씩 돌을 쌓아 소원이 이루어지길 빈다. 그런 소원들이 모여서 돌탑이 쌓였다. 왜 내기분이 묘해지는지 알 수 없다. 아마 나도 전생에 돌을 쌓으면서 간절한 소원을 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별것도 아닌 돌무덤을 보면서 항상 마음이 짠해지는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_2070011.JPG


DCLICK: An Incentivized Ad platform by Proof of Click - 스팀 기반 애드센스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스티미언 여러분. 오늘 여러분께 스팀 블록체인 기반 광고 플랫폼 DCLICK을 소개…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화도 전등사 가는길 ‘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진 백련사를 찾아서, 만경루의 경치

강진 백련사를 찾아 가는 길은 멀었다. 강진이란 곳이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셈이니 서울에서 가장 먼곳이라 할 것이다. 차를 타고 천천히 여기저기 들러서 가는 길이어서 지루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충청도 그리고 전라북도를 거쳐 전라남도까지 동네구경을 하다보면 조금씩 다른 것을 찾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충청도와 전라북도를 지나 전라남도에 이르면 지리적인 변화가 많다는 느낌을 갖곤한다. 전라북도 중간 정도를 지나면서 지리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변산반도지역에서 시작되는 바위와 산의 모습은 중부지방과 확연하게 다르다. 그래서 그 일대를 지리공원으로 지정했을 것이다. 변산반도부터 월출산지역까지는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월출산을 지나면서는 또다른 지리적인 변화가 있다. 남도 특유의 나지막하고 편안한 구릉과 밭들이 보인다. 물론 그 지방의 산들도 바위들이 멋있지만 평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구릉사이로 잘 다듬어진 차나무들이 있었다. 차라고 하면 보성을 이야기 하지만 원래는 강진이 더 오리지날에 가까운 것 같다.

길에는 다니는 차들이 많지가 않아서 천천히 차를 몰고 가면서 주변 경치를 살펴 보기 좋았다. 가끔 마을을 만나면 마치 1960년대나 70년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마을을 보면 어릴때 생각이 난다. 언젠가 사진을 찍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백련사에 접어 들었다. 백련사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었다. 평일이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백련사는 고려시대에 무인집안에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백련사에 오기전에 유홍준 선생이 백련사의 대웅전이 매우 권위적이라는 평가를 한 것을 보았다. 절에 들어서자 만경루를 지나면 고개를 들어 대웅전을 우러러 보아야 한다는 것이 권위적이라는 이유였다. 기억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이다. 그래서 만경루를 지나서 대웅전을 보았다. 얼마나 권위적일까 ? 아마도 유홍준 선생은 그 절을 무인집안에서 세웠으니, 그런 선입견으로 권위적으로 보았는지 모르겠다. 백련사의 대웅전과 다른 절의 차이가 있다면 절에 마당이 없다는 것이다. 산기슭에 절을 세웠는데 그러다 보니 마당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애초부터 마당을 마련할 수 없는 위치에 절을 세운 것이다.

터가 작은 곳에 절을 세워서 마당도 제대로 없는 궁색하게 된 것은 아마도 거기서 보는 경치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 옆마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아름다웠다. 산속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세상모든 것이 그렇듯이 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은 달리 보인다. 나는 대웅전을 보면서 권위적이라기 보다는 그곳에서 보이는 경치가 더 눈에 들어왔다. 대웅전에서 보이는 바다 경치는 매우 부드럽다. 주변의 섬과 긴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바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넓은 호수 같았다.

_2090395.JPG

부석사의 만세루에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만경루에서 보이는 경치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예전에 부석사의 제일가는 경치는 만세루가 아니라 미륵전에서 보이는 경치라고 한 적이있다. 그런데 백련사의 만경루는 매우 다양한 경치를 보여준다. 오죽하면 이름이 만경루일까 ? 겨울에 찾아서 조금 삭막한 느낌이 있었지만 만경루의 창틀을 통해 보는 경치는 봄과 가을 그리고 여름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줄까 기대를 하게 만든다.

_2090361.JPG

강진에 가시면 백련사에 가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반드시 만경루에서 경치구경을 하시기 바란다.


DCLICK: 광고 기능을 소개 합니다

지난주에 dclick 에서 Advertise 기능이 오픈 되었습니다. Advertise 메뉴 …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강진 백련사를 찾아서, 만경루의 경치’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나경원의 연설, 그리고 민주당의 대응을 보고

원래는 강진의 백련사에 관한 포스트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니 나경원의 연설이 문제가 되어 국회가 벌집쑤신 것 처럼 되는 것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저는 원래 나경원을 별로 좋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나경원의 싸가지가 수준이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금수저로 태어나서 지금껏 어려운 생활 한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그냥 인물이 반반하고 공부잘해서 자한당의 원내 대표가 된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녀의 정치적 비전이 무엇인지 아는 바 없다. 하기야 정치적 비전 없는 것은 나경원의 경우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비전 있는 정치인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의 연설이 상궤를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라는 것은 사실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말이나 다 할 수 있는 곳이 국회다.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국회가 있을 필요가 없다. 국회의원이 회기중에 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가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국민들의 생각을 가감없이 대표해서 이야기 하라는 것 아닌가 ? 그 나라의 정치적 수준이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발언 수준과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말 못할말 다 해도 그것이 일정한 범위내에서 통합되어 갈 수 있는 국회라면 수준이 높은 것이다.

나경원이 이야기 한 내용은 ‘….이러하니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는 남북교류협력을 매우 찬성하는 사람이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의 이야기는 야당원내대표가 이야기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민주당의 반응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박지원 의원이 민주당이 나경원을 잔다르크로 만들었다고 논평했다. 그 사람을 별로 좋아 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은 찰진데가 있다. 전 민주당 의원들이 오버를 했다고 생각한다. 오버를 한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의 지지도가 점점 떨어지니 다시 나경원의 발언을 빌미로 삼아 야당을 코너로 몰아가고 지지세력을 결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의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서의 공천을 위해 눈도장 찍기 위해 단상으로 돌격을 했을 것이다.

이해찬이 곧이어서 나경원을 국회 윤리 위원회에 회부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이야기다. 이해찬의 정치라는 것이 그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동안 왜 민주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힘들게 뻿은 정권인데 왜 저렇게 이상한 짓만 골라서 할까 하고 말이다.

아마도 지금 정부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본질에 충실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탄핵이후에 자한당은 해체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처럼 다시 살아나게 만든 것은 순전히 민주당 책임이다. 문제를 그런 꼼수를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적폐라고 생각한다.

민주당도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 그나물에 그밥이다. 자한당은 말도 안된다.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가 ?


[DCLICK HTML 삽입형 광고] - 운영중인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이용해 수익을 얻으세요!

안녕하세요. DCLICK 입니다. 오늘은 새로 출시된 기능인 HTML 삽입형 광고에 대해서 소…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나경원의 연설, 그리고 민주당의 대응을 보고’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