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18 역적같은 헌병들

이대용 장군의 한국전쟁 참전기 중 국경선에 밤이오다 라는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덕천방면에 있던 이성가 준장의 제8사단과 개천 방면에 있던 신상철 준장의 제7사단이 중공군에게 돌파당하여 무너지고 있었다. 제2군단장 유재흥 소장은 순청 북창에 있던 제7연대를 덕천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라고 명령했다.
제7연대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은 자신의 부르튼 발이 채 낫기도 전에 부대를 이끌고 전선에 나가게 되었다. 이대용의 제1중대는 대대의 제일 선두에 서서 차량행군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침 10시 30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부대에 돌아와 긴급 출동 준비를 시켰다. 신병들은 모두 눈이 동그랗게 놀라서 배낭을 싸고 있었다. 병사들의 배낭을 점검하던 이대용은 신병들이 모두 전투용 야전삽을 보충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전에서는 총과 삽이 필수적인 장비다. 호를 파지 않고 적과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에게 그저 목숨을 내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투경험이 없는 후방의 군인들이 전방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인 듯 했다.

이대용은 대대장을 통해 상급부대에 이일을 보고했으나 하루이틀만에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행군을 시작했다. 트럭은 순천을 지나 은산을 거처 어느 조그만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앞에 가던 군용트럭들이 정차를 했다. 군단 교통초소였다. 헌병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뻔질거리는 화이버를 쓴 헌병 2명이 초소에서 나왔다. 아마도 길안내를 하려나 보다 하고 지도를 꺼내들고 길을 확인했다. 행군도로는 아주 정확해서 착오를 일으킬 여지가 없었다.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대용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신임 소대장이 뛰어 오더니 헌병들이 차량을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군단장 각하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어떤 차량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대용은 군단 작전명령이 변경되었나 ? 하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 소대장이 귓속말로 “저놈들이 소련제 권총을 뺏으려고 하는 수작입니다. 노획한 권총 세자루만 주면 통과시킨다고 합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대용은 어이가 없었다. 중사 계급장을 단 자에게 “네가 여기 헌병 초소장이냐? 왜 작전차량을 정지시켰냐?”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경례를 하는 둥 마는 둥 다리를 벌리고 안하무인격으로 대답했다.
“군단장 각하의 명령입니다”
“그럼 군단 작전명령이 변경되었다는 말이냐 ? 확실하게 말해라”하고 다구쳤다.
그랬더니 농이 섞인 듯한 표정으로 “장교님, 너무 그러지 마시고 떼떼 권총 많으실테니, 그거 서나 자루만 주시고 통과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이대용은 “아니, 그럼 군단장 각하가 여하단 차량도 통과시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허위란 말이냐?”라고 말했다.그랬더니 그 헌병중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신창방면에서 오는 군용트럭 한대를 세워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대용은 “너 작전차량을 통과시키지 않을 테냐? 우리는 떠난다. 그리고 이일을 군단사령부에 보고해서 너희들을 이적행위로 군법회의에 돌리도록 처리하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헌병 중사는 이대용을 바라보면서
“헌병 검문소의 책임자인 저의 승낙없이 이 곳을 통과하지못합니다”라고 일본군 특무헌병 같은 소리를 했다.

이대용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칼빈 개머리 판으로 헌병 중사의 뺨을 후려 갈겼다. 그는 넘어질듯이 비틀거리더니 다시 다가와서 “아니 공무집행중인 헌병을 때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반항했다.

“야,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작전차량을 정지시켜 놓고 도둑질하는 것도 공무집행이냐 ? 이 역적놈의 자식아! ”라고 하면서 다시 한번 개버리판으로 그를 두들겼다. 너무 화가나서 작전을 방해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놈들을 사살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들었다.
그러자 대대장님이 오신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용은 대대장 김용배 중령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대대장은 “덕천에서 아군이 무수한 피를 흘리면서 적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그들을 구출해야할 작전임무를 띠고 가는 차량을 정지시키고 소련제 권총을 달라고 ? 철없는 놈들, 너희들이 이따위 짓을 한다면 일선에서 우리가 암만 피를 흘려도 헛수고야. 너희들의 직속상관인 군단 헌병부장에게 오늘 사건 전말을 보고해라. 난 중공군을 막으로 나가야 하므로 군단 헌병부장을 만안 시간이 없다”라고 훈시를 했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출발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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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17 살아 돌아온 사람들

북창은 국군 8사단 후방이었기 때문에 안전한 지역이었다. 날이 밝은 후 아침 식사를 끝내고 군용트럭을 이것 저것 얻어 타면서 순천에 있는 제2군단 사령부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군산 인사참모 유근창 중령의 안내로 그곳에서 하루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순천 북쪽에 있는 제6사단 사령부에 가서 사단장 장도영 장군에게 신고를 했다.

사단에서는 복귀 환영행사를 했다. 이대용이 사단장에게 신고를 했다. 사단장의 위로와 격려사가 있었다. 사단 군예대 여가수가 이대용의 목에 하늘색 머플러를 걸어주었다.

압록강에서 중공군 제4야전군 예하 제39군과 40군이 첩첩이 둘러싼 포위망을 돌파하여 무려 천 기백리길을 헻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잃어버린 부하들 생각에 더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
이대용은 우선 간호학생 박태숙과 정정훈을 부모님이 계신 서울로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대 선임하사관 김상사에게 박태숙과 정정훈을 인솔해서 서울로 보냈다.

그리고 한두명씩 살아돌아오는 부하들을 합쳐 중대원이 모두 36명이 되었다. 중공군의 포위속에서 피로와 기아에 시달린 이들은 포로가 되기도 하고, 적탄에 쓰러지기도 했으며, 자결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제7연대 고위급 간부급 중에서는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과 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이 포로가 되었고, 제3대대장 조한섭 중령은 전사했다. 연대 작전주임 조윤재 소령은 포로가된 후 참살을 당했다. 그런 불행중 다행스럽게 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이 살아서 돌아왔다.

살아서 돌아온 이들은 중심으로 제7연대 제편성 작업에 들어갔다. 이대용의 제1중대는 1950년 11월 25일 후방에서 보내주는 신병 100명을 보충받았다. 그리고 육군종합학교 제1기생인 신임소위 2명이 소대장 요원으로 보충되었다. 인원은 채워졌으나 신임소대장과 신병들은 훈련이 되지 않아서 전투력이 보잘 것 없었다.

이대용은 이들을 교육훈련 시킬 시간도 없이 곧바로 긴급 출동을 해야 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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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16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다.

맹산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지만 앞으로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 한계에 봉착하면 어찌할까를 고민했다. 남은 탄약은 개인별로 약 80발 정도였다. 한번 정도의 전투면 모두 소진될 정도에 불과했다. 이대용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보다는 자결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가는 와중에 중공군과 북한군을 보았으나 모두 피해갔다.

길을 가는 와중에 민가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겨우 어찌 어찌 대동강을 건넜다. 그 사이에 중공군의 추격을 받기도 하고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야간에는 아예 북한군의 행군대형에 같이 끼여서 걸어가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지막 까지 남은 이대용의 부대원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대동간을 지나 수하리에 도달했더니 국군의 지시를 받아 오던 치안대원 30명이 있었다. 반가웠다. 자세한 적정을 물어보니 이들도 적의 포위망에 갇혀서 웅성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용이 목표로 삼고 있던 맹산도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어제 오후에 아군 제21연대 수색대와 적과의 교전이 남중리 남방 약 1킬로미터 지점에서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대용은 치안대원까지 모두 지휘하여 남중리의 적을 뚫기로 했다. 먼저 치안대장에게 자신의 지시에 충실하게 복종할 것을 명령했다. 남중리 지리에 밝은 치안대장과 치안대원 3명, 그리고 제1중대의 이상록 하사를 정찰대로 먼저 내보내고 이대용은 본대를 이끌고 전진했다.

오후 2시경 남중리에 도착하니 적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은 후방에 대한 경계를 별로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중년 부인 한사람이 다가와서 중공군의 상태를 물어 보았다. 이대용의 앞에 있는 적은 60여명으로 남중리 서쪽 산줄기와 기슭에 참호를 파고 배치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군 제21연대는 여기서 약 5리 쯤 남쪽에 있는 것 같았다. 적은 전투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대용은 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적의 뒤와 왼쪽으로 부대를 숨겨서 은밀하게 이동 접근시켰다. 적의 진지 약 200야드 지점까지 숨어 들어갔다. 이대용은 ‘사격 개시’를 명령했다. 놀란 적군은 총2발 정도만 쏘아 보다가 도망을 쳤다. 적이 도망을 치자 다시 남쪽으로 걸어갔다.

얼마정도를 걸어가다가 아군을 만났다.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국군용사들이 박격포와 기관총을 들러메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서 옛 중대의 선임하사관이었던 김재의 소위를 만났다. 그는 이대용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북으로 향했다. 이대용은 동네에 들어가 밥을 지어먹고 다시 안전한 북창으로 들어갔다. 1950년 11월 8일 0시 30분 경이었다. 탈출에 성공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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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봄이 오다) 15 끝없은 패주길, 갈곳은 없어지고

이 포스트는 이대용 장군의 한국전쟁 참전기 국경선에 밤이 오다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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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사는 군복을 입고 전진을 돌파하기는 불가능하니 사복으로 갈아입고 아군에게 합류하자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군인이 총칼을 버리고 사복을 입는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차라리 총칼을 들고 군복을 입은채 뙤놈들하고 싸우다가 그놈들을 죽여버리고 운이 다하면 우리도 죽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복으로 갈아 입는다고 해서 적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사복을 입고 가다가 불의에 적을 만나면 무엇으로 대항을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야 말로 개죽음이라는 것이다. 군인은 죽을 때 자기 몸값을 적이 치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대용의 말이 끝난후 병사들은 모두 다 같이 군인은 총칼을 메고 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문제를 제기했던 김중사도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리저리 헤메이다가 산으로 기어올라갔다. 한시간즘 올라가니 산중턱에 화전민이 살고 있는 초가집이 두채가 있었다. 그 집에서 10분간 휴식을 명했다. 인원수를 확인해 보니 낙오자가 여럿이었다. 중대 선임장교 서소위가 보이지 않았다. 발이 퉁퉁부어서 구두를 못벗던 중대 통신하사, 지난번 경상도 문경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던 신중사, 지난 7월 함창지구에서 부상을 입었고 제3소대 선임하사관 김 중사, 세번이나 적탄에 맞은 일이 있던 중대 로켓포 사수 김중사, 제4소대 선임하사관 신중사, 한국전쟁 초기에 부상을 당했던 중대 전령 박 하사 듣등을 비롯하여 백전불굴의 용사 10여명이 낙오되었다. 낙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극도로 피로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살겠다는 욕망보다는, 어차피 죽을 몸, 차라리 여기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충동이 격렬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어제 아침에 북신현동 방면에서 중대 주력을 엄호하고 전사한 줄 알았던 제2소대장 김소위가 중대 선임하사관 김 상사와 더불어 20여명을 인솔하고 우리가 오기전 약 10시간 전에 이곳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이대용은 인원을 점검해보았다. 이대용에게 남은 병력은 제1중대원 21명, 제2중대 하사관 1명, 제4중대 하사관 1명, 제3중대 및 제12 중대 일등병 각 1명, 적십자 병원 간호원, 2명, 전 북한 인민군으로 귀순한 병사 2명, 한청원 2명을 포함하여 모두 30명이었다. 이대로 강행군을 계속하다가는 전원이 낙오할 것 같아, 초가집에서 쉬어가기로 하고 집주인과 병사들을 보내 낙오병을 찿아 오라고 보냈다. 두차례에 걸친 수색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새벽 5시에 집주인이 지어주는 옥수수 밥을 먹었다. 주인에게 낙오병이 나중에 이곳을 지나가면 따뜻하게 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새벽 6시에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면서 잘 보이는 돌위에 혹시 뒤를 따라 올지도 모르는 중대원과 전령 박재현에게 남기는 메모를 쓰고 돌로 눌러 놓았다.

전령 박재현 하사는 이대용의 당번병이었다. 적과 싸울때는 이대용을 보호하고, 전투중 무전기 사용이 허용되지 않을 때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대대장과의 연락을 유지시켜주었다. 휴식때에는 식사를 받아 오고, 행군때에는 이대용의 모포를 지고 나디는 측근이자 고굉지신이었다. 박재현과 이대용은 전장터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같이 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중공군이 있는 지역에 13명의 부하를 남겨놓고 돌리는 발길이 무거웠다. 하사관들은 산아래를 하염없이 바라 보고 있는 이대용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가는 곳 마다 중공군들이 깔려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중공군들이 내려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공군을 피해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위에서 밤이 올때까지 기다렸다. 간호학생 정정훈이 군용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먼산을 내려다 보며 시퍼런 얼굴로 덜덜 떨고 있는 모양이 석양에 비치어 처량하게 보였다. 이대용은 입동이라서 이렇게 추운가 보다 라고 이야기 했다. 정정훈은 추워서 시퍼렇게 된 입술로 빙긋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2중대 하사관 김중사를 포함하여 5명의 첨병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길을 걷기 시작한지 3시간 만에 신작로를 건넜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5명의 수색병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캄캄한 밤이라 지척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적진의 한 가운데니 이들을 찾기 위해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대원은 겨우 25명이었다.

다시 산을 두시간 정도 올라가니 산위에 화전민 초가집 2채가 있었다. 주인은 서른살 될까 말까하는 젊은이지만 상당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틀전부터 회천방면에서 내려온 중공군들이 이틀 밤낮을 계속해서 수백필의 발을 끌고 덕천방면으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다.

그말을 듣고 덕천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맹산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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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장군이 국경선에 밤이 오다) 14 기약없는 도망길

몸과 마음을 간신히 추슬려 병력을 이끌고 다시 묘향산 봉오리로 올랐다. 집결한 병력들을 확인해 보니 제1중대 제4소대가 주력이었다. 제2중대 하사관 1명, 제4중대 하사관 1명, 제3중대 및 제12 중대 병사 각각 1명, 북한 인민군으로 있다가 이쪽으로 동화된 병사 2명, 전 여자 의용군 1명, 한청원 1명이었다. 병력을 모두 세어보니 겨우 43명에 불과했다. 청천강에서 묘향산 첫째 봉우리까지 가면서 제2중대 30여명이 이탈했고 제1중대 3소대의 주력도 어디론지 없어지고 말았다.

높은 산이지만 바로 밑에 중공군에 몇만명이 있어 불을 피우지도 못한채, 수천년 쌓인 낙옆위에 털석 주저 앉았다. 해발 1200미터를 지나는 초겨울 바람은 매우 추웠다. 옷이 동태처럼 꽁꽁 얼어 붙으니 온몸이 떨려왔다. 굶은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만 들려왔다. 굶주림과 추위로 잠도 이룰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면 추위에서 벗어나려니 했으나, 가눌수 없는 팔다리를 이끌고 산을 넘어 강행군을 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모두들 걷다가 맥이 빠져서 한숨만 쉬었다. 그래도 적십자병원 고등간호학생 박태숙만 생글 생글 웃으며 어서가자고 재촉했다.
박태숙이 이대용의 칼빈총을 메고 가겠다고 했다. 이대용은 권총만 차고 칼빈소총을 박태숙에게 주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도 무거웠다.

한참을 가다가 형제봉 인근에서 인테리 풍의 청년과 동생인듯 한 16,7세의 소녀들 만났다. 그는 희천에서 치안대원으로 있다가 피난왔다고 했다. 그들로 부터 중공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희천 개천 가도를 따라 남하 했으며, 그 수효는 수십만이 될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제봉에 올라 다시 소민동과 동창 사이의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몇시간 동안 산을 헤메이고 나서 겨우 화전민촌에 도착했다. 모두 피난을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앞뜰 한모퉁이에 털다 남은 콩단 부스러기가 조금 있었다.

서소위가 콩단에 불을 질렀다. 불을 끄고 다시 콩알을 주웠다. 43명에게 나누고 보니 1명당 50알 정도 되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모두들 골짜기로 흐르는 물을 마셔서 뱃속의 콩을 불려서 배부르게 만들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박태숙과 정정훈 그리고 중대전령 박하사와 홍하사가 먹을 것을 장만했다고 이대용을 데리러 왔다. 가보니 호박 삶은 것이 조금 있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니 변소 옆에서 주워왔다고 한다. 이대용은 주먹만한 호박을 한입 먹고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도 사양하다가 조금 먹고 다시 이대용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산골짜기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밑에 아군이 있으리려니 하고 생각했다. 갑자기 서소위가 와서 중공군과 내부서원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했다. 가서 살펴보니 이대용의 부대보다 10배는 많은 듯 했다. 지치고 굶주린 병사들을 데리고 더 이상 전투를 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때 2중대 출신 김중사가 사복을 입고 무기를 버리고 각자 분산행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다. 이대용은 험악한 표정으로 김중사를 쳐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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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13, 포위망에서 탈출, 그리고 이대용 대신 죽은 이 하사

이대용의 제1중대 주변으로 중공군들이 겹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유엔군 정찰기였다. 손수건을 흔들며 도와달라고 애원했으나 비행기는 이대용의 제1중대 머리위를 몇바퀴 돌다가 평양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중공군은 겹겹히 둘러싼 뒤 독안에 든 쥐를 잡듯이 하려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대용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포로가 되는 상황은 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연대 작전주임 조윤재 소령이 포로가 되어 북한 내무서원들에게 무수하게 구타를 당한뒤 칼에 찔려 목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이대용은,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치욕적인 죽음은 피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탈출을 해야 겠다고 생각한 이대용은 우선 무전기를 파괴했다. 혹시 중공군이 사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탄도 없이 포만 들고 다니던 60미리 박격포도 파괴해서 파묻도록 했다.

적의 약점을 찾아 보았다. 중공군은 동쪽의 천연적인 장애물인 청천강 방향으로는 병력을 많이 배치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그쪽으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청천강을 지나면 바로 묘향산에 붙을 수 있었다.

이대용은 제2중대장을 불러서 제1중대의 우측에 있는 능선을 타고 뚫고 나가라고 명령을 하고 제1중대를 데리고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적의 최전선은 쉽게 무너졌다. 제1중대 선임장교 서 소위가 적의 참호 10미터 까지 기어들어가 수류탄을 투척하여 자동화기 사격을 하던 중공군 2명을 제거했다. 그러나 적은 금방 강력하게 반격해왔다.

약 30분정도의 치열한 격전끝에 제2중대가 적의 공격에 못이겨 제1중대 쪽으로 몰려왔다. 제2중대를 제1중대 왼쪽으로 보내고 제2중대를 추격해오는 중공군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이대용의 오른쪽 뺨을 후려 갈겼다. 이와 동시에 적 기관단총 탄알이 이대용의 왼쪽 발끝 바로 앞에 떨어지며 먼지가 얼굴을 덮었다. 이대용은 본능적으로 옆의 구렁으로 자리를 옮기고 자신을 향해 사격한 중공군에게 사격을 했다. 중공군은 재빨리 몸을 피해 사라지고 말았다. 옆을 보니 자신의 뺨을 때린 중대의 소대연락병 이 하사가 뺨과 턱에 관통상을 입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삽시간에 붉은 피가 가슴팍을 적시고 있었다.

중공군의 기관단총 총구가 이대용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말로 하기에는 너무 급하니 중대장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이대용은 자신 대신 쓰러진 이하사에게 치료를 하라고 박태숙에게 소리쳤다. 박태숙과 정정훈이 구급낭에서 약과 붕대를 꺼내 치료를 했으나 그의 생명을 건질 수는 없었다.

이대용은 바로 중대본부원 10명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마침내 정면의 적이 도망가면서 길이 열렸다. 전력을 다해 청천강 쪽으로 뛰어갔다. 중공군들은 이대용의 부대를 향해 사격을 계속했다. 청천강을 건너가는 와중에도 계속 사상자가 발생했다.

청천강을 건너서 병력을 수습해 보니 모두 100명정도 될까 말까하는 상황이었다. 오늘아침까지 이대용은 300여명을 인솔하고 있었다. 재빨리 묘향산으로 들어가는데 ‘중대장 아버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태숙과 정정훈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중대전령인 홍하사와 함께 생글생글 웃으면서 따라온 것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묘향산 중간 정도까지 올라갔을때 이대용은 콸콸 코피를 쏟았다. 너무 피로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박태숙과 정정훈은 쪼그리고 앉아서 피를 흘리고 있는 이대용에게 솜을 가지고 와서 지혈을 해주었다. 이대용은 무의식중에 낙담을 했다.

“아무래도 죽나부다, 그까짓 것 죽으면 팔자 좋지 뭐”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태숙과 정정훈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대용은 박태숙과 정정훈을 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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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이제는 주주들에게까지 손을 쓰고 있나;;;;

내가 이러려고 국내기업에 투자했나 자괴감이 들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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