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사 12-2 크리스마스 공세에 대한 중국군의 대응(청천강 동쪽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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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은 유엔군의 전면적인 진격을 개시했을 때 착각을 조장하기 위해 계속 운동방어를 실시하여 중국군의 예정전장까지 유인

유엔군은 정주 및 그 동북쪽 안심동, 태천 동쪽 연흥동과 그 동북쪽 기우산, 운산, 동남, 상구동, 구장 이북의 신흥동, 덕천 이북의 우현동, 영원 이북의 풍전리, 봉덕산 일선까지 진격

유엔군의 병력은 분산되었고 측방이 노출되었으며 후방이 공허해짐

38군, 42군 40군은 11월 25일 해질무렵 여타 정면에 있는 각 군의 적극적인 협조하, 적의 浮動상태를 이용, 덕천, 영원 지역의 국군 제 7,8 사단에 기습적인 반격작전을 개시

(38군의 3개사단은 3개의 길로 덕천 7사단을 공격)

국군 우익으로부터 덕천이남으로 우회하는 제113사단은 국군 7,8 2개사단 접합부를 뚫고 신평리에서 대동강을 도하, 제6사단 1개연대의 저항을 격파하고 26일 8시 덕천 남쪽의 차일봉에 도달, 적의 남쪽으부터 철수를 차단

좌익으로부터 진격하는 112사단은 25일 5시에 덕천 서쪽의 삼리, 운송리, 안하리까지 뚫고 들어가 덕천과 군우리간의 연결을 차단

정면에서 진격하는 114사단은 265일 11시에 덕천 이북의 갈동, 두명동, 마상리 일선을 점령, 사평점에서는 국군 7사단의 곡사포 대대를 섬멸하면서 덕천에 대한 포위를 완료

제38군은 그날밤 덕천 공격을 개시할 예정이었어나 적이 포위를 돌파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일정을 앞당겨 14시에 공격을 개시

15시에 적은 대량의 비행기 엄호하에 서남쪽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했으나 중국군이 저지

전투는 당일 19시까지 곗속되어 중국군 제38군은 국군 7사단 5,000여명 대부분을 남평점 부근에서 섬멸, 미군 고문관 7명을 포로로 잡음

(42군, 국군 8사단 공격)

제125, 124사단으로 정면과 측후방에서 영원의 국군 제8사단을 공격
126사단으로 맹산 이북 용덕리로 뚫고 들어가, 영원과 맹산간의 적 연결 차단을 시도
124, 126사단은 적 측후방으로 종심진출 중 발각되어 맹산 동북지역에 위치한 구군 제8사단 제2제대인 제16연대에 저지

영원지역에 위치한 제8사단 주력부대는 측후방이 위협받자 남쪽으로 철수, 전선을 수축

정면에서 공격하던 125사단은 적에게 맹공을 가하면서 신속하게 영원에로 들어가 적의 지휘계통을 마비

26일 새벽까지 격전이 계속, 중군은 영원을 점령하고 적의 대부분을 섬멸

제124, 126사단은 남쪽으로 도주하는 적 일부를 섬멸

(40군, 미제2사단 공격)

38군 방향의 작전에 협조하기 위해 25일 구장이북 신흥동, 소민동 지역의 미 제2사단(21개연대)향해 공격개시
신흥동에서 적 3개중대, 소민동에서 적 200여명을 섬멸, 나머지 적은 도주

26일 10시에 적이 다시 소민동을 점령하여 제40군은 서창 방면으로 진출, 분할하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함

(중국군이 청천강 동쪽에서 반격을 개시한 이후, 청천강 서쪽의 미제24사단 일부가 곽산을 침범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원래의 지역에서 중국군과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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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2-1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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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의 작전 개념>

집게형 돌격을 실시하는 동쪽 부대가 아미 중국군에 대해 포위를 진행하는 중요한 위치에 도달하여 작전은 결정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판단

11월 24일 10시 성명을 발표, 성탄절까지 한국전쟁을 마무리한다는 총공세의 개시를 선포

이와함께 동서부 양전선에서 중국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

한국에 있는 미, 영군과 터키군(3개군단 7개사단 3개여단) 및 대부분의 국군(2개둔단, 6개사단)을 집중

미군을 주요 돌격역량으로 구상

<공격배치>

서부전선

미제8군은 좌측방의 미제1군단으로부터 미제24사단, 국군 제1사단. 영 제27여단을 지휘, 가
가산, 고성동 지역으로부터 신의주, 삭주 방향으로 진격

중앙의 미제 9군단으로 미제25사단, 미제2사단을 지휘,
입석, 구장 지역으로부터 삭주, 벽동, 초산 방면으로 진격

예비로 터키여단은 군우리 지역, 미제1기병사단은 순천지역에 배치

우측방 국군 제2군단은 국군 제7,8 사단을 지휘
덕천 이북 사동과 영원지역으로부터 희천, 강계방향으로 진격토록 함
제2제대인 6사단은 북창리, 가창리 지역에 예비로 위치하도록 함

영 제29여단은 평양, 미 공수 제187연대는 사리원에 각각 위치하여 군 예비대로 함

동부전선

미제10군단이 미해병 제1사단, 미제7사단, 제3사단을 지휘
장진호를 따라 무평리, 강계방향으로 진격

국군 제1군단은 수도사단, 제3사단을 지휘
동해안을 따라 두반강변으로 밀고 들어가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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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1-4 제2차 전역 중앙군사위의 지시와 팽덕회의 최종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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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51)
(중국군의 작전수행에 있어서 모택동의 작전지침,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가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

‘아군이 청천강 동안에서 공격을 시작하면, 미제2사단, 기병 1사단은 동쪽 방향으로 증원할 가능성이 있음. 이렇게 되면 청천강 서안에 위치한 39군, 40군은 모두 42, 38군의 국군 7,8 양개 사단 섬멸작전에 협조하지 못하게 됨

42, 38 군의 우회돌격역량이 충분하지 못하면 전국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렵게 될 것임. 따라서 40군을 동쪽으로 약간 이동시켜 38군과 접근해 아군의 좌익돌파역량을 크게 증강시킬 것을 제의함

그럴 경우 제42군의 42군의 3개사단 전체는 영원지역의 국군 8사단을 일차 섬멸후, 맹산, 북창리 쪽으로 전진하여 국군 6사단을 다시 공격할 수 있음

이때 40군은 구장, 원리 방면에서 동쪽으로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제2사단과 기병 제1사단을 견제함으로써 제38군, 42군이 국군 7,8 양개사단을 섬멸하는 것을 보장토록 함

이런 제반조치는 제2단계로 실시할 미군에 대한 공격시 전역우회의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음

만약 제40군이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동시에 제39군, 99군, 50군은 적당한 지역까지 전진해 미제2사단 제24사단 등의 동쪽으로 지원을 견제해야 함

아울러 동부전선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의 제5, 7 2개연대를 섬명하는 계획에서 적 후방으로 우회하는 역량을 필히강화해야 한다’(51-52)

<지원군사령관의 계획>

군사위원회의 지시와 당시 한-유엔군 상황을 바탕으로 지원군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계획을 최종 조정했다.

서부전선
‘제38, 42군은 한선초 부사령원의 직접지휘하에 먼저, 덕천, 영원, 맹산의 국군 제6, 7, 8, 3개사단을 섬멸한다.

제40군은 동쪽으로 신흥동, 소민동 이북까지 이동, 1개사단으로 제38군 제112사단 방어지역을 인수, 주력부대는 두일령, 서창(덕천 서쪽)으로 뚫고 들어가 미군의 동쪽으로의 지원을 저지

제40군이 이동을 개시하면, 제39, 66, 50군 역시 동쪽으로 이동해서 방어지역을 차례로 인수하고 전선 조정을 완전하게 한 후, 공격이 개시되면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적 일부 섬멸을 기도

동부전선
제9병단의 1개사단으로 사창리, 흑수리의 국군 제26연대를 포위섬멸하고, 순조롭게 진척되면, 황초령 이남의 상하통리로 공격해 들어가 북쪽으로부터의 적의 지원을 저지,

별도 1개사단으로 황초령, 보후장(미해병 제1사단을 지칭)을 향해 공격하고, 순조롭게 진척되면 주력부대와 협조하여 고토리, 유담리 일대의 미 해병 제1사단 제5, 제7,2 연대를 포위섬멸

제26군은 장진으로 이동하여 서쪽으로 증원키 위하여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제7사단을 포위 섬멸할 준비를 하고 풍산 방향으로의 미군 진격에 대비한다.

아군의 공격개시 시간은 서부전선이 25일 황혼, 동부전선은 26일 황혼이다. (52-53)

(군사위원회의 지시는 구체적으로 지원군사령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반영해야할 수준의 지시인지 아니면 권고인지, 어떤 정도의 구속력을 지녔는지 확인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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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1-3 제2차 전역직전 중공군의 준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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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은 예정된 집결지역까지 모두 이동함

서부전선의 50, 66, 39, 40, 38, 42 군 주력부대는 각각 정주 서북, 구성, 태천, 운산, 덕천 이북 및 영원 동북지역까지 각가 이동

동부전선의 제9병단 제27군은 구진리에 도달, 제26군은 후창강 입구지역까지 진격, 제9병단 12개사단은 이미 전역집결을 비밀리에 완료함
(제9병단의 집결 행동은 미군의 공군활동에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9병단의 전장집결은 전술적으로 대성공)

중국군의 한-유엔군 행동에 대한 판단/평가

<서부전선에서의 한-유엔군 상황>
영 제27여단은 신의주로 지향할 것임
미제24사단은 삭주 쪽으로, 미 기병 제1사단은 벽동 또는 창성
미제2사단은 초산방향

국군제2군단 소속 3개사단(6,7,8)은 희천을 경유, 만포진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

<서부전선, 팽덕회 지시>
11월 21일 적이, 희천 이남, 묘향산, 하행동 일선까지 진격하면, 먼저 제38, 42, 40군 일부러 적의 동서 양익을 섬멸, 덕천, 영원 점령후 군우리 삼소리 방향으로 전진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전역의 돌파구를 만들어 전 전선에서 전과를 확장하는 전기를 조성할 것

상기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주력부대를 집중, 청천강 서안의 적을 공격하며, 상황에 따라 먼저 미제24사단을 구성, 태천 지역에서 섬멸하거나 먼저 미 기병 제1단, 미제 2사단을 온정 이남 이동, 용포리 일대에서 섬멸할 것을 요구

<동부전선에서의 한-유엔군 상황>
미 해병 제1사단 주력부대와 미제7사단 일부는 각각 유담리, 하갈우리, 신흥리까지 진격
미제3사단 제65연대 및 국군 제3사단 제26연대는 영원, 횡천리, 사창리로 이동

<동부전선, 팽덕회 지시>
중국군 9병단이 제20군 제27군으로 미 해병 제1사단 5, 7 2개 연대를 장진지역에서 섬멸할 것을 준비
상황이 순조로우면 다시 미 제7사단 일부 섬멸 준비
제26군은 식량부족으로 후창강 입구에 잠시 머물며, 압록강 따라 서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제7사단을 저지하고 이후 제1선 작전에 투입할 것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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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1-2 제2차 전역직전의 유엔군의 공세와 중국군의 유인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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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엔군의 공세

11월 10일 서부전선의 한-유엔군은 모든 전선에서 진격, 동부전선에서도 황초령, 풍산, 명천에서 세 길로 나누어 북으로 계속 공격(49)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 이번에는 비교적 천천히 공격
15일에는 박천, 용산동, 영변, 덕천 일선까지(서부전선), 하갈우리, 풍산, 명천 이북까지(동부전선)까지만 진격
중국군의 섬멸 예정지역에서 떨어져 있었음

중국군의 유인 작전

한-유엔군의 착각을 확대하고, 방심한채 중국군이 예상하고 있는 전장으로 전진하도록 하기 위해, 지원군 사령관은 16일 계속해서 북쪽으로 철수하고, 진격하는 적에 대한 공격을 중지할 것을 명령

17일 서부전선에서 중국은 계속 철수하여 주력부대가 운산, 구장선 이북과 영원 동북지역까지 이동
동부전선의 중국군 제20군도 유담리 이서 및 이북지역에서 집결을 완료, 그 일부 병력으로 제42군 주력의 황초령 이북, 부성리 및 하갈우리 일선에서 방어임무 인수지시
제42군 주력부대는 서부전선, 즉 영변 동북지역으로 이동을 개시

유엔군의 반응

한-유엔군은 중국군의 후퇴를 전쟁이 무서워 후퇴한다고 믿었다. 병력도 많아야 6-7만명 정도를 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중공격으로 중국군의 지원부대는 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 매우 신속하게 진출했다.

11월 21일 서부전선에서는 공격개시선을 점령했다.

미제24사단은 박천북쪽의 장신동에 이르렀고, 영 제27여단은 용산동까지 전진했고, 미 기병 제1사단은 영변북쪽의 입석까지, 미 제2사단은 구장 남쪽 강정까지 전진했다.

국군 제7사단은 군우리 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 덕천, 용문산으로 이동, 국군 제8사단은 영원 및 그 이북, 미 제25사단, 영 제29여단, 터키여단도 계속 제2선으로부터 북으로 이동,

동부전선 상황(51)

미 해병 제1사단은 하갈우리 이북까지 전진, 미제7사단 주력부대는 풍산까지 전진, 그 선두연대는 압록강변의 해산진, 국군 수도사단은 청진 이남의 영원동까지 전진, 국군 제3사단은 합수를 침범하는 중이었고, 함흥 영흥까지 진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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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1-1 제2차 전역직전 한-유엔군의 탐색작전과 중국군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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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전역으로 중공군의 타격을 당한 한-유엔군은 제1차 전역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중공군의 공세의 정도로 보다 심각한 제2차 공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세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한국전쟁에서 한-유엔군의 가장 큰 실책이 아니었나 한다. 상황이 바뀐 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유엔군은 11월 6일부터 일부병력을 동원해 중국군에 대한 탐색공격을 실시함>

서부전선

국군 제7사단이 비호산으로 진격, 8사단이 덕천을 공격
얼마후 영 제27여단, 미제24사단과 미 기병 제1사단도 북으로 청천강을 건너 일부병력으로 박천 영변을 향해 진격

서쪽에서는 청천강 하루로부터 북으로 가산을 거쳐 동으로 장신동, 용산동, 사동을 통해 영변에 이르는 일선을 점령하여 총공세를 위한 공격개시선을 삼을 것을 기도
동부전선

미 해병 제1사단이 황초령으로 진격, 미 제7사단 일부는 풍산으로 북진, 국군 수도사단 일부는 명천을 점령
중국군이 조선에 증파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압록강 교량을 폭파하기 시작

맥아더는 공군에게 최대한의 역량으로 만주변경의 모든 국제 교량과 변경으로부터 남쪽의 전선에 이르는 구역의 모든 통신수단, 군사시설, 공장 및 도시와 촌락 파괴를 지시함
(미국공군대학, ‘한국전쟁중의 미국공군’)

유엔군은 매일 1천여차례에 달하는 비행기 출동 공중 작전을 진행

<유엔군의 탐색작전에 대한 중국군의 대응>

유엔군 지상부대가 탐색공격을 개시하자 중국군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일부 병력으로 저항하면서, 중국군 깊숙하게 유인하는 작전을 실시하고 주력부대도 따라서 후방으로 이동함

서부전선의 중국군 제1제대 각사단(115, 119, 117, 125)는 박천, 영변, 비호산, 덕천 일선에서 한-유엔군에게 저항하면서 적시적인 소규모 반격을 실시하여 적에게 살상을 강요

11월 9일 자발적으로 비호산 일대 진지에서 철수, 10일에는 박천에서 철수
동부전선에서 중국군은 7일 황초령에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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