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렬과 조국의 차이, 원칙과 이상

중간 중간 조국의 청문회를 보았다. 조국과 윤석렬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보았다. 조국은 학자로 살았던 사람이다. 윤석렬을 검사로 살았던 사람이다. 한사람은 상아탑에서 한사람은 현장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같이 법을 다루었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만큼 사고방식도 차이가 날 것이다.

윤석렬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조국은 행동이 아니라 말을 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할까? 결국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옳다고 평가해야 한다. 사실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

윤석렬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정무적 판단보다는 잘못된 것은 잡아 넣은 그냥 검사라고 했다. 평생 좌고우면하지 않고 죄를 저질렀으면 잡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정부가 그런 검사를 어떻게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박근혜가 잘못했으면 박근헤를 잡아넣고 조국이 잘못했으면 조국을 잡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윤석렬이 박근혜 특검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국 사태로 윤석렬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정의에 충성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은 것 같다. 하여튼 윤석렬을 아주 잘아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원칙주의자라고 한다.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으나 윤석렬의 입장에서는 박근혜때나 조국때나 가치기준에 변화는 없는 것 같다. 그런의미에서 윤석렬에 대한 평가는 조금 더 두고보아야 할 것 같다. 만일 조국과 그의 가족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의 이번 수사는 옳다고 평가를 받을 것이다.

조국은 학교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사노맹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젊을때의 일이다. 조국은 행동이 아니라 말로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 그가 홍역을 겪고 있는 것은 행동보다 말이 앞섰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정의를 부르짓었지만 자신과 가족은 편법을 쫒았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행동이다.

아마도 조국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그이 이상때문일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개혁이라는 이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가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이 행동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위선이라고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분노하는 것은 그의 위선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위선이라고 평가받으면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조국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다. 위선이 판치는 사회, 검찰권력이 판치는 사회,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이제까지 검찰에 불려갈 일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가치가 아닌가 한다. 상하좌우 신뢰가 없이 어떻게 좋은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우선순서를 정해야 한다. 위선을 제거하느냐? 아니면 검찰개혁을 하느냐? 문제는 지금은 조국 아니라 조국 할아버지가 와도 검찰개혁은 불가능한 듯 하다.

만일 지인의 말 처럼 윤석렬이 정치적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범죄만을 생각하는 원칙주의자라면 이상을 추구하는 조국보다 윤석렬 같은 원칙주의자가 주류가 되는 것이 우리사회에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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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한 비판을 보면서

미국이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국무부 대변인이 나와서 지소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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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사람 다 거기가 거기다라는 말을 어려서 부터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일지 모르지만 어쩌다보면 바뀌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위대하게 바뀌고 어떤 사람은 초라하게 변해간다.

한번 위대했던 사람이 계속 훌륭하기는 쉽지 않다. 생활이라는 것이 그를 그대로 두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 위인으로 남은 사람은 중간에 빨리 명을 다한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고 살아 남았으면 위대한 삶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 그 망할 놈의 생활이란 것 때문에 말이다.

원래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위대한 인물로 거듭나기도 한다. 대부분 비극을 겪고나서인 경우가 많다. 비극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비극에 영웅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조국 청문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을 보니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씁쓸한 코미디말이다. 한때 괜찮게 보았던 사람들이 결국은 영웅이 아니고 희극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우습다. 무엇이 위대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했던 사람들을 코미디 배우로 만들었을까? 아마도 생활이란 것 때문이 아닐까한다.

어떻게 하더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위대한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포기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가 가장 경멸했던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아니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경멸했던 것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못난이 인형이 되고 만것이다.

삶은 냉정하다. 코미디 배우는 결국 희극무대로 돌아가야 한다. 영웅의 대서사시의 주인공이 되려고 했지만 스스로 무너졌기에 그들이 설무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있어야 되지 않은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연극을 보는 관객을 괴롭게 만든다.

별볼일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사람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영웅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다. 고 김용균 군의 어머니가 그렇다. 김용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 자식나이다. 그런 아이가 장막안에서 생을 다했다니 얼마나 가슴아픈가. 노인의 죽음과 젊은이의 죽음은 다르다.

나이가 드니 조금씩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연습을 해야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어린 아이들의 죽음은 너무 가슴아프다. 해보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죽으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그냥 시장에 왔다갔다하던 보통 아줌마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위대해졌다. 배움이 많은 것도 아닌 것 같은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가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비극이다. 위대한 인물이 절대로 되고 싶어하지 않았을 그냥 보통의 아줌마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위대하거나 초라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조국의 부인처럼 초라한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아무리 초라한 존재라도 갑자기 위대한 인물이 되기도 한다. 인간을 위대하거나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가진 재산이나 지식 배움 지위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마음을 먹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여당의 고위직에 자리잡고 있는 대부분이 인물들은 이번 조국 사건으로 원래 초라하고 별볼일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왜 이렇게 힘들고 시끄럽나 했더니 엑스트라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주연을 꽤차고 있어써 그런 것임을 이번에야 알았다.

자신의 배역에게 알맞는 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주연은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영웅의 서사시에 희극배우를 캐스팅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은 주인공에 엑스트라를 내세울수도 없는 법이다. 이제 엑스트라로 판명된 사람들은 엑스트라로 돌아가고, 희극배우로 판명난 사람들은 코미디 무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조국 사건으로 오랫동안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얻는 것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동안 훌륭하다고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생활을 극복하지 못한 범인보다 초라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당중에는 박용진과 같은 중심을 제대로 잡은 사람도 있었다. 정의당처럼 가끔 혹은 때때로 아니면 어쩌다 정의를 부르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불어 민주는 사라지고 너나 민주하라는 사람들로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자해한국당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중심을 제대로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 두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생활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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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했다고 우리 안보 걱정할 필요없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후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반발은 우리 국내 소위 보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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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다.

조국문제의 본질은 결국 철학이 아닐까 한다. 조국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대부분은 윤리학적 또는 정치철학적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제일 필요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장 심도깊게 정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국 문제의 핵심은 조국이다. 조국 청문회를 하는데 나경원의 비리문제는 다루지 않느냐 하는 말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비록 나경원이나 황교안의 비리가 수미산을 덮는다고 할지라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조국에 관한 문제제기는 조국에게 집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도 누구보다 황교안의 병역기피 의혹에 분노하는 사람이다. 병역기피의혹이 끊이지 않는 그가 보수정당의 대표라는 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군에 몸을 담아왔고 병사들이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지를 가장 가까이 보았던 사람으로써 황교안의 담마진이야기를 들으면 분노를 느낀다. 내 자식도 어려움 속에서 군생활을 했다. 웬만한 염치로는 병역회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네 보수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일까?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가치를 우습게 짓밟은 사람을 대표로 모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시 당초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한다. 황교안 뿐만 아니라 지금의 자한당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붕괴시켰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찌 국민들이 자한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황교안이나 나경원이 싫고 잘못한 일이 많다 하더라도 지금 조국의 청문회를 하는 마당에 황교안과 나경원을 소환할 수는 없은 법이다. 지금 황교안이나 나경원을 법무부 장관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청문회자체가 권력을 견제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이런 상황에서 왜 동일한 기준으로 황교안이나 나경원을 비판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논점회피에 불과하다. 지금 황교안이나 나경원이 집권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 때문이다. 권력은 견제를 받아야 한다. 어떤 권력이든 마찬가지다. 지금의 더불어 민주당 권력도 견제를 받아야 한다. 현재의 집권세력들이 불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그리해야 한다.

황교안이니 나경원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문제를 논의하는데 왜 황교안과 나경원은 동일한 기준에서 비판하지 않느냐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주장은 논점을 회피시켜 국민들을 속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진보세력 스스로 도덕적 평가기준을 낮추고 훼손시키면 그에 대한 댓가를 받게 된다. 국민들이 믿지 않고 지지를 하지 않게 된다.

조국을 비난하고 비판하면 자한당이 반대급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옳지 않다. 어떤 경우이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이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고 해서 옳고 잘한 것으로 둔갑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조국 한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추운 겨울날 힘들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덜덜 떨면서 버텼던 것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성공적인 개혁조치를 하지 못했다. 개헌도 그렇고 선거제도 그렇고 사법개혁도 그렇고 재벌개혁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럭 저럭 버텨온 것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보면서 현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운동권들의 윤리의식의 저열함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조국의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국의 부친은 훌륭한 분이었나 보다. 그러나 조국의 아버지가 훌륭한 것이 조국을 평가하는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그것도 연좌제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훌륭한 아버지를 둔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하고 비난해야 마땅하다. 아버지의 이름을 더렵힌 것 아닌가?

지금의 상황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날짜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관련된 의혹이 많이 제기되었고 사법적인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문회 날자가 지났다고 서둘러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그것이 만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6일에 조국을 임명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아무리 밉더라도 자한당의 협조없이는 정국을 운영하기 어렵다. 자한당은 국회에 들어오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까지 국회는 거의 마비가 될 것이다. 자한당과 바미당은 계속해서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벌어지면 어떻게할것인가? 현정부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이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극단적인 대치상황으로 몰아가서 자한당대 더민주의 양자대결로 끌고가려 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조성해서 중간의 제3지대를 아예 소멸시키고 그들을 더 민주로 끌고오면 다음 총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치공학적인 생각으로는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은 결국 집권여당이 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지금처럼 하면 끊임없는 극단적 갈등으로 나라가 갈기갈기 찟어질 것이다. 그럼 피해는 모두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진보고 보수건 모두 기득권이니 그들은 피해보고 손해 볼 것이 없다. 잘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정도로 가야한다. 지금의 상황이 빨리 정리 되었으면 좋겠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빨리 발표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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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기자 간담회와 절차적 정당성

기자 간담회라고 했지만 형식은 국민청문회였다. 기자간담회를 국회에서 한 이유이기도 하리라. 국회청문회 일정에 합의하지 못하자 곧바로 조국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불과 몇시간이후에 기자간담회가 이루어졌다.

수업이 있어서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잠시 보았으나 그 내용이 그내용이어서 그냥 보지 않았다. 기자들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질문을 했나 보다. 한 이야기 또하고 또한 이야기 또했다고 한다.

조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자신의 의혹이 해소되었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청문회를 퉁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기자들 간담회를 하고 청문회를 피해가면 앞으로 누가 청문회를 할 것인가?

조국의 기자간담회는 일종의 국정농단이며 민주적 법질서를 붕괴하는 행위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핵심은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것이다. 사법제도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번 조국의 기자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과 자한당이 모두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청문회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우선 자한당을 비판할 수 있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더불어 민주당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국의 문제는 기존의 청문회와 차이가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법무부 장관후보자인 조국이 사법처리의 대상자라고 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보면 조국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정리되기전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서는 안된다.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고사하고 청문회를 실시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청문회는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이 결정된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국회의원들은 수사기관이 아니다. 국회에서 청문회를 거쳤다고 해서 장관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지키야할 과정과 절차가 있다.

응당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고 무협의 처분이 나오면 그때 청문회를 하고 이후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 된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당연히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국회청문회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이후로 미루어달라고 국회에 요청해야 한다. 그게 정상아닌가?

조국이 지금의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금 당장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에 불려다니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법개혁을 할 수 있겠는가?

법무부장관이 되면 검찰의 소환을 사법개혁을 방해하려는 시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검찰이 정치적으로 사건을 수사해왔기 때문이다. 주로 권력자의 편에 들어 야당을 수사하거나,재벌의 편을 들고 중소기업을 억압하거나, 노동자의 입을 막는데 검찰권력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지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당연히 바람직하고 올바른 일이다. 오히려 권장해야 옳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렬 검찰총장에게 한말은 정말 옳은 말이다. 문제는 그런 행위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어야 한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검찰권력이 힘있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쓰이도록 해야 한다.

불과 몇시간만에 제대로 준비도 못한 기자간담회를 반나절 넘게 끌고 간것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우롱한 처사다.

지금 일본과의 경제전쟁, 미국과 줄다리기, 북핵문제 등등이 산적해 있는 지금 조국 살리기하다가는 문재인 정부가 무너지는 수도 있다.

조국에 대한 비난과 반대를 진영논리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조국을 반대하면 그것이 자한당을 도와줄것이라는 논리는 옳지 않다. 우리가 싫으면 자한당으로 가라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문재인 정권의 성공을 오로지 조국 한사람에게만 기대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조국의 성공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원칙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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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했다고 우리 안보 걱정할 필요없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후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반발은 우리 국내 소위 보수적 지식인들을 움직인다. 누구말로 노련하게 한국사회의 외곽을 때려서 가운데를 균열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듯하다. 우리네 소위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우리가 스스로 제2의 에치슨 라인을 그엇다든가 아니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든가 하는 우려를 쏟아 낸다. 그런 우려는 뭔지 모를 엄청난 불안감을 조성한다.

미국 당국자들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한다. 그리고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정이라고 비난한다.

세상에 떠돌아 다니는 수 없이 많은 말들은 다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말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우리가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결국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이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런 작업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하는 말은 그냥 주눅이 들어서 논리로 따지고 말고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국내 주류들이 미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득세했듯이, 지금은 미국에 유학을 갔다왔거나 미국과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친일파와 친미파가 다 똑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미국의 당국자가 한마디 하면 우리 국가와 사회 전체를 강타하는 효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안에 스스로 구축한 강고한 친미주의자들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스스로의 권력을 강고하게 구축해왔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이 유용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있어서 이런 매판적 친미주의자들은 상당한 장애가 된다. 이런 장애는 종국에는 미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다. 왜곡된 생각이나 판단 또는 물건은 원래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내 친미주의자들은 미국의 권위를 후광으로 삼아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고자 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미국을 이용할 뿐이다.

한국과 미국이 정상적으로 발전해서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논리를 바탕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이번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불만을 분석해려고 한다. 미국이 이햐기한 ‘실망’이란 말과 감정이므로 이해관계의 분석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소미아 종료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은 옳지 않는 말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한국과 일본이 제대로 교환하지 않으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미사일은 탄도 미사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교환하는 정보는 사전정보가 아니라 사후정보가 주다. 사전정보는 미국이 일본과 충분하게 교환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교환하는 정보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정보도 아니다. 따라서 작전적으로 거의 가치가 없다.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서로 연결하는 접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책적이거나 전략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 부분은 국가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한일관계가 나쁘면 실제 군사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그런 부분들은 정치적으로 없애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미국의 주장은 구체적인 실체를 담지 않고 있는 추상적인 레토릭에 불과하다. 만일 정말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위협이 증대하고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군사적으로 보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는 한국이 주일미군에 대한 문제는 일본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미국이 그런말을 한 것은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동안 한국사회내에 구축되어 있는 친미주의자들의 강고한 네트워크를 가동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미국의 반응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우리안의 친미세력들은 우리가 제2의 에치슨 라인을 스스로 그었다느니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라느니 하면서 한국사회의 불안을 야기하기 위한 작업을 스스로 했다.

따져보자. 에치슨 라인이란 냉전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미국은 강력하게 확대하는 소련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당시의 국제관계를 관통하는 개념은 이익이 아니라 이념이었다. 지금처럼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에치슨 라인과 같은 말은 있을 수도 없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미국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한국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전쟁에서 전방은 후방보다 중요하다. 전쟁의 승패는 전선에서 결정난다. 전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미국이 한국에서 물러나면 그것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을 지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는 주장도 옳지 않다. 우리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무기만 제외하면 북한군은 한국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 우리군의 전력증강에 대해 계속 문제를 삼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북한은 핵을 보유해서 전쟁을 억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군의 재래식 전력증강으로 핵보유 효과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핵우산 보장이지 지상군을 포함한 재래식 전력이 아니다. 능력이 충분한데도 미국에 기대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유아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분리불안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지소미아 종료를 이유로 국민들에게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 지금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 운운하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정치적인 행위다. 안보는 당파적 정치의 대상이 되거나 어떤 일파들의 이익추구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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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사) 서론, 2, 미국의 한반도의 안보적 가치평가에 대한 소련의 인식

한국전쟁당시 주한미군의 철수는 소련이 미국이 한반도를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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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싸고 미국과 보수세력들의 본격적인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지소미아의 종료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우리나라 보수세력들이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주장하는 것은 한미일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해서 중국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부담스럽고 그래서 미중 패권경쟁에 한국과 일본을 같이 끼어넣고자 하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한미일 동맹으로 점차 확대하려고 했다. 한미동맹이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서라면 한미일 동맹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관계는 근본적으로 그 내용이 매우 다르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미일 관계는 그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한미동맹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지금의 한미일 관계는 그것을 규정하는 조약과 같은 문서가 없다. 쉽게 말하면 부모없이 자식이 태어난 것과 비슷하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관계를 정치적인 정리없이 사실상 한미일 3자동맹으로 만들어 가려고 했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관계를 군사동맹으로 이어가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군 출신들 중에서 한일간 상호군수지원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고 그런 군사관련 협정들은 점차적으로 한미일 관계를 동맹의 성격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군출신들은 북한의 남침을 고려해 볼때 전시상황을 고려한 한일군수지원협정을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군사적인 판단과 결정이 정치적인 판단과 결정을 앞서가서는 안된다.

사실 지소미아를 체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중국을 적으로 상정한 한미일 동맹에 가입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정치적으로 결정했어야 했다. 지금우리가 지소미아 종료를 통해 겪고 있는 이런 혼란은 사전에 정치적으로 정리했어야 할 부분을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중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중국은 우리 교역의 50%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을 공식적인 적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빠진다. 우리 경제는 회복불능의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마 북한의 남침이 아니라 내부붕괴로 스스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중국을 적으로 상대하면 안된다고 하면 그럼 중국과 동맹이냐 혹은 미국을 버리고 중국으로 경사하자는 것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보수층들의 상당수가 그런 질문을 한다. 한마디로 옳지못한 문제제기다. 우리가 독일하고 동맹을 맺지 않았다고 적대적인 관계인 것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간에는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모든 관계를 적과 동맹의 이분법적 관계로 파악하는 냉전적 시각으로 지금의 국제관계를 보아서는 안된다. 미국도 중국을 적이라고 하면서 서로 장사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도 살아남지 못하고 중국도 살아남지 못한다.

한국이 중국에 경사될 것이라는 수없이 많은 예언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한중관계와 한일관계가 단순하게 힘의 과다에 의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정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적 굴곡과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조선시대와 달리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문화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진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정치적인 민주화가 가장 앞선 나라가 한국이다. 이런 정치적 성취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단순히 경제적 군사적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중국은 한국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지만, 한국보다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앞선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과 장사만 잘하면 된다. 지소미아 종료가 중국으로 한국이 기우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아둔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많은 한국인들은 거대한 중국이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입장은 못된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해서도 문화적으로 열등감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당연히 민주주의라는 척도에서 보면 일본은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일본은 단지 한국보다 경제력과 군사력만 강할 뿐이다. 그것도 개인구매력으로 따지면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별로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서 격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힘만 앞세우고 무식하게 나오는 것에 대비해서 한일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점에 대해서는 북한도 입장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지나친 태도에 대해 공동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일본의 부하가 되는 것을 감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한국사람들은 미국이 한국에게 일본의 부하가 되어서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는데 참가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제관계의 전통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힘이 적은 한국이 힘이 강한 일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 관리들은 그런 관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미국 관리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간의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관계는 국제정치이론이 아니라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 미국이 강요하는 한미일 3각관계는 정치적으로 이상적으로 중국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청산하지 않았다. 한국은 중국과 한국전쟁을 치루었다.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했다. 한국전쟁도 정리되지 않았고 식민지배도 청산되지 않았다.

일본은 식민지배 청산은 커녕 오히려 태평양 전쟁이전의 국가주의로 회귀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이 변하지 않은 한미일 3각 체제는 어떤 성격을 지닐까? 우리가 미래를 같이 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은 보편가치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더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일본과 같이하는 한미일은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없다. 그런 한미일이라면 중국보다 어떤 점에서 더 가치있고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가치가 우위에 있지 않으면 그냥 힘겨루기 싸움하는 것인가? 단순 무식한 힘겨루기 싸움이라면 우리가 목숨걸고 가담할 이유가 뭐있나?

일본이 진정하게 새로 나지 않은 한미일 3각관계나 공조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도 없다.

우리는 무엇을 그리고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가? 적어도 한일의 지소미아종료가 한미관계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일과 한미간에는 어머어마한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한미동맹이 약화된다고 하면 그 누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한미동맹을 위해서라면 다시 일본의 꼬붕이 되는 길도 감수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한일관계를 강요하는 한미동맹이라면 단호히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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