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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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불편을 느꼈다. 어제 선배 한분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그 불편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불편이란 정치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품격에 대한 실망을 의미한다.

언제부턴가 막말이 정치권을 휩쓸었다. 서슬이 퍼런 군부통치시기에도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말에는 격조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는 말의 격조는 예술적인 수준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비난을 할때도 빈정거리지 않았다. 최근들어서는 비꼬고 빈정거리고 왜곡하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과거 정치인들의 격조라는 것은 부르주아 계층의 유산이었다. 역사적 진보를 설명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혁명과 개량이다. 혁명가 레닌도 진보를 과거와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과거보다 나은 현실을 원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의 계승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러시아에 볼쇼이 발레단과 같은 부르주아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으로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부르주아지의 세계가 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들은 봉건귀족들의 신사도와 같은 것들은 자신들에게 맞게 발전시켰다. 그래서 자유주의 시대의 정신적 가치도 같이 창출했다. 말과 행동을 격조있게 만든 것이다.

계급적인 특성을 지니는 말과 행동의 격조는 상대적인 계급과의 긴장이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 점점 세계는 이상해졌다. 트럼프와 같은 상스러운 말이 일상이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오만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리라.

최근 진보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서 비열함과 비아냥 그리고 비꼼을 듣고 보면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궁금했다. 우리의 진보는 최소한 보수의 품격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우리의 보수자체가 그정도면 당연히 지녀야할 품격과 격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배울것이 없으니 막말이 난무하게 된 것이리라.

최근의 상황을 보면 진보라는 더민당이나 보수라는 자한당이나 격조와 품격의 측면에서는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당연히 격조를 갖추어야 하는 자한당이 마치 양아치 집단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더 분노를 느낀다. 둘다 비슷하지만 적어도 보수는 조폭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민당이나 자한당이나 양아치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다.

지인의 어머니가 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남을 자극하고 욕을 하면,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어디로 사라지고 내 말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나경원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싸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똑 같은 이유로 조국을 혐오하는 이유도 그의 말과 행동이 싸가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둘다 똑같이 그렇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자웅동체같다.

어제 추미애가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을 거부하라’고 선동했다. 아무리 보아도 법무장관이 신임검사들에게 할 말은 아닌 듯 하다.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떻게 법무장관의 지시를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윤석렬은 신임검사에게 ‘헌법정신을 생각하라’고 훈시했다. 윤석렬이 정치질을 하네 마네 하기전에 추미애의 말과 윤석렬의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추미애도 말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같은 취지라도 훨씬 고급스럽게 말을 할 수 있었을 것같다.

자극적인 말들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그래서 김어준, 김용민, 유시민, 공지영, 안도현 류의 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이 내 뱉은 말속에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들이 숨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지 모르는채 말이다.

진중권에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비아냥 거리고 비꼬는 것이 주무기인 작자들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진중권의 비아냥에 그대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당하시는 심사가 어떠신지.

대중들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시원한 사이다라고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이다는 많이 먹으면 당뇨병에 직방이다. 어쩌다 한번이지 일상이 되면 곤란하다. 결국 사람의 품격이 말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인격을 가졌는가에 따라 말이 따라 나온다.

언제까지 계속 3류 소설과 같은 말만 하도 듣고 살 것인가? 뭔가 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삼년 동안을 따라서 배우기 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 듯 하다.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과거에 격조있던 사람들을 접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저나 불행한 세대다.

정치인들도 점잖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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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에 기타소득으로 세금을 물린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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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암호화폐에 관한 글을 올린다. 암호화폐는 이제 암흑기를 지난 것 같다. 기술의 진보는 무지하게 빠른 법이다. 몇개월 전만해도 정부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백안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태도가 많이 바뀐 듯하다. 전세계적인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변화는 얼마있지 않아 비등점을 넘게 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등점에 이르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굳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구분하려고 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블록체인이 돌아가려면 당연히 암호화폐가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시각은 매우 정당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우며 효율적이고 자연스럽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럽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다.

블록체인 사업은 발전시키되 암호화폐는 도입하지 않겠다는 이말이 어떻게 성립가능한지 알기 어렵다. 정부가 정책이라고 정해 놓으면 그 많은 블록체인 전문가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닫고 있는 모양이다.

각설하고 정부가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긴다고 한다. 기타소득으로 구분해서 20%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긴다고 한다. 정부가 세금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공중에다 삽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세금을 거둘수 있는지 모르겠다. 세금이란 수입이 있는 것에 메기는 것이다. 암호화폐에 세금을 메기려면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서 그 암호화폐를 거래소에서 팔아야 한다.

그런데 이미 많은 사람들은 암호화폐를 지갑에 가지고 있다. 굳이 팔려면 암호화폐를 거래소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팔아야 한다. 거래소에서 수익을 얻기가 매우 힘든 구조다. 주식거래소와 암호화폐 거래소는 다르다는 말이다. 주식거래소와 달라 암호화폐거래소는 소비자가 아무곳이나 마구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움직이는 암화화폐를 최초 얼마에 구입했고 얼마에 파니 그 이익분 20%를 기타소득으로 국가가 거두어 가겠다고 할 수가 없다.

그냥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 가격의 20%를 기타소득세로 거두겠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당연히 위헌이다. 일괄적으로 20%세금을 메기면 그것은 소득이 없는 곳에 세금을 메기므로 그냥 부가가치세와 비슷해진다. 암호화폐에 부가가치세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설사 그렇게 한다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많다. 국내 거래소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MCO카드 같은 것으로 거래를 하면 국가가 아무런 개입도 하지 못한다.

결국 기타소득으로 세금을 메긴다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국내 거래소들만 망하게 할뿐이다. 기타소득세보다는 거래세가 훨씬 효과적이다. 이익 손해와 상관없이 거래 자체에 세금을 메기면 된다. 아마 황소장에서 그렇게 했으면 우리나라 거래소는 세계적인 규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국가도 세금 무지하게 걷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타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다. 만약을 위해서 가급적 국내 거래소에 암화화폐를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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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왜 야당은 비판하지 않는가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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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 항상 왜 상대는 동일하게 비판을 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제기를 받는다. 그런 질문과 문제제기는 형식적으로는 합리적인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매우 억압적이다.

집권세력과 여당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당연하다. 집권세력과 여당이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정운영에 대한 주도적인 권한은 야당이 아닌 여당의 몫이다. 집권세력과 여당은 국정운영에 대한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못했다고 하는 것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권력을 내어 놓은 것이 옳다.

세계 역사에 어떤 경우도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국정운영이 잘못된 것을 야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집권세력은 없었던 것 같다. 발목을 잡는 야당을 설득하는 것도 여당과 집권세력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동일한 분량과 정도만큼 야당을 비판하지 않은다고 해서 여당을 지나치게 폄하한다거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원래 권력을 잡으면 그런 것이다. 현 집권세력과 여당이 비판의 기계적인 평균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을 잡지 못하고 국정운영의 권한이 없는 야당 탄압이나 마찬가지다. 국정운영의 권한이 있는 만큼 더 비판을 받아야 공정한 것이다. 산술평균적인 비판은 오히려 야당탄압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비판을 한 것은 현정권의 탄생에 가장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호남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만들었다. 물론 현정권은 호남 사람들을 동반자가 아니라 마름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지지가 없으면 현정권은 제대로 건재할 수 없다. 호남을 비판한 것은 현정권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호남이 지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맹목적인 지지는 결국 권력을 타락하게 만들고 호남도 비난을 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는 하면서 왜 나경원이는 그대로 두느냐고 한다. 나경원도 싫다. 그러나 나경원과 조국은 서로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조국은 국정운영에 결정적인 권한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나경원은 일개 야당의원에 불과하다. 그녀는 국정운영에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나경원보다는 조국에 대한 수사를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경원에 대한 수사를 착수조차 하지 않은 검찰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책임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국과 형평성의 정도를 논할 수준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신종 코로바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지 약속이나 한듯이 야당인 자한당이 예산을 깍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자한당의 책임인 것과 같이 이야기 한다. 자한당이 설사 예산을 깍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집권정당의 책임이다. 만일 예산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했었다면 여당이 죽어도 예산 깍으면 안된다고 나섰어야 했다.

정책중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즉각조치다. 즉각조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즉각조치를 잘하는 군인이 뛰어난 군인이고, 즉각조치를 잘하는 권력이 뛰어난 권력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모든 지혜를 짜모으고 힘을 합해서 극복을 하면 국민들이 믿고 지지하고 따른다.

예산 타령하고 야당의 협조 타령한다고 해서 집권세력과 여당에게 가야할 비판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미움만 더 받는다. 지금은 쓸데 없는 꼼수 부리지 말고 최대한 노력을 해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이 안되도록 하는데 모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서다.

작성일자2020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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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지지하면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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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생긴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력을 기울여서 대응해야 할 시기다. 정부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우한폐렴의 확산보다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분리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우한폐렴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잘 되고 있어 여유가 있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다. 확산을 제대로 통제한다거나 상황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혐의로 백원우를 포함한 13명을 기소하자 마자,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운운한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할까. 그 뿐 아니다.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들어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임명도 하지 않았다. 한번도 임명하지 않은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소식을 보니 기가 차지도 않는다. 문재인 정권이 처음부터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다면 조국이 재임기간중에 사모펀드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경심이 차명투자 할 수 있었을까? 김정숙 여사의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의혹이 생겼을까?

조국은 국가의 중책을 맡아서 분골쇄신할 생각을 하지 않고, 마누라 앞세워서 강남에 빌딩을 사서 풍족한 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가 그동안 쏟아 낸 수없이 많은 말들이 결국 강남에 빌딩하나 장만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든다.

어디 조국 뿐이겠는가? 의혹은 차고 넘친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연루되었다는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의혹도 그렇다. 우리들 병원 특혜 대출과 사기사건은 또 어떤가. 이것 이외에도 수면밑에 잠복해있는 것은 그 얼마나 될 것인가.

특별감찰관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무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공포에 휩싸인 것 같다. 그러나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대통령부터 민주당 중진까지 모두 비정상으로 보인다.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정도 되면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경수사권을 조정하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생각이 정치검찰을 방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정치검찰을 만들려고 할 뿐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광재를 사면복권시키더니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겼다. 강원도에서 출마를 시킨다고 한다. 이광재는 삼성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문재인 정권은 유독 삼성을 좋아 하는 것 같다. 추미애는 삼성출신 변호사를 법무부 검찰 국장을 시키려고 했다. 아마 공수처가 출범하면 삼성출신 변호사들이 공수처에 대거 진출할 것이다. 법원도 삼성을 어떻게든 봐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정도니 할말이 없다.

이런 일이 백주 대낮에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직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3-40%라고 한다. 언론조사가 거짓인지 아니면 우리 국민이 엉터리인지 알 수 없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선거고 뭐고 모두 포기하고 그냥 자신들이 살아 남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터널현상이 생겨서 주변의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부정부패로 형을 받은 이광재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불러들이는 짓도 하고,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를 폐지한다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부패는 부패일 뿐이다. 거짓말에는 좋은 거짓말도 있다. 그러나 부패에는 좋은 부패란 없다. 부패는 무조건 나쁘다. 독직도 무조건 나쁘다. 좋은 독직은 없다. 진보의 부패는 용인할 수 있고 보수의 부패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부패한 자들은 진보건 보수건 모두 쓰레기다.

쓰레기를 지지하는 자들도 쓰레기다. 뭔가 얻어 먹는 것이 없으면 뭐하러 냄세나는 쓰레기옆에 있겠는가 ?

작성일자2020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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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내용적 권력의 정당성, 그리고 드루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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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은 정당성에서 나온다. 왕정에서는 적통이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별문제 없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형식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된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형식만 바르다고 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면 그 이후에는 내용적인 정당성도 인정받아야 한다. 왕정과 달리 민주정이 항상 불안한 이유다. 내용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모두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다. 그점에서는 그 어떤 정권에 비교해도 당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적 정당성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이명박은 국가를 자신의 안방 금고 쯤으로 알았다. 박근혜는 자신을 대통령이 아니라 왕인 줄 알았다. 민주주의 국가를 마치 왕정하의 국가처럼 운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역사에는 형식적 정당성보다 내용적 정당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그런 예다. 내용만 잘 갖추면 비록 형식과 절차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하면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머리에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도 그 난리법석을 떨면서도 형식적 정당성을 잃어 버리지 않았다. 천황이란 존재를 제일 위에 두고 막부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아마 당시 일본의 유신지사들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영남일대와 50대 이후 세대들에게 남아 있는 박정희, 전두환 향수는 절차에 비록 문제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훌륭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박정희 덕분에 먹고 살수 있었고 전두환 덕분에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용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역사의 숙명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의 정권에 비해 절차적 정당성과 형식적 정당성에서 매우 미흡하다. 특히 절차적 정당성의 측면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보다 한참 부족하다. 드루킹을 말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도 드루킹 사건과 같은 조직적 선거부정 개입은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문제가 기실 절차적 정당성의 부족에서 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법원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판결을 총선이후로 미루는 것을 보면서이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끼리끼리 문화, 진영 논리 이런 것들은, 결국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에 커다란 하자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후과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애시당초 목이 터지게 좀 똑바로 하라고 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을 내용으로 보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2년반동안 내용적인 측면에서 문재인 정권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형 부정과 부패의 음습한 그림자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뭔가 바뀌기를 기다렸던 것이 허망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경우에도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드루킹과 관련하여 법원이 판결을 연기한 것은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적어도 총선전에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민들이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결국 법원 스스로 정당성을 내다 버린 것이다. 자신의 판결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법관은 법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리고 부정한 권력의 공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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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공포심에 굴복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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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에 대한 공포가 극단에 달하고 있다. 공포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고 또 증폭된다. 간혹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중국인 입국금지 청와대 청원이 며칠만에 5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정부차원의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그랬더니 SNS에 현정부의 친중국 성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난리다.

가만히 보면 그런분들 중의 상당수는 이런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불순한 의도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자한당이 마스크끼고 회의하는 모습도 결국은 국민불안감과 공포심을 조장해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수작에서 기인한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모두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파악한 잘못도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청와대 중심으로 대책을 이끌어 가려는 아마추어리즘적 성향도 있다. 많은 언론에서 제대로 지적했다시피 이런 문제는 질병관리본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의학적 문제까지 잘 알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부터 우한폐렴은 질병관리본부장이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대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의 대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장께서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정부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십시요”라고 했다면 지지도가 무지 올라갔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한계는 절대로 남 잘되는 것 못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간단한 일도 제대로 안하는 것이 아쉽다. 이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중국에 마스크 200만장 지원하겠다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필요하면 우리 의료인력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옳은 일이다.

특히 북한은 중국과 완전하게 문을 걸어 잠구었다. 북한은 의료가 취약하기 때문에 아예 원천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행병이 북한을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정부는 이럴 때 북중 국경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해서 우한폐렴이 북한에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등의 방법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도적 차원에서 지금 당장 북한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즉각 지원해야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국이 발원지인데 발원지를 제대로 봉쇄하지 않으면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치를 해야 한다.

물론 국내에서의 조치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두 막아야 한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중국도 출국시킬 때 감염자를 차단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공항에서의 조치가 느슨하다는 지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이면 이성이 마비되어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거기에 기름을 부으면 폭발을 한다. 공포에 휩싸여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벌써 중국인 포비아가 발생을 하고 있다. 심지어 조선족 동포에게까지 혐오적 말과 행동이 난무한다고 한다. 이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

자한당도 이런 공포심을 이용하려는 무책임하고 얄팍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비난해왔지만 중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리고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공포심에 굴복하지 말자. 그리고 그런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자. 어차피 벌어진 일.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절대로 도움이 안된다.

작성일자2020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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