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내용적 권력의 정당성, 그리고 드루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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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은 정당성에서 나온다. 왕정에서는 적통이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별문제 없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형식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된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형식만 바르다고 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면 그 이후에는 내용적인 정당성도 인정받아야 한다. 왕정과 달리 민주정이 항상 불안한 이유다. 내용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모두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다. 그점에서는 그 어떤 정권에 비교해도 당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적 정당성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이명박은 국가를 자신의 안방 금고 쯤으로 알았다. 박근혜는 자신을 대통령이 아니라 왕인 줄 알았다. 민주주의 국가를 마치 왕정하의 국가처럼 운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역사에는 형식적 정당성보다 내용적 정당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그런 예다. 내용만 잘 갖추면 비록 형식과 절차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하면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머리에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도 그 난리법석을 떨면서도 형식적 정당성을 잃어 버리지 않았다. 천황이란 존재를 제일 위에 두고 막부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아마 당시 일본의 유신지사들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영남일대와 50대 이후 세대들에게 남아 있는 박정희, 전두환 향수는 절차에 비록 문제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훌륭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박정희 덕분에 먹고 살수 있었고 전두환 덕분에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용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역사의 숙명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의 정권에 비해 절차적 정당성과 형식적 정당성에서 매우 미흡하다. 특히 절차적 정당성의 측면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보다 한참 부족하다. 드루킹을 말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도 드루킹 사건과 같은 조직적 선거부정 개입은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문제가 기실 절차적 정당성의 부족에서 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법원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판결을 총선이후로 미루는 것을 보면서이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끼리끼리 문화, 진영 논리 이런 것들은, 결국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에 커다란 하자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후과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애시당초 목이 터지게 좀 똑바로 하라고 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을 내용으로 보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2년반동안 내용적인 측면에서 문재인 정권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형 부정과 부패의 음습한 그림자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뭔가 바뀌기를 기다렸던 것이 허망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경우에도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드루킹과 관련하여 법원이 판결을 연기한 것은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적어도 총선전에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민들이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결국 법원 스스로 정당성을 내다 버린 것이다. 자신의 판결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법관은 법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리고 부정한 권력의 공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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