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당과 새보수의 통합, 친문의 몰락 그리고 호남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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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당과 새보수가 통합을 발표했다. 통합의 걸림돌이었던 유승민이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자한당과 새보수의 통합은 금번 총선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시간의 문제지만 안철수 당도 곧이어서 자한당과 통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가 제3지대 운운하지만 정치 철학이나 소신이 분명하지 않은 그에게 그런 정치공간이 있을 수 없다. 결국 그는 세를 따라 자한당에 합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국내 정세는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하나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붕괴내지 몰락은 그들이 저지른 부정과 부패의 결과라는 점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할데도 없다.

문재인 정권의 선거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박근혜는 당내 공천과정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2년형을 받았다. 문재인은 선거과정에 개입했다. 죄질이 훨씬 중하다. 최소한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실형이 불가피하다. 최근들어 보수언론과 자한당 심재철도 문재인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탄핵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거개입 뿐만 아니라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신라젠, 라임 문제, 가습기 문제, 삼성 바이오로직스 문제 등등 권력의 핵심과 관련된 검찰수사는 불가피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들이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더민당도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실패가 불가피하다. 더민당은 야당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정신승리 현상이다. 주변에 더민당 찍겠다는 사람 거의 없어졌다. 문재인과 친문세력의 몰락과 함께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세력들도 같이 붕괴할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문재인과 친문세력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 될 것이다.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이정도면 미리 이탈할 것이다. 문재인 및 친문세력과 같이 하는 세력들은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결과는 정치적 몰락이다.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폐족이되는 것이다.

문제는 더민당이 망하고 나서 들어설 자한당이 과연 더민당 보다 나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럴 가능성은 단연코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들은 탄핵이후 어떠한 내적 개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반민주적이며, 친재벌적이다. 지금 그들의 패러다임으로는 한국이 직면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이 와중에 유승민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향후 자한당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유승민의 불출마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자한당이 새보수당에게 강요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한당이 통합되더라도 최소한의 개량적 정치마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패권경쟁의 와중에서 대외정책방향도 새로 제시할 수 없고, 경제적 왜곡도 해결하기 어렵다. 구조적인 모순은 그대로 덮어 둔 채로 화장만한 반동정치의 재판이 될 것이다.

물론 부정부패의 고리는 끊기 어렵다. 어차피 자한당이야 말로 부정부패의 온상 아니었던가? 이제는 더민당이 해먹었으니 자한당은 마음먹고 해먹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렬과 같은 인간은 해방이후 딱 한번 뿐이었다. 다음에 또 검찰에서 윤석렬과 같은 사람이 계속 이어서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은 시대의 돌연변이다.

제3지대가 필요한 것은 그런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그런데 안철수의 제3지대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에게 제3지대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은 자한당과 통합하여 중도세력을 몰고 가면서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안철수의 신당은 제3지대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반동적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자한당과 통합하지 않는다면 존재감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혹자는 정의당을 떠올릴 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정의당은 지소미아사태, 조국 사태와 그 이후 이어진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태도를 볼때 더민당의 대안이나 제3지대로서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사실 정의당은 더민당의 기생정당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이번 정국에서 확인되었다.

유일하게 가능한 곳은 호남이다. 지금 호남은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 이런 상황을 극복하거나 아니면 더민당과 같이 폐족으로 사라질 가능성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이렇게 단기간에 부정부패가 창궐한 경우는 없었다. 만일 호남이 더민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다면 호남도 폐족으로 책임을 지고 대한민국 정치에서 더 이상 진보의 근거지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호남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이번 총선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호남이 더민당의 숙주노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호남이 더민당의 정신적 포로상태를 극복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마침 호남에서 대안신당을 중심으로 미미한 재기의 움직임이 있다. 성공하기 매우 어려운 움직임으로 보인다. 구시대의 정치인들이 겹겹히 둘러싸 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 평화당 그리고 대안신당의 일부정치인들이 통합하는데 국고 보조금 운운하는 모양이다. 웃기는 일이다. 돈이 필요하면 정치하지 말고 시장가서 장사를 할 일이다. 정치에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과 이상 그리고 비전이다. 소위 호남지역 통합에서 돈문제가 나온 것만으로도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해왔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호남이 한국정치가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단 한명이 남더라도 개혁의 정신을 상실하면 안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씨앗이 남아 있으면 언젠가 싹이 튼다.

호남은 두가지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의 분명한 결별, 그리고 자한당의 발호를 막기 위한 개혁적 제3지대의 창출이 그것이다. 만일 호남이 자체적인 개혁적 정치세력의 창출에 실패하면 우리는 여당 야당이 돌아가면서 해먹는 남미같은 상황이 될 확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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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정치인 3인 3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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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김무성, 박지원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한다. ‘고참’이란 말을 두고 잠시 고민 했다. 원래는 ‘원로’라고 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존경스런 의미를 담고 있는 ‘원로’라고 하기는 찔렸다. 존경의 의미가 빠진 그냥 오래되었다는 의미가 많은 고참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고참’이라는 말에도 나름대로 긍정적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고참’이란 경험이 풍부하다는 뜻과 한편으로는 ‘고약하다’는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는 것 같다. ‘원로’라는 말도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와 함께 그의 과거 행적이 존경스럽다는 의미가 결합되어 있다. 그런면에서 고참과 원로의 공통점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그것의 바람직 여부는 차치하고)이다. 차이점은 고참은 고약하고 원로는 존경스럽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다. 원래 모두가 만족하는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동의하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제대로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사람이 진보냐 보수냐하는 것은 평가의 기준이 아니다. 세상은 진보와 보수의 두바퀴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그사람이 진보냐 보수냐로 훌륭하다 아니다를 평가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만일 그사람은 보수니까 나쁘고 진보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면, 우리사회는 독재가 발흥하기 좋은 여건에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진영간 갈등이 극심하다는 점에서 파시즘과 독재의 여지가 많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보수도 없고 제대로된 진보도 없는 얼치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렇게 싸우는 것은 사상과 문화의 변방이 지니는 한계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우리가 살아오면서 체득했던 도덕과 윤리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조국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유는 그가 도덕과 윤리의식을 결여했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행동을 보면서 실망했다. 자한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서 세력을 확대하고 다음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자한당이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 생각과는 별개로 그 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당의 목표에 헌신을 해야 할 것이다.

당에서 홍준표를 위시한 ‘고참’ 정치인들에게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요구했다. 홍준표는 수도권 출마를 거부하고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출마하겠다고 한다. 당에서 공천을 주지 않으면 무소속으로라도 나가겠단다. 대통령 후보까지 했던 사람이 의원한번 더 하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회의원이 대단한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것 같다. 그래서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자는 제의에 적극 찬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지리를 소위 보수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보낸 부끄러운 국민이 되고 말았다. 그는 한때 모래시계 검사라고 해서 칭송을 받았다. 요즘 느끼는 것은 인간은 변한다는 것이다. 검사시절의 홍준표와 지금의 홍준표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겉은 비슷할지 모르나 속은 완전하게 바뀌어 버렸다. 자한당은 당연히 공천을 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무성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김무성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았다.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으면서 패거리 정치를 일삼는 사람같았다. 부친의 친일 경력과 함께 그의 왜곡된 현실문제인식은 결코 좋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말과 행동에서 오랜만에 진짜 정치인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말로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김무성 정도되는 정치인이 말을 뒤집고 자신의 지역구에 다시 출마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최근 자한당이 김무성에게 호남지역에 공천을 줄테니 나가서 싸우라는 제의를 했다. 누가 보던지 김무성을 호남지역의 희생번트로 쓰겠다는 것이다. 김무성은 통이 컸다. 그는 당의 요구를 수용해서 자신이 나가서 불쏘시게가 되겠다고 했다. 그의 이런 결단을 보고 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배운 사람이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또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국처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잘못살아가는 위선자와는 격이 다르다. 오히려 가치관보다 그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김무성이 호남에 출마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희망을 가졌다. 호남사람들도 그렇게 오는 김무성을 아마 야박하게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보는 눈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박지원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인들의 나쁜 점을 모두 다 지니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말은 무지하게 잘하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한다. 정치인이 가져야할 자질 중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다. 그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야합을 서슴치 않는 사람이다. 그의 정치적 행로는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친문이 주도하는 민주당이 싫어서 탈당을 했다. 당시 친문세력들은 민주당내 호남세력을 제거하려고 했고 그에 반발하여 호남 정치인들이 대거 탈당했다. 그 결과 국민의당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박지원은 그 이후 호시탐탐 친문세력의 눈에 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에 들어 총리라도 한번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의 본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민주당인지 대안신당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차라리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민주당으로 다시 가면 된다.

나이가 들면 후손들에게 뭔가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이 팔순에 하는 행동은 가장 전형적인 정치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호남 정치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그런 사람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

그는 소속이 불분명한 정치인이다. 정치에서 소속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신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와 가치가 아니라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치판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하는 유형 아닌가 한다.

위의 세사람 이외에도 한국정치를 후퇴시키는 사람은 많다. 예를 들어 손학규와 정동영이 그런 사람이다. 그 두사람은 모두 당대표로 있으면서 당의 개혁과 발전을 저해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정치를 하려고 하면 나보다는 국가와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 두사람은 국가와 가치보다는 내가 누리는 복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나름 좋은 정치인들 없지 않다. 그런 보석 같은 정치인들을 찾아 내는 것이 국민들의 역할이다. 고양이를 골라놓고 호랑이 같은 행동을 하기 바라면 안된다.

작성일자2020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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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중국혐오증 그리고 공론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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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중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사회건 외국인과 외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중국에 대한 혐오증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다 알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중국 굴종이나 예종(심한 말이다)으로 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초기대처에 대한 비판과 중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중국 정부의 초기대응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최근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 책임론은 시진핑 개인을 넘어 중국의 국가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 살펴볼 것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간단한 기준을 선호한다. 아마도 구석기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우리 내부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적과 아군, 흑과 백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원시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다르다.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해질 필요가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정부와 보건 당국의 대처가 철저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특히 비판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정부와 보건당국의 대처는 솔직히 말해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선 행정력들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보가 통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벌써 담당자들은 지쳐있는 것 같다. 현정부 제일의 우선순위는 방역일텐데, 대통령은 공수처 운운했다. 정치는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비난한다면 옳다.

그러나 정부가 중국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출입제한을 하지 않은다고 해서 중국에 예종적이라는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의 출입에 관한 문제로 정치인들이 나서는 것 자체도 옳지 않다. 그동안 자한당은 현정부를 중국에 굴종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한당의 이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의사협회가 제안했다는 중국인들의 입국금지 조치도 매우 정치적으로 읽혀진다. 의사협회장이라는 사람이 수구보수적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안이 과연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정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간혹 뉴스시간에 의사들이 찔끔 찔끔 하는 이야기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정부가 시진핑 6월 방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이유가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시진핑 6월 방한을 위한 것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시진핑 방한때문에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면, 이것은 대통령이 탄핵받아야 할 사안이다.

WHO의 조치에 대한 비판도 언론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중국에 불리한 발표는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중국정부의 자료만 가지고 입장발표를 한다는 말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WHO는 심각한 신뢰성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신뢰의 붕괴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자초한 측면도 많다. 감염병은 방역하고 치료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모두 문제가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 협오증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중국에 대한 혐오증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순수 의료적인 관점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보다도 의료적 관점보다 정치외교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담론을 전개하는 시기과 장소가 틀렸다. 그런 문제는 순수하게 대외전략적 측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가가 왜곡된다. 왜곡된 평가와 기준은 결국 국민들의 손해로 되돌아 온다.

국민들도 속지 않고 살려면 적지 아니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걱정되는 것은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허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다. KBS는 그런 것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왜 그런 공론의 장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공론의 장을 막아 놓은 것인가? 왜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저러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가라 앉을 것이다. 백신도 나오고 치료법도 나올 것이다. 마치 세상 끝인 것처럼 하지않아도 된다. 지금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뒤에 숨어 있는 사악한 음모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뱉어 놓은 말들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아무말이나 다하는 세상이 되었다.

작성일자2020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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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선에 대한 독자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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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올린 미국 대선에 대한 평가에 대해 장문의 댓글을 보내 오셨다.
성함은 ‘고봉수’라고 하는 분이다. 읽어 보아야 할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이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고봉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내는 것이 문제해결일까요? 그러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회사가 모두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트럼프 이후 미국 실업률이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과 같은 나라의 기업들에게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국이나 다른 제3세계에 세워질 공장이 미국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제국주의적 약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트럼프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가 조금 좋아졌다고하지만 그것은 정말 취약합니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돌아서는 순간 무너지고 맙니다.

아래는 고봉수님이 보내주신 내용입니다.


대단히 죄송스런 표현입니다만 이 글은 미국 대선과 관련한 현실인식과 거리가 큰, 단지 우리나라 진보들이 미국 유권자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민주당은 선 공화당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나온 심하게는 현실도피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분석입니다.

그리고 사실관계에서도 실상과 다른 점을 상수로 놓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다른나라의 부를 빼앗아와서 미국민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정책이었다. 샌더스는 미국내의 빈부격차를 줄여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고 하시는데,

이 주장은 전혀 근거도 없고 사실과 다릅니다. 트럼프 언제 어떠한 워딩으로 또는 실행적으로 지난 3년간 다른 나라의 부를 뺏어오려고 했다고 하는지요. 그리고 샌더스는 어떤 방식으로 미국내 빈부격차를 줄이겠다고 했는지요. 이 주장이야말로 아무 근거없이 그저 선악 관점에서의 레이블링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샌더스의 미내 빈부격차 해소 방안은 들어본 바가 없으며 오히려 사실은 미국 국민간의 빈부 격차 해소 방안은 트럼프가 4년 전 대선에서부터 임기중에 일관되고 줄기차게 주장했으나, 한국의 외신은 단지 이를 인종차별 문제로 접근하거나 무시하는 보도 태도로 그리 눈길을 주지 않은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We will follow two simple rules: 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
우리는 다음 두 가지 간단한 규칙을 따를 것입니다 : 미국 제품을 사고(회사의 출신 국가는 상관없고 미국 땅에서 미국인을 고용해서 만든 제품을 사라는 의미), 미국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미국민 간의 빈부격차 해소 방안의 큰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트럼프는 미국 국민간 빈부격차 해소 방안으로 저소득층 국민들에게 복지수당 수령보다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하여주겠다고 하는 주장이었고 이는 그의 취임연설문에도 간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We will get our people off of welfare and back to work - rebuilding our country with American hands and American labor.
우리는 미국 국민의 손과 미국의 노동으로 우리 국민을 복지(실업자 구제 복지)에서 벗어나 직장으로 복귀시킬 것입니다.(최고 최선의 복지는 배급을 많이 주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주어서 배급받을 일이 없게 만드는 것, 즉 물고기가 아니라 고기잡는 법을 익혀주는 것이라는 의미의 표현)

미국 국민들에게 취업 기회 증대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에서 공급과잉을 제어하여야 하는 것은 필연이라, 트럼프는 그 방법으로 중남미나 아시아에서 허가없이 미국으로 입국하여 미국 국적을 갖은 미국민 보다 절반 수준의 저가 일당으로 자기 노동력을 팔겠다는 사람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원천차단하고자 하였고 이의 구체적 실행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입니다.

우리나라 언론과 진보는 이를 폐쇄적이라거나 인종차별적이라거나 비인권적이라며 트럼프를 광인에 가깝게 묘사하며 비하하던데, 아니 영토는 국민, 주권과 함께 국가 구성의 3요소 중 하나일 정도로 국가 구성과 운영의 핵심적 요소인데 그 국경을 자국민도 드나들려면 ’여권 PASSPORT’이라는 이름의 국가의 허가증이 필수적인데 하물며 외국 사람들이 아무런 사전 허가없이 그저 우리는 가난한 나라 사람입니다 라는 이유로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 만 수십 만이 해마다 들어오는 것을 용인하여야 하는 것이 법적 정치적 철학적으로 정당할 근거가 무엇일지요.

그리고 그렇게 몸만 갖고 들어온 사람들이 미국에서 살려면 밥 한 끼가 급하고 돈 한 푼이 급한데 미국 국민만큼 돈 줘야 일하겠다고 할 가능성이 얼마다 되겠는지요. 그들이 그렇게 시장 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노동을 공급하겠다고 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된다면 어느 사업주가 정상 가격 주고 미국 국민을 고용하겠는지요.

혹 그런 불법체류자도 사람이니 먹고 살 수 있게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법은 왜 있으며 그 사람들에 의해 노동기회가 박탈되는 진짜 약자 국민들은 기댈 데가 어디인지요.

현대의 국민국가가 농노나 노비를 싼 값에 막 쓰며 귀족 등 소수의 토지자본가들의 배만 불리는 데에 복무하던 봉건국가와 다른 점은 적법한 국가구성원인 개개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리 중 노동권은 개인의 경제적 자립과 인격적 자존감 확보의 핵심 구성요소로서 현대 국가운영의 중요한 목표가 된 지금 자기 국민 권리 신장에 저해요소가 되는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자국민 특히 그 중 경제적 수입 면에서의 하층 국민의 이익 제고 관점에서의 의사결정을 인권이나 인종주의로 접근함은 책임있는 국가운영 담지자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민 우선주의에서의 미국민은 아주 일부일 수 있겠으나 이를 여기서의 미국민을 미국 WASP 백인으로 치환하여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보이는데, 무식하거나 악의적인 딱지붙이기로서,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인은 백인 흑인 아세안 구분없이 국적 기준 미국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남미 아시안 불법입국자들의 저가 노동공급의 혜택을 정작 진보들이 경계하고 비판하는 사용자, 솔직히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기업들의 이익에 크게 이용되고 있음에 대한 진보들의 논리적 부정합성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세상에는 밝은 어둠 뜨거운 아이스크림 부작용 없는 약 등 동시 취할 수 없는 것이 많으며 저임금 국가에서 온 외국인노동자와 저소득내국인을 동시에 만족시킬 노동정책은 현재 자본주의 선진국에도 없는 것이 현실인 점을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진보 우호 사람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는 이 지점에서 미국 보수 자본가들과 부딪치면서 지난 대선 때도 그렇고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전통적 부자 보수들에게 보수 후보 맞느냐는 의심을 받아왔고 그래서 석유 재벌 코크 형제 가문도 트럼프 반대를 천명했었는데 그럼에도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이유는 당시에도 일부 미국 언론 기사에 났듯이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 중하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전래의 민주당적인 정책 대안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단지 ‘못배운 저학력 백인’들의 ‘무식한 또는 백인우월주의’적 차원의 지지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이야말로 ‘잘 배워서 학벌좋은’ 한국 언론사 기자들의 ‘학벌지상주의’적 판단입니다.

선거에서 나의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후보를 선택함은 바람직하고 권장하는 교과서적인 후보 선택 기준이라는 것은 진보들도 잘 알 것입니다.

미국 동부부 공업지역의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자기들의 인건비가 비싸다며 멕시코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바람에 백수가 된 유권자들에게 ‘당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당신들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공장이 다른나라로 이전하는 것을 방임하고 방치한 국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고용창출 책무 인식 부족 때문이고 나를 선택하여 주면 이 책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다시 공장을 미국으로 되돌려서 당신들이 다시 출근하도록 하여주겠다’고 했을 때 이런 후보를 선택한 것이 어떻게 ‘못배워서’ 나온 판단이고 ‘백인우월주의적’ 선택인지 이해불가입니다.

관련하여 트럼프의 취임연설문에는,
Every decision on trade, on taxes, on immigration, on foreign affairs, will be made to benefit American workers and American families.
무역, 세금, 이민, 외교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은 미국인 근로자와 미국인 가정의 이익을 위해 이뤄질 것, 이라는 부분도 있습니다. (미국우선주의가 말은 거창해도 내용은 매우 소박합니다. 해외에서 미국이 예외적으로 대접받고 행동하겠다는 ‘시건방’이 아니고 즈들 나라에서의 정책은 즈들 백성의 살림살이에 도움되는지의 관점에서 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국가 출신 외국인들의 저임금 노동시장 진입을 제한하지 않으면 샌더스의 정책이라는 미국민 간의 빈부격차 축소는 실현불가 공염불입니다.

참고 사례입니다.

제 초등 가까운 친구가 부모 때부터 하던 양돈농장을 물려받아서 돼지 2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친구가 생산한 돼지고기는 100% 한국내에서 소비됩니다. 대략 연 순수익은 2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고용인력은 물려받을 아들, 수입이 좋아서 결혼하고 아빠 일 같이 합니다, 한국인 농장장, 외국인들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한국인이 한 명은 있어야 일의 연속성을 유지합니다, 여기에 외국인 3~4명입니다.

친구는 시내 최고가 50평 아파트 살고 친구 부인은 농장 근처도 안 갑니다. 외국인 직원들은 농장 관리사에 살며 친구가 식비 별도에 월 200여만 원을 지급합니다.

친구가 한국인을 고용하려면 지금 월급으로는 사람을 구할 수 없고 대략 지금 월급의 50~100%는 더 주어야 하며 통상적인 수입 규모로 볼 때 감당이 안 될 수준은 아니나 구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외국인 쓰는 것이 법에 보장되어 있고 지출까지 줄일 수 있어서입니다.

농어촌에서 외국인을 쓰며 고소득 올리는 업주들이 적지않은데 모두 한국인은 일을 안 하려해서 어쩔수가 없다고 하며 또한 자기들은 내외국인 차별없이 똑같이 월급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액수를 물어보면 요즘 기준으로 200만 원 전후를 말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최저액 수준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와 관련하여 지인들에게 물어봅니다. 처자식 있는 당신 200만 원으로 가정경제 영위가 가능하느냐고 또 당신 아들 200만 원 월급 직장 보낼 거냐고요. 아무도 동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식 다 크고 이혼해서 혼자 살며 건물관리 직원하는 사람은 일이 힘들지 않아 그럭저럭 괜찮다고 하더군요.

지금 한국의 많은 3D라는 이름의 내국인 기피 저임금 일자리들이 존재하는데 이 일자리들의 구인난의 원인은 저임금이라 그 업주들이 구인난을 해소할 방도는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것인데 그 저임금을 타개할 방도는 역설적이게도 외국인노동자를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원하는 임금을 주고 채용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산단가가 상승해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또 그럴 개연성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옆 사업장도 똑같이 내국인 채용으로 공급가가 상승할 것은 마찬가지라서 업종내 경쟁력은 전과 같고 다만 외국에서의 저가품 수입 증대 가능성인데 이때 국가의 힘이 필요하고 그 수단은 관세 비관세 장벽입니다.

역시 이와 관련, 트럼프는 취임연설에서 Buy American을 주장했는데, 회사의 출신국가는 상관없고 미국 땅에서 미국인을 고용해서 만든 미국 제품을 사라는 의미로서 맞는 주장 아닌지요.

We must protect our borders from the ravages of other countries making our products, stealing our companies, and destroying our jobs.
우리는 미국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고(미국 땅에서 만들던 제품을 저임금의 국가로 공장 이전해서 싸게 만들어 다시 미국에 수출하는), 미국의 회사를 훔치며, 미국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다른 나라의 약탈로부터 국경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트럼프처럼 약탈적 제국주의 방식으로 일관하면 오히려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점차적으로 더 약화될 것이다. 동맹국들의 이탈현상도 심해질 것이다, 는 말씀에 대하여,

이 부분도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서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굳이 이름하자면 제국주의의 반대인 고립주의에 가깝고 이는 국내언론에도 가끔 언급되는 내용이며 그의 연설문의 다음 워딩에서도 그 일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Protection will lead to great prosperity and strength. 보호는 큰 번영과 힘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더 이상은 못 쓰겠으나 미국은 지금 전후 70여 년간의 오지랖 넓은 확장주의 시대의 후유증인 무역 및 재정 부문의 쌍둥이 적자로 제 코가 석 자인 상태고 국민간 소득 격차도 전후 최대치로 벌어진 상태라서 내부를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이 다수 국민의 지지을 받은 결과가 지난 대선에서의 트럼프 당선이고 지금 보기에는 이번 선거에서도 그의 기조는 국민적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제가 미국민이 아니라 참견할 자격은 없지만 맞는 선택이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동에서와 아프간 철군과 나토나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주장도 이제 미국은 전과 같이 그 돈들을 혼자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고백의 다른 표현으로 지금의 미국 외교 기조는 제국주의와 반대의 방향입니다.

원 글의 주제와 다른 댓글인 줄 알면서도 윗 글과 일부 같은 맥락이라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개인적 소망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폴을 뺀 나머지 아시아 모든 빈국 국민들의 희망의 나라라고 하는데 저는 우리나라가 우리국민 구성원에게 희망인 나라 되었으면 하며 그 방안으로 한국민 간의 소득 격차 증가에 대한 경각심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 국민간의 소득격차 해소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다음 10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희망의 다른 표현이 긍정적 예측가능성일 것이고 그 반대인 부정적 예측가능성이 절망 또는 비관일 것인데 아시아 빈국 국민들의 희망이라는 우리나라는 정작 국민들에게 희망을 못 주고 있으며 그 증거가 출산율 저하일 것입니다.

빈국 출신 노동자의 수입 증대와 우리국민 저소득층의 수입 증대 방안은 병존할 수 없는 길항관계임을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진보지향의 분들게 강조하고 싶으며, 더하여 국내 유입 빈국 출신 노동자 수의 증대에 정비례하여 우리국민 저소득층 수도 늘어남은 통계로 보여주는 사실임도 인식하고 부디 양자택일의 이 사안에 대하여 다른 곳으로 회피의 눈길을 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지금 세상에서도 맞는 진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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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위기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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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오랜 역사의 산물이다. 국가라는 틀안에서 사람들은 살아왔다. 국가는 인민을 보호했다. 그리하여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는가가 삶의 행복 상당부분을 결정하기도 했다. 국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또 해오고 있다.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국가다.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국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의 특성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싸운다. 발생학적 특성상 서로 싸우면서 만들어진 국가가 서로 협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한 국가간의 협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몇푼 더 벌어보겠다는 얄팍한 이기심앞에 무릎을 꿇어 버리고 말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들이 하는 정책은 국제적인 협조가 아니라 개별 국가들의 단독적인 행동이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보면 이런 종류의 위협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국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병균은 국경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국만 잘한다고 해서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중국을 도와준다는 것은 옳다. 지금 중국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이다. 모든 역량은 최선선에 집중해야 이길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후방이다. 전선이 무너지면 후방이 위험해진다.

정부는 초반에 중국을 지원하다고 하더니 여론이 부정적이되니까 발을 빼는 것 같다. 전세계가 중국이 변종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이기로록 지원하는 것이 옳다. 이기회를 틈타서 반사이익을 보려고 하는 얄팍한 수작을 부리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부르주아지들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한 기구이다. 그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국가의 성격이 아직 19세기적 상황에 남아 있는데, 그런 국가들이 초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국가의 성격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발전을 하면 멸종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발전하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치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장이 아니라 분배를 통해 더 이상 경제개발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것이 조선시대 임금보다 더 나은데 뭘 또 더 바란단 말인가?

결국 모든 것은 정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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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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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민주당 아이오아 코커스가 열렸다. 민주당은 아직까지 발표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은 트럼프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언론에서는 민주당의 일처리가 문제라고 보도를 하고 있으나 실상은 그 내부가 이상하다.

민주당은 개표에 혼란에 빠져 있다. 아직까지 제대로 개표를 완료하지 못했다. CNN는 개표 62% 상황 기준 집계로, 부티지지 전 시장 26.9%, 샌더스 상원의원 25.1%, 워런 상원의원 18.3%, 바이든 전 부통령 15.6%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에서 항상 1등을 달리던 바이든이 제일 꼴찌를 했다. 미국도 여론조사가 시원찮은 모양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의 중간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부티지지는 인디애나 주의 중소도시의 시장이다. 38세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사람이다. 아직 최종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사람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바이든이 꼴찌를 한 것은 미국인들이 지금의 민주당식 정책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티지지는 무슨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다. 그가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무엇으로 보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그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난 후에도 시장선거에서 80%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의 보유자라는 것은 득표율로 알 수 있다. 그정도 득표율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샌더스와 워런는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빈부격차로 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즈벨트와 같은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샌더스와 워런을 무서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샌더스가 제시한 공약의 내용은 트럼프의 정책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다른나라의 부를 빼앗아와서 미국민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정책이었다. 샌더스는 미국내의 빈부격차를 줄여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 하면 그렇다. 워런은 그런 방법 측면에서 샌더스보다 온건하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샌더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미국 민주당 유권자들은 이미 기득권화해버린 과두적 민주당을 대표하는 바이든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앞으로 바이든은 별 힘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미국 민주당의 숨은 손들이 비터 부티지지를 찾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선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내세워서 미국의 기득권들을 흔들수도 있는 샌더스와 워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약관 38세의 젊은 정치인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트럼프와 크게 비교될 것이다. 젊은 미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을것이다. 아마 샌더스와 워런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것보다 훨씬 파괴력이 클지 모르겠다.

문제는 지금 미국의 문제는 샌더스와 워런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트럼프처럼 약탈적 제국주의 방식으로 일관하면 오히려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점차적으로 더 약화될 것이다. 동맹국들의 이탈현상도 심해질 것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부티지지 현상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젊지만 이미 능력을 검증받은 정치인이다.

미국은 이렇게 능력있는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정치풍토라는 점이 부럽다. 그들은 20대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치활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능력을 검증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발탁이 되어 전국구 인물이 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이 많이 나왔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냥 이벤트하듯이 젊은 사람 뽑아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민주당 2번같은 일이 생긴다. 최근 영입되는 젊은이들의 능력이 얼마나 검증되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은 연령을 정해서 쿼터제로 하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지자체에서 신인 정치인이 지속적으로 나오지 못하면 뿔뿌리 민주주의라는 의미는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각설하고 앞으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과정이 매우 재미있게 생겼다. 여러가지로 문제도 많지만 앞으로 민주당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것같다. 부티지지와 샌더스 그리고 워런이 업치락 뒤치락하면서 언론의 스포트를 잡을 것이다. 당연히 트럼프는 그런 점에서 훨씬 불리할 것이다. 블룸버그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다고 했는데 만일 부티지지가 바람을 일으키면 블룸버그는 어떻게 나올까?

아마도 미국의 숨은 손들은 앞으로는 매우 참신하고 기후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티지지를 강력하게 밀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그 뒤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고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희망이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에는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쌈빡하게 어필하는 정치인으로 화장하면 문제만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대선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정치현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왜 우리는 항상 그 나물에 그 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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