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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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필자는 안희정 지사가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뉴스를 접할 때 마다 무엇인가 찜찜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의 정치자금법 위반 전례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정치자금법으로 실형을 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도데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난 종잡을 수 없었다.

먼저 난 친문패권주의를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내가 안희정의 전력을 반대하는 것을 문재인과 연결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친문패권주의야 말도 진정 비난받고 비판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신문에도 친문패권주의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난 문재인이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각설하고.

안희정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었다. 그가 내세우는 정책도 특별한 것이 없었고 솔직히 인간적인 면모에서도 그렇게 감동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은 아닌 듯하다.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리 미남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은 탈렌트 뽑는 것이 아니니 외모는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실 난 안희정이 어찌해서 충남 도지사가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노무현 정권 창출때 정치 자금법으로 감옥 갔다 왔으니 민주당에서 의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공천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여러가지 이유를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딱 떠오르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희정이 대선 후보로 등장한 이유는 젊은 나이라는 점과 박근혜 탄핵으로 갈곳을 잃은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의 반문재인 정서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박근혜 탄핵이 아니었다면 안희정 지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소위 보수진영에서 박근혜를 뒤이을 대선주자가 없다보니 찾다가 찾다가 안희정까지 찾게된 것이 아닐까한다. 중간에 말이 새지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보수가 사실 보수라고 할 수 있을까? 난 그들은 극우극단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어쨓든 그 소위 보수주의의 지원으로 안희정은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와 최순실 공동정부의 국정농단을 선의가 있었다느니 하는 말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물론 대연정이라는 말도 그런 꼼수의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적어도 안희정의 정치적 삶에서 대연정이니 그런 말은 기회주의적인 말이다. 좌파적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신념이다. 여기서 그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고 만다. 그는 척결해야 할 대상과도 손을 잡겠다고 했다. 도데체 그는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일까? 그가 싸우고자하는 것은 친문패권주의다. 그는 친문패권과 싸우기 위해 극우주의자들의 손을 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회주의적 처사인가. 극우반동주의자들의 손을 빌어 친문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누구와 손을 잡겠다고 그리고 연정을 하겠다고 하기전에 먼저 어떤 정책을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정책을 같이할 수 있으면 손을 잡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손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일부의 정치세력들이 끝까지 발목을 잡으면 국민투표에 붙이면 된다. 이기면 추진하는 것이고 이기지 못하면 물러나면 된다. 드골이 그렇게 하지 않았나? 안희정은 자유국민당의 친재벌 정책을 수용할 것인가? 안희정은 노동자를 탄압하는 자유국민당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것인가? 그가 주장하는 대연정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필자가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것은 안희정의 대연정과 관련한 문제가 아니다. 대연정보다 더 큰 문제는 안희정 지사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느냐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것은 안희정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다는 전력이다.
물론 안희정은 죄값을 다 치루었고 법적으로 피선거권이 있으니 당연히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그럼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가? 난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자금법 위반은 정치인으로서는 엄청난 중범죄이다. 영어로는 fellony라 하던가. 미국같은 곳에서 정치자금법으로 실형을 받을 정도가 되면 아마도 영구적으로 정치권에서 추방될 것이다. 물론 안희정은 노무현 대통령의 죄를 대신지고 감방에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것은 그의 죄이다. 그는 그죄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잘못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안희정이 대통령이 되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저 한탕하고 감방갔다와서 다시 신분세탁하고 국회의원되고 대통령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안희정은 억울하더라도 자기의 원죄를 생각해서 어느 정도에서 머물러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지금은 강을 넘었다.

대통령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도데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건가?
법은 왜 존재하는가? 사고치고 한번 살고 나오면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되는가?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유난히 관대하다. 특히 정치인들의 도덕적 관념과 철학에 대해 관대하다. 그들이 지킬 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국민들은 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을 욕한다. 여의도가 엉망이고 개X이라고 질타한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하고 국회의원을 뽑은 것은 누구인가? 국민들 아닌가? 사실 박근혜를 욕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국민이다. 그래서 정치의 근본을 흔들고 위협했던 사람을 정치의 정점에 세우는 데도 아무 생각없이 열광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국민들의 무신경이 박근혜와 같은 상황을 가져왔다. 사실 박근혜와 최순실 국정농단의 최종책임자는 다름 아닌 그를 뽑았던 국민들이다.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나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었나? 박근혜를 뽑았던 그런 무신경과 무관심이 다시금 안희정을 유력 대선후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 다른 것 다 모르겠다. 그사람이 얼마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매력적이고 얼마나 미래지향적이고 얼마나 우리나라를 잘 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러나 그가 정치자금법 위반했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대통령은 정치자금법 위반자여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될 사람들은 어떤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

이번 기회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자기가 그런 자격이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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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제목 참 잘 잡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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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 제목을 기자들은 야마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 제목 참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지 대전신문 입니다.

어쩌다 신문 제목 때문에 신문을 다시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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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대하는 태도, 베트남과 한국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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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출병식

오랫만에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그녀도 집으로 갔습니다. 이제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야 합니다. 과거에 머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서 절대 과거를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과거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말과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에 얽매인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베트남은 우리와 정식 수교를 맺었습니다. 수교를 맺으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과거를 잊어 버렸기 때문일까요. 월남은 우리와 같은 유교국가입니다. 그들에게도 명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만 명분이 있고 베트남에는 명분이 없어서 우리에게는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하겠습니다. 베트남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당한 것보다 더 처절한 피해를 당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베트남에서 아주 잔학한 가해자였습니다. 베트남을 여행한 사람들은 간혹 마을에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적어 놓은 비석을 보곤했다고 합니다. 일부 참전군인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성의 뜻으로 베트남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더군요.

일본도 그런점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국가차원에서는 저들이 잘못한거 없다고 하지요. 마치 우리 정부가 베트남에 쌩까듯이. 그런데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반성을 하고 참회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일본의 양심세력이 하는 것보다는 질과 양이 떨어지게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잔학행위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처절한 반성과 참회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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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베트남사람들과 우리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용서를 하되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도 하지 않고 잊지도 않습니다. 베트남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용서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유교와 비슷한 것이 있다면 명분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대담론에 강한 것이 공산주의지요. 조선에서 수백년 동안 이기논쟁이 벌어진 것도 유교가 거대담론에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유교적 전통과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속에 있던 베트남이 우리에게 과거청산을 요구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들이 결코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존심은 실력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을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일본에게 대하는 방식이 진정한 자존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용히 실력을 키우면서 학문에 힘쓰고 그래서 남북통일 이룩하고 그 이후에 일본보다 더 큰 국력으로 일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일본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까지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과학기술과 산업도 그렇습니다. 아마도 베트남이 과거 청산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실력으로 일어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겠다는 원대한 국가 운영의 마스터플랜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무조건 입다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외적으로는 목소리를 높이고 활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을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시민단체와 학계가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정부는 주도 면밀하게 오로지 국가이익을 고려해서 일본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협상을 한 것은 무척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간과 학계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섣불리 협상을 해도 안되는 거지요. 차라리 아무말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나중에 말입니다.

사실 박근혜 이후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적어보려고 했는데 옆으로 새고 말았습니다. 일본 이야기만 하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 이글을 올리는 것도 조심스럽군요. 그래도 진정한 실력을 키워서 일본을 이기자는 생각이니 오해없기 바랍니다. 일전에 올라온 포스팅에 보니 안중근 의사가 유언에 동포들에게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일으키라고 한 것이 생각납니다.

저는 안중근 의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를 키우지 말고 실력을 키웁시다. 싸움판에서는 목소리 큰놈 겁안납니다. 눈매가 날카로운 놈이 더 무섭습니다. 어릴 때 쌈질하고 다닌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 말고 마음을 갈고 실력을 닦읍시다. 그전에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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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와 관료의 차이, 막스 베버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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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논문에서 막스베버는 정치가와 관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관리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자기이 직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는 정치가나 지도자나 그 추종자들이 항상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편당 투쟁 정열 - 분노와 열 - 은 정치가의 요소이며, 특히 정치지도자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은 관리의 행동과는 판이하고 반대되는 책임의 원리하에 있다

관리의 명예는 - 그들의 생각에 반하여 - 상급관청이 자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명령을 고집할 때에도 마치 그 명령이 자기의 신념과 확신에 일치하는 것 처럼, 그 명령을 양심적으로면밀하게 수행하기 위한 능력을 소유하는데 있다. 이 최고의 도덕적 규율과 자기희생이 없으면 전체의 기구는 붕괴할 것이다”

막스베버는 정치가과 관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영역이 다른 것이다. 정치가에게는 정열과 투쟁이 그리고 관료에게는 행정적인 직무 수행이 미덕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관료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가끔 관료가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기도 하는 것을 문제삼기도 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막스베버는 스스로 판단해서 상급자의 지시를 어기는 것이 전체기구의 붕괴를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보았던 것이다. 관료는 관료일 뿐이라는 것이다. 막스베버는 그러면서도 관료가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는 관료정치는 매우 배격하고 있다. 물론 정치가가 행정관료가 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각각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영역이 무너지면 균형이 깨어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균형은 항상 깨어진다. 그리고 깨어진 균형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많이 겪었다. 물론 그런 균형의 추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독일과 같은 나라는 관료쪽으로 기울어있다. 반면 미국은 정치쪽으로 기울어 있다. 미국은 정치의 나라다. 조그만 시골도 선거로 수장을 뽑는다. 검사도 선거로 뽑는다. 보안관도 선거로 뽑는다. 선출직이 임명직을 통제하는 구조이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는 관료가 우선시된다. 아마도 과거라는 제도를 통해 관리를 등용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험을 통해 관리가 된 사람들이 나라일에 주도권을 지게되는 것이다. 정치보다는 행정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과정이 있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정치가들도 관료출신들이 많다.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관료생활을 하다가 정계에 입문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 즉 대통령은 모두 정치인 출신이었다. 군인들이 구데타해서 대통령된 경우가 세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군인들을 관료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상급관청의 명령에 충실하게 복종하는 관료와 달리 군인들은 스스로 결심하고 판단해야 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군인들이 구데타를 하는 것은 스스로 결심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군인들에게 스스로판단하고 행동하는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지킨다는 기본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군인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능을 부여할 것인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군대와 국가에서 사무엘 헌팅턴이 전문직업군인을 주창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기능적으로는 매우 우수하지만 정치과정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전문직업군인제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군인을 제외한 대통령이 모두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하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같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기업가로 주어진 틀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관료와는 차이가 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관료출신이 대통령의 꿈을 꾼 사람이 있었다. 이회창이 그렇고 고건이 그랬다. 최근에는 반기문이 그랬다. 지금은 황교안이 그렇다.

관료출신으로 남은 사람은 황교안이다. 황교안이 관료의 기본 속성에서 벗어나서 정치가로서 거듭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막스베버가 관료와 정치가의 차이중 하나로 정치가들은 책임을 부정할 수 없고 다른데 전가할 수도 없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관료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모두 포기하곤 했다. 이회창은 끝까지 갔지만 관료적 경직성 때문에 실패했다. 정치가들은 이회창과 같이 경직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끈질겼다. 매우 순박했던 안철수도 지금과같은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수년이 소요되었다. 황교안의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 황교안은 총리가 아니라 대선후보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원래 총리의 기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조류독감도 그렇고 구제역도 그렇고 내치가 엉망이다. 황교안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총리로서의 기본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료가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변모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이 관료가 되는 것도 어렵다. 황교안이 정치인이 되려면 평생을 살아온 관료적 속성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왜 관료를 정치인으로 등용하지 않을까 무척 궁금하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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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할까 막스베버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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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경박한 지적 유희가 아니고, 인간적으로 진지한 행동이라고 한다면 정치의 헌신은 정열에서만 탄생하며, 배양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열적인 정치가를 특징짓고, 그를 단순한 ‘결실없는 흥분’을 일삼는 정치적 아마추어와 구별하는 요소는 강력한 영혼의 억제에 있는 것이다.”
막스베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논문에서 한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능력있는 사람이 많다. 작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에서 이정도라도 살게 된 것은 모두 사람들 때문이다. 공부많이 하고 열심히 일한 결과 잘살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치가들은 모두 하나같이 혁명가 아니면 운동권들일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만 보면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건 투쟁을 한 경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군사구데타를 한 박정희나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모두 자기 몸을 던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잘하고 똑똑하고 일잘했던 고건이나 이회창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에서 봉급받고 일했던 이명박은 대통령으로 선출은 되었지만 지도자로서 그리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박근혜는 사실 능력이 뛰어나거나 정치가로서 목숨을 바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향수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상황은 충분히 예견할 수도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외국의 언론에서 정치지도자의 2세가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평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만들지 않고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한 말이다.

열정과 정열이 부족한 사람은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똑똑하고 일잘한다고 지도자가 될 수없다는 말일 것이다. 제한몸을 던져본 경험을 가진 사람. 그정도로 자기의 이념적 기반이 확실한 사람. 그런 사람만이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은 어떨까. 판사 검사 출신들이 정치지도자가 되어 있다.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 아닌가. 물론 그런 사람중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이 분명한 사람들도 있고 이념적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도 있다. 주로 야당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반면 아마추어적인 사람도 많다. 주로 운동권 출신이다. 최근 문빠니 노빠니 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결실없는 흥분을 일삼는 정치적 아마추어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데 가만보면 정열적인 정치가와 결실없는 흥분을 일삼는 정치적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하다.

문제의 핵심은 결실없는 흥분이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제대로 조정할 줄 모르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내세워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결실없는 흥분이 아닐까? 선동적인 주장으로 혹세무민해서 권력을 차지하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오히려 국민들의 삶은 후퇴해 버리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도처에서 보고 있다. 남미가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남미 지도자들 중에서 존경받는 분들도 있다. 어느 나라인가 대통령이 다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비세는 농장에 살면서 자신의 연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은 젊은 시절 무장혁명가였다고 한다. 브라질의 전대통령은 탄핵을 당했다. 한때 좌파의 우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해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해먹었다. 그는 브라질 최고의 노동운동가였다. 그런데 그의 삶을 보니 마르크스가 말했던 노동귀족이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5천만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것은 똑똑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념의 자기확신이 없으면 어렵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치지도자들은 목숨을 바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나 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이제는 정말 정열적인 정치지도자를 뽑느냐 아니면 ‘결실없는 흥분’을 일삼은 정치적 아마추어를 뽑느냐하는 문제가 앞에 놓여 있다. 국민들의 분별력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앞에 있는 막스베버의 글을 읽다가 보니 바로 밑에 의미있는 구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치가는 매일 매시 하나의 사소한, 너무나 인간적인 적을 자기 내부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매우 평범한 허영심인데, 이것은 모든 객관적인 헌신과 모든 거리- 이 경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거리-에 대하여 치명적인 적이다.”

아마도 ‘결실없는 흥분’을 일삼는 정치적 아마추어는 허영심이 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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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실패 누구의 책임인가

박근혜 탄핵사유 중에 세월호가 들어가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난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한달이상을 잠자리에 들수없었다. 까닭없이 눈물이 훌렀다. TV를 보면서 꼭 만화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원구조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정말 다행이다하면서 점심을 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지 않아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배안에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데체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해경에게 질책이 쏟아졌다. 난 그런 질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참여정부때 위기관리비서관실이 있었고 그 때 다양한 상황을 모두 고려한 매뉴얼도 만들었다. 물론 매뉴얼이 있다고 해서 상황을 제대로 조치할 수 없다. 매뉴얼이란 대강의 방향과 원칙을 써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현장 책임자가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자산을 투입하여 구조를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임기응병능력과 강철같은 의지와 책임감이 필수적이다. 임기응변은 잔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를 처리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뼈아픈 것은 국가안보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김장수는 안보문제가 아니라고하면서 책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안보가 포괄적 개념으로 바뀐것은 오래된 일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진다. 당연히 청와대 비서실과 안보실도 대통령의 모든 책임을 보좌해야 한다.

그런데 김장수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자기소관이 아니라면 누구 소관인지 확인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면서 누가 어떻게 조치를 해야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조치를 했어야 할까. 질책은 모두 전남 해경에 집중되었다. 전남해경에 비난하는 것이 온당할까? 아마 조그만 선박에 문제가 생겼다면 해경을 비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는 엄청큰 배다. 해경의 장비와 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당연히 군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것도 해군만이 아니라 특전사와 공군이 모두 투입되었어야 한다. 전남해경 소관사항이라고 지켜 보는 것은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해경은 당시 상황을 조치할 능력이 없었다. 해경은 해군을 지휘할 수 없다. 해군의 자산이 해경보다 훨씬 많다. 구조함도 있고 특수부대도 있고 초계기도 있고 헬기도 있다. 전화 한통화면 치누크 헬기도 금방 올 수 있다. 해경은 군에 어떤 자산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장비와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산을 연결할 수 있는 지휘 통신 체계도 없다.

제2함대사는 합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떤 자산이나 부대라도 지시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휘통신 체계가 있다. 그런데 해군은 작전지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청와대의 콘트롤 타워기능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해경의 능력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군을 투입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군을 투입해야 한다면 즉각 국방부와 합참에 상황을 조치하라고 해야 한다. 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결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위기관리센터장의 책임이며 직무유기이다. 국가안보실은 해경에게 해군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국방부 합참은 해군작전사령관이나 2작사령관에게 지휘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구조작전에 필요한 모든 가용 부대와 자산을 지정해서 해군의 지휘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그런일을 하지 못했으면 군이라도 했었어야 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인가? 적어도 장관이나 합참의장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상황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안그러면 누가 하는가?
그당시 국방부 장관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다.

세월호 사건 조치과정에서 박근혜는 해경해체한다고 하고 눈물을 흘렸다. 난 박근혜의 눈물이 연기라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없이 눈물만 훌렸다. 그것을 나만 느꼈을까. 그녀는 그저 그런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을 뿐이다. 빨리빨리 국민안전처 만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 처럼 보여주고 여론을 잠재우고 싶었을 뿐이다.

세월호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진단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단이 이루지지 않은 처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책임을 져야 할 김장수와 김관진이 건재하고 있는데 어떻게 제대된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다시 세월호 같은 사건이 생기면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도데체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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