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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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회주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통상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좌파기회주의자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멸이다. 통상 눈치빠르고 약삭 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도외시하는 경우를 기회주의라고 하고 그런 사람을 기회주의자라 한다. 아마도 이념적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념을 배신하고 현실에 순응할 때 대표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경우 친일파를 대표적으로 기회주의자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제 직장 동료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가 전쟁에서 항복해을 때 일반 국민들은 마치 나라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친일파들은 재빨리 태극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서 만세를 불렀다고한다. 친일파들은 일제가 패망하자 제일 먼저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물론 북한 지역에 있던 친일파들은 러시아어를 배웠다고 한다. 오늘날 친일파가 친미파로 재빠르게 변신한 것은 이런 연유에 따른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울지를 판단하고 서슴없이 행동할 줄 아는 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오히려 장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라면 그런 변화도 주변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해야하는데 이익에 너무 집착하여 몰염치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안중근 의사가 세상 시류 돌아가는 것을 몰라서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고 김구 선생이나 이승만 박사가 무식하고 재주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원대한 목표를 바라볼 줄 알았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장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주의가 지닌 이면을 생각해 보는 것은 최근 우리를 둘러싼 안보정세가 너무 불안정해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학자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인식이란 말을 했다. 이것처럼 정확한 말이 있을까? 역시 김대중 대통령은 족탈불급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난 지금 우리사회에는 이상과 문제의식은 어느정도 갖추어져 있으되 현실감각이 부족한 듯 한 생각이 든다. 그럴 듯한 원칙만 주장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냉철한 현실인식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기회주의자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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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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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은 정치지형에서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입지는 매우 좁다.특히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정치구도 속에서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한계는 명확하다. 중선거구제도 아니고 소선거구제에서 정의당이 설곳이 어디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진보정당은 정말 소외받는 계층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가항 큰 이유는 정체성의 상실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럭저럭 의원수를 유지하지만 대선에서는 전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이다.

진보정당은 민주당계열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의 발전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의 대선이 양파전으로 나뉘어저 아슬아슬 하게 진행되다보니 진보정당이 대선에서 끝까지 나가는 것이 이적행위가 되어버리고 마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진보정당은 눈물을 머금고 중도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외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보수정당이 분열하면서 진보정당이 대선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아서 완주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정의당으로서는 절대절명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의 주적은 민주당이어야 한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전선이 이디에서 갈리는가를 분명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정의당의 확대는 민주당지지 층에서 뺏어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상정 후보가 나름 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심상정이 문재인을 공격하니까 정의당원들이 심상정에게 왜 같은 편을 공격하느냐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탈당하겠다는 말도 있었고 어디선지 모르겠으나 심상정이 문자폭탄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어서 개최된 대선토론에서 심상정은 완전히 문재인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이로서 진보정당의 홀로서기는 실패하고 말았다. 심상정은 전략을 잘못 세웠다. 심상정은 진보정당의 외연확대에 실패하고 말았으며 그냥 민주당 2중대가 되고 말았다.

심상정은 일부 당원이 탈당하던 기존의 입장을 지속했어야 했다. 그런 걸보면 심상정과 정의당은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진보정당의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은 결정적인 외연확대와 정체성 확립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다.

내가 보기에 이번 대선 최대의 패배자는 정의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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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과 손석희의 경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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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어떤 생각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세인들의 기억에는 참여정부 당시인가 유엔 대사로 가려고 하다가 야당의 반발에 가로 막혀 뜻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당시 홍석현은 미국대사를 기반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참여정부에서 왜 홍석현을 발탁하려했는지 매우 아리송하다. 진보좌파 정부에서 재벌집안 출신인 홍석현을 발탁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 당시 참여정부의 뒤를 봐주던 삼성이 홍석현을 밀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홍석현은 각종 비자금 문제로 주미대사에서 중도 탈락하는 등 전력이 화려한 사람이다.

삼성이 참여정부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결국 삼성 법무팀장했던 사람이 양심선언 하고 나오기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앙일보 오너였고 국가나 사회의 전면에 나오지도 않았던 사람이라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홍석현은 이건희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발탁이 될 뻔한지도 모른다.

홍석현의 과거사를 돌이켜보는 것은 과거를 잘 보면 현실이 이해되고 미래를 예측하기 쉽기 때문이다. 홍석현은 그 이후 쑥들어가 있었다. 그 이후 중앙일보는 JTBC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거두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중앙일보가 손석희를 발탁한 것이다. 손석희는 모두가 다 알 듯이 단순한 언론인이 아니다. 그는 이미 일정한 정치적 경향성을 띠고 있었다. 재벌언론 그것도 삼성가에서 손석희를 발탁한 것은 여사 일이 아니다. 아마도 홍석현이 직접 선택했을 것이다.

손석희의 발탁이후 JTBC는 일취월장했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홍석현의 손석희 발탁을 참여정부 당시 자신이 미국대사를 거쳐 유엔사무총장으로 가려는 것을 막은 보수세력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루머처럼 돌아 다니는 이야기는 나름대로 일면의 진실읆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그 이후 JTBC와 중앙일보의 행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대표적인 보수인사 김진이 중앙일보에서 축출된 것이다. 나는 김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해고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해고에 대해 어디에서도 심도 깊은 분석을 한 언론은 없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홍석현이 이 당시 확실한 방향선회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박근혜 탄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JTBC의 태블릿 피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일은 JTBC 중심으로 흘러갔다. 결국 탄핵의 트리거는 JTBC가 당긴 것이다. 당시 홍석현은 무엇을 하였을까? 그냥 일이 진행되는데로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고 손석희가 하는데로 놔 두었을까? 아니면 무엇인가 역할을 했을까? 결국은 어떤 방식이로든 홍석현과 손석희가 서로 긴밀한 협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홍석현이 싱크탱크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손석희도 무엇인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홍석현은 독자 대선 출마가 여의치 않으면 자기가 과거부터 연고가 있었던 문재인 쪽으로 가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손석희는 그런 구도에 따라 열심히 문재인 쪽을 밀었다. 박지원과 국민의 당이 손석희와 JTBC를 불공정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손석희가 JTBC가 잘못했다고 공개사과 한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대선 정국에 그 정도 문제라면 손석희는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탄핵과정과 이재용의 구속과정에 홍석현이 무엇인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결국 JTBC는 삼성의 이재용을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재용의 어머니 홍라희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열받은 이재용이 지엄마부터 잘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씨는 홍씨를 철천지 원수라고 생각하고 그 의지를 자기 어머니 부터 내치는 것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홍석현이 그 이후에 생뚱맞은 싱크탱크를 만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자신이 대통령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홍석현은 문재인 쪽에 붙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정리해온 홍석현의 몽상에 대한 마지막 증거이다. 홍석현은 이도 저도 않되니까 문재인에게 붙은 것이 아닐까?

홍석현은 안철수와도 어쩌구 저쩌구 만나니 마니 한다. 이것을 어찌 평가해야 할까? 아마도 홍석현이 안철수와 만남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은 손석희가 공개사과한 것처럼 보도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을 어루기 위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어찌하든 결국 홍석현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사돈관계를 파탄냈다. 지금은 삼성이 힘을 못 쓰지만 사건이 정리되면 중앙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재용은 자신이 깜방간 것을 모두 외삼촌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세상 보이는 것을 읽고 정리해보았다. 내가 너무 원사이드로 다룬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충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듯 하다.

정리해 놓고 보니 손석희는 홍석현의 말판에 지나지 않은 듯 하다.

마침 조선일보에서 홍석현의 광폭행보를 기사로 다루었다.
https://www.google.co.kr/amp/m.chosun.com/news/article.amp.html%3Fsname%3Dnews%26contid%3D2017042001589

1편
https://steemit.com/korea/@oldstone/1-2017424t103331864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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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과 손석희의 경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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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은 중앙일보 회장이었다. 물론 JTBC의 오너다. 얼마 전에 회장을 때려치고 싱크탱크라는 것을 하겠다고 나왔다. 싱크 탱크에서 실무진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중앙일보 현직기자 이거나 기자출신인 듯 하다.

이름하여 홍석현 리셋 코리아 라고 한닻
참여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상당히 길지만 그래도 올려 놓기로 했다. 한번 읽어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보셨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방귀낀다는 사람은 거의 다 모아 놓았다. 나는 이 명단을 보고 홍석현이 대통령 출마하는 줄 알았다. 각 분과 위원장들은 장관 대상자로 고려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단순한 싱크탱크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명단이 길어서 이야기를 계속 끌고 가기가 어렵다. 본격적인 내용은 다음에 다루겠다.

참 한마디 더, 여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강대인 대안문화아카데미 원장
고은 시인 · 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장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김종민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진명 작가
김춘석 한국리서치 상무
김태유 서울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백영철 한반도포럼 이사장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송호근 서울대 교수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광재 여시재 부원장
이광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이헌재 여시재 이사장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
장덕진 서울대 교수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장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정의화 새한국의비전이사장(전 국회의장)
정창영 연세대 명예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한상호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리셋코리아 13개 분과 위원

정치분과
위원장 장훈 중앙대 교수
위원 구본상 연세대 교수
김선택 고려대 교수
서정건 경희대 교수
윤석만 변호사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
정회옥 명지대 교수
한정훈 서울대 교수
간사 최상연 논설위원

시민정치분과
위원장 김의영 서울대 교수
위원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유석진 서강대 교수
이지문 연세대 교수
이태동 연세대 교수
조희정 이화여대 교수
간사 강찬호 논설위원

국방개혁분과
위원장 정승조 전 합참의장
위원 구본학 한림대학원대학 총장
김병기 전 국방비서관
노훈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손영동 고려대 교수
신원식 전 합참차장
이용대 전 국방부 전력자원실장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
간사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외교안보분과
위원장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 전 주러시아 대사
위원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 대사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전 외교안보수석
간사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통일분과
위원장 김병연 서울대 교수
간사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혜영 민주평통 서울 사회복지분과 간사
박영호 강원대 교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창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유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종석 한국건설관리학회 한반도통일 건설산업위원장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전성 변호사
정태용 연세대 교수
간사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부장

통상분과
위원장 김현종 한국외대 교수
위원 김범수 변호사
김종범 연세대 교수
김흥종 KIEP 선임연구위원
송영관 KDI 연구위원
간사 남정호 논설위원

경제분과
위원장 이종화 고려대 교수
위원 강영재 코이스라시드파트너스(KSP) 공동대표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김윤이 뉴로어소시에이츠 대표
김진영 고려대 교수
박정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성욱 서울대 교수
한순구 연세대 교수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
간사 김동호 논설위원

기업지배구조분과
위원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
위원 김우진 서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박경서 고려대 교수
이상승 서울대 교수
조명현 고려대 교수
간사 나현철 논설위원

교육분과
위원장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위원 김경근 고려대 교수
김이경 중앙대 교수
김태완 미래교육연구원 원장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마동훈 고려대 교수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
이화성 창덕여중 교장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간사 양영유 논설위원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보건복지분과
위원장 송인한 연세대 교수
위원 권용진 서울대 의대 겸임 교수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양재진 연세대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정혜주 고려대 교수
조상미 이화여대 교수
조영태 서울대 교수
진미정 서울대 교수
하정화 서울대 교수
간사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노동분과
위원장 주완 김&장 변호사
위원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권혁 부산대 교수
김영기 전 LG그룹 부사장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박지순 고려대 교수
박호환 아주대 교수
안희탁 규슈대 교수
오학수 일본 노동연구연수기구 주임연구위원
이상학 전 민주노총 정책실장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황용석 롯데그룹 인사노무담당 상무
간사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문화분과
위원장 김종민 전 문화관광부 장관
위원 김대관 경희대 교수
박삼철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연구소장
박신의 경희대 교수
성기완 계원예대 교수
손철주 미술평론가
신용언 배재대 초빙교수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간사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논설위원

4차산업혁명
위원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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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비난의 정당성

비판하기는 쉽다. 그런데 제대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는 말이 옳다고 다 비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비판이 의미가 있으려면 구두선으로 그처서도 안된다. 비판하는 사람의 자격도 문제가 된다. 그래서 자격없는 사람이 비판하는 것은 빈축을 산다.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과 말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엄청난 폭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이 무서운 것은 비난과 비판을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는 비판을 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은 비난을 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대의를 가지고 있으며 나름의 사명감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많은 대의라는 것들이 결국은 자신의 편협한 이기심에서 나온 경우가 적지 않다.

비판과 비난으로 결국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조종한다. 특히 SNS에서의 비난과 비판은 더욱 강력하게 사람의 행동을 규제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비난의 대상이 되고 왕따가 되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기 때문이다. 원래 SNS라는 것이 매우 자유로운 개인을 바당으로 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속성상 기회만 되면 뭉치려고 하고 거기서 상처 받는 것이다.

사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타인의 행동에 무관심해지는 것이고 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 살기 바쁜데 남의 삶에 왜 그리 관심이 많고 참견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도 무자격자의 쓸데없는 간섭과 참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팅으로 다수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쫒아내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떤 경우이든 비판과 비난이 존재하고 또 상처와 아픔이 있다. 나중에 시간을 두고 보면 결국 비판하는 사람이 비난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간이란 일관성을 유지하기 매우 어려운 족속이어서 자신이 했던 말에 자기가 걸려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판이 순전히 자기의 생각인가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부화뇌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가 한마디 하면 와 하고 따라간다. 생각도 없이 주도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와 뱉어 놓고 만다.

작은 집단일수록 그런 경향은 커진다. 은연중 리더 격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리더의 의지에서 벗어났을 경우 당하게될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할 텐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군중은 쉽게 이용당하고 조종당한다.

나는 그런 군중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자기과신이요 오만이다. 사람들이 말도 않되는 SNS와 찌라시에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스스로 마비시킨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여기서도 말도 안되는 미꾸라지 때문에 물이 흐려진적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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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고 무엇인가 한마디씩 한다. 그런 행동들이 많은 부작용을 낳지만 우리는 비난과 비판을 멈출 수 없다. 비난과 비판에도 긍정적인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비판과 비난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자기도 비판자의 입장이 아니라 비판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아니 거기서 머물지 않고 스스로 비판받는 위치에 서야 한다.

자기는 장막 뒤에 숨어서 비판만하고 비판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면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최근 여기서 일어난 일 그리고 홍석현의 행태 그리고 손석희의 태도를 보면서 적어 보았다.

시간나는 대로 홍석현과 손석희의 문제를 적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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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할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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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를 영어로 Freedom of Speech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라 Freedom og Speech를 제대로 번역하면 말의 자유인데 왜 언론의 자유라고 했을까?
언론의 자유라고 한다면 Freedom of Speech의 아주 일부분만 표현한 것처럼 생각한다. 말에 어찌 언론만 있겠는가. SNS도 있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있다. 굳이 언론의 자유라고 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이 하는 대화도 말이다. 엄청나게 넓은 범주의 말을 언론이라고 한정시킨 것은 번역의 한계인 듯 하다.

만일 언론의 자유라고 했었으려면 freedom of press라고 했어야 맞다.

아마 다른 용어처럼 일본인들이 freedom of speech을 언론의 자유라고 옮겼으리리라. 말은 인간의 사고를 장악하고 한계를 짓는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언론의 자유는 기자들이나 방송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어가 freedom of speech라는 것을 새삼스레 생각하고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왜 서양사람들은 freedom of speech라고 했을까. 생각해보면서 freedom of speech가 상담히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freedom of speech 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말을 할 수 있으며 그 말로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도 부모에게 할 말 다하고 직원도 사장에게 할말 다하며 국민들도 위정자들에게 할말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자유를 막는 것은 통상적으로 권위와 권력이었다. 가장의 권위 사장의 권한 위정자의 권력과 같은 것들이 말하는 자유를 막아왔던 것이다.

언론은 이런 개인이 누려야 하는 자유를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권력은 언론만 다루면 말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마치 동일한 의미처럼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수단이 발전하면서 언론의 범위도 넓어졌다. 지금 나도 steemit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누려야 하는 말의 자유를 권력이 아니라 대중이 제한하고 제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오늘 아침 전인권이 폭탄 맞았다는 신문을 보았다. 전인권은 말할 자유가 있다. 그것은 천부의 권리이자 자유이며 누구에게도 양도될 수 없다. 그런데 일부 대중이 무지막지하게 징벌했다.
권력이 말의 자유를 구속하면 안되듯이 대중도 말의 자유를 구속하면 안된다.
특히 그 대중이 특정한 정치지도자를 지지하는 집단이라면 그것은 군부독재보다 심각해진다. 많은 언론 조차도 이런 현상을 보고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도 감시의 대상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심각한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것이 나의 자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자유가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최악의 독재와 전제는 그런식으로 이루어졌다. 아테네도 그렇게 무너졌고 나찌도 그렇게 생겼다.

특히 대중이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발생한다. 독재 중에서 최악의 독재는 인민독재라는 것을 아는가?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그럴 수 있겠느냐고?
우리 수준을 과대평가하면 안된다. 우리는 독일 나찌 등장 직전의 바이마르 공화국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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