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돌 예찬, 모난돌로 세상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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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터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거다. 그래서 난 세상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에는 세상은 너무 짜증났다. 만일 내 주변이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 갔다면 아마 난 둥글 둥글하게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을런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수십년간 사회생활하면서 많은 일들이 정의롭고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단한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왠만하면 그냥 한번 눈을 감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주변에서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지는 것이다. 나와 친했던 사람들도 슬슬 눈치를 본다. 둘이서 이야기할때는 그렇게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막상 내가 공개적으로 한마디 하고 나면 나를 피하기 시작한다. 살면서 어찌 어찌하다 보니 둥근 돌이 아니고 모난돌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모난돌로 살면 무지하게 피곤하다.

세상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으며 정의롭지도 않다. 분명히 저놈이 정당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잘된다. 실력이 있고 도덕적이며 인품이 훌륭한 사람들은 중간에 나가 떨어진다. 틀린 것 보고 틀리다고 하면 중간에 다 나가 떨어진다. 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꼭 사기꾼 같은 놈들이 높은데 올라간다.

얼마전 아들 놈하고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굶어 죽어도 안되는 거는 안되는 거야”한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그놈 성정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닌데 저놈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자식교육 시킨답시고 세상이란 이런 것이고 저런 것이니 너무 네 생각대로 하지 말라고 횡설수설 했다. 물론 아들놈은 소귀에 경읽기다. 속으로 네놈도 세상 살면서 고생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가는 것인것을… 내가 아무리 걱정해도 그놈이 내 생각을 따를 리 만무다. 나도 그렇게 못한 것을 말이다. 한 켠으로는 자식놈한테 요령으로 세상살 것을 가르키고 있는 날 보면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낮에 후배가 찾아와서 점심을 했다. 옛날 직장 상사들 인물평을 했다. 모두 둥글 둥글하게 세상을 살면서 제 앞가림이나 했지 언제 조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력한 적이 있느냐는 이야기다. 듣고 보니 그렇다. 윗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만 잘살고 나갔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 사람들도 그러고 나갔다.

갑자기 둥근돌보다 모난돌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난돌로는 담도 쌓고 집도 짓고 성벽도 쌓지만 둥근 돌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역사에 남은 위인들 중에서 둥근 돌 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 대부분 모난 돌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도 절대로 둥근 돌이 아니다. 임진왜란에서 자기 부하들 사형을 가장 많이 시킨 장군이 이순신이다. 걸리면 목을 잘랐다. 그는 상급자가 말만하면 반대하고 시키는 것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임금이 시켜도 못들은 척 했다.

어디 이순신 뿐이겠는가? 김구선생이 둥근돌인가? 독립투사들이 둥근돌이었나? 우리나라만 그런가? 전세계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에서 둥근돌이 어디 있던가? 심지어 내가 좋아했던 법정 스님이나 성철스님도 요즘의 기준에서 보면 무지하게 모난 돌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 부모들은 우리에게 둥근돌이 되기를 강요했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아들 걱정이 좀 덜어졌다.

그래 세상에 한번 나는 것인데 둥글 둥글하게 아무말 못하고 사는 것 보다는 그래도 할말하고 고칠것 고치고 사는 것이 훨씬 보람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여러분들 앞으로 절대로 둥근돌 처럼 살지 말자. 스스로 모난돌이 되어 주춧돌이되고 담벼락이 되자.

스티밋을 보면 둥근돌보다 모난돌이 더 활발한 듯해서 기분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말 하는 공간이 스티밋이다. 그런데도 나름 절제가 있다. 난 그것이 좋다. 절제가 있는 모난돌이 모이는 곳. 그러니까 뭔가 쌓이는 것 아닌가?

스티밋에서 모난돌 콘테스트라도 해야 하는 건가?

스티밋 동지들
모난돌로 세상 살아가도 그럭저럭 할만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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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니엑스가 스팀과 스팀달러의 거래를 다시 허용했습니다. 근데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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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보니 POLNIEX에서 스팀과 스팀달러가 가능하도록 해놓았네요. 위에 붙어 있던 노락색 글자가 없어졌습니다. 실로 오랜만으로 느껴 집니다. 저도 얼마를 파워업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래가 가능하니까 다행이다라고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궁금증이 또 발동을 합니다. 저는 뭔가를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직업적 본능이 발동하는 군요.

먼저 폴로니엑스가 거래를 중지시킨 이유를 한번 유추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이번이 두번째인가요? 폴로니엑스는 스팀과 스팀달러의 거래를 중시시켰습니다. 지난 번에는 HF19가 있었습니다. 보상체계의 변화로 인해 스팀의 가격이 급변할 수 있었는데 거래를 중지시켰지요. 당시의 거래중지는 스팀과 스팀달러의 가격 등락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의 경우는 조금 다른 듯 합니다. 비트코인의 세그윗 이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폴로니엑스가 비트코인의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스팀과 스팀달러를 이용하는 거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폴로니엑스의 거래중지 이유를 말그대로 스티밋측의 기술적 문제라고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간 폴로니엑스 본사쪽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폴로니엑스의 이런 행태를 비난하는 포스팅이 여러번 올라왔고 심지어는 스티밋이 거래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티밋의 자체거래소 포스팅이 나오기 사작하면서 폴로니엑스의 거래중단 조치가 풀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단순하게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폴로니엑스가 겁을 먹었나요?

만일 폴로니엑스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스팀의 거래를 중지시켰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은 비트코인의 세그위트 이슈입니다. 만일 폴로니엑스 측이 비트코인의 가격을 방어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중의 하나로 스팀과 스팀달러의 전송을 중지시켰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의심일까요?

폴로니엑스가 현대 유통되고 있는 스팀의 가장 많은 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 본 생각입니다. 폴로니엑스가 가장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코인이 바로 스팀달러인 셈이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심 정도로 그칠까 합니다. 더 이상 나아가면 소설을 써야 하겠지요

자 그럼 다음 문제입니다.
그동안 폴로니엑스의 스팀거래 중지조치가 스팀의 가격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건 간단합니다.

첫번째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두번째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세번째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첫번째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것 같으므로 삭제하겠습니다.

두번째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이것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 때 거래가 가능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스팀을 옮겨서 파워업을 했겠지요. 저도 그러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반대로 하는 사람도 항상 있겠습니다.

자 세번째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미있는 것은 비트코인 이슈가 발생해서 가격이 하락하자 많은 사람들이 알트코인을 팔아서 비트코인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트코인 하락률보다 알트코인 하락률이 두배이상 컸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스팀을 빠져나가게 하지 못해서 비트코인의 가격을 일부라도 방어했다면 그것은 스팀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적이든 어떤 이유이든 폴로니엑스가 스팀과 스팀달러의 유통을 중지시킨 것은 스팀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만일 폴로니엑스가 비트코인 가격방어를 위해 스팀의 거래를 중지시켰다가 허용했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겠습니다. 즉 비트코인의 가격은 바닥을 치고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스팀의 가격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흥미진진 합니다.

여러분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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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어떤 분야에서 인터넷보다 비교우위이며 왜 STEEMIT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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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암호화화폐 시장이 요동을 쳤다.
많은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 듯 하다. 그러나 코인시장에서 이런 요동은 늘 있는 일이다. 주식시장도 그러지 아니한가? 다면 암호화화폐시장의 요동기간이 주식시장보다 더 짧을 뿐이다.

암호화 화폐시장의 등락을 보면서 과연 블록체인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기업에 투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블록체인에 투자하고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그려보아야 한다. 최근에 필자는 블록체인으로 인터넷의 모든 것을 다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최근의 등락으로 정신이 좀들었다. 그래서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의심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그래서블록체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블록체인이란 인터넷 다음의 인터넷이라고 하니 기존에 하고 있는 인터넷의 범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생각해보니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첫번째 구글, 네이버와 같은 포탈이 있다.

두번째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네이버 브로그 등의 SNS 기능이 있다.

세번째 아마존이나 쿠팡처럼 인터넷으로 쇼핑을 한다.

네번째 인터넷 뱅킹을 한다.

다섯번째 전자정부처럼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행정기능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한다.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인터넷을 쓰는 대부분의 기능은 위의 다섯가지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물론 조그만 기능들은 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블록체인으로 지금 하겠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첫번째 암호화 화폐이다. 이것은 인터넷과는 상관없이 블록체인의 기능을 이용한 것이다.

두번째는 스마트콘트랙트 기능을 이용한 은행과 국가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지는 Dapp을 구동시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네번째는 블록체인으로 SNS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블록체인으로 다른 여러가지 Dapp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인터넷으로 하고 있는 것과 블록체인으로 하려고 하는 것과 얼마간 불일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블록체인이 암호화 화폐를 제외하고 어떤 부분에서 지금의 인터넷이 하고 있는 기능을 흡수 혹은 대체할 수 있을까?

첫번째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포탈의 역할을 블록체인이 할 수 있을까? 포탈은 중앙집중적인 기능이 필요하다. 그런데 분산화된 블록체인으로 포탈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 낼 수 있을까? 아주 일부분은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대체는 불가능할 것 같다.

포탈의 기능인 검색과 언론 등을 속도가 떨어지는 블록체인으로 구현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은 듯하다.

두번째 블록체인으로 인터넷 뱅킹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은행들이 블록체인의 기능을 활용을 할 수는 있어도 블록체인이 은행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스마트 콘트랙트라고 할지라도 은행은 단순히 돈을 송금하고 받는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저축과 대출 그리고 투자가 은행의 역할이다. 저축과 대출 그리고 투자는 사람의 판단이 따라야 한다. 은행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판단이다.

스마트콘틀랙트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물론 은행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송금하는 아주 조그만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스마트 콘트랙트가 은행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아마 은행이 스마트 콘트랙트 기능을 이용할 것이다. 그것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행정기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마트콘트랙트가 국가의 행정기능을 대체할 수 없다. 국가가 스마트 콘트랙트 기능을 이용할 뿐이다.

세번째 블록체인이 인터넷 쇼핑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아주 제한적인 공유경제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인터넷 쇼핑을 블록체인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쇼핑에서 발생하는 반품과 중앙집권적인 관리기능을 분산화된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 쇼핑업체에서 일부 기능을 블록체인으로 대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업이 인터넷 쇼핑업체를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네번째 블록체인의 플랫폼 기능이다. 지금 블록체인의 플랫폼을 두고 이더리움과 이오스 넥스트 등이 한참 바쁘게 가고 있다. 블록체인의 플랫폼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왜냐하면 블록체인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인터넷 기능이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고, 블록체인으로 인터넷의 중앙집중화된 App을 경쟁력으로 물리치고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한참 수백개의 블록체인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어떤 것들이 인터넷의 중앙집중화된 기능을 능가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필자는 원래 보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SNS 기능이다. 블록체인의 Dapp중에 유일하게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STEEMIT이다. 지금의 스티밋은 SNS가 구현하고 있는 많은 기능에 근접하고 있다. 특히 보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은 지금의 여타 SNS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지금 스티밋이 운영되는 것을 보자면 블록체인의 SNS기능이 인터넷의 SNS 기능 중 상당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듯 하다.

자 이렇게 본다면 블록체인으로 가능성이 있는 것은 거의 두가지 정도로 정리가 된다.

하나는 암호화화폐이다. 이미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인정받았다. 국가의 발권력이라는 막대한 권력을 넘어선 것이다.

두번째는 SNS기능이다. 지금 블록체인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STEEMIT 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불확실하다. 처음에 블록체인으로 은행의 기능을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데 블록체인이 국가의 발권력을 위협할 수는 있어도 은행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정리하자.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볼때 블록체인이 상대적 우위를 가지는 분야는 암호화화폐와 SNS기능이다.

스티밋에 들어오신 동지 여러분들은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참 암호화화폐라고 아무데나 투자하다가는 나중에 쪽박차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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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봉준호감독의 '옥자'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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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옥자’가 어떤 영화인지 잘몰랐습니다. 신문에서인가 한번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은 있습니다. 같이 있던 직원들과 저녁먹고 영화보기로 했는데 제목이 이상해서 한 번 보고 싶었습다. 뭔가 촌스러운데 끌리더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칸느 영화제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습니다. 요즘들어 신문이나 뉴스를 보지 않았더니 시사에 어두어졌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어느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소녀가 ‘옥자’라는 유전자 조작 돼지를 위탁하여 키우고 있었습니다. 돼지는 잘 자랐습니다. 소녀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회사에서 돼지를 데리고 갔습니다. 소녀는 옥자를 돼지가 아닌 자기 동생이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옥자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 와중에 ALF라고 동물해방전선이라는 비밀조직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을 거쳐 뉴욕에 까지가서 도축되기 직전의 옥자를 금돼지와 맞바꾸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이면서도 CGV나 메가박스 같은 대규모 영화관이 아닌 개인 영화관에서 개봉을 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했기 때문에 대형 영화관에서 개봉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개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개봉한 것은 영화의 취지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대규모 자본, 즉 돈이 되면 무엇이든지 다 한다는 자본주의를 비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규모 배급사를 통한 개봉은 영화의 취지와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독립영화관에서 개봉해서 돈이 될까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역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영화는 생명은 모두 동일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중요성도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영화에서 돼지의 이름을 ‘옥자’라고 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소녀의 이름이 ‘미자’이거든요. 감독은 인간의 생명이나 유전자 조작 슈퍼돼지의 생명이나 동일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옥자가 위험에 빠진 미자를 구하는 장면이나 같이 놀면서 물고기 잡는 광경은 옥자에 대한 관중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슈퍼돼지의 생명이 중요하면 물고기의 생명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결국 감독은 생명의 중요성은 같다는 생각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더 들어가면 누구는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슈퍼돼지의 생명이 중요하면 물고기의 생명도 중요한 것이지요. 미자와 할아버지가 매운탕을 끓여 먹지요. 감독은 매운탕에 들어가 있는 생선을 보여줍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동물해방 전선의 한 대원은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합니다. 먹는 행위 자체가 지구를 해친다는 것이지요. 그는 토마토를 먹는 것도 거부합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요?
동물해방 전선의 리더는 미자에게 통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원을 무차별 구타합니다. 그런데 동물해방전선의 모토는 사람에게 폭력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물해방전선이라는 것은 기존체제에 반대하는 운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이상을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상과 반대되는 행위를 자행하는 소위 운동권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동물해방전선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옥자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미자는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주신 황금돼지와 옥자를 맞바꿀 것을 제안하고 다시 옥자를 찾아 옵니다. 결국 거대한 자본의 힘에 압도당한 개인은 개별적으로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체제나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는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미자는 자신의 힘으로 옥자를 구출해옵니다. 동물해방전선도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요

옥자를 데리고 행복하게 살던 산골로 다시 돌아와서 전과 같이 살아갑니다. 행복하다고 보아야 하는데 전혀 행복하게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깊은 산속에서야 겨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봉준호 감독은 심각한 이야기를 코믹으로 믹스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뒤에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자 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시간이 부족해서 생각한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볼 만했습니다.

‘옥자’ 한번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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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삼성 갤럭시 그리고 전 KT 이석채 회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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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그렇습니다 만 오늘의 이야기는 혁신에 관한 것입니다. 혁신이 무어고 의미가 어떻고 저렇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따분한 듯 합니다. 제가 들었던 이야기를 한번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일전에 모임에서 우리나라의 큰 기업을 경영했던 분을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기업의 혁신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 분들 만나면 항상 나오는 주제 중의 하나가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놓고 막상 시장에 내놓지 못해 망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혁신적인 상품을 개발해놓고도 지금 팔고 있는 물건들이 이익을 많이 내고 있기 때문에 제때에 출시를 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 놓고도 카메라 필림이 워낙 잘 팔리니까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팔리면 필림이 안팔릴 것 같다는 것이지요. 요즘 아이들은 사진 필림이 뭔지도 모르는 것 보면 참 세상 빠르긴 빠른 것 같습니다. 코닥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시장의 경향을 읽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노키아도 유사한 길을 걸었습니다. 한때 세계 1위의 휴대폰 회사였던 노키아도 자신들이 팔고 있는 휴대폰이 너무 잘나가서 스마트폰을 도외시하다가 망했습니다.

여러분 삼성도 그런 길을 걸을뻔 했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자랑스런 삼전도 휴대폰으로 너무 잘나갔습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았을때에도 시큰둥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나가는데 스마트폰 그런거에 뭐 신경쓸거 있나? 그런거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언론에 나온거를 보면 이건희 회장이 만들라고 그래서 6개월만에 나온 것이 갤럭시 1입니다. 처음의 갤럭시를 사용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거 아이폰 그대로 베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삼성이 왜 갑자기 스마트폰을 만들려고 했을까요?

거기에는 당시 KT의 이석채 회장이 있었습니다. 정통부 장관출신이던 이석채 KT회장은 애플의 아이폰을 보자마자 우리나라 핸드폰 시장이 붕괴될 것이라고 예견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이나 LG 같은데다가 스마트폰을 만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근 삼성이나 엘지는 자신들이 잘나가고 있으니 이석채 회장의 제의를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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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도 공무원 나름대로 입니다. 과거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이석채 회장 같은 사람은 정통관료 출신이지만 옛날 사람이라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 재벌보다는 일반 서민의 이익 같은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6공때까지 재벌들이 꼼짝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고 하더군요. 공무원들의 벼슬아치로서의 정신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세상일이 다그런 바라 어찌 부정과 부패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처럼 고위공무원들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살피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KT 이석채 회장은 한동안 설득했으나 삼성과 엘지가 말을 듣지 않자 극약 처방을 합니다. 애플의 아이폰을 전격적으로 도입해버린 것입니다. 아이폰이 런칭될때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을 기억하시는지요. 사람들이 밤을 새면서 줄을 서서 사려고 했습니다. 거기에 삼성의 이건희가 쇼크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6개월만에 아이폰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갤럭시를 만든 것입니다. 삼성이 애플로부터 copycat 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특허 소송에 휘말린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KT 이석채 회장이 아니었다면 삼성은 지금과 같이 갤럭시 시리즈로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들어 KT 이석채 회장은 물러나라는 요구를 거부하다가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정권초기 그 살벌한 시기에 이석채 회장이 물러나기를 거부한 것은 동남아와 아프리카에 국가 통신망 기반 사업을 성사시키기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기소되기 전에 한번만 출장갔다가 오자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동안 추진되던 사업은 다 물거품이 되었다는 군요.

당시 언론은 이석채 회장이 배임 횡령이니 하는 죄목으로 연일 도배를 했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재판을 받았고 최근에 대법원에서 이석채 회장의 혐의에 대해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죄없는 것을 죄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고나 할까요.

혁신은 외곽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가운데 중심지에서는 변화할 이유가 전혀없기 때문입니다. 주변부에 있어봐야 비로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건가 봅니다.

스티밋 동지 여러분들은 아마도 혼돈의 가장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별의 별 일을 다 겪어야 합니다.
지금 시장의 상황도 복잡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은 앞으로 겪고 나가야 할 어려움과 고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유능한 선장은 태풍을 만났을 때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유능한 선장인지 아니면 무능한 선장인지를 스스로 시험해보는 소중한 기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요일 아침 활기찬 한주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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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나쁜소리 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표절과 부도덕성에 관대하면 안되는 이유

저는 좋은게 좋다하면서 대충 살았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티밋에서 표절과 부도덕한 보팅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제가 원래 선을 추구하고 도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스티밋에 오신분들 보상 안준다면 여기서 이렇게 불편한 UI를 참아내면서 글을 쓰시겠습니까? 우리가 스티밋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사실 나의 금전적 이익을 위한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돈버는 거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돈버는거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챙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 표절과 부도덕적인 행위들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스티밋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 당연한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규범 니가 만드냐? 글쎄요 제가 어떻게 스티밋의 규범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경험적 소산이자 이론적 연구결과이기도 합니다.

경험적 소산이란 무슨 말일까요? 예전에 포스팅에서 인간의 사회적 진화과정에 대해 이미 간단하게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남을 무조건 속이는 행위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살아 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상대방이 부정한 행동을 하면 이를 비난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은 그런 이유라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누가 잘못하더라도 한번 용서해주는 것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 용서해주면 그 다음에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과정에서 터득한 것이지요.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그런 경향성을 가지게 된 것은 마치 개가 맞아죽어가면서도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잘못을 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은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수 유승준을 기억하시나요? 유승준은 병역을 기피하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번 용서받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자신이 스스로 약속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습니다. 유승준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한국사람들을 비난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도덕성이 스티밋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스티밋이 앞으로 주도적인 SNS로 나서기 위해서는 복잡계에서 말하고 있는 이론적 모델을 한번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도표를 한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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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체제가 단절적 변화를 하려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거칩니다. 여기에서 단절적 변화라고 하는 것은 급격한 변화 즉 상승을 말합니다. 스티밋의 경우에 있어서는 페이스북을 제치는 상황정도가 될 수 있겠지요

지금 전세계에서 SNS는 페이스 북이 주도를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안정기(평형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복잡계에서는 안정기를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원래 세계란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안정기라고 하더라도 항상 불안정한 요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한국에서는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탈의 블로그가 힘을 쓰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아직 강력하지만 한국의 블로그 형 SNS는 변화의 와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스티밋이 변화의 주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스티밋이 단절적 변화의 전제조건이 되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즉 주변 여건이 불안정하게 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스티밋의 상황은 두번째 초기 상황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서히 스티밋이 혼돈의 가장자리에 자리잡아서 임계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시스템의 복잡성을 높인다고 합니다.

시스템의 복잡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잡계 이론에서는 여기에 대해 약 다섯가지 정도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스티밋을 열린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합니다.

두번째는 시스템의 구성요소를 작게 쪼개고 구성요소의 대칭성을 파괴해야 합니다. 스티밋에서 보자면 KR 코뮤니티가 발전하는 것을 들 수 있겠지요. KR 코뮤니티 내에서는 각종 전문적 태그가 발전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세번째는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쪼개진 구성요소가 상호 작용하여야 복잡성이 증대된다는 것이지요. KR 내 태그가 서로의 세계에 함몰되지 말고 다른 태그와 상호관계를 가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네번째는 전체시스템과 구성요소는 서로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숲에서 나무하나가 너무 커지면 숲이 이상해지므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화로운 발전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말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행위자의 무작위한 일탈을 제어하기 위한 적절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생물체에서 심장박동에 따라 피가 앞뒤로 제멋대로 움직이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군요. 일상생활의 법규가 다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복잡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스티밋은 단절적 변화의 프로세스 중 2단계 초반에 들어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혼돈의 가장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5가지 조건 중 4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마지막 5가지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한번 용서는 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입증된 것입니다.

그러나 viral marketing 이라고 하던가요? 그런 행위를 한다던가 아니면 표절을 하면 스티밋의 발전을 가장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2단계 혼돈기가 상당기간 진행될 것입니다. 여기서 임계점까지 가지 못하면 스티밋은 실패합니다.

만일 스티밋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행위자의 무작위한 일탈을 제어하지 못한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자들이 저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데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이것이 제가 표절행위와 viral 마케팅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절대로 그런 행위에 눈감으면 안됩니다.

참고
복잡계에 관한 내용은 “복잡계 개론(삼성경제연구소, 2005)를 참고했습니다. 단절적 변화의 프로세스는 182-203 쪽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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