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투자비법 : 당신은 무엇을 어디에 투자하십니까?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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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팀가격이 떨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어쩔 수 없이 존버에 들어갔다는 포스팅을 보았다. 일전에 존버는 매우 잘못된 투자방식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최근 알트시장이 떨어지면서 존버한다는 말을 하곤한다. 난 그런 말을 들으면 좀 답답하다. 투자의 적기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투자해야할 때인데 존버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https://steemit.com/coinkorea/@oldstone/5tpzm9

투자라는 것은 제로 섬 게임이다. 모두 다 같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누가 돈을 벌면 누구는 돈을 잃어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 이루어진다. 만일 내가 존버를 한다면 누군가는 돈을 챙기고 나간다. 존버를 하다가 더 이상 못견디고 팔면 그 때 다시 사서 기다린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패자의 상황에 직면한다.

주식이나 투자에 꽤 오랫동안 종사했으며 심지어 스타 펀드매니저였다는 사람들도 개인투자가가 되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필자의 친구중에서도 증권회사 다닐 때 그렇게 날리던 사람들이 퇴사해서 개인투자가로 활동하면서는 그렇게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 그 친구들은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으로 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그렇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보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어디에 투자하는가를 잘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주식이나 암호화화폐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혹은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투자한다고 생각하나. 그런데 필자는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고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따지면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물리학에서도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가격이 쌀때 사서 비쌀 때 팔면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쌀때와 비쌀때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쌀 때라고 샀는데 가격은 통상 그것보다 절반이상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필자의 경험이다. 비쌀때라고 팔았는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더니 내가 판 가격대로는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쌀때와 비쌀때를 판단해서 사고 파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다.

생각을 조금 달리해서 내가 가격의 차이를 고려해서 매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사고 판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얼마동안 투자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1년을 투자할 수 있는가? 아니면 3년인가 아니면 10년인가? 워렌버핏은 10년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을 주식은 단 1분도 보유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워렌버핏도 시간이 중요하다고 본 듯하다.

그럼 시간으로 무엇을 사는가? 여러분들은 시간으로 값이 싼 주식을 산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니다. 시간으로 사람들의 공포를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고 비관적일때 그 비관과 공포를 사주는 것이다. 그 비관과 공포가 언제 낙관과 희망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하는 시간동안 투자를 해야 한다. 돈은 그 다음 문제이다. 많으면 많이 적으면 적게 투자하면 되는 것이다. 여유돈으로 투자를 하라는 것은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투자자산이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그간 투자한 시간을 무위로 돌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스팀가격이 떨어져서 1달러 수준에 근접하면서 스티밋에는 불평과 불만, 저주가 판을 쳤다. 물론 필자는 그들의 불평과 불만 그리고 저주를 조금 사주었다. 언제 이 불만과 저주가 희망과 환희로 바뀔지는 모르겠다. 짧으면 몇주만에 아니면 몇달이 걸릴 것이다. 스티밋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투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오늘 스팀이 반등을 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동안 쌓아왔던 투자 비법을 공개했다. 이 비법 체득하는데 돈 많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비법을 체득하고 나중에 원금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투자한 것이 얼마나 있어야 가격이 상승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짧은 사람은 고수이고 아주 긴사람은 보통의 투자가이다. 그리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돈을 투자하려는 사람은 하수이다. 투자시장은 그런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고수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주변사람들이 물어본다. 어떻게 투자하면 되냐고 ? 난 적금 드는 것 처럼 투자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나는 적금 붓는 것 처럼 시간을 투자하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돈을 붓는 것 같다.

무엇에다 투자하는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미 많이 다루었다. 부동산과 암호화 화폐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했다. 부동산은 아주 특수한 경우만 제외하고 이미 안전한 투자처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것이다. 개발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부정으로 투자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의 투자처로는 적절하지 않다.

암호화화폐에 대해서도 여러번 이야기 했기 때문에 필자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할 것이다. 필자가 추측컨데 지금 추진되고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90%정도는 소멸될 것이다. 앞으로 소멸되지 않을 프로젝트를 찾아내는 것이 능력이다.

개념이 좋아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그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손해보기 쉽다.

암호화 화폐중에서 필자가 확신하는 것은 비트코인과 스티밋 밖에 없다는 것을 누누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이유도 말씀 드렸다.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다가는 망한다. 비트코인과 스티밋만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 손해보지 않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계시리라.

어제 저녁부터 스팀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간 필자가 생각해오던 투자비법을 횡설수설 했다. 스팀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실지 모르나 필자는 조금 실망스럽다. 조금 더 지금같은 상황을 끌고 갔어야 스팀을 더 살 수 있었다. 이렇게 올라가면 바겐세일을 즐길 수가 없게된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돈을 투자하지 말고 시간을 투자해라.
2 시간으로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을 사라.
3 확실한 것에만 투자해라.

확실한 것만 해도 투자할 것이 너무 많다.
당연히 필자는 그래프 보고 하는 투자분석은 절대로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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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혹성탈출 종의 전쟁과 청년경찰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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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혹성탈출 종의전쟁이었고 두번째는 청년경찰이었습니다.

  1. 혹성탈출

먼저 혹성탈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성탈출을 보면서 계속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화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혹성탈출을 처음본 것은 약 30년은 훌쩍 전의 일입니다. 언제인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처음본 혹성탈출은 매우 쇼킹했습니다.

지금의 혹성탈출은 그 때 만들어진 혹성탈출에서 그려진 모습들이 왜 그렇게되었나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전편에서는 똑똑한 원숭이들이 나타나게된 이유을 설명했습니다. 전편은 무척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침팬치 실험이 잘못되면서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시저가 태어나는 것이지요.

뭐 재미로 보는 영화가지고 따질 것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돈주고 보는 것이고 보면서 지나친 흠결로 감상하는데 지장이 되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본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정말 흠결 투성이었습니다.

감독은 무엇을 관객들에게 말하려고 했을까요? 아무리 상업영화라고 하더라도 감독은 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멧세지이지요. 멧세지 없는 영화를 보느니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혹성탈출 종의전쟁을 별로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첫번째 극중의 시저는 시종일관 똑같은 모습입니다. CG의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비장한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물론 동족을 읽고 처자식을 잃어버린 처지이기 때문에 비장할 수도 있지만 영화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은 식상했습니다. 아무리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다고 하더라도 조금 다른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워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야기의 설정입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출애급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같이 본 아들놈이 제생각과 똑 같은 소리를 하더군요. 마치 모세이야기 같다구요. 마치 모세처럼 시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아난을 앞에 두고 숨을 거둡니다.

아예 제목을 잘못 달았습니다. 종의 전쟁인지 아니면 종의 탈출인지. 종의 전쟁이라면 인간과 원숭이와 대결이 멋있게 그려져야 겠지요. 그런데 사실 전쟁은 인간과 인간이 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에 원숭이들이 끌려와서 노역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게 무슨 종의 전쟁인지 잘모르겠습니다. 도입부 초반에 잠시 인간과 원숭이와의 전쟁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도입을 위한 서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30여년전에 나온 첫편에서 나온 이야기와의 불연속성입니다. 시리즈로 나온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일관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혹성탈출에서 인간이 원숭이의 노예나 가축처럼 나옵니다. 핵전쟁으로 인간이 모두 절멸당하고 지상에 있는 인간은 말을 못합니다. 그런데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을 배우지 못해서 말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종의 전쟁에서는 인간이 바이러스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군요. 물론 첫편과 둘째 편에도 연결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편에서는 원숭이가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를 실험실 실험때문이라고 했지만 첫째편에서는 핵전쟁이후 원숭이의 진화로 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편을 봐줄만 했던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경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세번째 편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바이러스 때문에 인간이 말을 하지 못하고 바이러스에 걸린 인간에 대한 처리문제로 인간끼리 전쟁을 하고 거기에 원숭이들이 끌려다니다가 탈출을 합니다.

처자식을 죽인 철천지 원수인 대령도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바보가 되어 자살을 합니다.
바보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로 오랫만에 아들놈과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1. 청년경찰

영화를 보고 사촌동생을 만나 식사하고 차한잔을 하고 있자니 큰 딸이 전화를 했습니다. 저녁 10시 50분에 청년경찰을 보자고 합니다. 뭐 뻔하지요. 자기가 영화보고 싶으니까 자동차 운전수 하라는 것입니다. 나이든 아이들이 뭐하자고 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평생 안놀아줄 수도 있습니다,

남자 셋이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가자 마자 큰 딸아이하고 바로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좋았습니다. 오락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스토리도 간단하지만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집니다. 혹성탈출 종의전쟁처럼 짜증나지 않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코믹영화답게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영화는 시나리오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것은 제일 기초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 영화의 저변이 그만큼 탄탄해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같습니다. 두시간 정도 아주 재미있게 즐겁게 보고 나왔습니다.

하나 문제를 제기한다면 납치범들은 조선족으로 등장시킨 것입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경향성을 갖도록 만들수도 있습니다. 냉전당시 미국에서 영화계에 매카시즘이 강력하게 불어닥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소련은 영화를 가장 강력한 정치선전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러시아의 영화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족을 납치범으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의식속에 그런 선입견이 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이북 사투리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 걱정되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우리가 조선족이나 탈북민들을 타자화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강자를 비판하고 희화하하는 것과 약자들을 한쪽으로 몰아서 다루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정당한 비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횡포에 불과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약자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다면 옳지 않지요.

일전에 포스팅했던 택시운전사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사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영화평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강자의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역사책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번에 청년경찰에서 납치범이 조선족으로 나온 것은 심히 유감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청년경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의 수준이지요.

그 문제만 빼면 청년경찰은 풋풋하고 신선하며 코믹하고 권선징악의 시원한 결말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물론 혹성탈출은 비추입니다. 시간과 돈이 제한되시는 분들은 혹성탈출 종의 전쟁보다 다른 것을 보시길 권합니다.

두편을 동시에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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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참여) 스달깡에 대한 올드스톤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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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습니다. 커피를 갈아 내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글을 쓸때면 항상 느끼는 약간의 긴장이 저를 즐겁게 만듭니다. 먼저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스티밋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예찬하는 포스팅을 보고 샀습니다. 정말 기계식 키보드에서 나는 소리는 매혹적입니다.

요즘 매우 KR 코뮤니티가 매우 뜨겁습니다. 스달깡에 대한 논란이 여기저기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읽어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트랜잭션만 일으킬 뿐 스티밋 생태환경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옳은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스티밋이 이것 저것 가릴때냐 ? 어떻게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 끌어 들이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니냐? 그리고 스달깡이 틀린 것이라면 마켓에서 보팅파워받아서 물건값 깍아주는 것도 똑같이 잘못된 것 아니냐? 등등 입니다.

저도 스팀아고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했던 만큼 이번 논쟁에 한번 참여해보려고 합니다. 논쟁은 자신의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제기되는 주장을 정리해보자면
한쪽은 스티밋의 생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스티밋에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스달깡과 스팀마켙은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상의 세가지 문제에 대한 저의 입장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총론적으로 저는 스달깡과 같은 방식은 스티밋의 장차 발전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스티밋이라는 것이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SNS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티밋의 기본취지는 글을 써서 보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지않고 보상을 받겠다고 한다면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보상은 스팀파워에 따라 분배된 보팅파워를 합당하게 나누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최초에 댄은 한사람이 하루에 네번이상 글을 올리지 못하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제생각에는 적어도 자신의 받은 보팅파워중 4번정도는 셀프 보팅을 하더라도 나머지 6번정도는 남을 위해 보팅하고 서로 관계를 가져라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스달깡을 해버리면 어떻게 사회관계네트워크의 기능을 수행하겠습니까?

관계는 가치를 창출합니다. 제가 썼지만 멋있네요. 스티밋은 관계를 통해 가치를 창출합니다. 관계를 맺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냉정한 관계, 열정적 관계, 소극적 관계, 적극적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 나름대로 다 차이가 있습니다. 관계라고 해서 모두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비교적 냉정하고 소극적인 관계가 편합니다. 너무 적극적일 경우 부담스럽습니다. 절제되고 소극적인 관계가 편합니다. 어떻게 되었든 관계를 통한 가치가 창출되어야 한다는 점이 스티밋과 같은 SNS가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스달깡은 관계를 배제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SNS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스달깡과 같은 서비스를 통해서 회원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통상 스팀가격이 올라가면 회원이 증가하더군요. 그리고 스팀가격이 내려가면 회원이 감소하더군요. 지금처럼 스팀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스달깡같은 서비스가 있다고 해서 회원 증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스달깡으로 이익을 보자면 자신이 얼마정도 스팀파워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스달깡해서 돌아오는 이익도 별로 없지요. 결국 그렇다면 스달깡으로 이익볼 수 있는 사람은 자본가가 되겠지요. 그런데 스팀파워가 많은 고래가 그런 서비스를 공공연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연어님도 고래들이 스달깡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KR의 고래들은 스달깡 같은 푼돈보다는 오히려 SNS의 질적인 측면을 더 우선시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고래분들은 전 재산을 모두 임대주시고 정작 자신은 가난한 뉴비신세를 자처하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것은 스티밋이 제대로된 블로그형 SNS로 자리잡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래야 스팀가격이 오르고 그래야 돈이 됩니다. 한국의 여러 고래분들은 매우 이타적입니다. 이타심을 통해 이기심을 충족시킬 줄 아는 현명한 분들이 많으시지요.

스달깡 정도로 스티밋 계정이 늘어갈 정도라면 이미 스티밋은 망해야 했을 것입니다. 작년말 올해초인가요 스티밋 계정이 10만 남짓했습니다. 지금은 31만명이 넘었습니다. 올해 말에 50만명은 될 것 같습니다. 스티밋 계정이 늘지 않는 것이 스티밋의 가치가 떨어져서있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 스티밋 가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스티밋 본사에서 일부러 계정 늘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속도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거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보고요. 지금의 속도라면 충분할 정도로 계정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하시는 것 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티밋 뉴비들의 활동이 줄어든다고 하는 것도 KR 코뮤니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체 스티밋의 계정증가와 KR코뮤니티의 계정증가간 비교를 해보면 의미있는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번째 스팀마켓에서 보팅한 만큼 값을 깍아주는 것과 스달깡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스달깡은 돈만 오가지만 스팀마켓은 물건이 오갑니다. 돈만 위해서 보팅을 하는 것과 물건을 매개로 보팅을 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스팀마켓은 SNS를 통한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스달깡은 추가적인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다시말해서 스팀마켓은 여러사람들이 많이 와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포스팅의 내용도 풍부해집니다. 물건팔기 위한 포스팅도 많아지고 사용기도 올라갑니다. 저는 스팀마켓을 통해 진정한 공유경제가 가능하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팀마켓이야 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스팀마켓에 진출해보려 합니다. 언제가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스팀마켓에서 물건만 팔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도 팔 수 있지요. 대문을 그려주고 번역을 해주는 것도 경제학에서 말하는 용역입니다. 당연히 비용이 지불되어야 할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재능만 있으면 최소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스티밋입니다.

반대로 스달깡은 여러사람이 달려들면 문제가 됩니다. 앞으로 10명 정도가 스달깡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스팀마켓은 10명아니라 100명이 달려들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관계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느냐 못하느냐는 상당히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세가지 이유로 인해 저는 스달깡이 스티밋의 발전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쟁거리를 제공하신 연어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해주신 콘님, 논쟁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마진숏님 그리고 논쟁에 참석하셔서 기꺼이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스달깡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고 해서 연어님께서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문제는 언제가 스티밋이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연어님께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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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의 불공평에 대해, 불공평함의 불공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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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이런 글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최근 뉴비들이 보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그동안 생각했던 것이 있어서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저랑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뉴비들이 들어와서 얼마있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이유를 진단해주셨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보상의 불공정성입니다. 몇시간 동안 글을 정성들여 글을 적었지만 그냥 한번 쓱 써갈긴 글보다 보상을 적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들인 공과 남이 거두어간 무성의한 글의 댓가를 비교해보면 화가 난다는 것이지요. 내용없고 무성의한 글을 쓰고도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저도 뉴비때 똑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불평을 했습니다. 저는 UI에 얼마 보상받는다고 하는 부분을 없애자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자기글에 대한 보상만 볼 수 있고 남이 얼마나 받는지에 대한 보상은 볼 수 없도록 하자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문제가 많겠더군요. 엉망으로 글을 쓰고 보상을 많이 받는 불공정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자체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담합을 하던 어떤 짓을 하든 코뮤니티에서 전혀 알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최선의 공정성은 최대한의 정보공개에서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정보가 많이 공개되면 될수록 공정하게 되는 듯 합니다.

각설하고 가장 많은 불만이 되고 있는 글의 평가에 대한 공정함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내가 열심히 썼고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될까요? 어떤 사람은 평생을 공부하고 책을 읽어서 아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능력자들은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드리고도 양질의 글을 써냅니다.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서 좋은 글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그런 실력과 능력을 갖추었을까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회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썼다고 자평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잘쓴 글이 남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경우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관점을 내가 아닌 남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래의 보상이 많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고래가 대충쓰고 보상을 많이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래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많이 받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도 높지 않고 고래도 아닌데 항상 많은 보상을 받아 가는 경우가 있으면 열이 받습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담합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동안 kr코뮤니티에서 그런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항상 지속적으로 관찰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의가 이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하겠지요.

결국 대충 쓴 고래의 글이 문제이군요. 저도 kr코뮤니티에서는 고래에 속하겠습니다. 비교적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너무 단도직입적이라고 하실 수 있으나 고래가 보상을 많이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래가 되는 길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스팀파워를 자기돈으로 사서 모으는 길입니다. 먼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써서 고래가 되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래가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자본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고래들은 자신의 자본을 상당히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작년부터 투자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계속 투자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올해 초에 스팀가격이 폭락했을 때 좀 사모아서 상황이 괜찮아 졌습니다만 자본이 많이 투자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지금도 조금씩 사모으고 있습니다. 스팀잇의 미래를 보고 하는 일이지요.

고래들은 자신이 가진 보팅파워를 가지고 자신의 포스팅에 보팅을 하고 또 남의 글에도 보팅을 합니다. 지금 한국의 고래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글에만 보팅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많은 보상을 받아 가는 고래들의 글을 보아왔는데 그렇게 수준이하의 경우는 아니더군요.
통상 수준이하의 글을 쓰면서도 담합하지 않고 보상을 많이 받는 경우는 관계를 잘 구축하는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보팅파워로 상대방에게 보팅을 잘해주는 것입니다. 속칭 관리를 잘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대충 쓰는 것 같아도 다른 사람들이 보팅을 많이 해주는 것이지요. 내가 열심히 글을 썼으니 너네들은 와서 읽고 보팅이나 해라 하는 생각으로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스티밋이 사회관계네트워크인 이유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좋은 글을 쓰더라도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스티밋은 많은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지금껏 19번의 하드포킹을 통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중에 스팀파워를 보유하고 있는 양에 대한 보상보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보상을 더 중요하고 비중있게 하는 하드 포킹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스팀파워만 보유하고 있어도 상당한 정도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글쓰는 것에 대한 보상이 비교적 적었지요. 지금은 글써서 받는 보상이 스팀파워를 단순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많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스무디라는 서양고래는 보팅에 대한 리워드를 많이 주어야 한다고 떠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요지는 글에 대한 보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보상체계는 상당히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제도의 불합리성은 노력을 통해 고쳐나가야 합니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제도만 탓해서는 절대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 글을 써서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좋은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유지해서 스스로 독자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스티밋은 신이 만들어낸 SNS가 아닙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한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조화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서 보상이 나오고 돈이 생기는 곳입니다.

내가 좋은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평을 볼 때 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저도 처음 출발할때는 0.1달러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내가 그러니 당신들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당시 쓴 글을 보니 조금 수준이 떨어지더군요. 당시에 쓴 글로 지금 보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무리 뉴비신세라 하더라도 지금이 그때보다 나을 것 같더군요.

즉 1년전보다 지금의 환경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나 그때나 문제 제기의 정도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스티밋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구린 UI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저도 왜 이런 말도 안되는 UI를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지 왜 안고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어떻게 해라하고 하기는 어렵지만 능력자께서 여기에 대한 글을 써서 영어로 올려주신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도 쓰다보니 늘더군요. 처음에는 분량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제는분량을 줄여나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번 쓰면 너무 길어져서 독자들의 적정 인내한계선을 넘는 듯 하거든요. 이미 넘었지요?

내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고 불공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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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코뮤니티 제대로 가고 있나? 현상과 진단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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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코뮤니티 전체가 어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KR 코뮤니티 뿐만 아니라 스티밋 전체가 마찬가지다.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하던 댄이 나간이후로 스티밋 전체가 활기를 읽어 버린듯 하다. 스티밋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뒤에서 열심히 하는데 필자가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EOS 때문인 것도 같다. 잘모르면 희생양을 찾는 법이다. EOS 옹호론자께서는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스티밋에서 활동하고 투자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티밋보다는 EOS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만인의 공적이었던 댄이 나간 이후로 스티밋의 활기가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상호 연관관계가 있는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KR 코뮤니티에서 한동안 경쟁적으로 글을 올리던 스티밋 동지들이 방향을 새로운 곳으로 바꾼 것 같다. 금융에서 일하던 분들이 많아서인지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경매, 스달깡 등 묘기가 백출하고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마켓도 생겼다. 바야흐로 스티밋의 생태계가 확대대고 있는 느낌이다.

스달깡을 두고 이리저리 설전이 오가고 있다. 필자는 이런 논쟁을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제기한 콘님의 주장은 당연히 옳은 이야기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제시한 연어님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듯 하다. 결국은 시간이 가면서 어떤 방향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어떤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평하기 전에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에 먼저 주목하고자 한다. 지금 이런 일들이 왜 생겼을까? 사실 스티밋은 SNS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블로그다. 글을 쓰고 그것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평가를 받고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물건도 팔 수 있고 사업의 모델도 생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경제적 이익 창출의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필자는 사실 그런 방향으로 스티밋이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도 큰 방향에서 스티밋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이런 현상이 왜 생겼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KR스티밋이 어떤 과정을 걸어왔는가를 일별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한동안 표절시비에 시달렸다. 글을 쓰고 그것으로 보상을 받아가는 체제에서 표절은 많은 사람들을 엄청나게 좌절하게 만든다. 나는 열심히 고생해서 글을 쓰는데 누구는 어디서 몰래 베껴서 글을 올리고 나보다 더 많이 보상을 받아간다면 그 좌절감과 분노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표절문제가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자 믈건을 사고 파는 market이 생겼고 스팀달러를 현금으로 바꾸어주는 서비스, 다시 리워드를 이용해서 마이너스 금리를 제공해주는 금융상품들이 생겼다. 그 이후에 스팀달러가 생겼다. 이런 현상과 함께 전문적인 글쓰기를 도모하는 스티밋 동지들도 조금씩 나타가기 시작했다. kr-science가 생겼고 또 백일장도 생겼다.

이와함께 그동안 열심히 글을 쓰던 스티밋 동지들이 글을 과거만큼 열심히 쓰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왜 그럴까? 난 그것을 글을 쓰는 소재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1년가까이 쉬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뻘글이라도 몇번 쓰고 나면 주제가 소진되어 버린다. 상당한 수준의 독서와 사색, 경험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면 지속적으로 글을 쓰기가 어렵다. 일상적인 평범한 글은 쉽게 묻혀버린다. 비슷비슷한 글들이 많으니 그냥 건너띄기 십상이다. 이런 저런 방향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 스티밋이 베타버젼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다양한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바탕위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금융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보다 물건을 사고팔고 금융을 하는 것이 주가되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한다.

그럼 문제가 있다. 소재가 고갈되어 있는데 어떻게 계속 글을 쓰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스티밋 아고라를 제안한다. 중요한 주제가 있으면 서로 토론하고 그 토론에 올라온 글이나 댓글에 보팅을 해주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도 좋고 경제적인 것도 좋고 사회적인 것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일전에 필자의 포스팅에 의견을 올려주신분들에게 보팅을 해드린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논쟁이 될 만한 주제를 선정하고 서로 찬반의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이것은 태그를 잘 관리하고 주제를 잘 선택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밋은 매우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었으면 한다. 스티밋 아고라도 그런 가능성을 현실화 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함께 필자는 스팀파워를 조금 많이 가지고 있는 관계로 kr 코뮤니티의 질적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해나갈 생각이다. 결국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전문적인 분야인 듯 하다. 그래서 지금 전문적인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kr-science를 관심을 가지고 보려고 한다.

사실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스티밋 동지들 같으면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에서의 전문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생각은 현실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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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우리가 결정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 공허한 언어의 유희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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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광복절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매우 그럴 듯하고 폼이 나는 이야기다. 북한이 괌에다가 탄도탄 미사일을 쏘겠다고 이야기한 후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공허하게 들릴까?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것 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 우리나라 땅에서 전쟁하는 것을 우리가 한번도 결정해본 적이 있었던가? 듣기는 좋은 것 같은데 사태 해결과는 전혀 무관한 것 같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닥쳐온 것은 북한이 미국 영토인 괌에다가 미사일을 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일본이 동해의 울릉도에 미사일을 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그럼 우리는 일본에다가 미사일을 쏘겠다고 해야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이 어떤 상황에 직면해있고 그들이 어떤 심리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것 같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라는 말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단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전쟁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북한의 위협과 협박에 대해 미국이 자위적 조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대한미국만이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북한이 미국에게 군사적 타격을 가했는데 우리가 미국이 자위적 조치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허락하겠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미국의 상전인가?

자기자신의 문제를 남의 문제처럼 보기 때문에 대통령의 말이 나온 것이다. 현재 상황인식이 얼마나 유치한가를 단 한마디로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 인식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진정 전쟁을 막겠다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북한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에게 즉각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을 즉각 중지하라고 요청해야 한다.

둘째 만일 북한이 괌에다가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대한민국은 미국과 행동을 같이 할것이며 미국의 조치를 전폭지지할 것이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전폭적인 지지에는 미국이 타격을 할 경우 우리도 자위적 조치를 위해 북한의 장사정포를 포함해 우리에게 피해를 입일 수 있는 북한의 군사적 목표를 선제타격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북한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결국 전쟁이란 의지와 의지의 싸움이고 그런 점에서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어제 저녁 뉴스에 북한의 미사일 이동발사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리석은 짓이다. 트럼프와 아베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을 같이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선제타격을 포함하는 노력을 같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소리없는 전쟁은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우리 안보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인식을 가지는가에 따라 우리 안보는 강력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다. 안보는 군사력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것만으로도 안보를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일을 마치 남의 일같이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언어의 유희로 풀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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