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혹성탈출 종의 전쟁과 청년경찰을 보고

20170820 올드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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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혹성탈출 종의전쟁이었고 두번째는 청년경찰이었습니다.

  1. 혹성탈출

먼저 혹성탈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성탈출을 보면서 계속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화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혹성탈출을 처음본 것은 약 30년은 훌쩍 전의 일입니다. 언제인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처음본 혹성탈출은 매우 쇼킹했습니다.

지금의 혹성탈출은 그 때 만들어진 혹성탈출에서 그려진 모습들이 왜 그렇게되었나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전편에서는 똑똑한 원숭이들이 나타나게된 이유을 설명했습니다. 전편은 무척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침팬치 실험이 잘못되면서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시저가 태어나는 것이지요.

뭐 재미로 보는 영화가지고 따질 것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돈주고 보는 것이고 보면서 지나친 흠결로 감상하는데 지장이 되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본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정말 흠결 투성이었습니다.

감독은 무엇을 관객들에게 말하려고 했을까요? 아무리 상업영화라고 하더라도 감독은 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멧세지이지요. 멧세지 없는 영화를 보느니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혹성탈출 종의전쟁을 별로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첫번째 극중의 시저는 시종일관 똑같은 모습입니다. CG의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비장한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물론 동족을 읽고 처자식을 잃어버린 처지이기 때문에 비장할 수도 있지만 영화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은 식상했습니다. 아무리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다고 하더라도 조금 다른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워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야기의 설정입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출애급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같이 본 아들놈이 제생각과 똑 같은 소리를 하더군요. 마치 모세이야기 같다구요. 마치 모세처럼 시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아난을 앞에 두고 숨을 거둡니다.

아예 제목을 잘못 달았습니다. 종의 전쟁인지 아니면 종의 탈출인지. 종의 전쟁이라면 인간과 원숭이와 대결이 멋있게 그려져야 겠지요. 그런데 사실 전쟁은 인간과 인간이 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에 원숭이들이 끌려와서 노역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게 무슨 종의 전쟁인지 잘모르겠습니다. 도입부 초반에 잠시 인간과 원숭이와의 전쟁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도입을 위한 서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30여년전에 나온 첫편에서 나온 이야기와의 불연속성입니다. 시리즈로 나온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일관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혹성탈출에서 인간이 원숭이의 노예나 가축처럼 나옵니다. 핵전쟁으로 인간이 모두 절멸당하고 지상에 있는 인간은 말을 못합니다. 그런데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을 배우지 못해서 말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종의 전쟁에서는 인간이 바이러스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군요. 물론 첫편과 둘째 편에도 연결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편에서는 원숭이가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를 실험실 실험때문이라고 했지만 첫째편에서는 핵전쟁이후 원숭이의 진화로 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편을 봐줄만 했던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경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세번째 편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바이러스 때문에 인간이 말을 하지 못하고 바이러스에 걸린 인간에 대한 처리문제로 인간끼리 전쟁을 하고 거기에 원숭이들이 끌려다니다가 탈출을 합니다.

처자식을 죽인 철천지 원수인 대령도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바보가 되어 자살을 합니다.
바보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로 오랫만에 아들놈과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1. 청년경찰

영화를 보고 사촌동생을 만나 식사하고 차한잔을 하고 있자니 큰 딸이 전화를 했습니다. 저녁 10시 50분에 청년경찰을 보자고 합니다. 뭐 뻔하지요. 자기가 영화보고 싶으니까 자동차 운전수 하라는 것입니다. 나이든 아이들이 뭐하자고 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평생 안놀아줄 수도 있습니다,

남자 셋이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가자 마자 큰 딸아이하고 바로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좋았습니다. 오락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스토리도 간단하지만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집니다. 혹성탈출 종의전쟁처럼 짜증나지 않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코믹영화답게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영화는 시나리오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것은 제일 기초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 영화의 저변이 그만큼 탄탄해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같습니다. 두시간 정도 아주 재미있게 즐겁게 보고 나왔습니다.

하나 문제를 제기한다면 납치범들은 조선족으로 등장시킨 것입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경향성을 갖도록 만들수도 있습니다. 냉전당시 미국에서 영화계에 매카시즘이 강력하게 불어닥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소련은 영화를 가장 강력한 정치선전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러시아의 영화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족을 납치범으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의식속에 그런 선입견이 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이북 사투리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 걱정되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우리가 조선족이나 탈북민들을 타자화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강자를 비판하고 희화하하는 것과 약자들을 한쪽으로 몰아서 다루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정당한 비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횡포에 불과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약자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다면 옳지 않지요.

일전에 포스팅했던 택시운전사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사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영화평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강자의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역사책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번에 청년경찰에서 납치범이 조선족으로 나온 것은 심히 유감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청년경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의 수준이지요.

그 문제만 빼면 청년경찰은 풋풋하고 신선하며 코믹하고 권선징악의 시원한 결말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물론 혹성탈출은 비추입니다. 시간과 돈이 제한되시는 분들은 혹성탈출 종의 전쟁보다 다른 것을 보시길 권합니다.

두편을 동시에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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