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스팀가격이 떨어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스팀가격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코인판은 저앞에 무엇인가 희미한 출구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코인을 제도권으로 받아들이기위한 준비를 하는 상황입니다. 무엇인가 아련한 희망의 불빛이 보이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

스팀은 다른 많은 코인들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희망이 보이기보다는 무엇인가 답답한 느낌입니다. 본사에서 개발은 개발대로 지지부진한 듯 합니다. 그리고 스팀잇에서의 운영원칙과 철학에 대한 명확한 방향설정이 제대로 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이제까지의 스팀잇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반성을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스팀잇의 가장 큰 전략은 글을 쓰면 돈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서 그런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돈을 보고 들어왔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 나가버렸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가치가 있습니다. 돈이라는 가치는 여러가치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고 공정한 배분이 안된다고 불평불만을 했습니다. 정의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데 매우 강력한 영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하고 평등한 배분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이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커뮤니티에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언어권이나 국가에서 볼때 어머어마한 특혜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외국사람들 그런 불평많이 합니다. 결국 스팀잇에서의 배분과 관련한 정의도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글을 썼으니 너희들은 내글에 보상을 많이 해야한다고 하는 태도는 오만에 가득찬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에 대한 생각도 다 다릅니다.

이런 저런 말씀을 드렸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팀잇 글 쓰면 돈준다는 마켓팅은 틀렸고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그 무엇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스팀잇은 검열과 통제가 없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할 수 있고, 잘 모르지만 서로 취미가 같고 성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할 수 있으며 다양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미디어라는 측면을 더 강조하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좋은 자료를 올리면 얼마간 커피값이라도 벌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실 스팀잇이 처음 등장할때 내세웠던 것이 검열과 삭제없는 SNS였습니다.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에서는 임의적으로 내용을 마구 삭제합니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스팀잇은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가장 먼저 등장한 마케팅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산지 같은 사람들도 스팀잇에서 폭로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아마 그런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갔다면 지금쯤 무엇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스팀잇은 가치를 창조하기보다는 보상을 나눠주는 방향으로 퇴보했습니다. 무엇하던 끊임없이 가치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을 합니다. 그런데 스팀잇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용자의 편익을 위해 홈페이지를 바꾸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카테고리를 내가 원하는 것 몇개만 뜨도록 하는 것도 안됩니다. 당연히 내가 보았던 데이타와 유사한 내용을 추천해주는 기능은 아예 없습니다. 해시태그에 #interesteem이라고 치면 그나마 유사한 내용이 나오도록 어떤 유저가 만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정도 중요한 기능은 유저가 해야할 것이 아니라 본사에서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상도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면 돈을 준다는 개념보다는 글을 읽고 콘텐츠를 읽으면 돈을 준다는 개념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많아야 성공합니다. 모두가 만들기만 해서 돈을 받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지속가능하겠습니까 ? 저는 BAT가 광고를 보는 사람들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매우 스마트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내용을 보면 돈을 준다고 해야 많은 사람들이 더 들어올 것입니다. 그래야 기를 쓰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기위해서 어뷰징이니 뭐니하는 것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태도 사라질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래야 좋은 콘텐츠가 가려질 것입니다. 그래야 담합보팅도 줄어들겠지요. 물론 어떤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완벽하게 깨끗한 곳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도 시끄럽지 않나요 ? 천사도 좋은 천사와 나쁜 천사가 싸우더군요.

스팀잇 가격이 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 보상이 줄어드니까 그런가요 ? 페이스북 주식가격이 떨어진다고 사람들이 활동을 하지 않나요 ? 구글 주식가격이 떨어지면 유튜브 안봅니까 ? 기본적으로 그런 서비스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더 큰 역할을 합니다. 소비자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스팀잇은 모두가 다 생산자 입니다. 소비는 하지 않으려하고 생산만 하려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 보상이 줄어들면 생산을 하지 않지요. 생산해서 제대로 이익을 거두지 못하면 생산 안합니다. 지금 스팀잇에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이익이 별로 없으니까 생산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유저들이 중심이된 몇가지의 시도들이 저를 스팀잇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하는 유인책입니다만 그런 시도들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두고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스팀잇의 성공은 스팀잇에서 보상이외의 부가가치를 만드느냐 못만드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팀시티가 보여주는 내용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보았던 시도중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 같아서 입니다. 많은 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스팀잇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공적인 투자자나 사업가중에서 바닥을 견지지 못한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글쓰고 서로 소통하면서 어려움을 지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 갑니다”

다 정리하고 나서 보니 그동안 제가 했던 이야기를 재방송하고 말았습니다. 변명하자면 스팀가격이 바닥을 치면 칠수록 그 생각들이 맞았다는 생각이 더 드는 군요.

참 저는 보상액수는 자신만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입견을 배제하도록 말이지요. 페이아웃하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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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경제이야기)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욕해 마지 않는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의 군부통치를 통해 경제를 키워왔다. 그리고 문민정부 이후 계속해서 경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 물론 박정희때도 경제위기는 있었고 전두환과 노태우 때도 어려움은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사람들이 먹고 살만 했다. 희망도 있었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행정고시합격해서 5급 공무원 가는 것 아니면 공무원은 처다 보지도 않았다. ROTC 출신 장교들은 전역하기도 전에 모두 취업을 다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때만해도 우리나라 경제가 커가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뚜렸한 성장동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김영삼 들어와서 경제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였다. 물론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결과 IMF를 맞았다. IMF를 김영삼만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경제에 필요한 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영삼의 가장 큰 잘못은 경제는 그냥 잘 되는 것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의 산업기반 경제에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나가지 못했다. 김영삼 때는 무엇인가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전환점을 만들어 가지 못했다.

김대중은 IT를 주창했다. 한때 IT버블도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때의 그런 무모한 투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IT 선진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임기내내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경제의 실력을 키우고자 했다. 다들 잘 모르시겠으나 노무현은 3T전략을 세웠다. IT, BT, NT가 그것이다. 그가 3T전략을 세웠으나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본격적으로 밀고 나간 것은 임기 후반기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바이오 산업이 그나마 조금 힘을 쓰는 것은 노무현 당시의 정책에서 도움받은 바가 크다. 나노 산업은 생각만큼 많이 성장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노무현이 전작권 전환이니 뭐니 한다고 헛수고 하지 않고 경제의 체질을 본격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명박은 전임 정부의 3T전략을 다 무시하고 다시 산업시대의 전략으로 회귀했다. 녹색성장이라는 조금 진보적인 주장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전에 불과했다. 그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해외 자원을 확보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퍼 부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수년동안 나라의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창조경제라고 했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는 정책을 제시했다. 한참을 창조경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아파트만 지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혁신성장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수 있도록 분배문제에 신경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점에도 많은 공감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차세대의 성장 엔진을 만들어 가려는지 모르겠다. 혁신성장이라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혁신 성장이란 4세대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 암호화폐 거래는 막았다. 이제 겨우 블록체인 산업 정책이라는 것을 제시했지만 그 내용도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했으면 좋겠다. 노무현 정부처럼 3T 전략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국가가 그런 첨단 산업을 위한 지원을 해주어야 기업이 따라가면서 경제가 잘 되는 것 아닌가 ?

문재인 정부는 북한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지지라는 것은 웃긴다. 15살 소녀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화무쌍한게 민심이다. 지금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기업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중이다. 소득주도 성장도 중요하다. 분배는 중요하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물쭈물하다가 우리는 X 될 확률이 높다.

괜시리 경제문제를 생각하다가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다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정부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왜 일본처럼 안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를 걱정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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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경제이야기)앞으로 다가 올 경제위기가 두렵다.

며칠간 사람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이구동성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지방이 매우 어려운 듯하다. IMF때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유럽도 어렵고 남미도 어렵다. 어떤 나라들은 금리를 많이 올렸다고 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은 여러가지이다. 첫째 외부적 요인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둘째 내부적 요인으로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만일 경제가 어려워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언급해보려고 하는 관계로 각각의 요인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언급은 생략하고자 한다. 나중에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가장 큰 요인은 외부적인 것이 될 확률이 높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들 잘 알겠지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우리나라의 금리도 올라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자본들이 빠져나간다. 우리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외국자본은 빠져나간다. 당연히 주식시장은 약세가 될 것이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나라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에 치명적인 타격이다. 이미 가계부채가 1450조가 넘는다. 대부분의 가계부채는 아파트 매입자금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상환이 금액이 높아지고 그러면 서서히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아파트를 처분해서 빌린돈을 갚아야한다. 그런 과정은 점점 더 빨리 진행된다. 지금도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는 그런 경향이 훨씬 떠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인구도 준다고 하니 아파트를 추가로 매입하려는 사람들도 없다.

가계부채가 한계상황에 오면 은행도 위험해진다. 은행이 위험해지면 모두가 다 위험해진다. 이미 그것은 경험한 바 있다.

부동산이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것은 이명박근혜 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단시간내에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부동산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최경환이 경제부총리를 할 때였다. 잘아는 경제 관료출신 인사를 만나서 당시 정부의 정책이 나중에 화근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부동산 시장 활성화시키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인위적인 방법이라 나중에 또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후배가 한 이야기다. 최근 몇년간 택지개발을 전혀 하지 않아서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경제를 다루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지나치게 개입을 하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한계상황에 직면하면 내수시장도 위축되고 빈곤은 악순환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어마어마하게 유보금을 쌓아 놓았다. 과거에 IMF를 당할때 기업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유보금을 많이 쌓아 놓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온다면 제일 먼저 가계가 무너질 확률이 많다. 기업이 어려우면 정부가 개입해서 어떻게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가계가 무너지면 정부도 손쓸수가 없다. 가계가 무너지면 내수시장이 위축되기 때문에 기업도 쉽지않다. 역설적으로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들은 그나마 타격을 덜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유한 외환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미국채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물건에 투자를 했다. 즉 중국과 일본은 필요하면 당장 채권을 팔아서 달러를 쓸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장기 물건이라서 당장 팔수 없다. 팔려고 하면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점에서 외환보유고가 높다고 해서 문제 해결 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해결능력이 과거에 비해 별반 높지도 않다. 공무원출신들 일자리 만들어 주느라고 국민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외환 투자조직을 만들었다.

만일 이번에 경제위기가 온다면 우리나라는 부익부 빈익빈 상태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시 없을 자산 바겐세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자산이 축소되는 사람들은 영원히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점점 남미형 경제로 변해갈 확률이 많다. 암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일들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다.

우리사회 전체가 이런 상황일때는 국가에서 미리 해결할 방법도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준비할 수 밖에 없다. 가능한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좋고 미리 금이나 은 그리고 달러에 투자를 해 놓으라는 이야기를 했다.

가계부채는 이명박근혜 정부때 만들어진 문제이지만 이것으로 인한 타격은 현정부가 당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당장의 문제를 정부에 따지지 그 원인을 찾아가면서 따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영광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관련 수석 비서관 몇몇을 바꾸었다. 고용지표와 관련한 문책성 인사라고 한다. 지금 우리앞에 쓰나미처럼 몰려올 문제는 단순한 고용지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안다고 해도 당장의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며칠전 선배와 서울역을 지나면서 같이 걱정을 했다. IMF때 서울역앞은 노숙자로 가득했다. 지하철마다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지금은 그런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앞으로 노숙자가 지하철과 서울역에 가득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이 현명하게 이런 위기를 넘겼으면 좋겠다. IMF때는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도 없다. 위기를 당하더라도 좋건 싫컨 문재인 정부가 수습해야 한다.

나중에 이글이 우리나라의 경제위기를 예측했다는 평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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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총리를 보내드리며...

며칠전 김종필 전 총리가 서거했다. 김종필이란 이름은 우리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다. 좋든 싫든 말이다. 아마 앞으로 1000년이후의 역사책에도 김종필이란 이름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쉽지 않다. 작년이맘때 쯤인가에 김종필 전총리를 만난 이후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평가는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도 좋은 일, 착한 일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불완전한 인간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도 다양하다.

김종필 총리가 서거하자 황교익이라는 사람이 트윗으로 악의에 가득한 독설을 내놓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씁쓸했다. 속칭 맛칼럼리스트라는 사람이 밥맛떨어지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제대로 음식 맛을 볼 수 있을까. 이미 그는 맛칼럼리스트라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정치적 인물로 등장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공지영과 김부선에 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을 것이다.

김종필이란 사람은 누구 마음에 들어서 정치에 입문해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 황교익이라는 천박한 인사가 어떤 세력의 주목을 받기 위해 쉽게 아무렇게나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천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친문이니 하는 친위세력 비슷한 것을 못본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종필은 혁명가였다. 그는 평생 두번의 혁명을 했다. 한번은 5.16이었다. 5.16당시 양복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손에는 소총을 들고 군대를 지휘했다고 한다. 흡사 남미의 혁명가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었다. 혁명을 한 사람은 그 이후 관리자로 전환하는데 실패를 많이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체 게바라다. 그는 혁명가였으나 관리자로 전환하는데 실패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필은 매우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사람인 듯 하다. 혹자는 5.16이 무슨 혁명이나 구데타다라고 말을 한다. 구데타냐 혁명이냐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쨓든 그는 5.16을 기획했고 그 이후 산업화의 주역으로 국가를 경영했다. 그의 혁명은 성공적이었다. 아프리카보다 가난했던 대한민국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부자나라로 만들어 놓는 기틀을 놓았다.

두번째는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위한 혁명을 했다. 한번은 5.16 이었다면 두번째는 DJP 혁명이었다. 그는 신군부 이후의 적통을 유지한 한나라당을 깨기 위해 김대중과 DJP연합을 만들어 진정한 문민정부를 만들었다. 한국의 고질적인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내각책임제를 주장했으나 그것이 어려워지자 DJ와 결별을 했다. 그 이후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를 거치면서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국가발전의 장애물이 되었다는 생각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그나마 잘한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평가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내각책임제는 시대를 앞서는 역사적 통찰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김대중을 위해 일했던 정치인과 김종필의 공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도 김종필이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대중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실 김종필이 DJP 혁명의 기획자라는 이야기도 했다. 마치 김종필이 5.16의 기획자였던 것 처럼 말이다.

문재인을 위해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황교익을 보면서 우스운 것이 있다. 세상은 원인과 결과의 연속이다. JP가 아니었다면 DJ가 권력을 잡을 수 없었다. DJ가 아니었다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JP 문상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그릇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JP가 험한 말을 했다고 하나 일국의 대통령까지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가슴에 담아 놓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종필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이야기 한마디만 했으면 문재인의 그릇이 김종필을 덮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지 못하나 보다. 아마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그런 포용력 없는 주변인사들의 주변머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난 그를 작년에 만난적이 있었다. 이미 앉아 있기도 힘들었지만 여전히 유머를 즐겼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손으로 컵을 입에 대기도 어려워했다. 그것을 보고 인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2시간이 넘도록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동생이 6.25때 포병장교로 있다가 부상을 입고 대구로 찾아온 것을 병원에 보내 입원을 시켰으나 결국은 죽고 말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 선산에 동생을 묻었고 자신도 동생옆으로 갈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청구동 자택마당에 서있는 일단의 노인들을 보았다. 어림보아 80은 지난 듯한 분들 서너명이 서 있었다. 행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시골에서 올라온 분들 같았다. 가게에서 산듯한 쥬스가 손에 들려 있었다. 김종필 전총리를 휴머니스트라고 한다. 이미 병석에 누워있는 사람을 이렇게 찾아오게 한 것이 무슨 힘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는 아무리 지체낮은 사람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 오는 것이 아닐까?

돌아가신분에게 악담을 하는 것은 자신이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이다. 그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장례를 지내는 기간일 필요는 없다. 시간은 많다. 그리고 내 개인의 평가와 역사적 평가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역사적 평가와 자신의 옹졸함을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장례를 하는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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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6.25 그리고 백선엽

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8년째 되는 날이다. 어릴때 부터 부모님들께 한국전쟁 당시 고생하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형이 동생을 죽이고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는 전쟁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김일성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같은 이웃과 친구 가족들끼리 서로 서로 죽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때 대학가에서 주사파니 하면서 김일성을 추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 있기도 하다. 사회주의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진보정치라는 것에 환멸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전에 연세대 사학과 교수였던 김동길 선생이 조선일보에 백선엽에 대한 평을 쓴 글을 보았다. 여간해서는 조선일보를 읽지 않지만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용인 즉, 그는 한국전쟁당시 낙동강 전쟁의 전세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교통부 장관으로 지하철을 처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추대해서 명예원수로 모시려고 하다가 좌절되었으나 자신의 공에 대해서는 한번도 자랑하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란 말이 있다. 현대사는 오래 살아 남는 자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동길 교수는 역사학 전공자다. 그런 분이 백선엽을 일방적으로 칭찬하는 글을 쓴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신이 아니다. 따라서 어두움과 밝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역사학자는 이런 명암의 균형을 잘 보아야 한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공7과3이라고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중국이 지금과 같은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등소평과 같은 균형잡인 사람이 지도자를 오랫동안 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백선엽은 오랫동안 살아 남은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이다. 백선엽의 삶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김동길 선생처럼 후하게 평가할 수 없다. 그는 처음부터 정치군인이었다. 그는 만주군에 들어가 독립군을 잡아 죽이는 특설대에 근무를 했다. 그가 공비토벌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것도 만주에서 유격대 활동을 하던 독립군을 토벌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이후 조만식의 비서이기도 했다. 조만식을 민족주의자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유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민족주의자였다면 어떻게 독립군 토벌대장이던 백선엽을 비서로 쓸 수 있었을까?

국군에 들어간 백선엽은 한국전쟁 발발당시 육군본부에서 정보 작전 분야의 부장을 담당했다. 며칠전 타계한 김종필을 육군본부로 픽업한 사람이 백선엽이다. 박정희와 김종필은 김일성이 1950년 6월에 도발할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고 그것을 보고서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보고는 묵살이 되었다. 6월 24일 육군회관 개관식에서 당시 육군총장 채병덕과 육군의 전 장군들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전쟁이 발발하자 전군이 손하나 못쓰고 무너질 때 그는 전군의 작전대비태세를 담당하고 있던 작전부장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가 사단장으로 있던 1사단은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일설에 의하면 백선엽은 농민복장으로 전선을 이탈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탈영을 한 것이다.

그는 전쟁보다 정치에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전군이 무너졌을 때 아무런 희망이 없을때 홀로 나서서 한강선 방어선을 구축했던 김홍일 장군을 계책을 써서 군복을 벗게한 것도 백선엽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이승만에게 “각하의 뒤를 이을 사람은 김홍일 장군뿐입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이 지체없이 “임자 수고했어” 하고는 김홍일의 군복을 벗겼다.

백선엽은 미군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들리는 말에는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을 할때 미군 고문관을 자신의 짚차 앞자리에 태우고 자신은 뒷자리에 탔다고 한다. 군에 다녀온 사람은 알 것이다. 지휘관 짚차 앞자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그렇게 그는 미군의 환심을 샀고 그래서 미군의 지원을 받아 출세를 했다.

그러던 그를 몰아낸 것은 김종필이었다.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정군파들이 당시 군의 지도부들이 썩었으니 나가라고 했다. 김종필은 감방에 갖혔으나 결국 군수뇌부들은 모두 옷을 벗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백선엽은 한국의 대표적 부정축재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어르신들은 다 아실 것이다. 선인재단의 비리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만년에는 자신의 업적을 치장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다부동 전투란 지금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전쟁사를 위조하는데 노력한 결과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게 한 것은 다부동전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명박은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실상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한것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돈없고 배고픈 예비역 군인들을 꼬여서 자신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런 꼬시김을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결국 자신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했던 꼼수는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몇몇의 의로운 군인들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김동길 교수는 백선엽을 자신의 공을 한번도 자랑하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다. 참 기가찰 노릇이다.
백살 넘게 살면서 자신의 잘못은 모두 묻어 아무도 보지 못하게 감추고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것도 자신이 한 것처럼 조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역사는 냉혹하다. 자신이 살아있을때는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누구도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한국전쟁의 의미는 무엇일까 ? 그리고 백선엽은 어떤 인간일까 ?
김동길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을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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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삶이란, 끝없는 자식 걱정의 연속

애들 키워서 대학보내면 대충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 큰 아이가 입사 시험에서 낙방을 했다. 처음이나 중간에서 떨어졌으면 덜 했을텐데 마지막 최종 면접까지 가서 떨어졌다.

나도 실망스러운데 본인은 오죽하겠는가 ? 아는 사람이 문자를 보내와서 아무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집에 가서 아무말 하지 않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이는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그 아이가 얼마나 깊은 심연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삶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지 않다. 태어나는 성격도 다르고 모두가 다르다. 같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도 다르다. 씩씩하게 보이려고 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냥 화를 내고 한번 울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처음 낳아서 지금까지 키워왔다. 내 품안에서 재롱을 부릴때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아마 살면서 제일 행복했을 때가 아닌가 한다. 친척 형님한분이 아이는 4살때까지 재롱 떤 것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않아서 아이들 어릴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냥 마음 깊숙한 곳에서 따뜻한 감정이 밀려온다.

이제는 내가 뭐를 특별하게 해 줄수도 없다. 앞으로는 자신이 걸머지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예전에 여자아이는 대학 마치고 시집만 잘가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차라리 옛날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올해말까지 딸아이가 취업을 하기 위해 용쓰는 것을 한번 더 보아야 한다. 그렇게 용쓰는 것을 보면 또 마음이 아플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더 마음 아프다.

어머니께서 손녀 취업시험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자식걱정은 끝이 없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기야 얼마지나지 않아 환갑이 되는 아들걱정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조금있으면 결혼하는 것 아이 낳아서 키우는 것 등등 모두 걱정거리라는 것이다. 삶이란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인가 보다. 아무리 삶이 걱정의 연속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의 걱정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마침 어머니 생신이라 식구들 모여서 식사를 했다. 힘들텐데 웃으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할머니에게 재롱을 떠는 것을 보니 고맙다.

삶이란 넘어지고 깨어지고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한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가 인생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딸아이에게 인생이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지고 하는 것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영혼을 울리는 일을 찾아보라고 했다. 이제는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해서 인생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돈을 좀 더 번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난 딸아이가 영혼이 행복한 일을 찾고 살았으면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안다. 아무리 영혼이 울린더라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살아보니 영혼이 울릴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아이가 영혼을 울리는 일을 찾으러 다니면 나는 끊임없이 걱정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래, 난 걱정을 해도 좋으니 너는 행복을 찾으러 마음껏 방황하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삶의 행복이란 그 어디쯤에 있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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