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스팀잇 이야기) 위로의 글, 지금까지의 스팀잇 활동을 돌아보며

암호화폐 시장이 칠흙같이 깜깜한 상황이다. 이정도면 아주 초기에 들어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들 손해를 보는 국면일 것이다. 물론 능력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보고 있을 것이다. 스팀잇에 스팀파워로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은 손도 쓰지 못하고 손해를 보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제가 스팀잇에서 활동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저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스팀잇의 모델에 반해서 스팀을 사기 시작했다. 약 2년 전쯤이다 ICO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팀이 펌핑을 시작했다. 저는 펌핑시장에 뛰어들어서 스팀을 무작정 사모았다. 그때는 스팀파워로 보유하고 있으면 1년에 100%정도 되는 보상을 준다고 했을때다. 스팀이 거의 7달러선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는 족족 스팀달러로 파워업을 했기 때문에 팔 수도 없었다.

스팀가격이 어마하게 내려가는 와중에도 계속 샀다. 그리고 단톡에서 스팀사자고 만세를 불렀다. 그 중에 어떤 분이 저보고 망하려면 혼자 망하지 왜 다른 사람 꼬시냐는 비난도 했다. 당시 전 스팀의 사업모델이 좋기 때문에 이방향으로 계속가면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스팀을 사들였다.

스팀 가격은 결국 0.1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 대부분의 스티미안들은 스팀은 상폐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저는 스팀을 샀다. 초기에 너무 많이 사서 자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 샀다. 제가 스팀을 산다고 하니까 정신나간 사람처럼 취급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도 샀다.

상당기간 0.1,2달러 수준을 유지했지만 자금이 달려서 많이 사지를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갔다.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모두 스팀사는데 다 들어갔다. 약 97%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비트코인이 100만원도 하지 않았고 이더리움은 1만원 정도 했을 때다. 아마 그냥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큰 돈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스팀도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는 즐겁게 글을 썼다. 올해 초에는 스팀이 5달러 이상을 넘기도 했다. 0.1달러 기준으로 보면 50배는 올랐다. 그러나 이더리움은 제가 가지고 있던 기준으로 보면 200배가 넘게 오르기도 했다.

스팀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잃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큰 돈을 벌 수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제가 스팀을 사지 않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었을런지는 모르는 일이다. 눈에 뭐가 확끼여서 그냥 팔아버리거나 다른 것에 투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살면서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해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에 충실하면 되는 일이다.

인간이란 미래를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주식시장이나 암호화폐시장 처럼 자본시장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잊어 버리고 10년 20년 지나면 그 중에 대박친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모두 운이라는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운이 좌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좋은 운을 가지려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간혹 착한 것과 무능한 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착한 것이 무능하게 자신에 대한 불공정을 받아 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선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진해운의 조양호 일가와 같은 사람들은 착하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좋은 운이 주변에 머무르지 않는다. 결국은 망하고 만다. 대신 정도 경영을 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조금 느릴지 모르나 항상 보상을 받는다.

성공한 암호화폐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스팀잇 활동을 하면서 돈 말고도 얻은 것이 많다. 스팀잇 활동을 하면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문제가 아닌 듯 하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스팀잇은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참모습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면 절에 가서 명상을 하던지 수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팀잇 활동 약 2년동안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자신을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내 자신이 하는 일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 것도 스팀잇이었다. 약 2년동안 거의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아마 다 모아 놓으면 어머어마 할 것이다. 나도 내가 그렇게 많이 썼는지를 몰랐다.

글의 내용도 많이 변했다. 다루는 주제도 변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아마 많이 변할 것이다. 그런 변화는 내가 끊임없이 내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바라건데 글을 쓸 수 있을 때 까지 앞으로도 계속 내 관심의 영역이 끊임없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스팀가격이 떨어지니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마시길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법이다. 지금은 전대미문의 상승을 위한 에너지가 축적되는 기간일 뿐이다.

스팀잇을 통해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경험을 하시기를 바란다. 스팀잇에 글을 쓰는 것을 단순하게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노역이 된다. 그러나 내 삶의 기록을 남기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희열이 된다.

저는 매 시간 스팀잇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다. 물론 조금의 글보상이 있으니 그 희열은 배가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돈만을 벌려면 스팀잇에 스팀파워 묻어 놓는 것은 좋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글 보상을 많이 받아도 때가 되어서 트레이딩하는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즐겨 스팀잇에 남아 있는 것은 돈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의 글이 요즘 스팀가격이 떨어져서 마음이 불편한 분들에게 위로가 되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저 뚜벅 뚜벅 걷는 것을 좋아 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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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금산사의 아이러니, 과유불급

금산사에는 미륵전 뿐만 아니라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여러부처님들이 모셔져 있다. 이 전각도 임진왜란때 모두 전소되고 말았다. 이후 다시 지었으나 한번의 화재를 더 겪은 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적광전에는 여러분의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셔져 있다. 화재를 겪은 이후 여러 전각에 있던 부처님과 보살을 모두 한군데에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처님은 비로자나 불이다. 비로자나 불이란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전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불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적광전안에는 여러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그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도 있다.

대적광전 뒤를 돌아가면 진신사리탑이 있다. 진신사리탑은 마치 통도사의 진신사리탑과 비슷하다.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서 불보사찰이라며 3보사찰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금산사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같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데 한곳은 불보사찰이고 금산사는 그냥 사찰이다.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금산사의 진신사리탑과 그 주변의 조각들은 매우 독특하다. 크기는 통도사의 사리탑이 더 할지 모르나 그 주변 조각상의 다양함은 금산사가 한 수 위다. 통도사의 사리탑이 매우 권위적으로 느껴진다면 금산사의 사리탑은 그보다는 친근하면서 정감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금산사의 사리탑 주변의 여러 인물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오랜 시간 바람과 비에 훼손이 많이 되어서 인지 조각상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 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 인물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역의 인물이나 몽고의 인물상 같은 모습도 보인다. 둥근 모자를 쓴 인물상은 마치 제주의 돌하르방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어떤 연유로 서역의 인물이나 몽고의 인물과 같은 조각상이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다. 막연한 추측만 해 볼 뿐이다.

진신사리탑 한쪽 편 좁은 곳에 대적보전이라는 전각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다. 대적보전을 보면서 대광명전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뭐람 ?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중요해도 지나치면 별로다. 대광명전을 어마하게 크게 만들어 놓았으니 대적보전은 조그마하게 만들었나 보다. 장소 자체가 협소하여 대적보전을 크게 지을 공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적보전은 옹색하다. 들어가 앉아 있으면 창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보인다. 그런데 제대로 위용이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전과 미륵전을 보면서 느꼈던 감흥이 확 사라졌 버렸다. 금산사는 모든 것을 다 가져다 놓으려다가 너무 넘쳐 버렸다. 불교적 관점에서 볼때도 이것은 아닌 듯 하다.

아쉬웠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그리고 석가모니불을 위시한 여러 여래상과 보살상이 있는 대광명전만 없었더라도 균형이 맞았을 것 같다. 많다고 좋은 것 만은 아닌 듯 하다.

세상일은 균형이 중요한 법이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한 것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금산사가 법보사찰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저번 포스팅에서는 금산사를 최고의 사찰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지나쳐서 부족함만 못한 절집이라고 했으니 읽으시는 분들께서 혼란스러우실 수도 있겠다. 뭐 한국 말은 다 들어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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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금산사, 죽음과 구원의 변증법 그리고 대장전과 미륵전

김제에 가는 길에 금산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올해 들어 여러 절을 돌아다니면서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곳입니다. 며칠전에 양산 통도사, 해남 대흥사, 보은의 법주사를 다녀왔지만 아직 저는 금산사에서 느낀 감흥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래된 건물이나 보물들을 기준으로 따지면 금산사는 그리 특별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굳이 귀한 보물이나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도 감동과 감흥을 받을 경우가 있습니다. 금산사는 그 규모면에서는 매우 큰 절에 속합니다. 이 절도 이지역의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그 이후에 지은 것이지요. 제가 이절에 들어오면서 처음에 뭔가 특별한 것을 느꼈던 것은 미륵전 때문이었습니다. 3층으로 지은 미륵전은 어머어마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목조건물로 미륵전 같은 규모의 3층 건물을 세워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안에는 무지하게 큰 미륵불이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3층으로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한개층입니다. 건물내부의 위아래가 다 트여져 있는 것이지요. 건물을 3층으로 만든 것은 그만큼 큰 미륵불을 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만히 앉아 왜 이렇게 큰 미륵불을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은 특히 미륵불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전라북도와 충청도 지역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그냥 느낀 것이기 때문에 통계도 없고 근거도 불확실합니다. 그냥 다니면서 느낀 것입니다.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에 앉아서 그 당시 미륵전과 미륵불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절터앞에서 그 당시 사람들을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 아마 다시는 전쟁이 없고 괴로움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통과 괴로움의 현세를 구하러 오시는 미를 부처님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지금 사는 세상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이를 참고 견디면 미륵 부처님이 오실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제는 곡창지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러다 보니 왜군의 침탈도 심했을 것이고 백성들의 고통도 극심했을 것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의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도 더 컸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머어마한 규모의 미륵전을 만들었던 것은 그동안 겪었던 고난과 괴로움이 더 컸다는 뜻 아니었을까요 ?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웅장하고 멋있게 보이던 미륵전의 뒤에서 피눈물을 흘렸던 당시 백성들의 고통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미륵전을 보고 다시 절안을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돌아 다니다가 대장전 앞에 섰습니다. 통상 지장전이라고 하지요.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곳입니다. 명부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대장전이라는 현판을 보고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의미없는 것이 없습니다. 왜 대장전이라고 했을까요 ? 그것은 미륵전을 3층으로 짓고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했던 의미보다 더 강렬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전란을 겪으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칼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자니 그냥 지장전이나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대장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대장전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대장선 내부는 다른 절의 지장전이나 명부전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다른 절에는 죽음의 세계를 담당해서 심판하고 벌을 주는 대왕들이 있습니다. 염라대왕도 그중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대장전에는 그런 대왕들이나 천왕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왜 죽은자의 죄를 심판하는 대왕들이 하나도 없이 오로지 죽은 자들을 구제하는 지장보살만 한분이 모셔져 있을까요 ?

짐작이 가시는지요 ? 아마 그때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만나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심판한다는 것이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후세계의 심판관을 모두 없애 버리고 오로지 죄를 구제해주는 지장보살만을 모신 것이 아닐까요 ?

이 절을 설계한 분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 또하나 재미있는 것은 대장전과 미륵전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과 미륵불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인것이지요. 죽음의 세계와 구원의 세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장전과 미륵전이 서로 마주보게 설계한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합니다. 죽음의 세계는 미륵전 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장전과 마주 서있는 미륵전은 3층의 웅장한 건물입니다. 구원의 세계가 죽음과 심판의 세계를 압도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 이와 함께 죽음을 통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구원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대장전과 미륵전을 설계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장전앞에 아담한 석등이 있습니다. 그 석등의 구멍사이로 미륵전을 한 번 보십시요. 석등을 대장전 앞에 가져다 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듯 합니다. 가장 어두운 지역의 죽음의 세계에 빛을 밝혀주는 것이겠지요.

죽음과 구원의 변증법적 배치를 해 놓은 대장전과 미륵전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의 열망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금산사의 대장전과 미륵전에 대한 저의 생각이 얼토당토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눈에는 그렇게 읽혔고 저는 그렇게 느끼면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한국 전통건축물 최고의 배치구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이번 가을에는 금산사를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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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불국사 가는길

불국사를 가는 길은 매우 힘듭니다. 워낙 유명한 절이라서 경주에서 바로 쉽게 갈 수 있을 듯 하지만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합니다. 신라시대에 교통도 편치 않았을 시기에 왜 이렇게 먼곳에 절을 지었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불국사 정류장에 도착하면 바로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불국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거기에서 불국사를 찾아가려면 살짝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불국사로 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쪽으로 가면 불국사가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였구요. 아마도 여러분들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버스 정류장에서 불국사로 가는 길은 두 방향이 있습니다. 뒷문으로 가는 길과 앞문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길로 가더라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가급적 뒷문으로 먼저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물론 앞문으로도 다시 가보셔야 합니다.

제가 불국사에 간 것은 올해 초였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았지요. 그래서 인지 뒷문을 통해 불국사로 들어가는 길은 쾌적했습니다. 겨울의 차갑고 산뜻한 한기가 코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걸어 가는 길 좌우의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마른 나무가지 사이로 햇살이 투명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불국사의 길은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많은 절들이 그렇듯이 길에서 절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절을 찾아 가는 길에서 절이 바로 보이게 되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 절집을 만들 때 그렇게 구상을 하나 봅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옛사람들은 절집에 찾아가는 길을 진리를 구하는 과정으로 비유해서 길을 만든 듯 합니다. 진리라는 것이 아무데서나 보이면 안되는 것이지요. 바라본다고 그냥 보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을 찾아 가는 길은 구부러지고 휘어져있는 것입니다.

불국사의 길이 바로 그러합니다. 뒷문으로 통해가거나 앞문으로 가거나 불국사 경내에 들어서도 절은 바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불국사의 뒷길은 산등성이를 휘감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세상이 발전하면서 길도 점점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사람 하나 겨우 다닐 만한 길이였겠지요. 그러나 요즘은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직하게 확대되었습니다.

불국사 앞문에서 들어가는 길은 뒷문으로 들어가는 길보다 평탄합니다. 뒷문에서 들어가는 길이 고저가 있다면 앞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평탄합니다. 앞문으로 들어가는 길도 과거보다 많이 넓어진 듯 합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길가에 잘자란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그 길을 조금 가다 보면 연못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연못에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사진이 잘 나오는 자리가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그 연못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고 인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산등성이에 이렇게 힘들게 인공 연못을 만들었을까요 ? 세상에 이유없는 일은 없는 법이지요. 저는 일주문에서 불국사 가는 길을 휘어지게 만들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길에서 직접 절이 보이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법이지요. 불교의 사상과 생각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으로 표현된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방법도 그러하다는 것이지요.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것이 불교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바로 보이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일주문 앞에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을 둘러서 불국사에 들어가도록 만든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뒷문에서는 산등성이를 돌아서 와야 하니 일부러 연못을 만들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불구사의 앞길은 평탄해서 연못을 만들지 않으면 바로 직선으로 길을 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직선의 도로를 피하기 위해서 연못을 만든 것입니다.

불국사 뿐만 아니라 많은 절을 다니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길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차량이 다녀야 하니 길이 넓어질 수 밖에 없지만 원래 절을 찾아 가는 길은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면 족한 듯 합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좁기 때문입니다. 두사람이 같이 어깨동무하고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그저 혼자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절에 가는 길은 좁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 가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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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절에 가는 길에서

저는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그래도 시간만 나면 전국의 절을 다니면서 구경을 합니다. 제가 절을 즐겨 다니는 이유는 여행을 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이 절집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불교의 건축에 대해서 그리고 불교 미술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절에 여러번 다니다 보면 무엇인가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절에 다니다 보니 절을 즐기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제가 절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절을 찾아가는 길을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어느 절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면 저는 우선 절 입구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면서 입구에서 절까지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길은 절입구까지는 차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일주문이나 불이문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지 오래된 절은 절에 들어가는 길이 길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차를 타고 잘 조성된 길을 한참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많은 경우 절을 보러 가면서 절에 가는 길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절에 가는 길은 걸어서 갑니다. 처음에는 절을 보러가는데 왜 길이 이렇게 쓸데 없이 멀고 긴거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절에 가는 길을 걸으면서 저 나름대로 마주하게될 절집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절에 가는 길은 절집의 모습이 다른 것 처럼 모두 다릅니다. 특별히 도시에 가깝게 자리한 곳을 제외하고는 절에 가는 길은 멀고 멉니다. 왜 이렇게 먼곳에 떨어져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전에 듣기로는 인적이 먼곳에서 속세를 멀리하여 수양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도를 닦으려면 굳이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산속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면서 유혹을 물리치고 수양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이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라면 수양도 유혹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과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절에 가면서 고명한 스님들이 득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의 한 소절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좀 불경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만 성철스님이 자신이 수양하는 곳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몇년간 면벽을 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경허 스님이 미친 여인을 품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훨씬 더 의미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절을 즐겨 다니면서 저는 절에가는 길을 통해서 제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저는 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지곤 합니다. 아직도 저는 제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들면서도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를 못합니다. 그저 어리석고 용렬한 사람일 뿐입니다. 얼마전만 해도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에 가는 길을 걸으며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 가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길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마치 오랫동안 걸어서 절에 가는 것 처럼 말이지요. 어떤 절이든 밖에서 바로 직접 보이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절집은 밖에서 볼 수 없도록 꼭꼭 숨어져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밖에서 보아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꼭꼭 숨겨진 절집을 찾아 가는 것이 절을 즐기는 출발점입니다. 아름다운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짧고도 강렬한 길, 길고 길게 늘어지면서 은은한 길들이 있습니다.

어느 절이든지 찾아 가면서 묘한 흥분을 느끼곤 합니다. 그저 들뜬 기분이 아닙니다. 그저 차분하게 저의 내면 깊숙한데서 올라 오는 아로마 향 같다고나 할까요. 큰 절은 차량이 다니는 길 옆에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절대로 차를 타지 않습니다. 걸어서 가지요. 가급적이면 맨발로 걸어 가려고 합니다. 발바닥 밑으로 전해지는 흙과 나무와 잔돌을 느끼기 위해서 입니다.

간혹 절에가는 길에 맨발에 카메라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절에 가는 길은 아름답습니다. 굳이 갑사가는 길이 아니라도 절집에 가는 길은 아름답습니다. 절에 가는 길에서 느낀 아름다움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간혹 우울하고 지칠때면 절에 가는 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좋은 듯 합니다. 우리의 삶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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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톤의 코인 이야기) 암호화폐시장에서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

이제 지루한 하락장의 끝이 보이는 듯 합니다. 제가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제피 모건의 디먼이라는 사람이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기억하는 바로는 자신의 회사에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트레이더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무슨 이상한 대학교의 교수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비트코인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멘탈이 약해진 사람들은 그런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을 팔아 버렸습니다. 심지어 유령대학의 교수가 한 말에도 좌지우지 했습니다. 비트코인은 2만달러까지 찍고 하락했습니다. 그당시 끝까지 보유하고 정점에서 매도를 한 사람들은 한몫 톡톡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팔았던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어마어마한 상승을 보면서 배를 아파해야 했습니다.

개미 투자자들은 절대로 기관투자자들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요. 투자시장은 사기꾼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개인들은 기관보다 절대로 정보에서 앞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또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경제적 여유를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회사에 다녀서 봉급받고 저금해서는 절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자가 높은 적금을 한다하더라도 화폐가치의 하락을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투자를 합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그리고 암호화폐에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것이 주식투자하는 것보다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은 분들은 부동산 투자가 효율적이지요. 물론 우리나라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이 앞으로도 계속 영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점은 비슷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개미가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한 것은 주식시장에서 당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암호화폐의 경우 기관투자자라고 해서 개미보다 정보의 우위를 점하지 못할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암호화폐는 코딩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는 기관투자자라고 해서 개미보다 더 우위에 있기 어렵습니다. 암호화폐의 초기 투자자들은 컴퓨터 전문가들이 많았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기관투자자들보다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은 기관투자자들로 새롭게 많이 보완했겠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주식시장보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은 훨씬 그 정도가 적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방법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시장을 자기생각대로 만들어 가거나 사기꾼 짓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피 모건의 디먼이 지난번 비트코인을 비난할 때 자신은 뒷구멍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을 속이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것이 투자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학자들의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며 이제는 디먼이 직접 시장에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과 다르다면 전번에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고 지금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가격이 하락과 횡보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국가차원의 규제를 통한 제도화는 전혀 고려되지않았을 때입니다. 그리하고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정부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강압적인 조치를 취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정부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지난번과 차이가 있습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지금 디먼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숏을 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저가에 암호화폐를 거두어 들이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숏을 쳐서 가격이 떨어질 때 더 많은 이익을 얻고 가격이 떨어지는 암호화폐를 모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당분간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기도 어렵고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어쨓든 디먼이 나와서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사기꾼이 전면에 나온 것은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어떤 변곡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리함을 견디고 이기는 자만이 승리를 거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전에도 여러번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투자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하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

뭔지는 분명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제 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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