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칼럼) 남북간 군사분야이행합의서에 대한 일각의 문제제기를 보고 1. GP 철수에 관해

남북간 군사분야이행합의 내용에 대해 과거 육군의 3성 장군 출신이었던 신 모 장군이 청와대에 공개토론을 하자며 청원을 올린 글을 보았다. 내용인 즉, 이번 남북합의서는 재래식 군사력이 우월한 남한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핵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우리에게 비교우위에 있는 핵은 그대로 두고 재래식 군사력이 우수한 우리만 양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제기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떨어진다며 국방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던 때가 어제같은데 언제 우리의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을 추월했는지 잘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까지 군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 과거 프랑스의 클레망소 대통령이 전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군에 관련된 것은 무조건 군대에 맡겨 놓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클레망소가 한 이야기는 국방이나 군사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고, 전문가적 견지에서 부여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해서 수행하는 것이 군인들의 역할일 것이다. 물론 정치적 견지에서 정책을 입안하는데는 군사전문가들의 견해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의 견해가 정책의 방향을 좌우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베트남전에 관한 정책적 방향을 군인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웨스트모어렌드 장군일 것이다. 그는 월남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상군을 늘려서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회는 군의 특수성을 매우 크게 인정한다. 군의 운영과 정책은 군인들이 거의 독점한다. 군에 관한 정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 국민들은 신 모 예비역 중장이 참 한심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군과 국방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일반국민들이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틀린 이야기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생각나는데로 남북간 군사분야이행합의와 관련하여 일부에서 반대를 하는 몇가지 문제의 의미와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비무장지대에 있는 GP 철수에 관한 이야기다.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 내정자는 GP 철수를 마치 유엔사령관의 권한인 것 처럼 이야기 했다. 주한 미군사령관은 연합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이라는 직책도 겸임한다. 이야기가 나온김에 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을 한사람이 겸임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연합사령관은 전쟁에 대비하는 역할을 하고 유엔군 사령관은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사람이 동시에 전쟁에 대비하면서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 한국에서 일어나는 군사와 관련한 많은 문제들은 전혀 역할이 다른 유엔군과 연합군 사령관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사와 유엔사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룰기회가 있을 것이다.

GP 철수와 운영에 관한 문제는 한국군의 평시작전권의 영역이다. 지피는 일반전초다. 즉 적이 공격해올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주력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일반전초의 임무다. 따라서 GP는 전투를 참가하는 것 보다 적의 공격을 경고하고 철수를 해서 생존을 보장한다. 무모하게 죽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GP는 적이 알 수 없는 위치에 설치를 한다. 상대방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적의 동태를 확인해야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무장지대내의 GP는 상기한 일반적 군사적 측면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띠고 있다. 북한이 그동안 계속해서 무장공비를 침투시켰기 때문에 무장 공비의 침투를 파악하기 용이한 지역에 GP를 설치했다. 그리고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비무장지대내의 작전을 수행했다. 이런 작전은 평시작전권에 해당한다. 지금 전방에서 비무장 지대를 지키는 155 마일의 철책선 방어도 지금껏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의 침투를 방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북한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남한에 직접 공비나 간첩을 침투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군은 아직 무장공비나 남파간첨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작전에 주안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군은 상당수의 장병들을 북한의 포병사정거리 내에 두고 있다. 만일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는 초전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각설하고 우리군은 연합사로부터 1994년 평시작전권을 인수받았다. 노태우 전태통령이 그 당시 전작권을 환수하겠다고 했고 그 일환으로 평시작전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평시작전권이라는 것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 이미 그 이전부터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의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에 대한 작전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했다. 한국 합참의장은 대간첩본부장이라는 직책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 대간첩본부장은 지금 말하는 평시작전권의 범주에 드는 지휘를 수행해왔다.

당연히 합참의 작전본부는 주로 GP와 GOP에 관한 작전을 수행해왔다. GP를 얼마나 어떤 방향에 운영하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합참 작전본부의 영역이었다. 신 모 예비역 중장도 합참 작전본부장 출신이니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브라함즈 연합사령관 겸 유엔사령관 내정자가 일부지역의 GP 철수와 관련한 내용을 유엔사의 영역인양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합참은 응당 GP 운영에 관한 것은 평시작전권 행사에 관한 내용이므로 유엔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앞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지금 운영중인 GP는 정규전에 대비한 역할과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적이 남침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첨단 정보수단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GP는 작전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부담이 크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첨단장비를 제대로 운용하면 장병들의 생명을 걸지 않고도 충분한 경계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금 군이 해야 할 것은 GP 철수가 부당하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GP 철수로 발생할 수 있는 경계작전의 공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와 군사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군사적 의미보다는 다분히 냉전적 질서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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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war History) The Division of Korea, 1945-1948. Post #32

Prof. Kathryn Weathersby

스탈린 트루만.jpg

Following the compromise reached at the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in May 1947, which was discussed in the last post, the Joint Commission resumed its work in Seoul. The Soviet and American delegations had not fundamentally changed their goals, however. The proceedings therefore had the air of political theater, designed to advance the larger goals of the two occupying powers.

As the meetings began, the Soviets proposed that the Commission invite only the thirty largest parties to participate in a consultative body and allow all other groups to submit written questionnaires stating their views. The Americans opposed this suggestion, insisting instead that the Commission hold discussions with all parties that had at least 1,000 members in at least two provinces. After these discussions were completed, the Joint Commission would choose the members of a representative body that would then create a provisional government.

By June 7 the Soviets and Americans had agreed that they would consult with all parties that signed a statement pledging support for the Joint Commission. They also agreed to the Soviet proposal to exclude Japanese collaborators from participation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 A subcommittee of the Commission would study the applications, which were due by June 23, then invite eligible parties for consultation in Seoul and Pyongyang. In addition, any party or social group could submit a questionnaire that expressed their preferences on Korea’s future government. By July 5 the Joint Commission and the eligible Korean parties would begin to create a provisional government and to work out the principles, structure, and platform of the future permanent government.

We might well react to the Joint Commission’s work with indignation. By what authority were the Soviets and Americans making such decisions about Korea’s future government? Why didn’t they finish their occupation duties regarding Japanese troops and civilians and leave it to Koreans to create their new government? We have addressed that very reasonable question in earlier posts, but it is now time to update the situation as of mid-1947.

In March 1947 President Truman announced the “Truman Doctrine,” in response to Soviet pressure on Turkey and an assumption that Moscow was supporting the Communist side in the Greek civil war. To deter the Soviet Union from further expanding its influence in states along its border, the president told Congress that “it must be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to support free people who are resisting attempted subjugation by armed minorities or by outside pressures.”

This American support was to be economic and political, however, not military. With regard to Korea, Washington believed that the danger of the US supplying such aid to southern Korea had prompted the Soviets to make the recent compromises on the Joint Commission. The president therefore ordered a program of economic aid to Korea, thinking this would force Moscow to agree to unification on American terms.

Since containing Soviet expansion was a global effort, all threatened places must be successfully defended if American resolve were to be believed. Therefore, the Joint Chiefs of Staff argued that Korea was “the one country within which we alone have for almost two years carried on ideological warfare in direct contact with our opponents, so that to lose this battle would be gravely detrimental to United States prestige, and therefore security, throughout the world.”

In the next post, we will look at how these views in Washington shaped an aid program for the American zone in Korea, regardless of the results of the Joint Commission.

[Sources: This post relies on the existing literature on the early Cold War and on James I. Matray, The Reluctant Crusade: American Foreign Policy in Korea, 1941-1950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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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사 연구) 한국전쟁 초기 단계구분 문제 2 (괴뢰군 연혁 1958. 6.1)

1952년 1월 발간된 육군전사에 이어 1958년 6월에 발간된 괴뢰군 연혁은 북한군이 남침하여 낙동강선까지의 전투를 모두 5기로 구분하였다. 육군전사가 4단계로 나눈 것보다 한단계를 더 많이 구분한 것이다.

괴뢰군 연혁은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작성했다.

5단계는 다음과 같다.

제1기는 1950.6.25 - 6.28이다. 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을 점령할때까지의 기간을 제 1기라고 했다.

제2기는 1950.6.28 - 7.15까지이다.

제3기는 구체적인 기간은 명시하지 않았으나 대전지역의 전투부터 8월 중순까지 낙동강 방면으로 진출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제4기는 북한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출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구분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연풍, 이화령, 문경, 함창, 군위까지 침공하고 주력을 대구로 지향
북한군 제5사단은 청하 흥해 포항지역에 주력을 일부 조공은 청송 도평을 거쳐 기계로 지향
북한군 제4사단은 진안 장수 거창을 침공 후속부대는 9사단과 같이 창영까지 진출
북한군 제3사단은 영동 ?천을 침공후 선산 해평동 부근으로 남하 낙동강 도하에 성공하여 대구 방면으로 진출
북한군 제6사단은 전주 침공후 임실 하동 진주를 침공하고 마산으로 주력을 지향
북한군 제7사단은 진안 장수를 침공 함양을 경유 선녕마산(?)으로 주력을 지향
북한군 제2사단은 영동 금천 성주 도평동을 경유하여 창령으로 주력을 지향
북한군 제12사단은 단양 점령후 안동 청송 도평동 경우 기계로 지향
북한군 제13사단은 상주를 통과 낙동강 도하에 성공하여 다부동으로 침공 진출
북한군 제15사단은 상주를 점거한 후 의성 군위 청송 도평동 경유 영천으로 침입
북한군 제8사단은 안동 의성 신년(?)으로 남침

제 4기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낙동강을 도하하여 다부동으로 진출한 것을 위험한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었음

낙동강 제4기.jpg

제 5기는 8월 하순 이후 북한군의 마지막 낙동강 공세 단계였다.

북한군 제17사단을 의성지구에 보강
북한군 제15사단을 왜관에서 청송으로 이동하여 5개사단(2,5,12,15,8)과 기갑 1개사단(17)이 동부전선에 집결
남부전선에는 제9사단의 동원을 얻어 보병 4개사단(4,9,7,6) 전차 1개사단(105) 및 기갑 1개사단(16)이 집결

제5기에는 북한군이 안강기계, 창녕 방향으로 진출한 것을 위험한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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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육군전사는 4단계로 구분하였은데 반해 약 6년이후 발간된 괴뢰군 연혁을 5단계로 구분하였다. 괴뢰군 연혁은 육군전사의 마지막 4단계 낙동강 지역의 작전을 두단계로 나눈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괴뢰군 연혁은 한국군의 작전보다는 주로 북한군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자료들과 차이가 있다. 작전의 단계를 어떻게 나누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작전을 보는 시각과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4단계와 5단계 기간 중 한강 방어선 구축이후 제1군단장 임무를 수행중이던 김홍일 장군이 해임되었다. 특히 그 기간은 한국 전쟁당시 가장 중요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안강 기계지역의 전투가 치열하고 진행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김홍일 장군을 제1군단장에서 면직시킨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으나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 전쟁사 연구) 한국전쟁 초기 단계구분 문제 1 (육군전사, 195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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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사 연구) 한국전쟁 초기 단계구분 문제 1 (육군전사, 1952. 1)

전에 한국전쟁 조기 단계구분에 대한 내용을 살펴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라 이번에는 한국군 최초의 한국전쟁 전사인 ‘6.25 사변 육군전사’의 내용에 작전단계가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겠다.

(한국전쟁사 연구) 한국전쟁 초기의 단계구분에 대한 서술의 변화에 대해

한국전쟁 초기에 대한 내용은 제2권과 제3권에 기록되어 있어 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는 도중에 발간된 육군전사는 한국전쟁 초기 단계를 모두 4기로 구분했다.
각 단계의 명칭은 부여하지 않았으며 제1기 제2기 제3기 제4기 와 같이 구분했다. 각 편의 첫번째 장에 작전단계의 상황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기술하여 이런 단계 구분이 상황을 기초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육군전사는 단기 4285년 1월 서기 1952년 1월에 발간되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년 반만에 발간되었다.
따라서 고의적인 왜곡의 여지가 가장 적다고 할 수 있으며 당시대 군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인식을 가장 가감없이 볼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기는 다음과 같이 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38선 작전                               제 2장 한강부근 작전

제2기는 다음과 같이 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연합군의 참전에 따른 전선정리를 다음 3개 장으로 다루고 있다.

제2장 충북지구 작전(기 1)        제3장 충남지구 작전(기 1)
제4장 경북동해안 작전 (기 1)

제3기는 국제연합군의 금강선 방어 철수에 따르는 상황과 작전을 다음과 같이 모두 7개장으로 다루고 있다.

제2장 충북지구작전 (기 2)                      제3장 낙동강 북부지구 작전
제4장 보현산 부근전투(기 1)                제5장 경북 동해안작전 (기2)
제6장 국연군의 충남 충북지구 작전    제7장 호남방면 작전
제8장 낙동강 서부지구작전(기 1)

제4기는 낙동강 방어선에 대한 국군 및 국제연합군의 전반적 상황을 다음 5개 장으로 다루고 있다.

제2장 낙동강 서부지구작전(기 2)        제3장 낙동강 서부지구작전
제4장 대구방어전                            제5장 보현산부근전투(기 2)
제6장 경북동해안 작전 (기 3)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한국전쟁이 채 끝나기도 작성된 전사지만 작전과 전투의 의미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현산 부근의 전투를 제 3기와 제 4기로 나누면서 이를 다른 경우와 달리 작전이 아닌 전투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식명칭 ‘6.25 사변 육군전사’는 한국전쟁 초기 단계를 상기한 바와 같이 기간이 아닌 상황을 기준으로 작전 단계를 구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같은 지역의 전투라도 상황에 따라 단계를 구분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현산 육군전사가 제3기 단계중 중요한 전투라고 하여 1개장을 선정한 것과 달리 2008년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간한 공간사에는 보현산 부근 전투의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 보현산 부근의 전투에 대한 인식이 당시와 그 이후에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한국전쟁 최초로 작성한 전사에서 작전 상황을 고려하여 작전단계를 설정했다면 그 이후에 발간된 전사기록은 기간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는 그 이후에 발간된 전사기록의 작전단계에 대해 알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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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칼럼) 남북간 군사분야 이행 합의서에 대한 생각 추가 - 전략적 인가 전술적인가 -

오늘 제가 잘 알고 지내던 학자 한분과 통화를 했습다. 이번 남북간 군사분야 합의각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이야기다. 저는 어제 올린 내용과 같이 북한이 군비축소에 관한 그간의 입장에서 물러선 것으로 본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입장변화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좀더 생각해 보았다.

첫째 북한은 그동안 절대 변하지 않고 유지해오던 군축에 관한 주장을 바꾸었을까 ? 북한이 기존의 입장을 바꾼다는 것은 여간 보통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저는 북한이 왜 그렇게 입장을 바꾸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입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았다.

북한의 입장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분명히 북한은 과거와 다른 입장 변화를 나타냈다. 저는 그것이 북한의 전략적 입장변화인지 전술적 입장변화인지 아직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달리 북한이 상황이 완전하게 변화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상황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변화로 지금과 같은 합의서에 합의했다면 그것은 전략적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남북간 재래식 군비축소를 통해 재래식 군사력 건설과 관련된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전술적 차원의 변화다. 북한이 전략적 변화를 택한 것인지 전술적 변화를 택한 것이지 아직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략적 변화든 전술적 변화든 남북간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줄여 주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북한이 처음에는 전술적인 차원에서 지금과 같은 신뢰구축과 군비통제에 합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 바뀌면 전술적 차원의 선택이 전략적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북한의 전술적 변화를 전략적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혼자 앉아서 생각해보면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내 인식의 지평도 같이 넓어진다.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하는 가 보다.

우연히 안부를 묻는 통화하다가 생각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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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칼럼) 남북정상회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내용을 보면서

합의서 내용을 읽어 보니 초보적 단계의 운용적 군비통제 내용을 담고 있다.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다. 군비통제의 최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신뢰구축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군사분야 합의서 내용은 그동안 남한측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던 선 신뢰구축 후 군비축소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다. 북한은 이제까지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거치는 과정보다는 곧장 군축을 하지고 주장했다. 남북한간 군대를 10만으로 줄이자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내용이었다.

한편 남한은 선신뢰구축 운용적 군비통제 구조적 군비통제를 거쳐서 군대를 줄이는 군축으로 가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이번 합의서를 보면 북한이 우리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 같다. 물론 DMZ의 GP를 제거하는 것은 구조적 군비통제의 일환이라고 하겠으나 작전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많지 않아서 국방태세에 미치는 영향을 별로 없을 것이다. 상징적 수준의 군비통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 하다.

수십년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북한의 입장이 정말로 많이 바뀐 듯 하다. 앞으로 남북 관계에 긍정적 변화가 기대된다. 이번 합의서 내용을 보면서 현재 청와대 안보실 차장인 이상철 장군(예비역 육군 준장)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을 때 유럽의 군축에 관한 연구를 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냉전당시 미소간 재래식 군축에 관해 거의 유일하게 연구를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번 합의서 체결과정에서 이상철 장군이 상당부분 작용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관계의 변화 를 위해 군사분야에 있어서는 최적임자를 발탁한 것 같다. 역시 일은 사람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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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합의서 전문이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통된 인식으로부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이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① 쌍방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였다.

쌍방은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협의·해결하며,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쌍방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항행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쌍방은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구축에 따라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합의한 판문점선언 을 구현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실행 대책들을 계속 협의하기로 하였다.

② 쌍방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하였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폐쇄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동 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 금지구역 내에서 고정익항공기의 공대지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기로 하였다.

고정익항공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동부지역(군사분계선표식물제0646호부터 제1292호 까지의 구간)은 40km, 서부지역(군사분계선표식물 제0001호부터 제0646호까지의 구간)은 20km를적용하여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

회전익항공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0km로, 무인기는 동부지역에서 15km, 서부지역에서 10km로, 기구는 25km로 적용한다.

다만, 산불 진화, 지 해상 조난 구조, 환자 후송, 기상 관측, 영농지원 등으로 비행기 운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대측에 사전 통보하고 비행할 수 있도록 한다. 민간 여객기(화물기 포함)에 대해서는 상기 비행금지구역을 적용하지 않는다.

④ 쌍방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발적인 무력충돌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지상과 해상에서는 경고방송 → 2차 경고방송 →경고사격 → 2차 경고사격 → 군사적 조치의 5개 단계로, 공중에서는 경고교신 및 신호 → 차단비행 → 경고사격 →군사적 조치의 4개 단계의 절차를 적용하기로 하였다.

쌍방은 수정된 절차를 2018년 1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

⑤ 쌍방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시 연락체계를 가동하며,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통보하는 등 모든 군사적 문제를 평화적으로 협의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1.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①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상호 1km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감시초소 들을 완전히 철수하기로 하였다.

② 쌍방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비무장지대내에서 시범적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④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의 역사유적에 대한 공동조사 및 발굴과 관련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계속 협의하기로 하였다.

  1.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① 쌍방은 2004년 6월 4일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관련 합의를 재확인하고, 전면적으로 복원 이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쌍방은 서해 해상에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에 출입하는 인원 및 선박에 대한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기로 하였다.

④ 쌍방은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내에서 불법어로 차단 및 남북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활동 보장을 위하여 남북 공동순찰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기로 하였다.

  1. 남과 북은 교류협력 및 접촉 왕래 활성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① 쌍방은 남북관리구역에서의 통행 통신 통관(3통)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② 쌍방은 동 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북측 선박들의 해주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 등을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④ 쌍방은 한강(임진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1. 남과 북은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강구해 나가기로 하였다.

① 쌍방은 남북군사당국자사이에 직통전화 설치 및 운영 문제를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쌍방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남북군사당국간 채택한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며, 그 이행상태를 정기적으로점검 평가해 나가기로 하였다.

  1. 이 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고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①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따라 수정 및 보충할 수 있다.

② 합의서는 2부 작성되었으며, 같은 효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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