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쟁 18-5 제5차전역, 중국군 후방근무지원 준비와 유엔군 유인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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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후방근무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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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군사위원는 4월 16일 지시로 안동과 지원군사령부 사이에 지원군 후방근무 사령부 설치를 결정

5월 19일 지원군 후방근무반 강화에 관한 결정에 따라 정식으로 지원군 후방근무 사령부가 설립, 후방근무업무와 각후방부대의 지도를 통일
(홍학지가 사령관, 주둔전이 정치위원으로 임명)

중국군의 보급상황은 근본적으로 호전되지 못했고 최조한도의 보급이 보장되는 정도로 작전 소요를 만족시키지 못함

조선에 투입된 부대는 미군과 작전경험이 없었고 상황과 지형에 대해서도 익숙치 못함

유엔군과 중국군 작전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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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 중국군 전략예비부대의 도착 집결을 발견, 철원, 금화 방향에서 여전히 계속 공격, 진격속도는 느림

중국군은 출격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1보 깊숙하게 유엔군 유인을 결정

15일 제39, 40, 26군 주력부대에게 예정된 공격 출발진지로 축차 철수할 것을 지시
동시에 다른 돌격집단들은 공격 출발진지로 전진하도록 지시

중국군 철수하자, 유엔군 계속 북진, 19일 미군 25, 24 사단 선두연대가 철원부근의 약천동, 문혜리 지역까지 진격

연합사령원은 철원정면 적군의 상황이 돌출되어 있는 것을 감안, 4월 22일 황혼에 반격 개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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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3 제5차전역 반격전역 계획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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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반격전역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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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의 몇개 사단을 소멸시키고, 적군의 계획을 분쇄, 주도권을 다시 쟁취하는 것

문산에서 춘천사이에서 전역을 시작

국군 1사단, 영국군 29여단, 미군 3, 25, 24 사단, 터키여단, 국군 6사단이 배치

중국군 전역 지도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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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분할과 전술분할을 결합시키며, 전역포위우회와 전술포위우회를 서로 결합하기로 결정

적의 전역배치 종심이 얕고(기본적으로 전술 종심만 지니고 있었음), 적군 상호간 지원이 동서간 횡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

계획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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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병력으로 금화에서 가평방향으로 전역 돌파구를 형성 적군은 동서로 분할-서로 지원을 방해

동시에 제3병단이 정면돌격을 실시, 제9, 제19병단이 동서 양익으로 돌파후 전역우회를 실시

병력을 집중하여 국군 1사단, 영국군 29여단, 미군 3사단(1개연대 결), 터키여단 및 국군 6사단을 섬멸

이후 미군 24, 25사단을 포위 섬멸

적군의 상륙 및 공수작전에 대비위해, 제42군을 원산 양덕지역, 제38군을 숙천, 제47군을 평양에 각각 배치
인민군 제2군단을 회양과 화천, 제6군단 주력부대를 사리원과 재령지역에 각각배치

전역준비를 위한 추가적인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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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긴급히 정치동원과 전술교육을 진행

2 첫번째 참전부대 간부들이 새로이 참전하는 부대(3,19병단)에게 작전경험을 소개, 아울러 고문협조지휘부를 파견

3 작전지역 분담에 따라 전역정찰과 전술정찰을 엄밀하게 조직

4 식량, 탄약, 물자 비축으로 각부대는 5일분 야전식량을 휴대, 각 후근부대에서 추가로 5일분의 식량을 준비하여 부대를 후속

5 위생부대는 4-5만명 부상자를 수용할 수 있는 준비

6 공병대는 회천-덕현리-영원-맹산-양덕에 이르는 도로를 보수, 적군이 일단 상륙에 성공, 중국군 서부전선의 수송선을 절단한 경우 대치 수송로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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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2 제5차전역, 당시의 중국군의 상황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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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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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반격작전이후 중국군은 고통스러운 운동방어작전은 계속

적의 지상병력이 우세한 상황에서 중국군의 두번째 참전부대인 9개군이 도착하면 새로운 전역을 개시 시도

중국군의 가용 전력

지원군 9-11개 군, 포병 7-8개사단, 전차 3-5개연대, 인민군 2개군단

중국군이 예상한 4가지 가능성과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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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엔군이 중국군의 피로를 틈타 38선에서 정지하지 않고 계속 북진

2 38선에서 10-20 일정도 잠시 머물가능성

3 38선에서 비교적 긴시간(2-3 개월) 정지하여 영구축성 공사를 실시하고, 진지 대부분이 견고해진후 다시 진격

4 장시간 38선에 머물러 중국군과 대치하는 상황

처음에는 3번째 상황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으나 유엔군이 중국군의 대규모 증원군이 도착하는 것을 알게된다면 4번째 상황도 가능하다고 판단, 이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를 함

유엔군이 38선 남북지역에 진출하여 안정을 이루지 못한 때 반격작전을 실시하여 “38선 남북지역에서 미국 및 국군 수만명을 몰살시킨후 남한강 지역으로 밀고 갈 것”을 준비
(123, 1951. 3. 1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문)

제5차 전역 개시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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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지원군 당위원회, 제5차 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결정

팽덕회의 전역방침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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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앙과 모택동 주석의 “작전준비는 길게 하되 실시는 단기간에”라는 지도방침을 하달

회의의 판단

유엔군은 38선 장악한 이후 계속 북진하려 하며, 측후방 상륙을 실시하여 정면공격과 배합시킬 가능성

전선에서의 정면공격은 평강, 세포 지역에서 실시될 것으로 예상

동부의 산악지역을 점령하고, 서해안의 진남포에 상륙하며 이후 서부전선의 적군이 다시 북쪽으로 공격할 것으로 예상

적군의 가용병력이 많다면(6만명 정도), 동 서 양쪽에서 동시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

적의 진출 목표선은 39도선, 안주-원산을 연하는 선

적군의 기도가 실현되면, 중국군 주보급로가 차단되므로 적군의 상륙 기도에 대해 철저한 검토와 충분한 준비가 필요

측후방에서 상륙하여 정면공격과 배합하려는 기도를 분쇄하고 조속히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적군이 상륙하기전에 반격작전을 실시할 것을 회의에서 결정

당시 적은 지쳐 있었고 전투병력 손실과 물자소모 대한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중국군이 즉시 반격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

중국군의 전략예비대는 집결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군은 금화, 문등리, 간성까지 진격시킨 후 반격하기로 결정

적군의 진격이 빠르면 4월 20일 전후, 진격이 늦어지면 5월 초순에 반격 실시를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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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8-1 제5차 전역, 전역직전의 당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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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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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3월 하순 4차전역당시 유엔군이 38선 넘느냐 아니냐의 문제, 한국전쟁 마무리의 방식 등에 관해 미국, 영국 프랑스의 논쟁이 있었음

영국 프랑스 등은 한국전쟁에 장시간 말려들어 서구의 역량이 약화되고 유럽의 안정에 영향이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이때가 전쟁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시기라고 여기고 38선에서 사실상의 휴전을 공개적으로 주장

중국과 회담을 요구

미국은 의견이 양분

미국의 전략은 반드시 유럽 제1, 아시아 제2여야 하며 시간을 오래 허비하는 한국전쟁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영향을 줄 것이므로 한국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한 후 중국과 휴전협상을 주장

강력한 군사작전으로 승리하고 통일된 한국을 건립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중국으로까지 전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

3월 24일 맥아더의 성명

“만약 유엔군이 전쟁을 한반도내에 국한시키려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바꾸어, 우리의 군사행동을 중국 연해와 내륙으로 확대한다면 중국 공산당은 즉각, 그리고 확실히 군사적 붕괴의 위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트루먼의 맥아더에 대한 대응과 정책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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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의 성명을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에 대한 도전”, “유엔 정책에 대한 멸시”라고 하면서 4월 11일 맥아더의 직위를 해제

매튜 리찌웨이를 미국 극동군 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

제임스 벤플리트를 리찌웨이 후임으로 제8군사령관으로 임명

전쟁의 범위를 확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천천히 한국북부로 밀고 들어가 유리한 지역을 점령한 후에, 즉 실력정책을 기초로해서, 우리측과 외교협상을 진행하거나 또는 군사행동을 계속하여 아이사에서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

유엔군은 트루먼 정책에 따라 4월초 38선을 넘고 측후방 상륙을 실시하여 정면공격과 배합하면서 전선을 39도선 및 그 북쪽 지역으로 밀고 들어가 한반도의 허리부분(원산-평양)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계획을 수립

평양-원산 선의 의미

정면이 협소(170km)하고 공격과 수비에 용이하며,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 확보 가능

유엔군의 군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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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을 전후하여 서쪽 한강하구 - 임진강 - 38선 - 양양에 이르는 선까지 진격

공군은 북한 후방, 교통로, 물자적재소, 군대집결지역에 맹폭을 가함

해군도 원산 신포 등 모든 항구에 포격을 강화

동해 연해안 도서에 대한 정찰과 습격활동을 배가

4월 중순 미국 국민방위군 제40, 45사단이 본토에서 일본으로 파병
보병 제34연대와 합쳐 제16군단을 조직, 한반도 투입 준비

유엔군은 중국군 전략예비대의 집결을 발견하고 4월 하순 혹은 5월초에 중국군이 공격할 것으로 예측

제9군단 제1군단의 일부만 철원, 금화, 금성지역에서 공세를 유지하고 타 정면에서는 잠시 방어태세로 전환
중국군 전역반경에 대처할 준비

당시 유엔군의 지상작전부대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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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군단 17개사단, 3개여단, 1개연대로 총 34만명

제1선병력이 12개사단 2개여단

제2선 및 후방에 5개사단과 1개여단 1개연대를 보유, 춘천, 현리, 수원, 원주, 강릉, 대전지역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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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7-6 제4차전역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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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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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일간 적 7만 8천여명을 섬멸, 중국군과 북한군 손실은 5만3천명으로 손실비율은 1 대 0.67

적은 매일 평균 9백명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르며 1.3km를 전진

중국군은 시간을 벌었고, 전략예비대의 집결을 엄호, 제5차 전역을 위해 유리한 조건을 조성
성공적인 방어임무를 완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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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전역이후 중국군은 2개월 휴식과 정비후 춘계공세를 개시하려 했으나 미군의 공세작전으로 작전에 차질
미군이 공세작전으로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함

서부전선에서 적의 진출을 억제하고 동부전선에서 진출을 허용하다가 공격부대가 돌출될 때 노출된 측면으로 주력을 집중해서 반격을 개시하는 작전에 성공

반격작전에 성공했으나 종심을 향한 진출이 방해를 받았을 때 즉시 전전선에서 지연방어로 전환하고 공간으로 시간을 바꾸어 전략예비의 집결을 가능케 함

(제4차 전역의 과정에서 모택동과 중앙군사위의 개입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은 4차 전역이 매우 우발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4차 전역은 팽덕회의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전역인 듯하다.)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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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지역에서 반격을 실시해 국군제8사단 3개연대 및 국군 제3사단 미군제2사단 일부를 섬멸하고 동부전선의 적을 26km 후퇴하게 만듬

횡성을 반격방향으로 정한 이유

국군이 많고, 적군 배치중에서도 비교적 허술한 부위,

이곳에서 남쪽으로 공격을 계속하면 서부전선의 적 주공집단의 측면을 위협할 수 있어 비교적 적 공격태세를 동요시킬 수 있기 때문

지평리 전투

적군의 상황을 잘못 판단하여고, 일지점을 고수하려는 적의 기도를 예상하지 못하고 이미 거점식 방어 편성을 완료한 적진지에 충분한 준비없이 급히 공격을 개시하여 좌절함

지평리 전투 이후의 작전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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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배치시에 전방은 약하고 후방은 강하게 , 화력 배치는 전방은 강하고 후방은 약하게

병력은 1/3 혹은 그 이하로 방어를 하되, 다수의 병력은 기동성 있게 측면에 배치

화력은 화기분산, 화력집중, 은폐배치의 원칙을 유지

주요 경화기를 제1제대에 배치 제1선의 화력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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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7-5 제4차전역 제2단계, 4월 중순 이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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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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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병단(3개군), 이천, 철원, 평강 지역에서 집결을 완료

제9병단, 원산지역에서 휴식-재정비 후 평강, 세포 회양지역에서 집결 완료

제19병단(3개군), 3월 18일 남천, 시변리, 토산지역에 집결완료

새로 투입된 야전포병 제2사단, 제8사단 31연대, 대전차 포병, 제31, 32사단, 방사포 제21사단, 고사포, 제61, 62, 63, 64 사단도 제1선부대에 배속되거나 후방에서 임무를 담당

중국에서 파견된 4만여명의 고참병과 8만여명의 신참병도 각부대에 보충

당시 적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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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증원 병단의 도착을 탐지, 80여일간 계속된 작전으로 인원손실이 심했고 피곤한 상태
철원, 평강, 금화 지역만 공격행동을 계속하면서 중국군의 반격준비를 파괴하려 시도
기타지역에서의 공격은 중지

중국군의 반격준비와 부대배치 조정(5차 전역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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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준비를 위해 부대배치를 재조정
증원부대 일부를 방어작전 서열에 편입

인민군 제1군단, 장연리 - 한포리 까지 지역
제3병단 6군, 임진강 동쪽 - 장거리(연천 북쪽)까지
제9병단 26군 장거리-용담동
제 40군 용담동- 상만산동
제39군, 상만상동 - 북한강

북한강 동쪽지역 : 북한강 동쪽지역은 인민군 전선지휘부 소속 부대가 담당

이를 보면 조중연합사가 있었지만 인민군 전선지휘부는 독자적인 작전권을 수행한 것 같다

4월 21일까지 적군은 개성-장안-고랑포리-삼곶리-문혜리-화천-양구-원통리-간성 일대에서 저지

제4차 전력은 종료

전역 제2단계인 2월 17일부터 4월 21일까지 총 5만 6천여명의 적군을 살상 및 포로로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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