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 연혁) 33, 제 11기 전투

제11기 전투는 중공군 춘계공세 당시 북한군의 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중공군 개입이후 대부분의 전사는 중공군 위주로 정리되어있다. 그러나 <괴뢰군 연혁> 북한군의 활동을 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괴뢰군 제2군단과 제3군단은 동부 산악지대로 침입하여 51년 3월 23일에는 영월북방 5km까지 남하하는데 성공

그러나 평창, 영월 북방 창촌부근에서 아군에게 타격을 받음

3월 24일 국부적으로 후퇴를 개시, 유격대 제1, 제3지대를 일월산 방면으로 침투시킴

인천, 수원 지구에서 아군의 진격을 저지하려던 북한군 1군단은 아군의 한강도하 작전이 성공하자, 제8사단으로 지연작전을 수행토록 하고, 제17 및 47사단은 임진강 북방까지 후퇴시켜 임진강선에서 방어선을 형성케 함.

그러나 제4차 공세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제1군단은 전선배치가 불가능해, 일부로 임진강 방어를 하게 하고, 주력은 황해도 금천 남천 등지로 철수하여 병력 보충과 재편성토록 함

제5군단은 원주, 평창 선으로부터 퇴각을 개시하여 제6사단일부병력으로 지연작전 토록하고, 주력은 재편을 위해 4.15현재 양구 북방으로 이동 집결토록 함

제2군단은 영월지구에서 패배한 이후 하진부리-오대산으로 월북하여 고성서방 25km 부근에서 재수습함

괴뢰군 제10사단은 2월말 팔공산 부근에서 한국군 제2사단과 9사단에 피해를 입고 일월산 장군동 연화봉을 경우 비촌수하리를 통과하여 약 1,000명 미만이 3월 18일 월북, 대부분은 손실

제3군단은 1951년 2월말까지 인제 횡성 평창지구까지 침공하여 괴뢰군 제2군단과 제5군단의 후퇴작전을 엄호하기 위해 제8군단으로부터 제45사단의 중원을 얻어, 아군의 북진을 저항. 4월 15일 현재 양구 인제 방면으로 철수

4월 5일경 연합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개시하자 전초방서선 즉, 임진강, 연천, 양구, 인제, 양양선은 붕괴

적주력은 금천, 시변리, 신계, 철원, 금화, 고성 선으로 후퇴 일부병력으로 중공군과 협동지연 작전을 감행

제4차 중공군 공세 당시 북한군은 매우 전전선에 걸쳐 매우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에 따른 피해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중동부 전선에서 한국군 후방지역으로 깊숙하게 침투한 작전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북한군 1군단이 서부전선에서 활동한 내용도 좀더 추적해 볼필요가 있는 것 같다.


Steem의 실제 생활 용도, 협동조합이 어떨까요 ?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를 이야기하고 있었더니 스팀가격이 폭락을 했다. 선물거래소 백트가 들어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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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군 연혁) 32, 제10기 전투

10기 전투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의 내용이다. 이때 당시 50년 12월 31일 시작된 공세이다. 중공군 참전이후 대부분의 전투는 중공군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제3차 공세에서는 인민군의 역할도 상당했다. 특히 유격전을 수행하던 제2군단은 제3차 공세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51년 1.1 00:30 38선 일대에서 전투준비를 완료한 적 24만명은

주력을 동두천-의정부로 지향

조공을 개성-문산-선금-화천-춘천-인제-현리선으로 두고 공격

괴뢰군 1군단은 개성방면으로 임진강을 도하 강행하여 주공인 중부지역의 중공군을 지원

제1군단은 1.4일 서울에 침입

1월 6일 09시 서울을 점령한 중공군 38군, 39군, 40군 42군 50군은 한강을 도하, 1월 16일 수원선에 진출

중공군과 합동작전을 수행한 괴뢰군 제1군단(8사단, 47사단, 17사단)은 1월 8일 47사단을 인천, 17사단을 서울에 남기로 8사단만 중공군과 합동으로 수원방면으로 남하

괴뢰군 제5군단(6,7,12,38,43,27사단 3여단)과 중공군 3야전군 11병단 37군은 1월 3-4일간 괴뢰군 제2군단의 견제공격을 이용하여 춘천을 점령. 이때 한국군은 3사단, 5사단, 8사단)

이후 홍천, 횡성을 거처 1월 7일 북한군 제6사단 12사단 27사단 주력이 원주를 점령

괴뢰군 제2군단 2사단 4사단 9사단 10사단 27사단 14연대 31사단, 맹산방면에서 조직된 남조선 유격대 총사령부 소속의 유격대 제1,2,3,5,7여단과 중공군 2병단이 오대산 방면으로 침투 남하

북한군 유격대는 현리방면으로 남하-발왕산-정선-영월방면으로 남하한 제2군단 9사단과 함께 영월을 1월 13일에 점령 일부는 일월산 방면으로 진출

한국군 제1군단 정면에는 북한인민유격대 김원팔부대와 3군단 소속 15사단 2연대 3대대로 이들은 1월 20일 강릉을 점령

북한군 제2군단 일부는 계속 남침했으나 평창, 영월, 남대리 일대에서 손실을 입고 제10사단만 와룡산, 청송, 의성을 통과하여 보현산까지 남하

1.7일 원주를 점령한 북한 제5군단은 모두 심각한 손실을 입고 최초 7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던 군단이 3개사단으로 해체 재편되어 춘천-홍천에서 병력 수습

1.1일 00:30 38선 공격과 동시에 유격대 길주 8부대 제1,3,5,7 유격여단, 제1,2 병단은 인제, 고대산, 발왕산, 영월, 명산 지구로 침투했으나 모두 격멸당함.

그중 제1병단이 충청도 지역 침입에 성공했고 문경, 괴산 일대에서 병력을 재수습 남부군단으로 개칭함

제3차 공세이후 인민군과 중공군은 수원, 양녕, 원주, 평창, 영월 선에서 방선을 구축

김일성은 최고사령관 명령 제7호(51.1.5)를 발령하여 서울해방의 승리를 기념하여 1월 3일 20시에 평양과 서울에서 240문의 대포로 각각 24발의 축포 발사를 명령함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

모두들 자신의 삶에 불만들이 많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지나칠 정도로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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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군 연혁) 31, 제9기 전투

중공군 제1,2,3차 공세 시기에 북한의 군단의 활동에 관한 기록이다

중공군 2개 야전군이 전선에 참가하자 북한군 제1군단은 서해안 지구로 남진하여 중공군 제4야전군과 합류, 50.12.5 평양을 점령하고 차기 공세를 위해 약 15일간 전선을 정리

강계일대에서 재편한 북한군 제5군단은 중공군 제3야전군의 뒤를 따라 양덕, 영원, 곡산부근으로 남하, 동해안 유엔군 제10군단 및 국군 제1군단의 고립을 시도

함북 동해안에서 아군의 북진을 저지하던 북한군 제4군단은 관하부대를 해군사령부에 인계, 동해안으로 재남하, 북동으로부터 아군을 압박,

철원, 금성, 곡산, 이천 일대에서 유격전을 감행하던 제2군단은 제5군단과 합류 12월 하순 화천 이동 동부산악지대 38선 일대에 집결완료

장진호, 함흥, 원산, 금성으로 남하한 북한군 제3군단은 12월말까지 38선 일대에 집결완료

<괴뢰군 연혁>은 중공군이 아니라 북한군의 활동을 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제1,2,3차 중공군 공세 당시 북한군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를 보면 중공군 공세당시 북한군 군단들은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각군단들이 38도선에 배치된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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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군 연혁) 30, 제3장 괴뢰군의 부대 재편 및 재남침 개요 2

제3군단

제1사단

1950년 9월 16일 군위부근에서 퇴각 10월 18일 평북강계에 도착 재편, 20일 휴식후 11월 8일 강계 출발, 장진 -함흥 원산, 회양, 평강, 철원, 화천, 춘천 선으로 침입, 홍천, 횡성, 안흥리, 대화, 평창으로 남하했으나 반격을 받고 다시 양구방면으로 퇴각하여 지연작전 수행

제3사단

1950년 9월 16일경 왜관정면에서 패배 이후 12월 강계에 도착 재편

12월 3일 강계출발, 초산, 박천, 성천, 양덕, 경유, 신고산, 금화, 화천, 춘천, 홍천으로 남하

한국군의 반격으로 양구 방면으로 북상

제9사단

50년 9월 18일경 포항전투에서 패배, 동해안으로 월북 강계 부근에서 재편, 양덕, 금성산까지 남하

한국군 유격대가 황해도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자 황해도로 급파 이후 남포에 주둔

제15사단

50년 9월 9일 영천전투에서 패배이후 강계부근까지 북상 재편

군관들은 양덕, 금화, 화천 지구로 남하 제31사단과 혼성 3개연대를 편성,

속초리부근까지 남하 반격을 받자 양구로 퇴각하면서 지연작전

제4군단

제105 사단

50년 9월 15일 낙동강에서 전차 대부분을 상실, 보병화되어 태백산맥과 대전-서울 선으로 퇴각

청천강이북에서 제94연대와 제67연대를 편입, 50년 10월 26일경 재편

본부를 개천에 두고 주로 서해안 경비에 임하다가 3월하순 숙천으로 이동

제23여단

50년 2월 12일 해주에 도착, 황해도 일대에서 아군 유격대와 교전

제26여단

50연 10월 14 사리원까지 남하 아군에 격퇴, 청천강 이북으로 후퇴, 만포부근에서 재편, 재차 남하 남포에서 경비

제5군단

제6사단

50년 9월 24일 함안 마산 일대에서 미 제25사단에게 타격, 진주, 전주, 조치원 태백산맥을 경유 10월 30일 양구에 집결 재북상

11월 말, 희천 북방 6km 지점에서 패잔병 규합 제6사단 재편

12월 5일 야간을 이용 남하, 이천, 평강, 금화 경유 개성에 도착

12월 31일 인제에 침입

51년 1월 4일 조동에 도착 원주전투에서 타격을 입고 동진 제천방면으로 남하하려다가 퇴각 양구방면에 집결 재편중

제12사단

50년 9월 16일 안강 기계전투에서 패배후 안동 제천 경유 후퇴

11월 26일 강계도착 재편성, 애창, 신창, 금화, 진동리를 경유, 신당리 부근으로 남침

51년 1월 12일 원주전투에서 패배 1.14 사곡까지 후퇴, 치악산 줜리 부근으로 남침, 반격으로 퇴각 양구 방면으로 후퇴지연 작전

제7사단

50년 9월 15일 선녕(? 창령) 부근에서 미제25사단에게 타격을 받고 북상,

12월 20일 철원, 연천 방면으로 남하 백자동으로 남침 원주를 향해 전진했으나 패배후 주천리 방면으로 남침 개시, 반격을 받고 양구방면으로 퇴각

제43사단

50년 10월 10일 해주에서 분산, 사리원 평양 경유 북상 곡산 철원으로 남하 원주를 공격하다 타격을 받고 해체

제27사단

50년 11월 5일 옥동리에서 제27여단을 개편 사단으로 개칭

철원, 금화, 화천을 경유 51년 1월 4일 구성포리 방면으로 침입

1월 22일 평창으로 동진하다 타격을 입고 2월 20일경 해체

제6군단

50년 11월 30일 중공군 4개군과 인민군 제1군단이 청천강에서 지연작전시

민주 통화성 항인(황인?)과 우모자 부근에서 재만 의용군 재만 청년, 월경한 패잔병과 국군 포로를 강제모집. 훈련시켜 3개사단을 신편. 약 2개월간 훈련후 51년 2월 7일 제18사단은 벽종으로 제19사단은 추산으로 제36사단은 삭주로 각각 입북시킴

제18사단

51년 2월 7일 백종을 출발, 운산, 희천, 개천, 순천, 성천, 강동, 수안, 금천을 경유 남하, 중화(평남) 사리원(황해도) 부근으로 북상.

황해도 지구 경비

제19사단

51년 2월 7일 초산을 출발 운산 개천 순천, 성천 금천을 경유 개성 문산선에 도착. 임진강 방어, 반격을 받고 누천부근으로 퇴각

제36사단

51년 2월 7일 삭주를 출발 운산, 개천, 순천, 성천, 금천을 경유 재령에 도착 경비

제7군단

50년 11월말 중공군 4개군 인민군 제1군단의 지연작전으로

만주 반석에서 주로 재만한인을 강제모집, 3개사단을 편성 50년 12월 말 강제로 입북

제13사단, 제32사단, 제38사단은 3월말경 회양지구에서 남하

제7군단

50년 11월말 만주 연길 용정일대에서 주로 재만 한인 패잔병 국군 포로들을 편입 3개사단을 편성

제46사단은 51년 2월초 회령으로 입북, 동해안으로 남하, 3월말 현재 함흥지구에서 동해안 경비

제45사단은 강계로 입북, 양덕방면으로 남하, 인제 남방에서 지연작전을 실시, 동해안으로 재남하, 북동으로부터 아군을 압박

철원, 금성, 곡성, 이천 일대에서 유격전을 감행하던 인민군 제2군단 제5군단과 합류

12월 하순 화천 이북 동부 산악지대 38선 일대에 집결 완료

제3군단은 장진호 함흥 원산 금산으로 남하 12월말까지 38선 일대에 집결완료

당시 38선 돌파를 위해 12월말까지 38선 일대에 집결한 병력은 다음과 같음

중공군 제17만명

인민군 제16만명

총 33만명

만주지역에서 6,7,8 총 3개군단의 병력이 재편되었고, 제2군단과 5군단은 강원도 지역일대에서 유격전을 수행했다.

1,3,4군단은 북쪽으로 철수하여 재편을 했다.

(우리는 인천상륙작전이후 북한군이 거의 괴멸상태가 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북한군은 매우 빨리 전력을 회복했다. 특히 만주일대의 조선족들이 전력회복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이점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2019년 10월 23일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

모두들 자신의 삶에 불만들이 많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지나칠 정도로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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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군 연혁) 29, 제3장 괴뢰군의 부대 재편 및 재남침 개요. 1. 제1,2군단

한국전쟁에서의 초기작전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했기 때문이 <괴뢰군 연혁>도 초기단계까지만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괴뢰군 연혁>은 중공군의 개입이후의 과정에서도 북한군에 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제까지 발간된 자료는 중공군 개입이후에는 주로 중공군과 유엔군의 작전과 전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책은 북한군에 관한 자료 를 제대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책을 먼저 모두 다 정리하기로 했다.

제3장은 중공군의 개입 계기로 북한군이 재편해 나간 과정을 군단별로 다루고 있다.

제1군단

제8사단 :

1950년 9월 23일 의성지구에서 퇴각 시작, 예천, 풍기, 단양 경유 38선 월북, 10월 10일 초산에 도착 재편,

운산(평북), 신안주(평북), 평양, 사리원을 경유 12월 24일 개성 용현리에 도착 임진강 도하작전에 참가

1951년 1월 4일 서울을 점령, 1월 17일 문월리까지 진출후 퇴각, 서울-개성을 통과 임진강 도하후 임진강 북안일대애서 정찰전

제17사단

1950년 9월 의흥지구에서 소유하고 있는 전차 전부를 손실하고 퇴각

10월 13일 철원경유 북상 11월 4일 신의주에서 재편

11월 6일 박천(평북)으로 이동 평양을 경유 12월 25일 남천에 도착

1951년 1월 4일 서울에 침입, 국군이 한강을 도하하자 금천(황해도)부근으로 퇴각 재편

제47사단

1950년 10월 3일 평북 구성 부근에서 신편, 청천강 전투에 참가, 평양 신천(황해도) 경유, 12월 25일 금천(황해도)도착

1951년 1월 4일 서울에 도착 한강을 도하 1월 8일 인천에 도착

임진강 도하 연백(황해도)지구로 퇴각

제2군단

남한에서 월북하는 낙오병을 규합 최현을 중심으로 강원도 철원일대에서 재편, 9,10, 15사단은 제2군단과 같이 잔여사단의 재남하를 기다리며 유격전 감행

제2군단은 주력을 아군후방에 투입시켜 낙동강선 이남 혹은 이북에서 후방교란

제2사단

1950년 9월 15일 초개 일대에서 퇴각, 태백산 타고 북상, 10월 강계에서 재편, 희천, 양덕, 철원을 경유 제2군단에 배속

금화 화천(강원도)을 통과 1월 1일 총공격을 개시, 내평리로부터 남침, 1월 12일 항산리, 고리령을 통과 품색골 부근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고 평창(강원도)지구로 도주

제4사단

1950년 9월 16일 운산지구에서 패배, 11월 초 녕원부근까지 퇴각 재편

11월 24일 대광리 경유 12월 8일 이천지구로 남하 철원 통과 1951년 1월 7일 횡성동북 15km 지점까지 남침, 이후 평양지구에서 북상

제9사단

1950년 9월 25일 고명 부근에서 퇴각, 퇴로 차단당한 후 영동, 대전을 경유 일부가 서울에 도착 서울 방위군에 편입

대부분은 11월 5일까지 태백산을 이용 강원도 이천군 후평면까지 퇴각하여 재편성, 금화 금성일대에서 유격전 수행, 남하한 제2군단의 사단들과 합류하여 38선 재침공,

물골리 경유 1951년 1월 12일까지 옥동리부분에서 침투작전을 개시했으나 실패, 평창을 경유 설악산 부근으로 북상

제31사단

1950년 9월 서울 방위, 인천상륙작전후 의정부, 평강, 이천, 곡산, 희천, 경유 강계까지 패주

11월 초순 위원에서 재편 11월 20일 위원출발, 이천, 평강, 금화, 화천을 통과 38선 침공

1951년 1월 15일 물롤리 일대 침입, 남대리 부근에서 제15사단을 통합 재편, 남대리 일대에서 피해,

1951년 1월 19일 영춘 방면 경유 퇴각,

2월 11일 패화리에서 해체되어 다른 사단에 편입

제15사단

1950년 9월 15일 영천전투에서 패배, 합덕리 녕월을 경유 곡산지구에서 집결, 주력은 강계부근으로 북상

일부는 11월 19경 이천부근에서 패잔평 통합 제15사단 재편, 곡산, 이천, 철원 일대에서 유격전 수행

화천지구로 남하, 춘천, 홍천 부근에서 침입, 1951년 1월 13일 남대리 에서 패배 2월 20일 해체 제2군단 여타 사단에 분산 편입

제10사단

1950년 9월 10일 현풍부근에서 패배, 태박산맥이용 금화부근으로 후퇴

10월 30일 양구, 금성, 일대에서 유격전에 참가,

11월 강원도 화천군 아산면 가일리, 철원에서 후방교란

1951년 1월 1일 38선 일대 돌파작전 이후 인제부근으로 남하, 지촌, 사창리, 감척, 제천, 송악산으로 침입, 학가산, 와룡산으로 이동, 의성 동방으로 침투 아군 후방교란 작전을 감행

1951년 2월 12일 4000명이 보현산까지 침투 대구를 위협, 이후 국군의 포위작전으로 일월산, 장구봉, 연화봉, 도계리, 신기동을 거쳐 북상, 장군암, 노인봉 경유 약 1000명이 북상

제19사단

1950년 9월 28일 남천, 금천(황해도)선에서 방어, 10월 5일 퇴각, 12월 16일 철원에 재출현

관대리부근에서 38도선 남하 영월부근까지 남하하는데 성공했으나 원래 불완전 편성사단이며 심대한 손실로 해체

(제2군단의 경우 월북을 하지 않고 강원도 일대에서 유격전을 계속했다. 제2군단은 유엔군의 동부와 서부의 연결을 차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작전적 평가는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다.)

(제2군단의 몇몇 사단들이 관대리 전투에서의 패배로 해체 재편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관대리 전투는 그런 의미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듯하다. 관대리 전투는 고지전이 아니고 기동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

2019년 10월 22일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관련하여 참조할만한 자료들

특정 매체’만’을 접하지 말고 다양하게 접하는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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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군 연혁) 28, 한만국경 도달시까지

압록강과 두만강을 한만국경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세웠던 만주국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평향이 함락되자 김일성은 사령부를 제1차로 희천, 제2차로 강계로 이동시켰다.

제1차 방어선을 안두 던천서, 제2차 방어선을 희천선, 제3차 방어선을 강계선으로 했으나, 한국군 제2군단이 제2차 방어선을 돌파하고 한만국경인 초산을 첨령했다.

동해지구의 북한군은 함흥을 빼앗긴 후 장진, 갑산, 성진 방면으로 북상하여 재편을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이 규합한 병력은 79,000명으로 포50문 전차 자동포 약 62대 정도로 추산되었다.

(그렇게 밀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병력과 장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한다.)

퇴각중 강제모집을 하여 구성인원의 7-80%는 전투경험이 없는 신병이었다.

북한은 만주 길림성 반석에서 보낸 보병 3개사단으로 제7군단을 창설하고

이 기간중 강건군사학교가 평북시중으로 후퇴했다.

영변 훈련소는 남한 출신 지원병으로 편성, 527부대로 호칭하고 만주로 후퇴했다.

12사단은 만포진 지구, 제3사단은 박천을 거쳐 강계로 후퇴했다.

제7사단은 강계군 대동면까지 후퇴

제37사단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창설, 만주 길림성 지구까지 퇴각

제23여단은 영원지구로 후퇴, 제24여단은 강계지구로 후퇴, 25여단은 사영경유 성진으로 이동

해군 군관학교 예하 3개 대대를 편성 나진으로 이동함

1950년 10월 북한군 항공사령부는 동북만주로 이동

10월 26일 17:00 중공군은 상호방위협정의 이행과 동양제일의 수풍댐을 장악하기 위해 신의주 삭주 단포진으로 약 4개군 병력 12만명이 개입

북한군은 신천-구성, 강계-장진, 나진-무산 선에서 중공군 4개군의 진입을 계기로 병력을 수습하고 총반격 태세를 준비하고 있음

이번 내용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내용이 있다.

만주 길림성 반석에서 3개사단을 보내 제7군단을 편성했다. (반석이 어디인지 확인할 필요)
중공군이 상호방위협정 이행을 위해 개입했다. 한국전쟁 발발이전에 북한과 중국이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다는 주장은 현재까지 <괴뢰군 연혁>밖에 없다.
올린이:admin2019년 10월 21일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가

모두들 자신의 삶에 불만들이 많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지나칠 정도로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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