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17,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한 김일성의 인식,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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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세계적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마오쩌둥을 만나서 한국전쟁에 대한 협의를 하라고 지시했다. 김일성은 마오쩌둥을 만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스탈린의 승인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요구가 이미 모스크에서 충분히 달성되었기 때문에, 조선은 더 이상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235, 각주 68 스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낸 전보, 1950년 5월 12일, АВПРФ, ф.0102, оп, 5а, п22, д.49, лл 49-67)고 한 것이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중국을 방문하라고 한 것은 한국전쟁에 중국을 개입시키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그런 스탈린의 계산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5월 12일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5월 13일 회담이 있었으나 회담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235) 그러나 로쉰이 모스크바에 보낸 전문을 보면 북한과 중국의 회담은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은 자신들이 “무력으로 조국을 통일시키겠다는 의사도 이문제에 대한 모스크바의 회담결과를 통보”하기 위해서 중국을 방문했다.

13일 밤 23시 30분경 조우언라이가 소련대사관에 와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먼저 “상황이 과거와 달라 조선 동지들이 행동을 개시해도 됩니다. 그러나 이문제는 반드시 중국 동지들 그리고 마오쩌둥 본인과 토론해야 합니다. 마오쩌둥 동지는 이문제에 대해 스탈린 동지 본인의 설명을 듣기 원합니다.”(235 주 69 로쉰이 모스크바에 보낸 전보, 1950년 5월 13일,АВПРФ, ф.059а, оп.5а, п.11, д.3, лл.100-103,) 라고 이야기 했다.

마오쩌둥이 스탈린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두고 무엇인가 서로 이견 조정 혹은 거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김일성이 스탈린의 동의를 구했다는 말을 믿지 못해서 스탈린의 설명을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스탈린은 중국의 요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스탈린은 우선 김일성의 제의에 동의했다는 것을 밝히고 다가오는 한국전쟁에 관해 중국의 관여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문제는 반드시 중국과 조선 동지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며, 만약 중국 동지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받드시 다시 토론해야 합니다. 회담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선동지가 상세하게 설명할 것입니다.”(236,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전보, 1950년 5월 14일, АПРФ, ф.45, оп.1, д.331, л. 55)

상기 전문을 보면 스탈린이 마오쩌둥을 한국전쟁 개입이 한국전쟁을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수 있다. “만약 중국동지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반드시 다시 토론해야 한다”고 한 것은 스탈린은 만일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면 한국전쟁을 전면적으로 재고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마오쩌둥은 스탈린의 전문을 받은 날인 5월 14일 로쉰을 통해 “<조중동맹조약>의 체결에 대해 마오쩌둥은 조선이 통일을 달성한 이후 이 조약에 서명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스탈린 동지와 협의해야 한다고 대답”(236)한 것이다. 여기에서 갑자기 마오쩌둥이 <조중동맹조약>의 체결을 언급했는지 분명한 해석이 없다. 로쉰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1950년 5월 14일, РГАСПИ, ф.558, оп,11, д.62, лл. 71-72,Новая и новейшая История, No. 5, 2005, cc. 94-95)

션즈화는 스탈린이 마오쩌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평가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스탈린은 새로운 동맹국인 중국에 대해 두가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즉 마오쩌둥이 사전에 모스크바의 결정에 반대할 것이라는 것과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마오쩌둥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모스크바의 지휘를 따르지 않을 것에 대해 우려했다.”(238)는 것이다.

한편 션즈화가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쟁에 개입시키려고 한 이유중 “만약 위기와 어려움이 출현하더라도, 중국이라는 동맹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238)이라는 것이다. 션즈화는 소련이 동북지역의 기득권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스탈린이 만일의 경우 중국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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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연구 경향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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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가 한국학자보다 외국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전쟁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가 주로 외국에 많이 있다보니 외국사람들이 연구를 먼저 시작한 경우가 있다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까지 기울이지 않은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전쟁에서 수백만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중의 하나가 한국전쟁이었다.

한국학자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지엽적인 부분에 머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냉전의 상황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미국과 소련의 관계 그리고 소련과 중국, 당시의 동북아지역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점은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 본다.

연구의 방향도 학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 그리고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학자들은 대개가 미국이나 러시아 학자들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미국과 러시아 학자들의 안목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 한국전쟁 전반에 대한 리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각국의 학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의 학자들은 부지불식간에 자국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발생과정과 원인을 기술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볼때 한국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전쟁은 국제전이나 내전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국제전과 국내전이라는 이중적 성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국제전적 성격에 대한 접근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앞으로는 국제전적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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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의 조선전쟁 15, 한국전쟁에 적극적이었던 마오쩌둥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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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는 자신이 파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신중국이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 마오쩌동은 중국의 동쪽 국경에서 긴장상태와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다음으로 스탈린은 중국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에 대해 매우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227)라고 기술하고 있다.

중공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를 잘 알고 있었던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쟁에 가담하도록 한 것은 보통일은 아니다.

특히 당시 “소련이 중국과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신뢰하지도 안심하지도 않았다”(226)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은 매우 이중적이다. 김일성과의 대화에서 모택동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1949년 5월 15일 스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낸 전문, 1949년 4월 김일이 중국을 방문한 결과를 김일성이 스티코프에게 통보한 내용, 에 따르면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229 각주 51)

“중국은 언제든지 동베이에 주둔하고 있는 2개사단과 그들의 모든 장비를 중국정부에 넘겨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다른 1개 사단은 전투가 끝나야 남방에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1개월 이후에나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이 제기한 이 3개 사단에 필요한 탄약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마오쩌둥은 그들은 탄약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제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마오쩌둥과 주더는 조선의 상황에 대해 세밀하게 질문했다. 마오쩌둥은 조선에서는 언제든지 군사행동이 시작될 수 있으며 김일성은 반드시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어야 하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서의 전쟁은 속전속결로 끝날수도 아니면 지구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마오쩌둥은 “일본이 개입해서 남조선 정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지구전은 당신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없다. 소련이 옆에 있고 동베이지 지방에 우리가 있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은밀하게 중국의 병사를 증파할 수 있다. 모두 검은 머리를 하고 있어서 누구도 분별해 낼 수 없다.”(228)

마오쩌둥은 분명하게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면 참전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소한 1949년 4월 이전에 마오쩌둥은 한반도의 군사상황에 참가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오쩌둥이 ‘소련이 옆에 있고 동베이 지방에 우리가 있다’고 한것이다. 이것은 이미 그 당시에 소련과 중국이 한반도의 군사정책에 대해 상당한 수준에서의 토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만약 조선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중국은 가능한 모든 지원, 특히 위에서 언급한 사단의 식량보급 및 무기일체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한 후 남조선이 일본의 힘을 빌려 조선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김일이 말하자, 마오쩌둥은 조선도 반격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도, 만약 일본군이 참전하면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적이 우위를 점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당, 군 및 인민이 심리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마오쩌둥은 특히 “만약 미국이 철수하고 일본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조선 동지들이 남조선으로 진격해 내려갈 필요가 없고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남쪽으로의 진격과정에서 맥아더가 신속하게 일본에 있는 부대와 무기를 조선으로 이동시킬 수 있지만, 우리의 주력부대는 여전히 창강의 남쪽에 있어서 신속하고 강력한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조선에 침략해 올 때에는 우리의 정예부대를 신속하게 파견해서 일본군을 섬멸할 수 있다”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이 보충해서 말했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모스크바와 협의한 이후에만 실행가능하다.”(229, 각주 52, 코발레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보, 1949, 5, 18, АПРФ, ф. 45, оп, 1, д. 331, лл. 59-61)

1949년 당시에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일본은 한국에 군대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마오쩌둥이 일본이 참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으로 진격하지 말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중국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유추해보면 마오쩌둥은 국공내전이 종식되면 북한이 남한으로 진격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맥아더가 전쟁을 지휘할 상황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미 그 시기에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대한 기본 정책방향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오쩌둥이 모스크바와 협의를 강조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미 이전에 중국과 소련간에는 한반도 전쟁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해서 중국이 한국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적어도 한국전쟁에서의 기획은 스탈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션즈화는 상기 전문의 내용을 들어 중국의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해석했다.

션즈화는 중공군에 있던 조선인들을 귀환시킨 것이 중공이 한국전쟁에 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인부대의 북한 귀환에 대해서는 230-23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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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의 조선전쟁 14,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쟁에 개입시키고자 했던 이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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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는 스탈린이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미국과 중국 문제에 대한 처리의 중점을 다음 세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라

션즈화는 스탈린의 이런 방침에 따라 “소련의 결정이 미국의 간섭을 야기할 것이란 점을 고려했다면, 전체적인 사건의 발단을 완전히 달라졌을 것”(222)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스탈린은 미국이 간섭할 경우를 고려하여 중국의 참전을 미리 생각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마오쩌둥과 전쟁문제를 상의하라고 한 것은 전쟁이 예상대로 단기간에 끝나지 못하고 장기전이 될 것에 대한 대비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접근이다.

  1. 스탈린은 “조선반도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직접 나서서 간섭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션즈화는 스탈린이 미국이 간섭하지 못할 것이라는 북한 지도자들의 평가를 믿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 지도자들의 평가는 미국이 직접적인 무장개입을 하지 못할 것이며, 기껏해야 공군을 파견해서 지원하거나 군사적인 지휘를 도울 것이라는 것이었다.”(223의 각주 43 참조)

  1. 만약 미국이 간섭하면 중국이 참전해서 상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문제에 관해 션즈화는 스탈린이 중국을 참전시키는 방안을 구상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스탈린은 만약 미국이 간섭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당연히 고민하고 있었으며, 그의 대책은 만약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이 나서서 책임을 지는 것, 즉 중국군이 직접 미국의 위협에 대항토록 한다는 것이 스탈린의 방안이었다. 이런 생각에 근거해 스탈린은 조선의 군사행동을 허락한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마오쩌둥의 의견을 들으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224)

만일 스탈린이 미국의 참전시 중공군의 참전까지 고려할 정도라면 그것은 스탈린의 한국전쟁 승인이 적어도 동북지역에서의 제국주의적 욕구를 한반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임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것이다.

스탈린은 1950년 4월에 있었던 김일성과의 마지막 회담에서 마오쩌둥과 이문제를 협의하라고 다시 한 번 촉구하면서 “만약 당신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면, 나는 전혀 도울 수 없으니, 마오쩌둥에게 가능한 모든 도움을 요청하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224, 각주 47, 곤차로프의 저서)

스탈린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마오쩌둥도 단도리를 했다.

5월 14일 김일성이 스탈린의 계획대로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에 마오쩌둥과 의견을 나눌때, 스탈린은 다시 마오쩌둥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모스크바가 이미 조선인들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에 동의했으며, 이문제는 반드시 중국과 조선 동지들이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만약 중국 동지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225 각주, 48, 1950년 5월 14일, АПРФ, ф. 45. оп.1, д.331, л.55)

션즈화도 스탈린의 의도가 “근본적인 의도는 만약 미국이 나서서 간섭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이 조선을 지원하는 책임을 떠 맡으라는 것”(225) 라고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오쩌둥도 스탈린의 의도를 알았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발을 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련 공산당의 지도를 수용했을 경우, 그러나 이제 까지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볼때 그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둘째, 소련으로 부터 한국전쟁에 참가할 경우 군사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 그것도 그리 희박하다. 미국과 전쟁을 할경우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고 그럴 경우 소련의 지원으로는 인민생활의 발전은 고사하고 현상유지도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한국전쟁 종료이후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기 위한 군사적 지원을 소련이 약속했을 경우다. 당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 공군의 개입이 미국의 개입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마오쩌뚱과 리우샤오치와의 회담에서 분명하게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대만지원의 댓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넷째, 한국전쟁에 참가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우선권을 약속 받았을 경우, 이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한 것을 보면 소련과 중국간에는 그런 거래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네번째 상황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인천 상륙작전이후에 중공이 참전을 결정하는 것과 전쟁이전에 참전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한국전쟁의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이것이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외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외피를 한꺼풀 벗어 버리면 오래된 세력정치의 단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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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의 조선전쟁 13, 션즈화의 입론에 대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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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는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생각을 이책 중반에서 다음과 같이 비교적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을 때, 스탈린의 관심은 다시 유럽에 먼저 집중된다. 따라서 소련은 조선 문제에 일찍이 1947년 부터 미국과 각기 다른 길을 갔으며, 조선 남부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 조선의 북쪽만을 통제하는데 만족하면서 이 지역을 소련 극동지역의 안전판으로 삼으려고 했다. 마오쩌둥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기 전까지, 스탈린의 진심은 원래의 <중소동맹조약>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동북아에서 소련의 기득권을 보장하고, 조선에서 다시 한 번 미국과의 충돌을 유지할 수 있는 위기를 맞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950년 초 마오쩌둥과 담판후 스탈린은 이 지역에서의 기득권을 상실하게 되리란 것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조선반도에서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통제가 당연히 모스크바의 의사일정에 오르게 되었다.”(219)

상기 내용은 션즈화의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입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여러가지 면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션즈화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소련이 중소동맹조약을 통해 동북지역에 대한 기득권을 확보했으므로 한반도 북쪽만 통제하는데 만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다. 외교문서와 증언,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가 없었다. 개인적인 추론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소동맹조약은 1945년 8월 14일 소련과 국민당 정부간 체결되었다. 그 이후에 소련이 한반도의 38도선 부근에 진출한 것은 8월 23일 정도였다. 그리고 9월에 미소간 38선에 합의했다.

원래 한반도는 미국 소련 중국 영국이 신탁통치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소련이 38도선까지 진출한 것은 얄타회담에서 합의한 것보다 이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그 정도로 소련의 진출을 막은 것이 다행이었을 것이다.

소련이 38선에서 남진을 중단한 것은 일본도 4개국 신탁통치를 하기로 했던 얄타회담에 비추어 일본본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당시 소련이 38선에서 남진을 중단한 것은 <중소동맹조약>체결에 따른 결과라고 보기보다는 소련이 일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이 소련에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 이후 소련이 일본에 대한 점령요구와 미국의 거부는 결국 소련이 한반도를 장악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션즈화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38선으로 나누는 문제에서 스탈린은 미국이 조선반도의 남부를 점령하고 소련은 38선 이북의 일본 본토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의 교환을 시도했다”(220) 한반도에서 소련이 38도선에 머문 이유를 일본본토지역의 일부를 점령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주장해 놓고, 중국에서의 기득권을 상실했으니 다시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기로 했다는 주장은 견강부회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소련은 미국이 일본 전체를 차지했으니 소련은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후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라기 보다는 미국과 소련간 세계전략의 충돌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즉 베를린 문제가 발생하면서 소련은 미국에 양보를 하게 되고, 힘의 열세를 인정하게 된다. 그 이후 소련은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두고 극동지역을 이용하는 성동격서식의 전략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소련은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차지한 동부유럽에서의 기반을 확고하게 굳히려고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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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의 조선전쟁 12. 스탈린의 한반도에서의 정책 수정동기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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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는 스탈린이 조선반도 정책을 수정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1950년 1월 19일자 쉬티코프의 보고에서 언급한 전문

쉬티코프는 1월 17일 조선대사 이주연의 중국 취임 환송연회에서 김일성이 “중국이 해방전쟁을 완성한 후의 문제는 바로 어떻게 남쪽인민을 해방시킬 것인가하는 문제”가로 한 것
이때 김일성은 “내가 모스크바에 있을때 스탈린 동지가 나에게 남쪽으로 진격할 필요없이 이승만 군대가 북쪽으로 진격할 때 남조선으로 반격하면된다”고 했다는 내용을 언급한 것을 보고(션즈화 211-212)

2 1950년 1월 30일 스탈린의 회신

“이런 일은 잘 조직되어야 하며… 내가 이문제에 대해 그(김일성)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달하라

션즈화는 이것을 스탈린이 김일성의 군사계획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문건이다고 평가

전반적으로 션즈화는 한국전쟁의 발발에 김일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김일성이 1950년 4월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스탈린과 비밀회담을 함

비밀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문건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논문이나 책에 인용된 것은 모두 당사자의 기억에 근거한 것

그에 관해서는 다음 저서를 언급
Wethersby 의 The soviet role, p.433,
Kimchullbaum ed, The truth about the Korean War, pp. 105-6

4 1966년 8월 9일 소련 외교부의 보고<조선전쟁에 관한 배경 보고>

스탈린이 조선인들의 초안에 최종 승인한 것은 1950년 3월-4월 에 이르는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기간이라는 것을 인정

이에 션즈화는 스탈린이 조선전쟁에 대한 정책을 변경하기로 결정한 것은 1950년 1월이지만 4월에 최종확정했다고 단정

션즈화는 김일성이 방문한 기간동안 스탈린이 생각을 바꾼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

첫째,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회담을 통한 <중소조약>체결의 결과 이에 대해서는 215-217까지 설명하고 있으나 그그 스스로 추측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시기 스탈린의 조선문제에 대한 생각는 완전히 추측에 의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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