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사 3-3 중국인민지원군의 조직

중공군의 참전.jpeg

10월 8일 중국인민혁명 군사위원회 모택동 주석의 중국인민지원군 편성에 관한 명령은 다음과 같다 .

조선인민의 해방전쟁을 원조하고, 미제국주의 및 그 앞잡이들의 진격을 반대하여 이로써 조선인민 및 동방각국인민의 이익을 보위하기 위해, 동북변방군을 중국인민지원군으로 개칭하여, 신속히 조선영토로 출동하여 조선동지와 합동으로 침략자들에 대한 작전을 전개하고 영광스런 승리를 쟁취한다.

2) 중국인민지원군은 제13병단 및 그 소속의 38, 39, 40, 42군, 변방포병사령부와 그 소속 포병 제1, 2, 8 사단을 관할한다. 상술한 부대는 준비완료되는 즉시 출동을 기다린다(제50군은 이때 심양 이북, 요원지구에 집결하여 장비편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3) 팽덕회 동지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에 임명한다.
(1950년 10월 25일, 중공중앙은 제13병단 지휘부를 지원군사령부로 조직개편하고 아울러 등화를 지원군 부사령원 겸 부정치위원으로, 홍학지, 한선촐르 부사령권으로 해방을 참모장으로 임명, 제13병단 사령부는 팽덕회 사령원의 사령부로 합병)

4) 중국인민지원군은 동북행정구를 총 후방기지로 삼는다. 모든 후방 사무 및 군수사업이 조선동지를 원조함에 적절하고 유리하게 되도록 동북군구 사령원 겸 정치위원 고강 동지가 그 임무를 지휘하고 책임진다.

5)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영토내에 들어가, 반드시 조선인민, 조선 인민군, 조선 민주정부, 조선 노동당(즉 공산당), 기타 민주당파 및 조선인민의 지도자 김일성 동지에 대하여 우애와 존중을 표시하고, 엄격히 군사기율 및 정치기율을 준수한다. 이는 군사임무 완성을 보증하는 하나의 중요한 정치기초이다.

6) 반드시 당면할 가능성이 있는 또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각종의 곤란한 상황을 심각하게 예측하고, 고도의 정열, 용기, 세심과 각고의 인내정신으로 이러한 곤란을 극복할 준비를 한다. 현재의 모든 국제정세와 국내정세는 우리에게 유리하고 침략자에게는 불리하다. 동지들이 결연하고 용감하며, 조선인민과 단결을 잘하고, 침략자와의 작전을 잘 할 수만 있다면, 최후의 승리는 우리들 것이다.

중국인민지원군 조직후 10월 9일과 16일 심양과 안동에서 군이상 간부회의와 사단이상 간부회의를 개최했다. 팽덕회 사령원은 지원군의 당면 임무는 적극적으로 침략자에 대항하는 조선인민을 원조하고, 혁명 근거지를 보호 지속시켜, 기회를 보아 적을 소멸할 기지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그가 제시한 내용은 작전수행의 방법에 관한 것으로 작전종결후 최종상태에 대한 언급은 없다.(13) 즉 미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한다든지 하는 작전목적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작전의 최종상태는 평양원산선까지의 진출과 북한지역 확보라는 것이 아닌가 추정할 수 밖에 없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항미원조전사 3-3 중국인민지원군의 조직’

항미원조전사 3-2 중국의 참전결정이후 향후전략과

중공군의 참전.jpeg

중공 중앙정치국은 참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다음 두 가지 대응전략을 구상했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조선 영내에서 미국과 기타 국가의 침략군을 섬멸하고 축출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미 중국 군대가 조선영토내에서 미국군대와 싸울 바에는, 미국이 중국과 전쟁상태에 들어감을 선포하는 것에 대비해야 하는데, 최소한 공군을 이용하여 중국의 많은 대도시 및 공업기지를 폭격할 것과, 해군으로 연해지역을 공격하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기한 두가지 중에서 제일먼저 중점을 두었던 것은 미국군을 섬멸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전투력이 제일 강한 미제8군을 섬멸해야 한다고 보았다.

중앙정치국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의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형세가 중국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11, 모택동군사문서 347쪽)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작전을 유리하게 전개해서 외교적 담판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참전규모는 먼저 제1차로 동북변방군 4개군 12개 사단, 제2,3차로 7개군 24개사단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작전지도면에서 북한에 진입한 이후 먼저 ‘원산, 평양선 이북 산악지역에 근거지를 형성’한 이후 이선의 북쪽과 덕천 영원 선 남북지역에 제2-3선의 방어선을 구축키로 하였다.(11)

작전지도의 기본지침은 중국이 처음부터 38선을 넘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팽덕회가 전쟁수행과정에서 소련과 북한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작전을 확대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처음의 이런 작전지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제2차 전역과 3,4차 전역에서 팽덕회는 추격을 하지 않고 정비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처음에 이런 작전지도가 있었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중공군의 작전목표는 소련과 북한의 그것과 상당한 괴리, 혹은 불일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미원조전사>는 ‘제1단계는 방어전이며 적을 소규모로 섬멸한다. 만약 적이 공격해 오면 방어전선상에서 적을 분할하여 섬멸한다. 아군의 장비훈련이 완비되어, 공중과 지상 모두 적군에 대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조건을 갖춘 후에 조선 동지와 협력하여 반격을 거행, 미침략군을 섬멸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작전지도에서 미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하게 축출한다는 내용을 담지 않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항미원조전사 3-2 중국의 참전결정이후 향후전략과’

항미원조전사 3-1 중국의 한국군 참전 결정과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과의 관계

중공군참전.jpeg

1987년 본에서는 중국군 참전결정과정이 주로 1950년 10월 1일에서 15일까지 모택동이 주관한 중공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모택동군사문선(내부본), 전사출판사, 1981년 판 347 페이지에 따르면 참전의 명분은 다음과 같다.

‘만약 모든 조선이 미국에 의해 점령되면, 조선의 혁명역량은 실패할 것이고, 미국 침략자들의 기세는 더욱 더 맹렬해져, 이에 동북정세는 모두 불리해질 것이다. 우리가 출병하여 참전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중국에 대해, 조선에 대해, <동방에 대해>, 그리고 세계에 대해 모두 유리하게 된다. 우리가 출병하지 않으면 적들이 압록강변에 이르고, 국내 및 국제적인 반동세력이 점점 증가해, 여러 면에서 불리하게 된다. 우선 동북지방이 더욱 불안해지고 전 동북변방군이 견제당하고, 남만주의 전력공급이 장차 장애받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응당 참전해야 한다고 여기며, 반드시 참전해야만 한다. 참전의 이익은 클 것이며, 참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클 것이다.”

여기에서 <동방에 대해>라는 의미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중국과 북한에 대한 문제는 이해할 수 있으니 이 대목에서 ‘동방’이라고 적시한 부분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만일 중국의 참전과정에서 소련이 중국에 아시아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주도권을 인정해주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굳이 중국이 <동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항미원조전사 3-1 중국의 한국군 참전 결정과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과의 관계’

중공군의 한국전쟁사 2-4 유엔군 북진결정이후의 상황

트루먼 대통령.jpeg

10월 1일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이 비준한 38선 북진군사행동에 관한 지령에 의해 한국군이 우선 38선을 넘을 것을 명령했다.

(이점은 이승만대통령이 독단으로 38선을 돌파했다는 내용과 조금 차이가 있다.)

미군은 10월 7일 38선을 넘어 국경선을 향해 진격했다.

10월 15일 트루먼은 한국전쟁 최종단계의 전략문제와 중국의 출병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태평양 중부의 ‘웨이크’섬에서 맥아더와 회담을 했다.

맥아더는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적으며 전쟁을 추수감사절 이전에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그 이후 미공군이 동북변경지역의 도시와 농촌을 지속적으로 폭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겠다(9)

당시 중국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혁명에서 승리한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아 오랜 기간 전쟁으로 인한 참상이 회복되지 않았다.

도시는 3-4백만의 직공및 지식인들이 실업중이었고 농촌에서는 3-4천만명의 농민이 수해와 가뭄의 피해를 입었다. 신해방구의 토지개혁은 진행중이었고 각지역에 산재해 있는 국민군의 토벌작전도 진행중이었다.

육군은 약 5백만명에 달했으나 장비는 낙후되었고 해군과 공군은 초기단계였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전쟁을 수행하는 문제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대한 전략선택상 난제라고 평가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중공군의 한국전쟁사 2-4 유엔군 북진결정이후의 상황’

중공군의 한국전쟁사 2-3 낙동강에서 장기전으로 전환이후 중국의 입장

주은래.jpeg

9월 중순 전쟁국면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 미국은 9월 15일 미제10군단 소속 해병 제1사단, 보병 제7사단 및 포병, 전차, 공병부대 등 모두 7만여명이 2백 60여척의 함정과 근 5백여대의 비행기 지원하에 인천에 상륙, 서울 수원방향으로 진공했다.

낙동강 전선 정면에서는 미군, 한국군 10개 사단(미제1기병사단, 보병 제2, 제24, 제25사단, 한국군 수도, 제1, 제3, 제6, 제7, 제8) 사단이 미제8군 지휘하에 9월 16일 반격을 개시했다.

인민군은 양면작전의 불리한 형세에서 전략적 후퇴로 전환

9월 28일 유엔군 상륙부대가 서울을 점령, 29일 낙동강 교두보로 부터 북진한 부대는 38선 가까이 진격

9월 30일 주은래는 중국 인민정치 협상회의 전국위원회 국경절 경축대회에서 미국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중국인민은 평화를 애호한다. 그러나 평화를 보위하기 위해 지금까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또 앞으로도 침략전쟁에 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국인민은 절대로 외국의 침략을 용인하지 않을 뿐더러, 제국주의자의 침략행위를 방치하지도 않겠다”(8)

주은래는 분명한 개입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

10월 3일 주은래는 주중인도대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재차 밝혔다.

“미국군은 지금 38선을 넘어 전쟁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미군이 과연 이처럼 행동한다면 우리들은 좌시할 수 없다. 우리가 개입해야만 한다.”(8)

중국이 언재 한국전쟁에 개입할 것을 결정했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할때 주중인도대사를 통한 입장표명을 중요한 계기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을 개입의 결정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중공군의 한국전쟁사 2-3 낙동강에서 장기전으로 전환이후 중국의 입장’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 2-2 모택동의 참전 가능성에 대한 언급

모택동 소비에트 시절.jpg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것을 결정한 것이 언제인가 하는 점에 대한 논쟁은 한국전쟁 연구에 중요한 주제이다. 전쟁의 원인이 그렇듯이 전쟁참전의 원인도 제1차적 혹은 제2차적 원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제1차적 원인을 유엔군의 38도선 이북 진격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전쟁에 대한 개입과 참전을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중국이 참전을 최종결정한 시기가 몇월 몇일인가 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 하다. 이미 한국전쟁 밥발이전부터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할 것이라는 점을 공공연히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공군 참전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제1차적 계기, 제2차적 계기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

이책에서는 9월 초 낙동강 방어선에서 장기전으로 진행되자 이미 중국은 참전할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이는 언급을 한다.

당시 중국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북한군이 승리하는 경우와 연합군이 증원하여 전쟁규모가 확대되면서 지구전으로 전환될 경우를 고려하고 있었다.

낙동강지구에서 교착상태가 진행되자 중국은 전쟁이 지구전으로 전환될 것이며 전쟁규모도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것이다. (6)

“아국인민은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지적하기를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장투쟁을 23년간 경험한 당과 군대가 있고, 또한 미제국주의 역사 많은 곤란함과, 내부 분쟁 및 동맹국간의 불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군사면에 있어서도 미국은 극복하기 힘든 약점을 지닌다. 그러나 미제국주의 전쟁을 방비하려면 즉 제3차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데, 결국에는 원자폭탄을 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들이 공격하는 것을 용서치 않겠다. 너희가 꼭 공격하려 한다면 공격해라. 너희는 너희식으로, 우리는 우리식으로 싸우겠다. 너희는 원자탄을 쓸 것이고 우리는 수류탄으로 공격하겠다. 약점을 파악해 최후에는 너희를 패배시키겠다.(6, 모택동이 1950년 9월 5일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9차 회의석상에서 한말)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 2-2 모택동의 참전 가능성에 대한 언급’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