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사 7-2 제1차전역 동부전선 11월 1일 이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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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의 상황

11월 1일, 공격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미 해병 제1사단 참전을 지시

11월 2일, 미 해병 제1사단 및 국군 제3사단은 비행기 50여대, 전차 40여대 지원하에 중국군의 연대봉, 송용동, 531.9 고지를 향해 공격을 개시

중국군의 대응

제124사단 방어부대는 야전공사에 의지하여 방어작전 수행, 2일 저녁 연대봉, 용수동, 송용동 진지에서 철수

유엔군의 공격

4일 주간, 중국군이 인대봉 서쪽의 황초령 선에서 배치조정을 하고 있는 틈을 타, 전차 40여대, 자동차와 장갑차 200여대로 돌격부대를 조직, 비행기 엄호하에 도로를 따라 초방령으로 공격, 해지기 전에 초방령 이북 진흥리, 삼거리 지역까지 진출

중국군의 대응

반격부대를 조직 적을 관평 이남까지 격퇴

중국군의 상황정리

11월 6일 지원군 사령관은 서부전선의 반격작전이 성공했으며 제42군 주력부대로 기 부여된 방어작전 임무를 완수했으므로 주력부대를 11월 1일 새벽 류담리 일대로 이동시키고 방어선을 구축, 다음 전투에 대비토록 함

제1차 전역간 조선인민군과 유격대의 활동

원산에서부터 목포에 이르끼까지 광대한 지역에서 폭넓은 유격전을 전개하여 후방의 교통선, 보급기지와 군사기지를 파괴하고 습격

양덕, 곡산, 평강, 화천 등지를 수복하여 정면전선의 작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함

종합해 보면

중국군은 제1차 전역간 서부전선에서는 공격을, 동부전선에서는 방어작전을 수행했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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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7-1 제1차 전역 동부전선 상황 10월말까지 국군 제3사단과 중공군 교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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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과 미군 상황

10월 25일

국군 제1군단 소속 수도사단 주력부대는 함흥 이북 상통리, 하통리, 부전령 이남 지역까지 전진
1개연대는 해안도로를 따라 단천까지 진격

10월 26일

미군 제10군단 해병 1사단은 원산으로 상륙하여 함흥, 장진을 통해 강계로 우회를 시도

국군 제3사단 주력부대는 원산에서 함흥쪽으로 진격, 제26연대는 상,하통리에 도착후 국군 수도사단과 임무 교대한 후 , 황초령 진지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음

국군 수도사단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부전령, 풍산, 성진으로 진격

조선인민군일부는 황초령, 부전령 이남 및 성진 서쪽 지역에서 계속 방어 중

중공군 상황

제42군은

동부전선의 적을 저지 격퇴하고 서부전선 주력부대의 작전을 보장하며, 군 주력의 전진을 엄호하기 위해 24일 25일 2개대대를 차량으로 수송하여 황초령 부전령 지역을 점령, 조선 인민군의 방어를 강화

25일에 북진하는 국군 수도사단을 저지함

27일 군주력이 방어지역에 도착

제124사단(포병 제4사단 제45연대가 배속)은 황초령 이남의 1115 고지, 초방령, 796.5 고지에 배치
(조선인민군 포병, 탱크병 각 일부는 124사단 작전에 협력)

제126사단 제376연대(포병 제8사단 제44연대 1개대대 배속), 부전령, 고대산 이북지역에 배치
제124 사단 1개 증강 대대는 소백산 요지 장악

제42군 주력부대(2개사단), 황초령, 부전령 지역에서 진격하는 국군 제3사단, 수도사단과 교전을 전개

국군 3사단은 27일 황초령 이남 연대봉, 용수동, 송용동 등 중국군 전방진지를 점령

28-29일간 국군 제3사단 제26연대는 매일 1개 중대에서 2개대대 병력, 비행기 20여대의 지원하에 중공군의 795.5 및 665 고지로 연속적인 공격을 실시

29일
제42군 제124사단은 곡사포 50여문의 지원하에 연대봉, 송용봉을 점령한 국군에 대한 반격을 실시
30일날 새벽까지 격전 끝에 국군 제26연대를 격퇴

10월 30일-11월 1일간

국군 제3사단은 전병력으로 중국군의 영대봉, 송용동 진지를 향해 역습실시했으나 실패

국군 제3사단의 진출 실패이후, 원풍리, 삼수령, 부전령 지역까지 진출했던 국군 수도사단 1개연대도 철수

제42군 제126사단의 제376연대가 부전령을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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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6-4 11월 3일 이후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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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과 미군의 대응

측후방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개천 및 신안주 등 도로의 요지가 중국군에게 장악되어 퇴로가 차단되는 것을 우려, 11월 3일부터 대량의 비행기, 화포와 전차의 엄호 아래 모든 전선에서 철수를 실시

국군 제1사단으로는 영변 동북, 미제2사단 국군 제7사단 및 제6사단 잔여부대는 개천, 군우리 지역을 방어, 중국군의 공격을 지연시켰음

팽덕회의 지시(11월 3일)

일체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신속히 적군을 적군을 휘어잡고 적군을 도주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
적군을 꽉 붙잡고 분할시키기만 하면 승리할 수있다고 강조

제38군 군에게 신속히 군우리, 안주, 신안주 방향을 공격하여, 신안주로부터 숙천간의 연결선을 마져 차단하도 지시(34)

작전의 진행과정

제39군

1개 사단으로 운산지구의 전장을 담당시키고 2개 사단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작전으로 전환
4일, 박천, 대양동, 상감성, 저현 지역까지 전진
상양외리에서 영국군 제27여단 1개 곡사포대대를 섬멸

제40군

3일, 국군 제1사단 주력부대를 영변지역까지 압축, 이들을 당일 저녁 박천, 안주 방향으로 후퇴시킴
추격으로 전환, 4일 영변 서남쪽 화전리, 수우동 일선까지 진출
추격중 용인동에서 미군의 증강된 1개 중대를 섬멸

제38군

3일, 군우리로 공격, 4일 15시 군우리 동북부, 용등리, 비호산 등 지역을 점령했으나, 국군 제7사단, 제6사단 잔여부대와 순천지역으로부터 증원된 미 제2사단의 방해를 받음

제125사단은 4일에 덕천을 점령, 적 후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인민군 제4, 제7사단과 합류

제66군

적군 퇴각당시 적의 측후방으로 신속히 진출하지 못해 미 제24사단을 놓침
선천 남시동까지 진출했던 영국 제27여단은 3일 박천 방향으로 후퇴

제50군

철산, 고군 영동 지역까지 진출

이후의 국군과 미군의 작전상황

서부전선의 국군과 미군을 일부 병력으로 청천강 북안 교두보 진지를 고수하며 지원군의 공격을 저지
적의 주력부대는 모두 청천강 이남까지 후퇴
신안주에서 개천까지의 일선에서 강을 따라 유리한 진지를 점령

이후 중국군의 상황

적을 추가로 섬멸할 기회를 상실했고 양식과 탄약 보급에 곤란이 발생
이번 전역에서 섬렬한 적이 많지 않아 적이 전열을 정비한 후 재차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1월 5일에 공격를 중지하고 전력을 종결 짓도록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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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11월 2일까지 중공군의 작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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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은 11월 1일 해질무렵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39군

11월 1일 19시 30분에 운산의 적을 공격하려했으나 15시 30분 적이 철수하려는 기색을 보이자(실제는 미 기병 제1사단 제8연대와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의 배치 변경), 곧 8개 보병연대로 포병연대의 지원하에 17시부터 공격을 개시
2일 새벽까지 격전 끝에 운산을 점령하고 미-한국군 일부를 섬멸, 전차 및 자동차 70 여대를 격파 및 노획

운산으로부터 철수하는 미 기병 제1사단 제8연대 본부대 및 제3대대의 퇴로를 운산 이남에서 차단하여 제인교諸仁橋 지역으로 압축 포위를 실시함

적들은 2일부터 3일 주간까지 비행기, 전차 지원하에 포위를 뚫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3일밤 적을 모두 섬멸함

제115사단 제343연대는 적증원부대 차단임무를 받아 운산 이남의 용성동, 용두동 지역에서 박천 방향으로부터 운산북쪽으로 원조하는 미 기병 제1사단 제5연대를 격멸시켜 운산 전투의 승리에 효과적으로 기여

운산지역 전투에서 미 기병 제1사단 제8연대의 대부분 및 국군 제1사단 제12 연대 일부를 섬멸
총 2천여명(미군 1200명)을 살상 포획, 비행기 4대를 노획 3대를 격추, 전차 28대, 자동차 170여대 각종 포 119문을 노획

제 40군

주력부대는 10월 31일 전에 운산 동쪽 용주동, 사천동 및 구장 서북 귀양동, 곡파원 지역까지 전진

11월 1일 영변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11월 2일 상구동, 고성동, 묵시동 선에서 국군 제1사단 주력부대에게 저지 당해 영변의 적을 포위하는 임무를 달성하지 못함

제38군

10월 31일 신흥동, 소민동 지역을 점령한 후, 11월 1일 구장을 향해 공격 18시에 점령, 방어하던 국군 제8사단 2개 연대는 도하하여 서쪽으로 도주

청천강 좌측 기슭을 따라 원리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고 2일 18시까지 원리 지역을 점령하여 적군의 측방을 위협

제66군

11월 1일에 구성에서 대성동, 이구동, 백운동, 청용동 지역까지 진격 미 제24사단을 저지하고 견제
미제24사단 선두 1개 연대는 대안동 이남의 팔영령까지 진격했으나 저지

제50군

제150사단은 1일밤에 안동으로부터 도하, 백마, 사하동, 창포동 일대까지 진격하였으며 남시동까지 진격한 영 제27여단을 저지할 준비

모택동의 지시(33)

11월 2일 밤 모택동은 지원군 사령관에게 다음과 같은 작전지침을 하달했다.

“제38군은 안주, 군우리, 구장 지역을 장악하되, 특히 군우리에 중점을 두면서 청천강 남북간의 적 연결을 확실히 차단하며, 평양 북쪽으로부터 북상하는 미제2사단의 병력과 국군 제6, 7, 8 사단 잔여부대를 섬멸한 후 가능한 한 남쪽으로 평양부근 까지 독바로 뻗쳐나갈 것”을 지시

“이번 전역의 전면적인 관건은 아군 제38군이 신속히 군우리, 개천, 안주, 신안주 일대를 섬멸하는데 있다. 이것이 가장 긴요한 일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일이다.”라고 지적

누차 언급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모택동이 작전지침을 하달했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보아 모택동 처럼 작전수행의 지침을 하달하는 것은 그리 흔하다고 하기 어렵다.

중공군의 전쟁지도 및 작전수행체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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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6-2 11월 초 작전 중국군의 작전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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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군의 상황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중공군은 유엔군과 한국군의 병력과 배치를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음(당시 중공군이 유엔군과 한국군의 상황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

중공군의 참전부대는 이미 모두 도착, 병력의 우위를 확보
청천강 이북지역에 유엔군과 한국군은 5만명 규모, 중공군은 10-12개 사단 12-15만명 규모 투입가능한 상황

팽덕회는 다음과 같은 작전을 구상

적의. 측후방에 대한 전역우회와 정면돌격을 결합하는 전법을 채택, 병력을 집중하여 운산, 태천, 구장 지역의 적을 각각 섬멸

먼제 국군 제8사단, 제7사단 및 제1사단을 섬멸한 후 상황을 고려 미-영군 섬멸을 결심
모택동의 작전지도

이번 작전에서 제38군 전체 및 제42군 1개 사단이 청천강 퇴로를 확실하게 차단하고, 기타 각군과 사단도 적의 각부대 측후방으로 용감하게 침투해 들어가 적부대를 분할시키고 각각 섬멸할 수 있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

팽덕회의 작전명령하달

11월 1일 9시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

제38군

구장에 있는 적을 신속히 섬멸한 후, 청천강 좌측 기슭을 따라 원리, 군우리, 신안주 방면으로 진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

제125사단은 덕천으로 진격하고 이지역을 점령하여 동-남 2개 방향에서 증원할 수 있는 적을 차단, 아군의 측방을 보호

제40군

주력부대는 1일 밤, 영변의 제1사단 주력부대를 포위한 후 기회를 보아 섬멸, 순조롭게 진행되면 용산동 이남 등산동으로 돌격하여 용산동 지역의 적군 퇴로를 차단

별도 일부 부대는 상구동 지역에서 운산에서 도주하는 적을 차단

제39군

1일밤 운산지역의 적을 공격 섬멸, 상황이 순조로우면 제40군을 도와 용산동 지역의 미 기병 제1사단을 포위 섬멸한 준비

제66군

일부병력으로 구성 서족 미 제24사단을 견제, 군 주력부대는 적의 측후봥으로 돌격하여 섬멸

제50군

주역부대는 신의주 동남지역까지 진격하여 적의 진격을 저지, 신의주를 보호

제42군

주력은 원래 그 자리에서 정면의 적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며 기회를 보아 그 일부를 섬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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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6-1 국군 제2군단 타격 이후의 상황(유엔군의 상황인식)

유엔군 참전.jpeg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투입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4-6만명 정도가 상징적으로 출병한 것으로 출병목적도 중국의 동북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압록강 수력발전소 보호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한 가장 대표적인 경우)

이후 한반도를 신속하게 점령완료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배치를 조정한후 한만 국경을 향해 계속 전진함

10월 31일

미제24사단, 태천, 구성까지 진격, 삭주방향으로 전진

영 제27사단, 정주, 선천까지 진격하여 계속 신의주 방향으로 전진

미제1군단 예비인 기병 제1사단은 평양에서 운산, 용산동 지역까지 이동하여 국군 제1사단을 지원

국군제8사단을 구장지역으로 철수 집결시켜, 측방을 보호하여 중공군이 우익으로부터 군우리로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고하 함

국군 제1사단 주력부대, 영변 및 그 동북지역(1개연대는 여전히 운산에 위치)까지 철수

국군 제7사단, 용산동 지역 동쪽부터 구장 및 덕천 지역까지 이동

미 제9군단 미제2삳난 역시 평양 북쪽으로 부터 안주지역으로 이동을 개시 미제8군의 예비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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