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쟁사 14-5 제3차 전역, 정비없이 공격할 정치적 필요성에 대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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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전역이후 제3차 전역의 실시문제는 북 중 소간 심각한 갈등의 소지였다. 팽덕회는 제2차 전역이후 상당기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모택동은 군사적인 측면보다 정치적인 측면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팽덕회를 설득하기 위해 12월 13일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낸다.

“현재 미영등의 국가들은 아군이 38선 이북에서 정지할 것을 요구하며, 동시에 이를 이용하여 군대를 재정비하여 다시금 전쟁을 계속하려 하고 있다. 그러기에 아군은 반드시 38선을 넘어야 한다. 만약 38선 이북에서 아군이 정지한다면 장차 아국의 정치에 매우 큰 불이익을 안겨다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의 남진시에 개성 부근, 즉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에서 적군의 상당부분을 다시 섬멸하여야 한다. 그런 연후 상황에 따라 만약에 적군이 서울을 고수하면 아군은 서울을 공격할 조건을 준비하며, 만약 적군이 서울을 포기하면 아군은 서울-평양 사이에서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그리고 난 후 다시금 작전에 참전한다”(80)

모택동은 팽덕회를 달래기 위해 이번 제3차 전역으로 서울을 확보하고 나면 휴식을 보장하겠다는 것을 약속한 것이다.

팽덕회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38선 이남으로 진격할 계획을 하달했다.
중국군은 서울, 원주, 평창 선을 잇는 선 이북에서 미군과 국군의 각 일부를 섬멸하되, 그 제1단계로 38선 이북의 시변리와 연천을 목표로 진격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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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4-4 제3차 전역이전 모택동의 작전상황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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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이 38선으로 퇴각할 때 중국의 상황평가

12월 4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팽덕회에게 한국전쟁의 전개방향에 대한 모택동의 견해와 의견을 다음과 같이 전달함

“전쟁은 아마도 신속히 해결될 수도 있고, 또한 연장될 수도 있기에 우리들은 적어도 1년동안의 전쟁준비를 하여야 한다.”

“조선에서 철수하는 것을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데, 우선은 38선 이남까지 철수해야만 우리는 정전회담에 응할 수 있다”

“먼조 모든 남조선군을 섬멸시켜야 미 제국주의의 철수를 촉진시키는데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다, 미제국주의가 만약)스스로 한반도에서의 철수를 인정한다면 유엔은 아마도 중-소의 참가를 조건으로 해서 전 조선 인민이 유엔의 감독하에 자신들의 정부를 선거하도록 하는 안을 주장할 것이다.”(79)

“그러나 미제국주의는 장개석과 같아서 그들의 약속이나 협정등은 모두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최악의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 검토를 해야 한다”

상기한 모택동의 생각은 여러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전쟁을 위해 1년동안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1년동안의 준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제2차 전역이후 곧바로 작전을 바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번째, 미군이 38선 이남으로 철수하면 정전회담에 응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를 보면 중공군의 전쟁의 목적은 38선 회복임을 할 수 있다. 미군의 철수는 정전회담을 통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라고 본 것이다.

세번째, 군사작전의 주안을 한국군에 두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군을 괴멸시키는데 차후 작전의 주안을 둔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1,2 차 전역에서 한국군의 전투력이 약하다는 것을 파악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분석은 중국본토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중국 공산당중앙군사위에서는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작전을 평가했던 것같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보면 제2차 전역이후 다음 작전까지는 어느정도 여유를 가지려고 했던 것 같다. 이는 선즈화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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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4-3 제3차 전역( 한국군과 유엔군의 병력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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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총병력은 34만명에 달함

그중 전선병력은 5개군단 13개 사단 및 3개여단의 20만명

미제10군단은 미제8군의 예하로 들어감

미제1군단은 2개사단과3개여단을 지휘

제1제대 터키 여단이 임진강하구에서 김포까지의 지역, 국군 제1사단이 임진강 하구에서 단월리 지역까지방어
제2제대 미제25사단, 영국 제29, 제27여단이 서울 서북에 위치한 고양과 한강 이남의 안양 및 수원지역에 배치

미제9군단은 3개사단을 지휘

제1제대로 국군 제6사단이 주월리에서 양문리까지의 지역을 방어
제2제대 미제24사단, 미 기병 제1사단이 각각 의정부, 포천, 서울 동쪽의 마장리 금곡리, 도곡리에 배치

국군 제3군단 3개사단을 지휘
1개제대로 구성,
국군 제2사단이 양무리에서 탑두육까지, 국군 제5사단은 탑두육에서 배후령가지, 국군 제8사단은 광운산에서 추전리까지

국군 제2군단,

국군 제3사단을 지휘, 추전리, 갑둔리 지역을 담당

국군 제1군단 2개사단을 지휘

1개제대로 구성
국군제9사단 갑둔리에서 도채동까지, 수도사낟 도채동에서 동해안까지의 지역을 ㅏㅇ어

국군 제7사단은 춘천, 횡성 지역에 위치, 한국 육군본부의 예비부대로 운용

미제2사단 주력은 제천, 일부는 홍천에 위치

미공수 제187연대는 군포장에 위치, 미제8군의예비부대 역할을 담당

함남에서 철수한 미제10군단(미해병 제1사단, 보병 제7, 제3사단)은 대구 부산지역에서 부대를 정비중

12월말에 방어배치는 거의 완료되었음
특징은 한국군이 제1선에 위치하고, 미-영국군이 제2선에 위치
대부분이 서울 주변과 한강 남북지역의 교통요충지에 집결
전전선에서 방어할 수 있으면 방어하되, 방어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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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4-2 제3차 전역(미군의 군사적 대응)

스크린샷 2020-05-13 오후 2.01.05.png

38선 이남까지 퇴각이후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종심방어선을 건설하며 부대를 정비, 중국군의 공격에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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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 미육군참모차장 매튜 리지웨이가 제8군 사령관으로 임명됨
리지웨이는 “전력이 허락다는대로 즉시 공격을 취할 것이다”라고 밝힘

12월 29일 미합참은 맥아더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하달
“연합군의 전력보존을 위주로 하는 점진적인 방어작전을 진행하라”
“힘이 미치는 한 한반도의 일정지역에서 확고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정치 군사면에서 중국의 위신에 타격을 입히라”

12월 31일. 리지웨이는 다음과 같이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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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에서 38선에 이르는 모든 전선을 방어하라”

만약 진지를 포기하게 될 경우에는 “질서있게 계획된 축차방어선으로 철수를 실시한다.”

“야간에는 부대를 수축하여 부대와 부대간의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며, 주간에는 보병, 탱크 협동부대가 강력한 반격을 실시한다.

제3차 전역시 유엔군의 방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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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250마일 전선 정면과 60마일 종심에서 기본적인 2개의 방어선을 조직

제1방어선 A

임진강 하구로부터 38선상의 문산을 거쳐 동해안의 앙양까지 이르는 선

제2방어선 B

고양 의정부 가평 자은리를 거쳐 동해안 동덕리 까지 이르는 선

추가적인 방어선

제2방어선 이남에서 북위 37도선간에 C,D,E 3개의 방어선을 준비

C 선

영등포 - 한강 남쪽 연안 및 양평, 횡성 강릉에 이르는 선

D 선

수원 이천 원주 평창 삼척을 이르는 선

E 선

37선에 접하는 방어선, 평택, 충주, 삼척에 이르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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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4-1 제3차 전역 (미국의 정치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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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전역 당시 유엔군의 패배에 대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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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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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책임문제를 놓고 서로간에 공방전이 진행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원인이 맥아더의 판단착오와 미숙한 지휘력에 연유한다고 비판하면서, 맥아더가 그의 직책에서 사임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어떤 이들은 그 책임을 워싱턴 당국의 정책탓으로 돌렸다. 미국의 상하양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국무장관 에치슨의 사임을 요구하며, 철저한 국무성의 대개편을 주장하였으며, 또 어떤 의원들은 트루먼 대통령의 해임을 요구했다(74-75)”

유럽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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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랑스, 등은 공통적으로 한국전쟁의 정세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으며, 한국전쟁에 휘말려들어 유럽에서의 그들의 힘이 약화될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으며, 전쟁이 확대되어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모두 미국 정부로 하여금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전세계가 전쟁의 회오리 바람 속으로 휩싸이지 않게 할 것”을 희망(75)”

미국내의 대응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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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부는 위기에서 탈출하고 패전국면을 만회하기 위해 연속해서 일련의 긴급회의를 소집
수차례에 걸쳐 한국전선에 요원을 파견 전쟁지도에 관해 협의

크게 두가지 분위기

유럽이 매우 중요하기에 미국은 한국의 정세에 휩쓸려 유럽이 전력을 약화시키지 말자는 의견
“한국을 포기하고 전력을 유럽에 집중해야 함”

현재이 위기가 아시아에 있기에 만약 아시아에서 실패를 본다면 유럽에서 또한 희망이 사라진다고 하면서 반드시 한국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 심지어 전쟁범위를 확대하여 “만주의 비행장을 폭격하고 중국해안을 봉쇄하며 대만의 중국인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

트루먼의 결정과 정책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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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성명을 발표
“UN군은 한국에서 그들의 사명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장차 3방면으로이 새로운 정세에 대응할 것이다”고 했으며 이는 한반도 방어, 유럽의 방위, 미국의 군사력 강화를 의미

이와함께 기자회견 답변시 한국전에서 원자탄 사용 가능성을 언급

미국의 추진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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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유엔에 한국정전 3인위원회 설립 결의안을 통과, 선정전 후담판을 요구

12월 16일 트루먼은 국방동원국의 설립을 결정, ‘징병계획과 무기생산을 확대하고 미국 군대가 보유한 250,000명을 350,000명까지 증가할 것을 요구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군대를 건설하기로 하고 아이젠하워를 최고사령관에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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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3-8 제2차 전역 평가

1 전과 및 피해(70)

총 3,6000명의 적을 섬멸(미군, 24,000)
중국군 30,700명

사상비율은 1:0.85

양양을 제외한 38도선 수복 및 38선 이남의 웅진반도와 연안반도 확보

2, 총평

제9병단을 적시에 동부전선에 투입함으로써 중국군의 우세를 확보
계획적으로 주력부대를 은폐 철수시키고 고의로 약하게 보이게 해 적의 착각를 확대, 유엔군을 중국군이 익숙한 전장으로 진격토록 유인후 기습적인 타격으로 원만한 승리를 달성

당시 중국군과 유엔군의 병력비율을 다음과 같았음

유엔군은 2개의 미군사단과 영-터키 각 1여단을 투입, 일선의 병력은 5개군단 12개사단 3개여단, 1개공수여대등 총 22만여명

중국군은 6개군 18개사단의 23만명으로 병력도 열세

“제2차 전역에서 중국군의 기본임무는 조선의 전국을 전환시키는 것이었다”(70)

조선의 전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동부전선의 적에 대한 타격을 가하여야 했고 제9병단을 적시에 조선에 투입함으로써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제2차 전역의 목적은 공수전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의 전국을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것이 유엔군과 한국군의 공세를 수세로 전환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2차 전역으로 38선을 확보한 것은 부과적인 성과로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한다. \

3 작전수행

전역우회와 퇴로차단을 전역계획의 중점으로 삼았음

특히 서부전선의 중공군은 적의 우측방으로부터 대담하게 2중의 전역우회를 실시, 측후방으로부터의 돌격역량을 강화

각종 원인으로 중국군의 전역우회 계획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으나 중국군 113사단이 삼소리 용원리까지 들어가 미제9군단의 퇴로를 차단하고 중국군 정면부대의 공격이 실시되면서 적은 모든 전선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운동중에 적군을 대량으로 섬멸할 수 있었음

중국군은 병력을 집중하여 적군의 우측방 허약한 부분인 덕천, 영원(국군담당지역)을 선택하여 전역의 돌파구를 열고, 그 후 다시 우회하는 기동방법을 실시. 우회실시중 제113사단은 지름길을 택해 극도의 피로를 이겨내면서 시가에 맞추어 지정된 위치에 도달해서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전역 승리획득에 중대한 기여를 함(72)

만약 외곽우회부대가 적의 저지를 받지 않았다면 숙천에 정시에 도착하여 더욱 결정적인 승리을 거두었을 것이다 .

동부전선에서 만약 11월 25일 혹은 26일, 적이 안정되지 못한 틈을 타서 먼저 사창리의 적을 섬멸하고, 하통리 함흥 및 영흥으로 진출하여 병참선을 위협할 수 있었다면 더 큰 승리가 가능했을 것(72)

  1. 전역우회와 분할포위

전역우회는 운동중인 적을 섬멸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뿐이며, 적군을 섬멸하려면 전술적인 분할포위를 진행하여 적을 몇개의 작은 부분으로 분할시켜야 가능

  1. 후방보급의 보장

공군의 위협으로 야간 수송만 가능하여 작전부대는 휴대식량과 탄약량만 의지했기 때문에 1주 전후 적전밖에 지속할 수 없었음. 전역 지속시간과부대 기동에 큰 제약을 받아 마음놓고 작전할 수 없어 전역의 승리와 규모에 상당한 영향

중국군은 최초 서부전선에서 2개군 및 2개사단으로 전역우회 구상했으나 식량의 곤란으로 2개군으로 축소

동부전선에서 제9병단의 예비인 제26군이 장진호 전선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지 못한 것도 식량문제 때문이었음

제9병단은 동부전선이 산이 높고 길이 험하며, 기후가 유별나게 춥고 인적이 드물다는 상황에 대한 조사연구가 충분하지 못했고, 혹한지대의 작전경험과 준비가 부족한데가 보급이 보장되지못해 대량의 동상 및 기아로 인한 병력손실로 작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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