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사 16-2 제4차 전역을 위한 준비

군자리 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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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 연합사령부는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성천군 군자리에서 조-중 양군 고위 간부회의를 소집
김일성도 회의에 참가 연설을 했고 팽덕회는 보고를 함

3개 전역 경험을 총괄하고 다음 작전의 임부와 작전방침을 제출함

주요 내용

적군 장비의 우세에도 불구 아군의 영활한 전략전술 및 전역지휘와 용감하고 완강한 작전을 상호 결함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음

장비의 차이가 매우 큰 조건에서 아군의 작전지도 사상은 절대적으로 우세한 병력과 화력을 중점적으로 집중시켜 축차적으로 적군을 섬멸하는 것을 중점으로 삼아야 함

전술운영 면

야간전투 및 근접전투에 주역하되, 대담한 우회포위와 뚫고 들어가 분할함, 적 종심과 후방에의 용감한 침투, 용감한 소부대로 적 포병진지와 지휘소를 습격하여 적의 계획을 혼란 시키는 등의 방침으로 운동중에 적을 아군이 각개 섬멸하는 조건을 조성해야 함

제1차 병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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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심양에서 제1차 병참회의를 소집하여 병참업무를 강화하고 아군의 보급상황을 개선

동북군구 부정치위원회 이부춘이 주재, 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주은래 및 부총참모장 섭영진 총후근부장 양삼립 이 참가

주은래 부주석이 연설

주요내용

수송업무는 병참업무의 기본이며, 후방전쟁에 있어서 아군과 적군 양측의 투쟁의 촛점으로 파악

신속하게 철로를 수리 복구하고 도로를 서둘러 건설하며, 전투물자의 저장 비축을 강화하기로 결정

소련 공군의 후방병참선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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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정부와 협의를 거쳐 1월 10일 부터 소련 공군 2개사단이 집안 - 강계, 안동 - 안주까지의 2개 철로선을 엄호

중앙 군사위원회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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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부대의 참전을 더욱 가속화
고사포 3개사단, 별도의 22개 대대
전방포(?) 2개사단, 방사포 9개 연대, 곡사포 3개연대의 훈련을 완성
소화기 개량하되 36개 사단부터 착수

장기적인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중앙군사위는 2월 7일 수번작전(수송작전?)실시 결정
제3병단(제12, 제15, 제60군), 제20병단(제67, 제68군)과 제47군을 조선전쟁에 투입키로 함

제19병단과 함께 두번째 참전부대가되며 그 규모는 총 9개군 27개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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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6-1 제4차 전역을 위한 모택동의 상황평가와 팽덕회의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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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14일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보
1 중국-조선 양국군의 압박으로 적이 한국에서 물러나는 상황

아군이 충분히 준비를 해서 전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어려움을 알고 퇴각할 것이다.

2 적이 대구 부산지역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상황

아군은 재공격을 감행하여 적군을 남조선으로 부터 곧장 물러나게 만들어야 함,
충분한 준비를 하여 2월달에 공격을 하고 그 다음에 다시 휴식 및 재정비에 들어간다. (97-98)

팽덕회의 구상

중국군의 실제 상황 고려시 3월에 춘계공세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준비에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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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5-6 제3차 전역이후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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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및 재정비로 전환함

1월 8일부터 제50군, 제38군의 제112사단, 인민군 제1군단 2개사단
한강 남쪽에서 해상방어 책임과 교두보 방어를 담당

제42군 제125사단
남한강의 동쪽에 위치하여 그 방면의 적을 경계

지원군 주력부대와 인민군 제1군단 병력 일부
서울, 고양, 동두천, 마석우리, 가평 및 금화 지역에 집결 후 휴식 및 재정비

인민군 제2, 제5군단
적을 경계하는 것 이외에 주력부대는 홍천, 횡성 동쪽 지역에 집결하여 휴식 및 재정비

전반적으로 사기는 높았으나 인원손실이 컸고 병력보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

제9병단은 여전히 원산, 함흥 일대에서 휴식 및 재정비 중
(만일 제2차 전역후 제9병단이 충분히 회복한다음 제3차 전역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 제9병단 병력까지 동시에 공격했으면 유엔군과 한국군은 37도선에서 저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도 있다)

최전방의 병력은 지원군 6개군의 21만 여명과 인민군 3개군단의 7만여명

유엔군과 한국군은 23만명으로 중국군과 북한군이 약간의 우세만 점하고 있던 상황

전선의 이동으로 중국군의 보급선은 550-700킬로미터 연장
항공기의 폭격으로 수송이 곤란 한상황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와 모택동, 팽덕회는 향후 전쟁방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함

“적군은 그 주력부대가 섬멸당하기 전까지는 조선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 침략자들은 극동과 세계에서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계속유지하고 조선에서 약탈한 재산과 부를 보호하여야 되며, 또한 그들은 전투장비의 우세함이 조선의 남부진지를 수호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반드시 각 방면에서 충분한 준비를 갖춰 몇 차례의 격렬한 대규모 작전을 거쳐야만 비로소 조선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목표에 다를 수 있게 된다”(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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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15-5 제3차전역, 전술적 측면에서의 평가

첫째. 기동방식

정면에서 부행한 복합돌파, 돌파성공후 신속하게 제2제대 사단을 투입, 주야 계속해서 적의 종심을 향해 우회침투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하며, 정면공격과 배합하여 전술적인 포위를 형성하여 적군을 분할포위 섬멸하는데 성공

좌종대의 제124사단, 우종대의 제117사단이 우회임무를 수행

둘째, 침투부대 운용

전역개시전에 인민군의 5개사단을 적군의 방어종심 지역에 사전침투시켜 동부전선의 적을 압박하고 적 주력부대의 측면과 후방을 위협함으로써 전 전역행동에 효과적으로 기여

섯째, 포병부대 운용

포병이 비교적 부족했으나 주공격방향에 집중적으로 운용하여 보병의 돌파구 개척 지원에 좋은 효과를 달성

산지, 야간, 장비 및 도록 등의 제한을 받았고, 적 항공기의 위협을 받아 아군 포병이 아군의 보병을 수반하여 적의 종심에 깊숙히 진출하면서 지원할 수 없었음

넷째, 피아혼재 상황에서 주간작전의 중요성

주간작전을 통해서 비교적 커다란 전과를 얻을 수 있었음

보유한 장비의 불비한 여건으로 야간전투를 진행했어야 했으나 아군이 적군의 종심에 돌입했거나 적을 추격하는 상황에서 주간작전은 여전히 필요했다

피아가 혼재된 상황에서 적 항공기의 아군에 대한 위협이 매우 감소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부대가 주간작전을 감행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으나 어떤 부대는 항공기의 위협을 두려워해 전기를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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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5-4 제3차전역 평가 (전략 작전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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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결과 및 전과

중국군과 북한군은 7일간의 주야에 걸친 공격으로 38선에 편성한 방어선을 돌파하고 80-110km 전진하면서 19,000명을 섬멸

서울을 확보하고 유엔군과 한국군을 37도선까지 축출

중국군과 인민군 사망자는 8,500명(조선인민군 2700명)

사망비율을 1:0.43

작전시기 앞당긴 이유
제3차 전역을 1951년 2, 3월까지 늦춰서 시행하기로 했으나 모택동의 지시에 의거 작전을 당겨서 실시

“중국군을 정전으로 유인하고 휴식기간을 가진후 다시금 전쟁을 하려는 적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적군의 내부혼란과 엉거주춤한 태세를 이용하여 즉시 38선을 넘어 다시 타격을 가한 후 휴식과 재정비에 임할 것을 지시”(93)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문의 내용

“만약 12월부터 동계기간 동안, 아군이 모두 휴식 및 재정비에 들어간다면 결국 움직일 수 없게 되며, 반드시 자본주의의 여러나라로부터 억측을 불러 일으키게 될 것이다. 만약 아군이 1월 중순에 한국군 몇개 사단 및 미군의 일부 병력을 섬멸하는 승리를 거둔후 2개월간의 휴식과 재정비를 하여 다시 춘계공세를 준비한다면 민주전선 및 자본주의 각국의 인민대중에 대한 영향은 매우 크며 제국주의에 가한 추가적인 압력은 그들에게 더욱 비판적인 패전분위기를 가중시킬 것이다.”(93)

작전지도의 타당성

37선까지만 공격하고 더 이상 진출하지 않은 것은 신중한 작전지도라고 평가

적당한 시기에 전역의 추격을 중지한 것은 타당한 결정

미군은 신속하게 퇴각했는데 이것은 계획적인 후퇴로 전력을 유지하면서 중국군을 깊숙히 유인후 반격하려고 한것으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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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사 15-3 제3차전역, 조중연합군의 서울 점령

중공군의 서울점령.jpeg

조중 연합사의 상황평가 및 결정

유엔군과 한국군이 저항할 의지가 없고 퇴각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을 볼 때, 서울을 포기하거나 한강남안까지 철수하거나 또는 계속 남쪽으로 후퇴할 것으로 보았다. 이런 기회를 포착하여 전과를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지원군 우종대 및 인민군 제1군단은 기회를 보아 서울, 인천, 수원, 양평을 점령한다.
동서 양종대가 상기전선까지 진출하면, 즉시 공격을 정지하고 휴식과 재정비 및 보충을 실시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평택, 안성, 충주, 제천 선까지만 후퇴시켜 그곳에서 방어케 함으로써 장차 다시 공격시 적을 섬멸할는데 유리하게 한다.”(90)

1월 3일 조중연합군은 추격으로 전환

우종대

제50군

고양 이북의 벽제리에서 미 제25사단 1개대대의 저항을 격퇴, 고양남쪽에서 영국 제29여단의 퇴로를 완전히 단절, 그날 저녁, 영국 제29여단의 황실 에르스넷 라이플 연대 제1대대 및 영국눈 제8기갑 연대의 본부 중대를 완전히 섬멸, 전차 31대 노획 및 파괴

제39군

의정부 서남의 회룡사에서 미제24사단 제21연대와 조우, 일부를 섬멸, 이후 의정부 서쪽의 부곡리에서 영국 제29여단 2개 중대를 섬멸

제38 및 제40군

의정부 동남지역인 수락산 지역까지 적을 추격, 미제 24사단 제17연대를 섬멸

좌종대

제42군

주력부대와 제66군의 1개사단은 각각 가평, 춘천으로부터 북한강을 도하, 홍천 방향으로 진출, 남쪽으로 퇴각하는 적을 저지

유엔군 및 한국군은 1월 3일 15시부터 서울에서 퇴각하기 시작

4일 중국군 제50군과 제39군의 각각 1개사단과 인민군 제1군단 일부가 서울을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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