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압록강에 밤이 오다) 5 압록강에서 첫날밤을 보내다.

제1대대 본부와 배속부대 및 중화기 중대, 제3중대, 제2중대 순으로 제1대대 전 병력이 압록강변에 도착했다. 강위에 떠 있는 뗏목다리는 피난민으로 꽉차 있었다. 이미 다리를 건너간 피난민들은 만주 통천구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북한군과 내무서원들은 그 일대의 민간인들과 평양에서 밀려온 공산당 고위층 및 가족들을 만주로 철수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뗏목다리 부근에서 이 철수를 엄호하던 북한군이 아군을 향해서 사격을 했다. 아군 기관총이 응사하여 사격전이 벌어졌다. 뗏목다리 위의 민간인 수십명이 희생되었다. 민간인들의 희생이 계속되자 대대장은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북한군은 만주로 건너가기도 하고 위원(渭原)쪽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뗏목다리는 57미리 대전차포에 의해 절단되었다.

대대장은 이대용을 시켜 수통에 압록강 물을 담게 했다. 나중에 이물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대대장은 수첩에 글을 쓰며 감개무량하게 만주를 바라보고 있다가, 압록강변을 한참 걸어본 후, 제1중대만 남겨 놓고, 오후 4시경, 대대 잔여 병력인 제2중대, 제3중대, 제4중대, 대대본부 및 배속된 대전차포 분대, 헌병분대를 이끌고 압록강변의 국경마을인 신도장에서 약 6킬로미터 서남방에 있는 초산읍으로 내려갔다.

이대용은 제1소대를 신도장 분주소 일대에 배치하여 위원으로 통하는 자동차 도로를 차단하고, 끊어진 뗏목다리를 화력으로 엄호하게 했다. 제2소대는 신도장에서 강기슭을 따라 하류로 내려오며 약 9백미터, 그리고 제3소대는 제2소대와 연결하여 하류로 내려오며 약 7백미터 지역에 배치하고, 중대본부는 제2소대 지역에 설치하였다.

저녁이 되자 박태숙과 정정훈이 “중대장 아버지 저녁 잡수세요”라고 하면서 밥을 가지고 왔다. 이대용은 세숫대야 같은 큰 그릇에 퍼담은 밥을 두고 같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 낮에 압록강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조림이 반합 뚜껑에 가득 차 있었다. 된장에 파를 넣은 국이 반합가득이었다. 날고추장이 또다른 반합 뚜껑에 4분의 1정도 담겨 있었다. 항상 먹던 주먹밥 한덩어리와 고추장 한숟갈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이대용은 박태숙과 정정훈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면서 같이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후, 국경선에서 노획한 낡은 빅타 축음기로 실로 오랫만에 노래를 들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촛불을 켜 놓은 아득한 방에서 애수를 띠며 압록강 물결위로 흘러갔다. 남인수, 백녀설, 채규엽, 항금심, 박단마 등등의 노래를 한참 들으며 압록강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1, 2, 3, 4


dclick-imagead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이대용 장군의 압록강에 밤이 오다) 5 압록강에서 첫날밤을 보내다. ‘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