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두사선을 넘다) 7 비겁한 자는 가라. 서종철 전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이대용 장군은 생전에 전쟁에서 비겁하게 굴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모든 영광을 다 누리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대용 장군은 분노했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용 장군은 절대로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비겁하게 살았던 사람에 대해서는 항상 나중에 재평가를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었다.

이대용 장군은 김용배 대대장에 대한 존경의 글을 정리한 다음에 연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해를 해서 전장에서 이탈한 서종철 대장을 반드시 언급했다. 아마도 자신의 생전에는 그렇게 비겁한 자들이 제대로 비판을 받지 못할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이와는 대조적인 불미스러운 일이 6.25 초기에 서부전선에서 생겨났다. 육군사관학교 제8기생들의 회고록으로 1988년 발간된 ‘노병들의 증언’ 가운데 안태갑 장군(6.25 초기 제8연대 중대장)이 증언하고, 또 그 증언을 더욱 구체화한 후일담이 나온다. 거기에 의하면 수도지구 방위임무를 맡고 있던 제 X 연대장(여기서 X 연대란 8 연대를 말한다.) S 중령(서종철 이다)은 전투가 치열해지자 몸의 급소가 아닌 부분을 쏴서 자해를 했다.

나중에 군의관에 의하면 둔부의 살이 많은 부문을 쏘았다고 한다.

그런다음 마치 적탄에 부상당한 양 속임수를 써서 후방병원으로 후송되어 교묘하게 싸움터를 이탈했다는 것이다.

연대장의 비굴한 행위가 전해지자 연대 장병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혼란이 일어나 분산되어 연대의 기능를 상실했다. 연대 총병력은 겨우 1개 대대를 편성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 들었다. 상부명령에 의해 대대장 정승화 소령은 이 병력을 이끌고 제18연대로 가서 제3대대로 편입되었다. 6.25가 일어나기 전에 공비토벌 작전에서 용맹을 떨친 제8연대는 이렇게 허무하게 해산되었다.

문제의 서종철 중령은 제3공화국 시절, 육군대장으로까지 진급하여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고 안태갑 장군은 증언하고 있다. 매우 잘못된 인사관리였다.

서종철은 제3공화국때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육군대장으로 승진하여 참모총장이 되었고 나중에는 국방부 장관까지 지냈다. 장관을 마친이후에는 한국야구협회총재를 지냈다. 일제말기 일본군소위 였던 서종철은 아마도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승진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서종철이 자해해서 탈영한 것을 몰랐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육군총장으로 기용한 것은 군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으면 아무도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언제고 한국전쟁 당시 지휘관들의 행동과 공적을 하나씩 모두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껍데기를 가릴수 있다.

서종철의 아들인 서승환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이런 나라가 나라냐 ?


이더리움으로 결제 가능한 카페 띠그레 블랑코

암호화폐 덕후한테 코인덕 결제가 되는 곳 띠그레 블랑코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이대용 장군의 두사선을 넘다) 7 비겁한 자는 가라. 서종철 전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