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은 수차례에 걸쳐 외무부장관에게 전문을 보내 구조를 요청했으나 자신과 억류된 외교관들의 구출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이대용은 거급 보네를 통해 프랑스 대사관에 한국 외교관들엑 피난처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사관은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9월 29일 아침일찍 이대용은 미국이 북월과 남월의 유엔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머지않아 체포될 것이라고 느낀 이대용은 신상법 서기관을 다음과 같은 유언을 했다.
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내가 체포되면 이 참사관이 한국인을 통제하고, 프랑스 대사관 모로 서기관과 접촉하여 내가 해온 것과 같은 방법으로 외무부 장관에게 상황보고와 필요한 요청을 계속할 것
둘째, 내가 체포된 후, 형무소에 있으면 계속 항거하면서 지낼 것이나, 북한으로 강제 납치되어 끌려갈 때에는 자결하여 목숨을 끊을테니 그 경우에 대비하여 다음과 같이 대통령 각하께 유언으로 부탁올리니 각하께 말씀해 주기 바란다. 나의 자식들이 아직 어리니 그 애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급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하는 것이다.
셋째, 내가 모든 책임을 질터이니 김영관 대사의 허물을 묻지 말고, 그를 정부에서 재등용해주기를 바란다.
사실 이대용도 철수당시 외교관들과 같이 철수할 수 있었으면 그도 같이 철수했을 것이다. 당시 남아있던 교민들의 대부분은 대사관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연락도 제대로 닫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까지 이대용이 건사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당시 주월대사 김영관이 자신의 부하외교관들도 남겨놓고 먼저 철수하는 바람에 사단이 난 것이다. 이대용은 철수하는 상황에 대해 김영관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제대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 부분도 추가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김영관 대사는 자신이 탈출하면서 외교관들을 버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전문을 외무부에 보냈다. 최근 어떤 기자는 그런 전문을 들어 김영관 대사가 자신의 부하 외교관들을 사지에 버려두고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관 대사의 당시 전문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기만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김영관은 백선엽이 운영하던 선인학원의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그 이후에는 김종필의 자민련에 합류하기도 했다. 해군대장으로 참모총장까지 역임했던 김영관은 군인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김영관에 대해 정부에서 재등용해달라고 말한 이대용도 이해가기는 어렵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지극하게 엄격했느나 남에 대해서는 자신만큼의 잣대를 적용하려 하지 않았다.
9월말이 지나도 안닝노이찡은 나타나지 않았다. 10월 1일 김상우 목사를 만난 이대용은 이틀전에 신상범 서기관에게 했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의 유언을 말했다.
10월 3일 프랑스의 그랄 병원에 가서 콜레라, 장티푸스, 우두 예방접종을 했다. 베트남을 출국하려면 예방접종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이대용은 지금의 상황에서 무사히 돌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고, 오히려 월남형무소에 붙들려 간다면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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