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사이공 억류기) 5 동족을 팔아먹은 사람들

1975년 5월 12일 남부월남혁명임시정부 외무부는 사이공 주재 각국 외교관들에게 혁명임시정부 외무부에 등록신고를 하라고 공고했다. 이어서 5월 25일에는 한국외교관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며칠후 남월 혁명임시정부 외무부 앞 게시판에 불란서 인, 미국인, 일본인, 인도인, 기타 출국자들의 명단이 나붙었는데 거기에는 한국외교관 8명 전원과 김상우 목사, 이상관 이 들어있었다. 출국일자와 난산눝 국제공항 도착시간도 명시되어 있었다. 항공로는 탄산퉅 공항 출발, 라오스 비엔티안을 경유하여 태국방콕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모두들 기뻐했다. 일본 히도미 대사는 한국 외교관 8명을 초청해서 송별만찬회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이변이 생겼다. 비엔티엔에 있던 한국대사관이 폐쇄되어 라오스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출국자 명단에서 서병호 영사와 안희완 영사가 빠졌다는 것이다. 들려오는 풍문에 의하면 안녕국과 북한 공작원들이 합동 공작을 벌리고 있는데, 한국인 몇 명이 이들과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대용은 한국인 165명중 150명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나 10여명은 그의 통제밖에 있었다. 그들 10여명은 월남 처갓집, 병원등에 있었고 대사관저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당시 홍콩을 경유하던 한국의 야당 지도자 김영삼 당수가 남부 월남혁명임시정부 주석에게 전문을 보내 사이공 잔류 한국외교관 및 민간인들을 속히 본국으로 귀국시켜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국제적십자사가 적극 개입하여 6월 18일로 한국외교관 출국날자가 정해졌다. 이미 체포된 서영사와 안영사를 제외한 외교관 6명과 김상우 목사 그리고 이상관이었다. 김상우 목사는 외교관이 아니었지만 외교관이라고 등록을 했는데 받아 들여졌으며, 이상관은 주미 대사관 무관부에 근무한적이 있어 월남 외교부에 외교관으로 등록했는데 받아 들여졌다.

6월 18일 탄산눝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안녕국 간부가 한국 외교관은 출국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행정적인 문제로 출국을 보유한다며 시내 숙소에 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이대용은 가장 의지하던 프랑스인 보네와 그의 한국인 부인 유선환의 집이 있는 뚜도 가 146번지로 갔다. 그 부부는 사이공 함락후 위험을 무릅쓰고 정성스럽게 한국인들을 도왔다.

보네 부부는 사이공 함락후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인들을 도왔다. 보네 부부가 한국인들을 도와준 것은 잊어버려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정부가 보네 부부를 위한 포상을 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만일 정부차원의 포상이 없었다면 지금이라고 찾아서 포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대용이 형무소에 잡혀가기 전까지 이대용은 매일 한번 이상 보네부부를 만나 한국인 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네 부부는 이대용이 한국정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비밀전문을 받아 몰래 불란서 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보냈다.

6월 19일 아침에 연락이 왔다. 18일 밤에 안닝노이찡이라고 불리는 안녕국 경찰이 서영사와 안영사 그리고 김종옥이라는 민간인을 체포해 갔으며, 한국의 장군 한명을 찾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한달동안 이대용은 안닝노이찡에 가서 심문을 받았으나 풀려났으며, 안닝노이찡으로부터 감시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7월 20일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현지에서 하사관으로 제대한 천오모가 이대용을 찾아왔다. (천오모가 실명인지 아닌지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통역을 했던 예비역 소령 배완용이 자신의 의동생에게 불란서 대사관에서 근무한다고 하는 불란서와 월남 혼혈의 30대 남자를 소개했는데 그가 북한에 대한 찬양 선전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대용 장군은 실명을 쓰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배완용이라는 예비역 소령의 이름도 실명이 아니다. 나라를 팔아 먹었다고 해서 이완용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천오모로 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자 이대용은 30대의 남자라는 사람이 북한과 협조하고 있는 공작원이며, 배완용도 이미 북한과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대용은 천오모에게 배완용의 동태를 잘 감시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이대용은 보네를 불러 불란서 대사관에 불란서와 월남 혼혈의 30대 남자가 근무하고 있는지 물었다. 보네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배완용이 데리고 간 사람은 월남의 공작원이었다.

그동안 이대용 주변에 대한 조사는 하나씩 하나씩 이루지고 있었다. 이대용이 비서로 데리고 있던 월남 여성들이 차례로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대용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

한국 민간인들도 추가로 체포되기 시작했다. 7월에는 지 원이 치화형무소에, 지태영을 레반투엘구치소에 최기선과 3명의 민간인들이 칸토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청와대 청원] 버닝썬 특검, 청문회 청원

경찰이 버닝썬과 경찰 간의 유착을 무혐의 종결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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