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은 한국전쟁당시 전투를 하다가 전사한 동료나 부하들이 변변한 훈장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을 평생 가슴아파 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방에서 전투를 하던 사람들은 훈장이 있는지도 몰랐다. 전방에서 전투하던 사람보다 후방에 있던 사람들이 무공훈장을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은 공고연한 사실이었다. 이대용 장군도 전쟁이 끝난이후 자신의 부하들에게 훈장이라도 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을 다름과 같이 남겼다. 6월 25일 출동했던 소대장 네명이 전쟁기간중 모두 전사했다.
인원점검을 시키니 외출 외박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병과 휴가간 사병들이 합계 약 40명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대장 4명은 모두 와 있었다. 그 후의 일이지만 이들은 한국전쟁에서 모두 전사했다. 제1중대 제1소대장 한도선 중위는 문경 옥녀봉 전투에서 전사하고, 제2소대장 강구석 중위는 금성전투에서 전사했다. 제3소대장 손종구 소위와 제4소대장 대리 이한직 상사는 낙동강 교두보 전투에서 전사했다. 나는 음성전투에서 적탄에 중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육군병원에서 다행히도 살아 남았다. 내위의 상관인 제1대대 부대대장 조현묵 대위는 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대대장 김용배 소령은 양구전투에서 전사했다. 2명의 직속상관과 4명의 직속부하는 전원전사하고, 나 홀로 외로이 살아 남아서 그 기록을 여기에 남기게 된다
그리고 나라위해 그렇게 용감히 싸우다가 적탄을 맞고 산화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장병 중에서 6.25 한국전쟁 초기에 전사한 한도선 중위와 손종구 소위, 이한직 상사 그리고 7월에 제1중대에 부임하여 용전분투하다가 신령화산전투에서 전사한 내부하 소대장 도진환 소위등은 용전분투와 희생에 걸맞은 훈장조차 받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 태극, 을지, 충무, 화랑 등의 무공훈장 제도가 생긴 것은 1950년 10월 28일로 한국전쟁 발발 4개월 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 전에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장병들은 받으래야 받을 훈장 자체가 없었다. 또 일선 장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념일뿐, 훈장 같은 것은 꿈속에서 조차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국가라면, 나라위해 용전분투하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한 지고지순의 애국용사들에게 알맞는 훈장을 추서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60녕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국방부 상훈 담당부서에서는 이들 애국장병들에 대한 훈장추서를 하지 않은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10년전 6.25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이 하여 이들 몇명의 나의 옛소대장등에 대한 포상누락 사실과 공적사실을 자세히 적어서 그들에 대한 훈장수여 상신을 육군본부 상훈당국과 국방부 측에 정식으로 한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당시 김대중 정권은 괴변을 부리며 이를 묵살했다. 묵살 이유는 6.25 한국전쟁 유공자에 대한 포상은 그때 충분히 했으며, 휴전후인 1953년 7월부터 1년간 포상 누락자의 훈장 추가 포상을 실시하여 누락자들에게도 훈장을 추서한 일이 있었고, 또 50년전의 일을 이제와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면서 거절한 것이었다. 나는 1953년 7월부터 1년간 포상누락자들에 대한 훈장 추서기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금시 초문이었고, 또 50년 전의 일을 이제와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변명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전투 유공자에 대한 훈장 수여는 그 공적 사실 여부가 관건이지 훈장수여 시기가 늦고 빨ㄴ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6월에 보훈 선진국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때 이탈리아 시실리 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행정실수로 훈장을 못받고 있던 11명의 미국 사병에 대한 전공사실이 58년만에 새로이 입증되자 이들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2001년 3월 13일에는 51년 전 미 육군제24보병사단 말단 소총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경주북방지구 전투에서 적탄 24발을 맞은 로버트 필립(76세)의 용감한 전공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자, 미국 정부는 은성무공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이대용 장군은 생전에 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받지 못하고 받지 않아야 할 사람이 훈장을 받았다고 여러번 아쉬움을 표했다.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해서 WTO가 일본을 패소시킴을 보며(부제 : 뭔가 낌세가…)
이 현상에 대한 저의 생각에 대해 여러분들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이대용 장군의 두 사선을 넘다) 3 죽은자는 말이 없다. 훈장과 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