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사이공 억류기) 1 들어가며

꽤 오랫동안 이대용 장군의 기록을 읽고 정리했다. 이번부터는 이대용 장군이 출판한 책 중 마지막으로 사이공 억류기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대용 장군은 다른 사람과 달리 많은 기록을 남겼다. 더우기 특별한 것은 그의 기록이 매우 솔직하다는 것이다. 침소봉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잘못한 것을 많이 숨겨주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의 잘못은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사이공 철수과정에서 주월대사였던 김영관의 잘못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지 않았다. 당시 김영관 대사가 먼저 철수를 하는 바람에 많은 혼선이 생겨 베트남 교민중 상당수가 철수를 위한 헬기를 타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대용의 억류기나 다른 기록을 보면 그 과정이 분명하지 않다. 이대용 장군의 일기를 살펴보면 그가 사이공 억류기를 정리하면서 김영관 대사의 잘못을 적시 하지 않으니 이야기를 정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적기도 했다.

김영관 대사는 해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처음으로 대장 계급장을 달았던 인물이다. 그는 단신 철수이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 김영관은 백선엽이 운영하던 선인재단의 상임이사와 이사장을 역임한다. 백선엽이 김영관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백선엽은 문제가 있거나 비위가 있었던 사람들을 옆에 두면서 관리한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 박정희 백선엽 용인술에 있어서 유사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사이공 억류기 정리를 마치면 다음부터는 이대용 장군의 일기장을 정리해 나갈 예정이다. 이대용 장군은 방대한 양의 일기장을 남겼다. 전쟁기간중에 수첩에 기록한 내용을 모아 전사기록을 발간했다. 사이공 공사로 있는 동안에도 매일 일기를 적었다. 억류당하기 직전 자신을 도와주던 프랑스인에게 일기장을 맡겼다. 그러나 그는 이대용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각될 경우 자신도 곤경에 빠질 수 있는 점을 우려해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월남에서 석방된 이후에도 계속 일기를 적었다. 그러나 퇴직이후 사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사업장에 있던 일기장도 압류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그중 일부가 남아 있었다. 이대용 장군 생전에 일기장을 보여주기로 했다. 자신이 사망하기전까지는 개봉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장군의 유지를 받들어 원본은 전쟁기념관에 기증을 하고 사본은 국내 대학의 연구소에 보관해 놓았다.

사이공 억류기는 324쪽의 방대한 기록이다. 이전에 정리했던 부분은 생략하고 새로운 내용만 추슬려서 정리하고자 한다. 자료를 읽어보고 정리하면 할수록 어떻게 이런 분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든다. 진정한 영웅인 잊혀지고 가짜 영웅만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


멋진 사진을 보느라니 감성이…

푸른 하늘을 보며 길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맑음이 있겠지요.이 메마른 땅을 밟고 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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