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간신히 추슬려 병력을 이끌고 다시 묘향산 봉오리로 올랐다. 집결한 병력들을 확인해 보니 제1중대 제4소대가 주력이었다. 제2중대 하사관 1명, 제4중대 하사관 1명, 제3중대 및 제12 중대 병사 각각 1명, 북한 인민군으로 있다가 이쪽으로 동화된 병사 2명, 전 여자 의용군 1명, 한청원 1명이었다. 병력을 모두 세어보니 겨우 43명에 불과했다. 청천강에서 묘향산 첫째 봉우리까지 가면서 제2중대 30여명이 이탈했고 제1중대 3소대의 주력도 어디론지 없어지고 말았다.
높은 산이지만 바로 밑에 중공군에 몇만명이 있어 불을 피우지도 못한채, 수천년 쌓인 낙옆위에 털석 주저 앉았다. 해발 1200미터를 지나는 초겨울 바람은 매우 추웠다. 옷이 동태처럼 꽁꽁 얼어 붙으니 온몸이 떨려왔다. 굶은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만 들려왔다. 굶주림과 추위로 잠도 이룰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면 추위에서 벗어나려니 했으나, 가눌수 없는 팔다리를 이끌고 산을 넘어 강행군을 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모두들 걷다가 맥이 빠져서 한숨만 쉬었다. 그래도 적십자병원 고등간호학생 박태숙만 생글 생글 웃으며 어서가자고 재촉했다.
박태숙이 이대용의 칼빈총을 메고 가겠다고 했다. 이대용은 권총만 차고 칼빈소총을 박태숙에게 주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도 무거웠다.
한참을 가다가 형제봉 인근에서 인테리 풍의 청년과 동생인듯 한 16,7세의 소녀들 만났다. 그는 희천에서 치안대원으로 있다가 피난왔다고 했다. 그들로 부터 중공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희천 개천 가도를 따라 남하 했으며, 그 수효는 수십만이 될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제봉에 올라 다시 소민동과 동창 사이의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몇시간 동안 산을 헤메이고 나서 겨우 화전민촌에 도착했다. 모두 피난을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앞뜰 한모퉁이에 털다 남은 콩단 부스러기가 조금 있었다.
서소위가 콩단에 불을 질렀다. 불을 끄고 다시 콩알을 주웠다. 43명에게 나누고 보니 1명당 50알 정도 되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모두들 골짜기로 흐르는 물을 마셔서 뱃속의 콩을 불려서 배부르게 만들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박태숙과 정정훈 그리고 중대전령 박하사와 홍하사가 먹을 것을 장만했다고 이대용을 데리러 왔다. 가보니 호박 삶은 것이 조금 있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니 변소 옆에서 주워왔다고 한다. 이대용은 주먹만한 호박을 한입 먹고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도 사양하다가 조금 먹고 다시 이대용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산골짜기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밑에 아군이 있으리려니 하고 생각했다. 갑자기 서소위가 와서 중공군과 내부서원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했다. 가서 살펴보니 이대용의 부대보다 10배는 많은 듯 했다. 지치고 굶주린 병사들을 데리고 더 이상 전투를 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때 2중대 출신 김중사가 사복을 입고 무기를 버리고 각자 분산행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다. 이대용은 험악한 표정으로 김중사를 쳐다 보았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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