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죽기를 각오하고 나니 어떻게 죽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도 값있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대장이 붙들어 놓은 신병들과 이대용을 따라온 고참병사들을 데리고 다시 고개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이길을 올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대용이 제일 선두에 섰다. 그 뒤에 중대전령, 무전병, 통신하사들이 따라왔다. 그 다음에 소대장과 소대원들이 따랐다.
선두에 선 이대용이 고개마루에서 12,3보를 내려가지 마자 주막집이 하나 보였다. 그 주막집을 지나 4,5 미터만 내려가면 자동차 신작로인 큰길과 오솔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신작로를 따라 4, 50 미터를 내려가면 급커브길이 있고 거기에는 대대의 중화기 중대 수냉식 기관총이 배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제1중대를 돌파하고 올라오는 오솔길의 적을 사격하기 위해 종심깊게 배치해 놓은 후방의 기관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기관총이 돌연 총성을 내면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대용은 무슨 일인가 해서 그 지점의 상황을
응시했다. 큰길을 따라 올라오던 먹구름 같은 군인 행렬들의 집단이 기관총구 불과 2,3 미터 앞에서 정강이를 맞고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고 있었다. 뒤에 따라오던 군인들은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를 소총으로 쏘고 있었다.
서로 손을 내어 밀면 붙들 수도 있는 정도의 근거리에서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대용은 큰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는 부대를 제3중대라고 생각했다. 분명 큰 길 바로 밑에는 제3중대가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용은 아군 3중대와 중화기 중대인 4중대간 전투가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야간에는 아군끼리 서로 모르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답답했던 이대용은 큰 소리로 “야! 아군끼리 싸우는 거 아니냐? 서로 확인해봐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대 누군가가 수류탄 수류탄 하면서 죽어갈 것처럼 외쳤다.
마침 고개로 올라오는 1명의 군인이 이대용 앞을 지나갔다. 이대용은 그의 팔을 붙들고 물었다. 너 3중대원이냐 ? 저기 3중대하고 4중대하고 싸우는 거지? 하고 물었다. 그는 “응 아군끼리 싸우는 거야”하고 지나갔다. 대답이 시원하지가 않았지만 그말을 듣고 아군끼리 전투라고 확신을 했다.
그는 방한 전투작업모를 쓰고 긴 군용외투를 입고 있었다. 당시 아군은 철모를 쓰고 야전잠바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그가 아군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대용은 그것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다. 전투에 잔뼈가 굵은 역전의 야전 중대장이 적군을 식별하지 못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중공군 길안내 하는 북한군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이대용은 바로 기관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큰길을 따라오던 군인들의 선두는 정지되어 있었으나 그 뒤에 따라오던 군인들은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접근한 이대용은 큰소리로 “너희들 3중대냐 ? 조심해라. 아군끼리 싸운다”고 소리쳤다. 그런데 아뿔싸 들려오는 소리는 웅얼웅얼하는 중국말이었다. 그들은 중공군이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이대용은 정신없이 그길로 바로 뒤로 돌아 도망쳤다. 단숨에 50미터를 날듯이 뛰었다. 조금있다 바로 중공군의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죽는건가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집같은 송장이 되었어야 할 이대용은 아무런 부상도 없이 무사했다.
곧바로 중공군들이 따라왔다. 고개마루터기를 점령한 중공군은 가창방면을 향해 줄줄이 걸어나가고 있었다. 중공군의 야간행렬은 3시간 가까이 계속되었고 제일 후미에는 마차들이 가고 있었다. 중공군이 다 지나가고 동이트자 이대용은 홀로 산을 타서 적의 포위망을 탈출하기로 생각했다. 칼빈 소총은 자동스프링이 빠져 달아나고 탄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허리에 차고 있었던 소련제 떼떼 권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1시간 동안 산을 넘어 적진을 지나서 다시 미제1기병사단 제8연대의 제3대대를 만났다. 거기서 다시 이대용은 제7연대를 찾아갔다. 제7연대 본부는 가창 부근 개울가 덤불옆에 있었다. 연대장 임부택 대령은 건빵 봉지를 개울바닥에 내려놓고 식사대용으로 먹고 있었다. 임부택 대령은 이대용을 보자 다정하게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제1중대장 수고했어, 제1중대는 우리 7연대의 가장 정예중대지. 이번에 패한 것은 중대장 잘못이 아니라 내가 지원을 잘못한 탓이야. . . “라고 임부택 대령이 이대용을 다독였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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