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산 북창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였다. 이대용은 북창리 북방 3킬로미터 지점에서 덕천과 북창 가도를 차단하기 위해 부대를 배치했다. 제2소대를 예비로 두어 중공군이 전선을 돌파하더라도 종심을 가지고 저항하리가 생각했다. 땅은 얼어붙어 있었고 축성장비인 삽과 곡괭이가 없어서 전투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침 북창리 치안대원들이 삽과 곡괭이를 민가에서 빌려와 작업을 도와주었다. 약 6시간 이후에 방어진지 공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적과 싸울 수 있는 태세가 갖추어졌다.
그러나 부대 이동명령이 내려왔다. 제1중대는 다시 서쪽으로 약 30리 정도 이동하여 해발 300미터가 넘는 고지일대에 배치되었다. 여기서도 다시 이동명령이 내려와 1950년 11월 29일 야간행군으로 맹산 북창과 가창사이에 있는 미럭고개를 향해 걸었다.
미럭고개는 가창 동북방에 있는 전술적 요지로, 이 고개를 확보하면 덕천으로부터 맹산 북창을 거쳐 평양쪽으로 내려가는 큰 신작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대대장 김용배 중령은 중대장들을 집결시켜 고개 마루터기에서 방어명령을 하달했다. 제1중대는 오솔길을, 제3중대는 신작로를 차단하고 제2중대는 고개 능선에서 예비대로 배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대용은 중대원들을 이끌고 고개 중턱에서 병력을 배치했다. 부대 배치를 하면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개인 산병호와 공용화기호를 파야 하는데 야전삽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고참병 뿐으로 전체 병력의 1/5에 불과했다. 방어진지를 구축하지 못하면 저항다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모조리 당하는 형국이 될 뿐이었다. 대대장은 내일 아침에 미 제1기병사단과 미럭고개에서 교대하므로 하루밤만 견디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1개분대에 2개밖에 없는 삽으로 언땅을 파고 있었다. 60미리 박격포는 밭 가운데 있는 무덤 뒤의 땅이 꺼진 지역에 세워 놓았다. 삽이 없는 신병들은 전방에 적군이 나타나는지를 감시하고 있었다. 숨을 곳 하나없이 신병들은 추위에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이대용은 신임 소대장들이 소대배치한 것을 살펴보고 중대 지휘소로 돌아와 막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계는 24시 5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갑자기 500미터 정도 앞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대용은 그 소리가 적의 소총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10여발의 기관총 소리가 들리더니 푸른 예광탄이 이대용의 왼쪽 어깨옆을 지나갔다. 중공군의 기습이었다. 이대용은 어둠속에서 기관총의 응사를 지시했다. 흙가죽만 벗겨놓은 깊이 5센티미터 정도의 산병호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밭고랑이 나을 것 같아서 그 뒤에 업드려 보았으나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막 일어서 우측에 있는 무덤 쪽으로 몸을 옮기려는 찰라 적의 포탄이 주변에 떨어졌다. 이대용은 겁이 덜컥 났다.
여기서 아무런 엄폐나 차폐물이 없이 적의 소총이나 직사탄에 몸을 완전하게 노출하고 있는 것은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개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제3소대장 대리 박 상사가 중대장 이대용을 부르고 있었다. 신병들은 매에 쫓기는 참새처럼 뒤로 돌아서서 와르르 도망치고 있었다. 여기서는 저항이 불가능하니 산마루에 올라가 능선에 몸을 숨기고 머리와 총만 내놓고 싸워야 한다고 건의했다. 눈앞에서 수류탄이 작열했다. 신병들은 모두 달아나고 고참병 20명만 남았다.
이대용은 “능선으로 후퇴”하고 하면서 고개마루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대대장 김용배 중령이 고슴도치 수염을 거꾸로 세우고 노기를 띄우며 이대용을 나무랐다.
“야, 이놈, 이대위, 너 여기까지 후퇴해 오면 어떻게 할 작정이냐? 이대로 가면 우리뿐만 아니라 20리 후방에 숙영하고 있는 미제1기병사단까지 전멸이다. 무슨일이 있더라도 날이샐때까지 이고개를 지켜라. 1중대에서 도망친 놈들은 잡아 놓았으니 이끌고 다시 되돌아가라”고 일갈했다.
김용배 중령은 평생 한번 다른 사람들에게 상소리 한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대용은 김용배 중령이 가장 아끼던 부하였다. 이대용은 그런 그가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오늘 밤 자기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여기가 내 무덤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런 변명없이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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