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16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다.

맹산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지만 앞으로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 한계에 봉착하면 어찌할까를 고민했다. 남은 탄약은 개인별로 약 80발 정도였다. 한번 정도의 전투면 모두 소진될 정도에 불과했다. 이대용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보다는 자결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가는 와중에 중공군과 북한군을 보았으나 모두 피해갔다.

길을 가는 와중에 민가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겨우 어찌 어찌 대동강을 건넜다. 그 사이에 중공군의 추격을 받기도 하고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야간에는 아예 북한군의 행군대형에 같이 끼여서 걸어가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지막 까지 남은 이대용의 부대원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대동간을 지나 수하리에 도달했더니 국군의 지시를 받아 오던 치안대원 30명이 있었다. 반가웠다. 자세한 적정을 물어보니 이들도 적의 포위망에 갇혀서 웅성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용이 목표로 삼고 있던 맹산도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어제 오후에 아군 제21연대 수색대와 적과의 교전이 남중리 남방 약 1킬로미터 지점에서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대용은 치안대원까지 모두 지휘하여 남중리의 적을 뚫기로 했다. 먼저 치안대장에게 자신의 지시에 충실하게 복종할 것을 명령했다. 남중리 지리에 밝은 치안대장과 치안대원 3명, 그리고 제1중대의 이상록 하사를 정찰대로 먼저 내보내고 이대용은 본대를 이끌고 전진했다.

오후 2시경 남중리에 도착하니 적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은 후방에 대한 경계를 별로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중년 부인 한사람이 다가와서 중공군의 상태를 물어 보았다. 이대용의 앞에 있는 적은 60여명으로 남중리 서쪽 산줄기와 기슭에 참호를 파고 배치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군 제21연대는 여기서 약 5리 쯤 남쪽에 있는 것 같았다. 적은 전투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대용은 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적의 뒤와 왼쪽으로 부대를 숨겨서 은밀하게 이동 접근시켰다. 적의 진지 약 200야드 지점까지 숨어 들어갔다. 이대용은 ‘사격 개시’를 명령했다. 놀란 적군은 총2발 정도만 쏘아 보다가 도망을 쳤다. 적이 도망을 치자 다시 남쪽으로 걸어갔다.

얼마정도를 걸어가다가 아군을 만났다.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국군용사들이 박격포와 기관총을 들러메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서 옛 중대의 선임하사관이었던 김재의 소위를 만났다. 그는 이대용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북으로 향했다. 이대용은 동네에 들어가 밥을 지어먹고 다시 안전한 북창으로 들어갔다. 1950년 11월 8일 0시 30분 경이었다. 탈출에 성공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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