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제6사단 사령부에 도착하자 마자 박태숙과 정정훈을 서울로 보냈다. 그 이후 우연히 박태숙이 서울에 부식을 사러 나온 제1대대 부식차를 보고 이대용에게 케이크와 편지를 보냈다. 그 이후 이대용은 중공군과 전투를 하느라고 서울 적십자 병원 간호원과 간호학생들과 연락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 이후 이대용이 서울 적십자 병원을 찾게 된 것은 1년반이나 지나서 였다.
이대용이 제2사단 제32연대 제3대대장으로 전속된 1952년 초 여름 어느날 3박 4일의 특별휴가 명령을 받았다. 이대용은 밤 10시가 지나 서울 적십자 병원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신분을 밝혔더니 수위가 깜짝 놀랐다. 이대용이 박태숙과 정정훈을 보호하여 서울까지 데리고 나온 철수과정의 이야기를 수위까지도 알고 있었다. 수위는 이대용을 수직의사에게 안내했다. 숙직의사는 박태숙이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김태웅이었다. 김태웅은 이대용을 간호원 숙소로 데리고 갔다. 당시만 해도 간호원 숙소는 금남의 지역이었다. 신분을 불문하고 밤에는 남자가 얼씬을 해도 안되는 곳이었다.
수위가 이대용이 찾아왔다고 큰소리로 알렸다. 잠자리에 들었던 간호원과 간호학생들은 잠옷바람에 맨발로 뛰어 나왔다. 그리고 이대용을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녀들은 이대용을 친아버지 대하듯이 기쁘게 맞이했다. 자정이 넘어 시내에 가서 자고 오겠다고 했더니 그녀들은 안된다면 병원안에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의사 선생님들도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병원에서 휴가기간이었던 3일내내 지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이대용은 전선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약 1년후, 3년 1개월동안 계속되던 한국전쟁이 끝났다. 이대용은 전쟁이 끝난 다음해에 결혼을 했다. 서울 적십자병원측은 이대용을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이대용의 식구가 입원하면 적십자 병원 의사나 간호원의 직계가족으로 취급하여 병원비도 크게 할인해 주었다. 박태숙이 이대용 가족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대용의 아내는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도 아프면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입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대용이 베트남 무관으로 외교관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왕래가 끊어졌다. 14년 6개월 동안 해외에 있다보니 서울적십자 병원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모두 병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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