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33 김용배 대령의 전사

환송행사였으나 흥겨워하는 장교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색할 정도로 천막안은 조용해서 엄숙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제2대대 부대대장 김대위가 먼저 노래를 불렀다. 연대본부 중대장도 무슨 노래를 불렀다. 이대용은 야전에서 새로 배운 ‘무지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를 불렀다. 연대 인사장교는 용진가를 불렀고, 작전주임은 양양가를 그리고 군수주임은 신고산 타령을 불렀다.

손뼉을 치고 소란해지면서 다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용배 중령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잔에 남은 술을 쭉 마시고 일어서서 북진가를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부대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몇마디를 했다. 누가 어떤 짓을 하던 우리는 묵묵하게 맡은 임무를 완수하자는 이야기였다. 말을 마친 김용배는 천막을 나섰다.

두열로 양쪽에 줄지어 있는 장교들과 악수를 나눈 김용배 중령은 대기하고 있던 짚차에 올라탔다. 장교들의 경례에 답례를 하자 짚차는 사단 사령부 쪽을 향해 갔다. 고생을 같이했던 부하들과 석별의 정을 금할 수 없다는 뜻이었을까 ? 질주하는 차에 앉아 있던 그는 자꾸만 뒤를 돌아다 보았다. 김용배 중령을 실은 짚차가 커브를 돌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김용배 중령과 마지막 작별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연대장으로 취임한지 불과 열흘후 양구 방면의 전투에서 그는 적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제7사단 제5연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던 도중 전사한 것이다. 군의관들이 달려가 갖은 응급처지를 다해보았으나 김용배 대령은 선혈을 낭자하게 흘리고 영영 소생하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던 것이다 .

이 비보를 접한 제7연대에서는 김용배 대령과 생전에 가장 가깝게 지내던 부하였으며, 제2사단 32연대 대대장 요원으로 확정된 이대용을 양구로 보내 조의를 표하게 했다. 이대용이 달려간 때는 7월 3일이었고, 이미 김용배 대령의 유해는 입관되어 있었다.

김용배 대령이 유해위의 천막벽에는 검은 헝겊을 두른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죽음과 삶의 갈림길, 전선을 달리며 고락을 함께 하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져 오열이 쏟아졌다.

이대용은 조문을 마치고 나왔다. 해는 서산에 기울어져 있었고 전선에는 포성이 은은히 들리고 있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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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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