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두사선을 넘다) 2. 앙드레 모로아와 이대용 장군의 기록

이대용은 원래 교사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다가 북한에서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월남하여 육사 7기로 입학하여 군문에 들어섰다. 인간은 모두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간다. 이대용이란 인간을 특징짓는 여러가지 중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대용 장군이 남긴 기록을 여기저기 살펴보면서 그가 앙드레 모로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앙드레 모로아의 제2차세계대전 기록을 읽고 있었다. 이대용 장군이 남겨 놓은 앙드레 모르아에 대한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프랑스 문필가 앙드레 모로아는 영국의 정치가이며 문필가인 윈스턴 처칠경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약 1년전에 만났다. 그 때 처칠은 모로아에게 “모로아 군. 소설쓰기를 그만두고 실기를 쓰게. 좋은 실기는 나라의 멸망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교훈을 국민들에게 감명있게 전해줄 수 있는 위대한 기록물이 될 수 있는 것일세” 하는 조언을 주었다. 모르아는 이 조언을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길게 도취된 채 독일 히틀러의 위협을 경시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소홀히하는 프랑스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분열상을 실기를 써서 경고하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그 이후 모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육군대위 신분으로 참전했으며, 프랑스 패방의 사연을 담은 실기인 ‘프랑스 전선’, ‘프랑스는 패했다’ 두권을 저술했다.

이대용은 모로아가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로 가는 망명길에 탈고한 ‘프랑스는 패했다’의 마지막 부분에 감명을 받았다. 이대용은 여러 책자에서 이부분을 기록하고 있었다.

티없이 맑고 귀여운 얼굴로 웃어대면서 이리뛰고 저리 뛰면서 놀고 있는 그 어린애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로아는 눈물을 적셨다. 그리고 탈고한 원고지를 다시 꺼내서 눈물을 닦으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추가로 적어 놓았다

너여, 조국에 충성하라

이대용은 이부분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구한말이후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해방이 되었으나 국토가 분단되어 세계 최빈국으로 허덕이던 당시의 상황을 프랑스의 모로아가 대신 기록해주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가 전쟁터에서 생명을 건 전투를 하면서도 항상 기록을 했던 것은 바로 앙드레 모로아의 영향이 아니었나 한다. 그 이후에도 그는 평생동안 일기를 썼고 기록을 남겼다. 아마 이대용식의 실기가 아니었나 한다.


장애인들에게도 안전해질 권리를 보장해 주십시오.

KBS 시청자 청원에 목소리를 모아주세요. 소셜 로그인도 가능합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이대용 장군의 두사선을 넘다) 2. 앙드레 모로아와 이대용 장군의 기록’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